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2010년 5월 6일 10시 34분 등록

# 이사는 공간의 이동이 아니다.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활동이다. 지난 5 1() 이사 했다. 전에 살던 집은 전세 주고 오목교역 근처로 세 들었다. 새로운 집은 어두워 보였다. 지은지 20년이 되었다지만 벽지, 커튼, 가구배치 모두가 나와 집사람 눈에는 이상해 보인다. 작심하고 달려들었다. 청소와 도배, 페인트 칠, 가구와 책 배치로 무려 5일이 소요되는 어마어마한 작업을 벌였다. 문짝을 새로 달았고, 에어컨 위치도 바꾸어 가며 좁은 공간을 넓고 밝게 하려고 부단히 고민했다. 허리가 휘어지도록 닦고 조이고 칠하고 옮기고~ 힘들다. 대충의 청소가 끝나니 썩 괜찮은 공간이 하나 만들어졌다. 장모님은 어차피 비워줘야 할 집인데 뭐 그리 시간과 돈을 쓰냐고 말씀 하신다. 그래도 깔끔하고 환해지니 한결 편안하다. 구경하러 온 동서들도 한결 좋아졌다고 한다.  나도 좋고, 집사람도 만족해하고, 아이들도 좋아한다. 집은 잠만 자는 공간 이상의 무엇이다. 먹고 자고 이야기 나구고 책보고 글쓰기 위해 공간은 늘 그곳 주인의 생각과 계획에 맞게 변화되어야 한다. 잠시 들른 집주인의 농반진반의 한 마디가 무섭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들어가 살걸”… 뭐야, 이러다 2년 후에는 어김없이 또 이사해야 하는 거야?

 

# 옥탑방이 생겼다. 이사한 집 옥상에는 4평 정도, 창고 같기도 하고 방 같기도 한 공간이 있었다. 집 보러 간 첫날부터 한눈에 들어온 곳이다. 전에 살던 사람은 창고처럼 사용하였다. 청소하고, 가꾸면 쓸만하겠는데마음이 설레니 이사하기 2주전에 이미 청소와 도배를 끝냈다. 쓸고 닦고, 도배 장판으로 말끔히 단장하니 그럴듯하다. 창문이 2개나 되어 오후 햇볕을 벗삼아 책보기에도 좋다. 출입구 앞쪽에는 처마를 따라 제법 큰 천막을 새로 만들었다. 남의 집에 거금을 투자한 것이다. 무엇보다 비와 햇빛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비가오면 빗소리를 들으며 지글지글 삼겹살을 굽고, 빛이 좋으면 야전 침대를 펼쳐 놓고 그늘 아래서 한참을 잘 수 있겠다. 집 구경 오는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공간이다. 앞으로 술 마실 일 많아지겠다. 여름 장마철에는 주구장창 삼겹살만 굽게 생겼다. 집주인이 나가라면 고스란히 남겨두고 나와야 한다. 하지만 새로 이사 드는 사람에게는 아주 큰 선물이 될 것이다. 하나의 공간은 그저 그러한 공간이 아니다. 그나저나 도배하러 들렀을 때 만 해도 이곳에 길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두었었는데, 어디로 갔지? 옥탑방에 고양이라잘 어울린다.

 
P5043661 copy.jpg


# 어려서부터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던 것 같다. 예민한 사춘기 시절 나의 방은 초라했다. 천장은 늘 한 폭의 동양화 같기도 하고 지도 같기도 한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쥐가 오줌을 싼 건지,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늘 알록달록했다. 방안에는 책상 하나 책꽂이 하나 옷장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도 나는 그 곳이 매우 좋았다. 방문을 열고 있으면 바람이 살랑사랑 들어오고, 그곳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다 잠이 들기도 했다. 문만 열면 마당이 보이고 비라도 오면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볼 수도 있었다. 마음이 우울하거나 무언가 결심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그 순간 방의 가구 배치를 죄다 바꾸는 공사를 벌이곤 하였다. 책꽂이 책도 자리를 바꾸어 보고, 책상 위치를 이리저리 옮겨보고, 천장을 달력으로 덧붙여 보기도 하며 무언가 새로운 공간을 만들려고 부지런히 움직였었다. 바꾸고 변화시키는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좁은 방을 바꾸고 나면 대단한 만족과 뿌듯함으로 그 날 잠자리는 무척 달콤했었고, 학교를 마치고 얼른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 방은 나만의 공간이었고, 나의 쉼터였다. 공간은 나에게 늘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작은 놀이터였다. 나 만의 공간에서 이제 좀 더 많은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IP *.149.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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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5.07 09:41:36 *.36.210.4
emoticon우와, 부럽다니까. 치양도 만들었다며? 근사한 공간 하나 생겨부렀네. 주인도 샘나할 만큼. 짱이야!

이제부터 팍팍 써보드라고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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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2010.05.08 20:00:27 *.149.8.82
한 10년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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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7 11:59:57 *.70.143.40
전 어릴때는 다락방, 크면서는 한옥이 로망이 되었어요.
그런데 바람처럼님 공간에 진짜 남다른 감각있으신듯.
카탐 끝나고 어떤 공간을 펼쳐나가실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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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2010.05.08 19:58:29 *.149.8.82
다락방도 추억 가득한 공간이군요.
요즘 좀체로 만나기 어려운 구조라 더욱 좋아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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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
2010.05.07 22:55:45 *.106.7.10
와~, 정말 멋진데요!
빗소리가 들리는 그곳에서 바람처럼님의 생각과 글이 익어가고, 또 삼겹살이 익어가고 ^^
저도 늘 공간을 그리워하면서도 가진 공간에 정성을 쏟지 못했네요.
바람처럼님의 글을 보면서
이번 여름에 이사할때는 정말 멋진 저와 가족의 공간을 꾸미고 싶다는 욕망이 새록새록 강해집니다.

