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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사랑한 그들
크리스토프 르페뷔르 지음/ 강주현 옮김/ 효형출판 2008
1. 저자: 크피스토프 르페뷔르 Christophe Lefebure
역사학석사, 파리 정치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통 유산과 유적 연구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학자다.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빨래터를 직접 사진에 담아 펴낸 『프랑스의 빨래터 La France des lavoirs 1995』로 1996년 관광문학대상을 받았다. 최근작으로는 『가족의 성:프랑스의 우아함 Châteaux de famile: Une élégance Francaise 공저, 2007』,『파리의 어린이:꿈과 놀이로 들뜨는 때 Enfances Parisiennes: Le temps suspendu des rêves et des jeux 2007』,『전통 유사의 보고, 일 드 프랑스 Trésorsdu patrimoine rural d ́Ile-de-france 2006』,『조용한 파리 Paris au calme 2006』,『프랑스의 신앙과 미신 La France des croyances et des superstitions 2004』등이 있다.
옮긴이: 강주헌
한국외대 불어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 수여.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수학한 후 한국외대와 건국대 등에서 언어학 강의.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 수상.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문명의 붕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스펜서 존슨의 선물』,『나의 프로방스』등 많은 책을 번역했다.
2. 본문 인용
카페는 일상이다.
술, 당구, 토론, 독서, 작업, 게으름... . 무엇을 하든 카페는 누구에게나 목적지가 될 수 있다. p9
01 프랑스의 카페들
프랑스인처럼 카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들은 카페에 가기 위해 카페에 간다. 혹은 술 마시기 시합을 벌이기 위해, 때로는 애국심을 불어넣는 노래를 친구들과 부르기 위해 카페를 찾는다. -<파리의 산책자>, 레옹 폴 파르그
최초의 카페, 프로코프
커피가 유럽 대륙에 수입된 17세기부터 카페도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의 카페들은 호화로운 실내장식으로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서민들이 자주 찾던 음침한 공간과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그곳에서 정치 토론이 벌어지고 반체제 음모가 획책되었기 때문에 곧 당국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p12
카페의 문제점
카페는 계속해서 늘어갔고 번화가를 벗어나 변두리에까지 들어섰다. 그런 곳은 카페가 아니라 카바레, 트리포tripot, 타피 프랑tapis-franc이라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서민들조차 그런 곳을 찾지 않았다. 파는 음료가 불결한 상황에서 멋대로 제조되어 건강을 해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민들이 주로 즐겨 찾는 카바레cabaret와 담배방 주인들은 포도주와 맥주를 다른 주류에 불순물을 섞어 팔기도 했다.
카바레는 원래 동네나 마을의 싼 술집을 뜻한다. p19
술에 불순물을 섞어 파는 행위가 범죄적인 행위인 동시에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카바레 주인들과 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지식인들의 저작도 잇달았다.(파리의 풍경/ 루이 세바스티앙 메르시에)
카페에서 제공되는 커피 자체도 미흡한 점이 많았다. 오히려 집에서 마시는 커피 맛이 더 나은 편이었다. 대리석 테이블, 거울, 크리스털 샹들리에 등으로 호화찬란하게 꾸며진 아름다운 곳 카페에서 선량한 시민들은 대화를 즐기면서 새로운 소식을 알게 되지만, 제공되는 커피는 집에서 끓이는 것에 비해 훨씬 못했다. (거래 사전Dictionaire universel de commerce/ 자크 사바리 데 브륄롱Jacques Savary des Brulons) 따라서 일부 사람들이 카페를 찾는 것은 무엇을 바랐다기보다는 거의 무의식적인 행위였다.
거울로 둘러싸인 그곳은 서글픔과 신랄한 풍자에 짓눌려 있다.
어디에서나 슬픈 기운이 엿보인다. 새로운 음료가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이곳에서 마시는 커피는 대체로 너무 태워서 쓴맛이 강하다.
레모네이드는 위험할 지경이고 술은 건강에 좋지 않다.
