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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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파리에서 공연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너무도 전위적인 새로운 형식으로 말미암아 팬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지만, 한 사람 운명적인 여인이 되어줄 샤넬에게만은 다르다.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파리 변두리 호텔을 전전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스트라빈스키에 샤넬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녀의 대저택에 머무르며 작품 활동을 하라는 것이 그것.
그렇게 가족 전부를 이끈 스트라빈스키와 애인의 죽음 이후 독신으로서의 삶을 이어오고 있던 샤넬과의 미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어찌보면 처음부터 한 걸음 뒤가 보이는 위태로운 시작이었다고나 할까.
이미 끌렸기에 손을 내밀었고, 내민 손을 잡은 샤넬과 스트라빈스키.
두 사람은 그렇게 스트라빈스키의 가족이 함께 거하는 샤넬의 저택에서 사랑을 시작한다..
영화 줄거리는 단순하다.
어느 정도 사실에 준하는 이야기에, 두 거장의 면모를 번갈아 보여주기에도 2시간이라는 시간은 빠듯하다.
그 외 어떤 별다른 구성이나 추임새가 들어갈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마치 두 거장의 삶이 너무도 팽팽히 맞서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로 갈수록 영화는 스트라빈스키보다는 샤넬 쪽으로 조금씩 무게추가 이동하며 전개된다. 숨겨진 정부가 아닌 당당히 스트라빈스키의 여자일수 있기를 요구하는 샤넬.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단호히 스트라빈스키를 거절하는 샤넬. 그렇지만 그를 떠나고서도 그가 제기할 수 있도록 뒤에서 조용히 후원을 지속하는 샤넬. 어느모로보나 결코 평범하지는 않은 샤넬이다.
그래서인 것 같다. 두 사람의 관계에 섣불리 불륜이란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운 이유 말이다.
결혼을 했다고해서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자체를 막을수는 없을 것이다.
마음이란 규범이라는 철제안에 그리 쉽게 가둬놓을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다만 그 사랑을 어찌할지, 그것이 모든 인간의 고뇌가 아닐런지.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는 "샤넬 넘버 5"와 "봄의 제전"의 탄생으로 그 사랑을 승화시켰다.
두 사람과 함께 그들의 사랑도 세월 속으로 흩어졌지만
그들이 남긴 스타일리쉬한 작품과 아름다운 음악은 오늘도 우리 곁에 머물고 있으니
거장들은 사랑, 헤어짐, 이별의 아픔 이 모든 것들을 대하는 깊이가 가을 낙옆만큼이나 농도 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사람의 삶보다, 두 사람의 사랑보다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이 더 아름다운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