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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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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8일 17시 13분 등록


아름다운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어릴 때 거세된 남성 소프라노, 카스트라토의 삶.
카스트라토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파리넬리"의 이야기를 담은 예술영화, "파리넬리"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예술은 참 잔인하다는 점이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예술 혹은 천재 이런 수식어가 붙는 이들의 삶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여 때론 극한적 희생 혹은 그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것과 삶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에게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 사람의 예술가의 삶이 만들어지기 위해 누군가 운명에 개입했다면 어떠할까?
더군다나 그 누군가 자신의 욕망때문에 타인의 삶을 조정하려했다면..?

파리넬리의 형 리카르도는 평범한 작곡 재능을 지닌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동생 파리넬리는 어릴 때부터 탁월한 목소리를 지녔고, 동생의 재능을 알아본 형은 아버지의 죽음을 빌미삼아 동생의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거세를 감행한다.

그렇듯 모질게 지키고 키워낸 재능덕분인건지 동생은 전 유럽을 들끓게만들 정도로 성공한 카스트라토가 되고, 당대 정통 음악을 고수하던 핸델조차도 그에게 손길을 내밀 정도에 이르른다. 하지만 형 리카르도는 또 한번 파리넬리의 길을 막아서니, 동생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핸델에게 가는 것을 용납치 못한다.

파리넬리는 이 모든 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는 알고 있다. 형의 재능이 비범하지 않다는 것. 화려함과 수식어를 잔뜩 달고 있지만, 그건 값싼 치장에 지나지 않음을. 비록 자신의 청을 거절했다고 인간적으로 파리넬리 자신을 모욕하는 핸델이지만, 그는 적어도 음악의 정통성과 순수성을 지니고 있음 또한 인정하고 마음 속으로는 늘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딱 한 번이었다.
파리넬리 스스로 형의 그물을 벗어내고 핸델에게 찾아가 함께 할 것을 청한 것 말이다.
하지만 이미 핸델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뒤였고, 상처받은 자존심을 그대로 드러내며 파리넬리를 할퀴울 뿐이다. 너는 절대 자신의 숭고한 음악을 소화하지 못할거라는 말과 함께..

형에게도 가지 않고, 핸델에게도 속하지 않는 파리넬리.
드디어 그만의 홀로서기가 감행되고, 그는 핸델의 진정성 넘치는 음악을 자신만의 아름다운 해석을 통해 스스로의 음악성을 증명해보인다. 자신에게, 핸델에게 그리고 형과 청중들 모두에게..

그리곤 사라진다.
세상에서 홀연히 사라져 스페인 국왕의 전속 음악가가 되어 칩거아닌 칩거에 들어간다.
이제 그에게 남은 소망은 단 하나, 사랑하는 여인과의 사이에 아이를 갖는 것. 하지만 운명은 아주 오래 전에 그로 하여금 온전한 남자이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그 때, 그 곳으로 형이 찾아든다. 자신이 흐트러뜨린 동생의 삶을 바로잡아주기위해.
그렇게 동생의 삶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형, 리카르도는 이제 자신이 떠난다. 먼지 날리는 전쟁터로..

영화는 분명 파리넬리가 주인공이지만, 난 형의 관점에서 영화를 보았다. 아마 스스로 천재적 파리넬리보다는 평범한 재능 속에 괴로워하는 리카르도와 더 닮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받아들여야 함이다. 파리넬리가 거세를 당해가면서 자신의 예술성을 꽃피우듯이, 리카르도 혹은 나 또한 주어진 역량 안에서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겠지. 그 누가 감히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의 삶에 함부로 개입할 수 있을까 말이다. 아무리 핏줄을 나눈 형제라 할지라도.

이 영화는 분명 이런 관점이 감상 포인트가 아닌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영화의 빼어난 예술성 그리고 그 예술적 삶에 고뇌하는 한 천재의 이면에 휘감기는 평범한 인간들의 욕망 또한 내겐 엄청 다가온 것 같다.

어쩌면 파리넬리는 일찌기 거세를 당하지 않았어도 그 나름 뛰어난 음악가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리카르도는 동생에게 죄를 짓지않았다면 일생 죄책감과 열등의식에 시달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람들은 제각기 타고난 운명에 순종하며 그 속에 펼쳐지는 소명을 찾아갈 때,
그 때 우린 보다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건 그렇게 제자리가 있을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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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애니어그램 이야기: http://blog.daum.net/alysa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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