그러나 화려한 카페를 찾는 선량한 파리 시민들은 비판 없이 모든 것을 삼킨다. (- 파리의 풍경, 루이 세바스티앙 메르시에) p19
삼류 문인의 집합소
카페에서 사람들은 연극과 문학에 대해 토론을 벌였고, 그 시대에 발표된 작품과 연극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기탄없이 개진할 수 있었다. 예술가들은 카페에서 명성을 얻었고 잃기도 했으며, 작품의 성공 여부도 카페에서 결정되었다. 카페는 한량들의 피난처였고 가난한 사람들의 안식처였다. 그들은 겨울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땔감을 절약한다. 학문적인 토론이 벌어지고 연극에 대한 비판이 열을 뿜었다. 그것으로 카페의 등급과 가치가 정해졌다. 시인으로 등간을 노리는 문학가들이 이곳을 찾아와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집단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내쫒긴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독설가로 변했다. ... 아침 10시에 카페에 들어가 저녁 11시가 되어서야 카페를 나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카페오레로 점심을 때우고 바바루아즈로 저녁을 대신했다. p24
카페는 꿈이다. 카페는 일상이다.
시럽보다 달콤한 소파, 대지보다 평온한 테이블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정작 내가 그들의 카페 스타일 중에서 가장 부러워한 요소는 그 모든 커피들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가 간절히 기대한 것은 그들의 카페 '센트럴 퍼크' 한가운데 자리잡은 푹신한 소파에 앉아보는 거였다. 외로운 독신들이 뉴욕이라는 차가운 행성에서 카페를 자신들의 아지트로 만드는 데 그 소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p294 모든 요일의 카페: 카페 정키 이명석)
시골 카페
시골의 카페는 농부들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밭일을 끝낸 그들은 이런 곳에서 가볍게 술을 마시며 목을 축였다. 그러나 도에 지나쳐, 때로는 종교 생활이나 본업을 잊은 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에 성직자들은 예배 시간에 카페의 영업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기도 했다.
시골 마을의 카페는 시골 가정집 스타일로 손님이 원하면 숙박도 가능했다. 17세기 말, 보방은 프랑스 전역에 흩어진 4만여 곳의 카페를 조사했다. 법에 따르면 카페는 분명한 표식을 내걸어야 했다. 주인들이 주로 송악, 실편백, 호랑가시나무 등의 잎 달린 가지를 출입문 바로 위에 눈에 띄게 걸어두었기 때문에 그 표식은 다발이란 뜻의 '부숑bouchon' 이라 불렸다. 18세기가 되면서 카페의 수는 계속 늘어났다. 1880년경 코트 다모르 주州에는 5,000 곳의 술집이 있었지만 1911년에는 그 수치가 거의 두 배로 늘어나 있었다. 발두아즈 주의 100여 가구에 불과한 쇼시라는 조그만 마을에도 카페가 일곱 곳이나 되었다. 서너 가구가 외롭게 사는 부락에서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위치는 대체로 마을의 광장이나 주 도로변이었다. '카페'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초라한 시설이었던 대다수가 작은 술집이란 뜻의 '뷔베트buvette'라 불렸다. 모파상은 <벨라미>에서 '아 라 벨 뷔'라는 뷔베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단층에 다락방이 있는 초라한 술집이 마을 입구의 왼쪽에 있었다. 옛날처럼 출입문 위에 걸린 소나무 가지가 목마른 사람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 말해주고 있었다." p35
때때로 주인은 동시에 다른 장사를 벌이기도 했다. 커피나 술만을 팔아서는 식구를 먹여 살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카페 주인이 되기 전에 그들은 대개 식료품 장수나 이발가나 대장장이였다. 카페는 수입을 늘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이발소와 카페, 식료품점과 카페가 나란히 붙어있기도 했다. 그래서 옛날 소설을 읽다보면 간혹 헷갈린다. p37
카페는 조금씩 잡화점으로 변해갔고 낚시용품, 스타킹, 양말 등을 내놓고 팔았다. 피니스테르 주의 플로고프에는 나막신과 구두를 판다는 간판을 내건 카페가 아직도 있다! 나무로 만든 카운터 옆에 쌓인 신문과 통조림 속에 신발 더미가 보인다. 또한 붉은 간판의 표시에서 알 수 있듯이 대다수가 담배 판매를 겸하고 있다. 그래야 더 많은 손님을 끌어들일 수 있을 테니까. p38
새로운 형태의 삶
