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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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사랑한 그들
ㅇ 카페 전성 시대. 카페가 도대체 뭐 하는 곳인지 궁금했다. 단지 ‘안락한 곳에서 좋은 커피를 마신다’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카페 원조 프랑스와 한국의 카페가 어떻게 다를지도 알고 싶었다. 물론 직접 방문하면 좋겠다만, 우선은 간접체험으로 만족할밖에. 무엇보다 ‘카페 경영’에 대한 이전의 생각도 궁금하다.
이 책은 17세기 말 파리에 처음 등장한 ‘커피 파는 집(café)’과 ‘사람들’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름께나 알려진 카페 하나하나를 설명하여 이국적 환상을 심어주기 보다는 카페의 역사와 더불어 카페가 시대적으로 공간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었는지를 조망하고 있다.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저자가 직접 찍은 이국적 카페 사진과 소설, 시속에 등장하는 카페 풍경을 옮겨 놓은 것이 책 읽는 재미를 높여 주고 있다.
ㅇ “이제 많은 사람에게 카페의 방문은 일상의 습관이 되었다. 습관을 넘어서 의식이기도 하다. 카페가 이처럼 사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줄기차게 카페를 찾는 것일까? 카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의문이다.”
저자가 여는 글 첫 대목으로 뽑은 화두가 진지하다. “카페는 왜 사랑을 받는가” 쉽지 않은 지적이지만, 책을 읽는 동안 어느 정도의 답은 얻을 수 있었다. 카페는 한 마디로 ‘사람을 모이게 하는 곳’이었다.
ㅇ 카페는 집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많은 것을 제공했다. 비좁고 추운 집과 달리 카페에는 친구와 마실 것과 이야기와 소일거리가 주어졌다.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에게 카페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었다.
“카페의 단골손님은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이런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들에게 카페는 작은 낙원이었다. 가족의 단속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계였다.”
농부들에게는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었고, 도시 노동자들에게는 휴식처로, 귀족에게는 사교장으로, 예술가들에게 보금자리로 늘 프랑스 국민과 함께 하였다. 파리의 얼굴이라는 찬사와 함께, “레오 톨스토이는 마르세유를 방문했을 때 신분의 구별 없이 모두가 뒤섞여 어울리는 프랑스의 새로운 문화를 보고 놀라며 그 원인을 카페에서 찾았을 정도”라고 적고 있다.
ㅇ “카페는 살롱의 명성을 퇴색시켰지만 살롱은 카페의 인기를 퇴색시키지 못했다. 겉모습만으로 보면 카페를 어찌 살롱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카페는 로마의 개선장군처럼 ‘그대는 파리의 얼굴’이란 찬사를 곧잘 들었다. 카페는 진정한 정신이 깃들어 있고 통쾌한 웃음으로 가득한 곳인 반면에 살롱의 정신은 가식일 뿐이었다.”
상류 가정의 객실에서 열리는 제한된 집회가 살롱이라면, 카페는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살롱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살롱’이었기 때문이다. “술, 당구, 토론, 독서, 작업, 게으름… 무엇을 하든 카페는 누구에게나 목적지가 될 수 있다.”
ㅇ 자유로움의 상징인 카페조차 자유롭지 못한 것이 있다면 바로 ‘경쟁’일 것이다. 프랑스의 카페 역시 한집 걸러 하나씩 들어찬 주변 카페와 겨루어야 했다. 19세기 파리의 대로를 가득 채운 화려한 카페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독특함을 내세웠다.
시골에서는 자신의 본업을 카페로 연결하였다. “때때로 주인은 동시에 다른 장사를 벌이기도 했다. 커피나 술만을 팔아서는 식구를 먹여 살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카페 주인이 되기 전에 그들은 대개 식료품 장사나 이발가나 대장장이였다. 카페는 수입을 늘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이발소와 카페, 식료품점과 카페가 나란히 붙어있기도 했다.”
“어떤 식으로 손님을 유혹할까? 손님들이 술을 마시면서 오랫동안 카페에 머물게 할 방법이 무엇일까? 카페 주인들이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였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카페와 다른 점이 있어야 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도박이었다.”
ㅇ 홍대, 삼청동… 한국의 카페들은 어떻게 사람들을 모으는가? 옆집의 카페와 다른 차별적 독특함은 무엇으로 만들어 낼까? 이 책의 2부에서 제시하는 카페의 키워드들은 오아시스, 휴식, 모항, 행복, 여자, 축제, 도박, 민중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카페들은 어떤 정의를 가지고 있을까? 무엇보다도 수많은 예술가들의 안식처이자 작업장 같은 역할을 한 그런 카페는 앞으로도 가능할까?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서재’ 였다는 데서는 부러움이 앞선다.
ㅇ 어느 아담한 카페에서 적은 닫는 글의 여운이 남는다. 사람들을 모으고, 소통의 한 가운데 기능하는 어제의 카페, 그 전통을 간직한 카페가 오늘에도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카페는 공공장소가 아니라 개인적인 친밀감을 구하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카페여, 시골에서도 다시 태어나다오!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영원히 그 자리를 지켜다오! 집으로 돌아가는 동료에게 영원의 약속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내일, 또 보자구!”라고 소리칠 수 있게 해다오! 이별의 노래가 이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해다오!”
*** 이 책의 지은이 크리스토프 르페뷔르(Christophe Lefebure)는 프랑스 출신의 사진작가이다. 역사학으로 석사를 파리 정치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의 전통 유산과 유적 연구에 애정을 가지고,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빨래터를 직접 사진에 담아 펴낸 <프랑스의 빨래터>로 1996년 관광문학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주 5일제 근무 시행 등과 겹쳐 유행하는 투잡(two jobs) 개념에 참신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해볼 만한 안성맞춤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도 한몫하는 건 아닐까요?
그러다 보니 점점 아이디어를 동원해 좋아하는 일과 작업공간과 때로는 하우스(휴식과 창조) 역할까지도 모두 도맡아 일원화하여 원터치로 한방에 해결하는 방법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겠죠. 학습해온 대로 경제원칙에 입각한 발상이기도 할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