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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1일 04시 36분 등록

1996년 12월 21일 그는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녀를 만나기 전 그에게는 여자 친구가 없었습니다. 여자 친구를 사귄적도 없었다. 한달 전 쯤 대학교 시절 친구의 아이 돌 잔치에 갔다가 동해안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동해안의 해변에서 이십대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스스로에게 왜 여자 친구가 없을까 답이 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인적이 드문 바닷가를 걷다가 어느 횟집에 들러서 혼자 자연산 광어회를 먹어 보았습니다. 꾸역꾸역 맛있게 광어회를 먹고 빈 공책을 한 권 사서 카페의 창문가에 앉아서 글을 써 보았습니다. 가을비는 내리고 혼자 마시는 술 한잔은 아주 쓴 맛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닭이 모이를 먹고 하늘을 한 번 쳐다 보는 것처럼 술 한 모금 마시고 인적이 드문 해변으로 한 번 씩 눈길을 주었습니다. 그러다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무작정 그 도시를 떠나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않고 그렇게 마음이 끌리는대로 표를 끊어서 무작정 그 도시를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식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그 전에도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무작정 기차역으로 가서 종착역까지 기차표를 끊은 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아무곳에서나 내렸습니다. 내린역이 밀양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추수가 시작되는 들판을 종일 토록 걷고 또 걸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그는 무엇인가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뜬금없이 무선 모형헬기를 샀습니다. 무엇엔가 미치고 싶은 이십대 후반이었으니까 이해해 줄만 합니다. 외로움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무엇엔가 빠지고 싶었습니다. 주말에 기숙사에 같이 사는 회사동료들이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 그는 헬기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날도 토요일이었지요. 같이 근무하던 대리님이 그에게 처제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만남의 장소는 대전 대덕 연구단지 롯데호텔. 그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헬기를 날리다가 집에 가서 밥을 챙겨먹고 가벼운 마음으로 만남의 장소에 나갔습니다. 참 많은 것을 물어보았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치 시험관처럼 그는 그녀에게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그는 친한 친구 준성이에게 전화를 겁니다. 이상한 느낌 처음 느껴보는 그 느낌에 대하여 친구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그 친구 또한 여자 친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지요.

그녀를 만나고 몇일이 지난 후 그녀를 소개해 준 대리님이 불러서 묻습니다. 어땠냐고? 여자 친구가 있은 적이 없는 그는 여자 친구집에 전화를 어떻게 걸어야할 지 몰라서 마음에 드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기다리기만 하였었지요. 그래서 솔직히 만나고 싶은데 어찌해야 할지를 모른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대리님의 중재로 두 번 째 약속을 잡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번째 약속날 회사일이 갑자기 생겨서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만남이 불발이 되고나서 다시 만나기 전에 그녀의 어머니가 그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녀에게 선을 보는 사람이 몇 명이 있다. 그렇지만 그가 마음에 든다. 가부간에 결정을 해라. 마음에 안들면 안든다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두번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크게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렇게 해서 차츰 전화도 하게 되고 영화도 보고 편지도 쓰게 되었습니다. 요즘에야 만난 지 하루만에도 한다는 손을 잡는데 무려 팔개월이 걸렸습니다. 그가 처음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무척 떨었나 봅니다. 나중에 웃으면서 그녀와 그때를 이야기 하고는 합니다. 그때 그가 너무 떨어서 그녀가 꼭 잡아주었다고 그러면서 말이지요. 물론 그도 교회에서 다른 자매들의 손을 잡은 적이 있습니다만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잡아 본 적은 없었지요. 아마도 손을 잡는 것은 그와 그녀가 함께 한다는 생각을 가져다 주는 그런 의식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만 15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와 그녀는 손을 잡고 길을 걷고는 합니다. 일주일에 한 삼사십분 걸리는 출근길을 그와 그녀는 손을 잡고 겉어갑니다. 그에게는 이보다 더 기쁜일은 없습니다. 때때로 퇴근길에도 그는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 마중을 나와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손을 잡고 돌아오는 퇴근길이 행복을 채우는 시간이 됩니다. 아직은 서로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서로 많아서 때로는 서로 말을 하려고 하지만 그는 때때로 아내가 된 그녀의 말에 좀 더 귀를 귀울여야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때로 회사일 때문에 머리가 복잡할 때 손을 잡고 걷고 있지만 그는 딴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녀는 그런 그를 정확하게 알아차리고는 합니다. 그는 애써 부정하려고 하지만 그녀의 관찰력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 만남도 좋았지만 때때로 서로에게 무덤덤할 때도 있었지만 세월이 갈수록 그 사랑이 자라나는 것을 봅니다. 그와 그녀는 서로를 구해준 서로에게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알콩 달콩 세월을 만들고 시간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와 그녀가 살아가는 길에 어떤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는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일이라도 함께 손을 잡고 헤쳐나갈 것이라는 믿음이지요. 처음 손을 잡을 때의 떨림은 이제 사라졌지만  잡은 손이 믿음과 편안함을 그에게 가져다 주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기 때문이지요.

IP *.10.14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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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1.12.21 07:53:52 *.111.206.9
8개월만에 손을 잡으셨군요. 저는 6개월만에....제가 좀 빠릅니다.^ ^

글을 읽고 보니, 저도 아내복이 참 많다는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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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1.12.21 14:24:02 *.111.206.9
고맙습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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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11.12.21 11:31:01 *.99.124.127
네. 그래요.
 먼저 좋은 아내분을 만나신 것을 축하드려요.

처음도 좋았지만 살면서 더욱더 좋아진다는 것 ..
그것이 내 노력 때문이 아니라
그냥 주어진 행복이라는 것
참으로 감사할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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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2011.12.22 16:27:38 *.168.105.22
글을 보니 그림이 그려지고, 햇빛처럼님과 연결이 되는 군요.ㅎ ㅎ

햇빛처럼님의 글을 읽다가 중국 고봉선사의 실중삼관 중에 하나인 화두가 생각나는 군요.,
"인인유개영자(人人有箇影子)하야 촌보불리(寸步不離)라 인시답불착(因甚踏不着)고?"
"사람 사람마다 모두 그림자가 있어 한 치도 떨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밟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화두를 풀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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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11.12.23 04:30:02 *.10.140.150
먼저 제글에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좋으신 글귀 그리고 숙제 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이 햇빛처럼이라는 글을 주셨을 때 생각하고 생각하고 하여
내것으로 만드려고 노력을 했는데

오늘 또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은 모르겠으나
곰곰히 생각하며 그 뜻을 헤아려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림자님도 올 한해 잘 마무리 하시고
내년에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지으시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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