19세기에 접어들면서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다. 노동의 리듬에 따라 삶의 형태가 바뀐 것이다. 전통적인 축제와 마을 잔치는 여전히 유지되었지만, 옛날처럼 자주 열리지는 않았다. 초상집에서 밤을 새우는 것이 유일한 오락거리였다. 그런데 마을 광장에 카페가 생기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농부들은 일요일마다 카페로 향했고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술을 마셨다. 카페는 농장과 완전히 달랐다. 농장은 조용하지만 쓸쓸하고 단조로운 곳이었다. 똑같은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카페는 결혼식장처럼 사람들로 붐볐고 즐거움이 있었다. 귀를 얼얼하게 만드는 소음이 있었고 새로운 소식을 거저 들을 수 있었다. 술과 새로운 소식, 도언 한 닢이면 충분했다. 신문, 거짓말을 늘어놓는 신문보다 비싸지 않은 돈이었다. (브르톤의 취기, 술꾼의 심리학 L'ivresse bretonne, psychologie du buveur/ J. 팔레Falher)
젊은이들은 술집에서 밤을 보냈다. 이웃 마을에서까지 달려왔다.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차를 타고 오거나 번쩍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왔다. 모든 마을에 똑같은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든 이웃과 늘상 시간을 함께 보내고 같은 일을 하던 조그만 마을에서도 농부들은 카바레, 특히 카페에서 쉬는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견실한 농부도 물론이었다. (프랑스 시골의 역사/ 조르쥬 뒤비・아르망 발롱)
사실 비스트로처럼 신나는 곳은 없었다. 비스트로는 언제나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 술꾼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대장 몬느/ 알랭푸르니에) p40
술이라는 나쁜 친구와 카페
술에 의식을 빼앗긴 사람에게는 종교적 믿음도 없고 법도 없다.p51
이런 비난에도 카페는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곳이 되어갔다. 성당 옆에, 학교 옆에도 카페가 들어섰다. 농부들에게 제2의 집이 되었다. 그때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전쟁터로 떠날 때, 살아서 돌아올 기약이 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을 때, 농부들은 카페에서 환송연을 가졌다. 그리고 그 시간을 가장 행복한 시간인 것처럼 즐겼다. p54
서민을 위한 카페
도시의 카페는 노동자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분위기는 대부분 소박했지만,
일부는 매우 화려한 실내장식으로 손님들을 유혹했다.
영락零落의 길
오늘날 공장은 모두 도시 밖으로 나갔다. 서민 지역도 대부분 완전히 재정비되었다. 새로운 도시문화가 시작되면서 카페도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변화에 동참하지 못한 카페는 문을 닫아야했다. 카페를 찾는 손님들도 눈에 띄게 얌전해졌다. 옛날의 향수를 자극하는 카페들이 간혹 눈에 띈다. 그럭저럭 옛날의 실내 장식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런 곳이 유행을 선도하는 곳이 되었다. 이런 곳에 드나들어야 품위 있는 사람이라 평가받는다. 야릇한 운명이지 않은가! 수십 년 전만해도 '상류계급'은 이런 곳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서민들에게 목로주점이 있었다면 상류계급에게는 살롱 풍의 커다란 카페가 있었다. p64
사교계, 르 카페 드 프랑스
카페는 사교계에서 유명해지기 위해 반드시 다녀야 할 장소였다.
커피를 마시러 어딘가에 간다는 것은 세속적인 삶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카페는 아무나 드난들 수 없는 장소였고,
일부 부르주아에게는 결코 드나들어서는 안 되는 곳이 되기도 했다.
고결한 삶을 위한 곳
술을 마실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러 간다는 것은 세속적인 삶에서 가장 커다란 즐거움의 하나가 되었다. 당구 솜씨를 보여주거나, 휘스트 게임이나 트릭트랙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연극이나 오페라를 구경하러 외출할 때마다 사람들은 습관처럼 카페에 들렀다. 또한 카페는 산보의 피로감을 푸는 곳이기도 했다. 카페에서 커피만 마시지는 않았다.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봄이 되면 모두가 이탈리엥 가에 있는 카페 셰토르토니로 서둘러 달려갔다. 시원한 얼음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카페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했다. 인간관계가 카페에서 시작해서 카페에서 끝났기 때문이다. 결국 카페에 가는 것은 갈증을 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파리의 간선도로에 마련된 테라스는 밤늦게까지 붐볐다. 파리의 간선도로에는 집만큼 카페가 있었고, 카페보다 사진사가 많았다. (일뤼스트라시옹, 1866년 7월 14일) p75
예술가들과 카페 데 자르
카페는 예술가들의 보금자리였다. 그들은 카페에서 마음껏 술과 커피를 즐기며,
토론을 하고 작품을 만들었으며 전시회와 낭독회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인식시켰다. 그러나 독한 술 압생트도 예술가들의 고독을 이기게 하지는 못했다.