카탐 모임에 충실히 참석하지 못해서 여러분들께 너무 죄송해요 ^^;;
그래도 열심히 올라오는 글 읽고 맘으로 응원하고 있답니다.
바람처럼님, 써니언니, 태희 언니, 그리고 모든 카탐대원 여러분....
화! 이! 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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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2010.05.08 19:52:30 *.149.8.82
멋있는 공간 만드세요.
응원 감사~ 아름다운 향기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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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영
2010.05.08 16:04:40 *.135.236.215
PM님~ 완전 부러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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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2010.05.08 19:55:05 *.149.8.82
옥탑방 전문 선배 이야기로는
여름엔 삶아지고, 겨울엔 뻗뻗해지는 곳이 옥탑방이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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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5.09 10:42:01 *.219.109.113
집도 사람도 주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저 옥탑방 참 마음에 든다. 그리고 글도 참 마음에 든다.
나도 정말 미암한 마음 가득이야. 카탐을 열심히 하지 못해서....
하지만 늘 응원하고 있는 마음 알지?
그리고 옥탑방 치양 밑에서 삼겹살 먹자.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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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2010.05.11 11:00:26 *.149.8.82
이러다 옥탑방 삼겹살 카페 되겠다...
아직은 누추하오니, 좀 더 기다려 봄세 ㅎㅎㅎ 응원 감사. 웨버 홧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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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10.05.10 16:21:14 *.160.33.180

바람처럼아,
네 글은 참 쉽고 편안하다.  좋다.  다락방에 배깔고 누워 책보다 스르르 잠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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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2010.05.11 11:03:25 *.149.8.82
부끄럽습니다.
더 힘을 빼고, 마음으로 다가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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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
2010.05.10 17:46:36 *.35.254.135
대안문화공간 카페를 구상하면서
실무자들과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카탐대원님들의 글을 읽다
여러분들의 체험기를
직접 듣고 싶어졌습니다.
여긴 전라도 여수입니다.
먼길이지만 여수까지 오셔서 
카탐대원님들의 생생한 체험담이나
직접 운영하고 싶은 카페 운영방향에 대해 나누어 주시면
서로의 고민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카페가 탄생할 수도 있습니다.
대원들마다 각자 다른 생각을 환영합니다.
3~4회 워크샵 형태로 진행되었으면 좋겠고
워크샵 진행 후 대원님들이 추천해주는 카페로 벤치마킹도 할 예정입니다.
교통비와 약간의 강의료를 드릴 계획입니다.

김선관(019-608-5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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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2010.05.11 11:16:58 *.149.8.82
많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제안은 더없는 영광입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하지만, 아직 저희 까탐 프로젝트가 완료되지 못하여 설익은 경험이 우려스러울 뿐 입니다. 
마침 저희 까탐 전체모임이 오는 16일(일) 오후 2시에 예정되어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별도 공지)
괜찮으시다면 모임에 나오셔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듣고 함께 대화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래야 좀 더 구체적인 서로의 도움과 참여 방법이 찾아질 듯 합니다. 

아울러, 전체 모임은 저희들이 하는 하나의 수업이자 과업이오니,
이 점을 잘 배려하실 수 있으시면 참석하셔도 좋습니다.  

물론 일정 관계상 참석이 어려우시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까요?
제 연락처는 010-3229-0067 (이효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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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엽
2010.05.10 23:40:07 *.166.98.75
이사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활동!!
정말 이젠 글이 술술~ 풀리겠습니다.
자주 못보지만 언젠가 "잘풀리는 집"이라는 박스티슈를 한다발 사들고 가고 싶네요.
일단은 먼저 마음만 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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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2010.05.11 11:20:52 *.149.8.82
감사합니다. 박스티슈 조차 둘곳 없는 누추한 곳입니다. ^^
넘치는 마음 잘 받았습니다. '잘풀리는 집'이라... 그 박스티슈 대박감 이군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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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희
2010.05.11 00:15:57 *.219.138.90
어릴적 나에게도 나만의 공간인 작은 다락방이 있었어요.
큰방에 딸린 부엌 위 공간말이예요. 보통 창고로 여러가지 세간살이를 두는 곳으로 사용이 되던 곳이지요.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러긴 했는데 비집고 들어가 혼자 놀던 기억이 있네요.

언제 한번 초대해 줘요, 옛 추억에 잠겨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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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2010.05.11 11:32:38 *.149.8.82
그렇지. 부엌에는 다락방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였지...
포항에 함 내려간다는 것이 여의칠 못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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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10.05.11 04:55:25 *.72.153.59
잠시 들른 집주인의 농반진반의 한 마디가 무섭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들어가 살걸”… 뭐야, 이 러다 2년 후에는 어김없이 또 이사해야 하는 거야?

크큭.

바람처럼님의 공간에 대한 생각에 공감합니다. 자취생활 초기에 직원들이 제 방을 보고는 제가 잠시 머물사람인지 살 사람인지를 구분해 내더군요. 잠만자는 곳인지 그곳에서 휴식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갈지를 알아보더라구요. ^^*
이사하고 싶은데 경제적 사정은 안되어서...집을 넓게 쓴다고 문짝을 떼어낸지 몇개월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사갈땐 다시 달아줘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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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2010.05.11 11:35:58 *.149.8.82
자취시절 전 거의 뻔데기 수준이었습니다. 이불깔아두고 몸만 넣다 빼는 그런 ...ㅎㅎ
문짝 떼어내는 것도 엄청 힘든일인데, 나중에 다시 달땐 튼튼한 장정 부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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