사교계의 카페는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모네와 사슬리도 화려한 카페 리류를 동경했지만, 화려함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그들의 걸작을 판 후였다. 요컨대 문인과 예술가가 드나든 카페는 이런 카페와 달랐다.
인기 있는 예술가나 가난한 예술가나 부지런히 카페를 드나들었다. 시인, 소설가, 화가, 조각가 모두가 카페의 단골손님이었다. 그들은 카페에서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편안한 휴식이었을까 아니면 부산스런 열기였을까? 예술적 열정과 미래의 희망을 카페에서 보았던 것일까? 꿈과 영감을 찾았을까? 아니면 장래의 고객인 민중을 찾았던 것일까? p84
예술가는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않았다. 자유정신에 불타는 사람들, '예술을 위한 예술' 이라는 단 하나의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예술적 영감과 아름다움이 있는 한 물질적 어려움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를 썼고 색을 탐구했다. 명성과 영광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역동적인 삶을 갈구했고, 술에 취하는 것이 유일한 신조였다. 그들은 모두에게 "취하라!"고 소리쳤다. 어깨를 짓누르고 무릎을 꺾어버리는 시간의 무게를 잊기 위해서라도 언제나 취해야만 했다. p85
욕심을 버리자! 삶을 축제처럼!
영감을 주는 곳, 그리고 작업실
예술가들이 카페를 자주 찾은 것은 무엇보다 다채로운 삶을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 그러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장면... . 그 모든 것이 연구대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며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그들은 군중과 하나가 되어 세상을 몸으로 체험할 필요가 있었다. 카페가 아니면 이런 요구를 충족시켜줄 곳이 없었다. 카페에는 살아 있는 대화와 역동적인 삶이 있었다. 예술가들은 카페에서 새로운 영감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시인과 화가가 이런 카페를 어찌 무시할 수 있었겠는가! p97
꿈, 환상 그리고 절망
예술의 세계는 가시밭길이었다. 예술가는 거의가 돈에 쪼들렸다. 어떻게 해야 유명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작품을 널리 알릴 수 있을까? 바로 카페였다! 카페가 그들의 구원자였다. 음악가들은 카페의 테라스에서 연주하며 청중을 끌어 모았다. 이런 혹독한 시련이 있은 뒤에야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p98
02 키워드로 보는 카페
내가 누구인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행복이 무엇이고 불행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내 꿈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웃고 울기 위해서, 화창한 날과 길이 필요하고 카페와 카바레와 레스토랑이 필요하다. 우리는 주인공이 되고 목격자가 되기를 좋아한다. 함께 어울릴 대중과 화랑과 우리 삶의 증인을 갖고 싶어 한다. -(파리의 즐거움/ 알프레드 델보)
오아시스
사람들은 카페를 '마시기 위해' 찾았다.
커피에 다양한 알코올을 섞어 마시며 정신을 번쩍 들게도 하고,
마음을 풀기도 하는 카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오아시스였다.
커피와 함께 마시는 알코올 중에서도 압생트의 인기가 대단하여,
건강상 폐해가 지적되기도 했다.
카페를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 목을 축이기 위해서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카페가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 언제나 최고의 매상을 올린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갈증을 해소하고 싶은 사람에게 카페는 자그마한 낙원, 뜻밖에 나타난 구원의 오아시스인 셈이다. p110
열일곱 살의 청년이 무엇을 심각하게 생각하리요
화창한 저녁, 맥주와 레몬수를 채운 컵들,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아래의 소란스런 카페들!
푸른 잎새로 무성한 보리수 아래에서의 산책
보라, 해변의 파도처럼
넘실대는 포도주를!
보라, 산굽이를 넘나드는 듯한
씁쓰레한 술잔들을!
지혜로운 순례자들이여,
초록빛 압생트를 어찌 마시지 않으리요...
나는 저 농부들과 함께 마시리라
친구여, 명정酩酊이 무엇이리요
연못 속에서,
무섭게 부풀어 오르는 크림 아래에서
잎새가 살랑대는 숲가에서
나는 썩어가고 싶노라. -( 로망Roman/ 아르튀르 랭보)
양 세계 대전의 사이에는 두 가지 음료가 카페의 주인공이었다. 시골의 담을 도배할 정도로 대대적인 광고를 펼친 포도주 뒤보네와 혼합주 리카였다. '대화를 위한 음료'라 일컬어진 리카는 1932년에 첫선을 보였다. 리카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때부터 리카는 시골 카페의 진열창을 장식해주는 간판 아닌 간판이 되었다.
손님이 늘어나고 손님의 취향도 다양해지면서 카페 주인들은 창고를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 술 도매업자들이 트럭에서 술 상자를 내려 지하창고까지 운반하는 것을 도와주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후 술집을 찾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파나셰(맥주와 레모메이드의 혼합주)가 절찬리에 팔여나갔다. 1949년 코카콜라가 뇌쇄적인 병 모양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소다수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그리고 1960년대는 고등학생들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받은 박하향 디아볼로의 시대였다. p119
휴식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위해... .
사람들이 카페를 찾는 목적이 무엇이든
카페는 누구에게나 즐거움과 편안함을 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와 비슷한 이들이 모이는 카페로 모여들었고,
자연스레 직업별전문 카페가 생겼다.
카페는 안식처다. 안식처는 즐거움과 휴식이 있는 곳이란 뜻이다. 포근함과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간혹 환경의 변화를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도 어딘가에서 친근한 구석을 다시 찾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카페는 이제 공공장소가 아니다. 개인적인 친밀감을 구하는 곳이다.
이런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대단한 것은 필요 없다. 사소한 것으로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사람들은 글을 쓰고 책을 읽으려 카페를 찾는다. 이제 카페는 우리에게 집이자 피난처가 되었다. 사람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어떤 구속도 없는 곳이다. 자유로움이 보장된 곳이다. 카페에 들어선 순간부터 즐거움을 빼앗아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자유를 찾아서 서둘러 카페로 향한다. 그리고 나만의 즐거움과 자유를 만끽한다.
<젊은 시절의 회상과 초상>의 작가 샹 플뢰리의 작업실은 카페였다. 아침 아홉 시에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카페에 들어와 배를 채운 후 그곳에서 지인들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다른 손님 중에서도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 당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다.
카페는 단골손님들의 집회장으로 조금씩 변해갔다. 때문에 카페마다 단촐한 식구가 생겼다. 작은 동네와 시골의 생활방식이 카페를 그렇게 만들어갔다. 낯익은 얼굴에게만 문을 열어주고 환영의 함성과 웃음을 보냈다. 십여 명의 연금생활자들이 단골이 되어 매일 저녁 테이블 하나에 둘러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정치에 대한 소박한 생각들을 주고 받으며 여주인과 암코양이에게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주었다. <파리 사람들/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 단골손님들은 이름이 아니면 별명으로 불렸다. 따라서 낯선 사람은 언제나 불청객이었다. p125
모항母港
고향이 없는 사람들, 혹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
특히 선원들에게 카페는 고향의 본가였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여 커피와 술을 마셨다.
카페마다 단골손님이 있지만 뜨내기손님도 있다. 집을 나선 사람들은 카페에 들른다. 걷는 사람들에게 카페는 잠깐 쉬어가는 곳이다. 외판원들은 단골 카페가 없었지만 어느 도시에나 카페 뒤 코메르스가 생기면서 그 카페를 단골로 삼았다. 그들은 먼 길을 걸은 후 그곳에셔 피로를 풀었고, 마침내 그곳을 활동의 본거지로 삼아 잠재고객을 확보하려 했다. 지루함과 피로에 지친 여행객들은 역 앞 카페나 종점 다방에서 시간을 죽인다. 이런 카페들은 온갖 유형의 만남이 있는 곳이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아 조금도 편안함이 느겨지지 않는 역 앞의 카페에도 매일 새로운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막노동군, 철도 부설원, 벌목꾼이 술잔을 기울였고, 외판원이 지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약 5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역에는 하루에 네 번씩 기차가 정차하는데 여행객들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서둘러 카페로 달려와 목을 축였다. 그리고 숨돌릴 틈도 없이 기차로 돌아갔다. (쉬즈의 붓꽃/ 장 지오노) p130
행복
카페는 사람들이 밖에서 느끼지 못할, 행복을 안겨주었다.
카페에서 얻은 힘을 카페 밖의 삶을 살아갈 원동력으로 삼았다.
카페는 퇴폐와 나태함 그리고 타락의 동의어였다. 카페는 권태감에 짓눌린 영혼들, 결국 낙오자들의 온상이었다. 작은 잔들, 당구에서 펀치볼까지 다양한 게임들, 그리고 운이 좋아 푼돈을 걸어 약간의 돈을 따면 밤의 환희를 즐기기에 충분한 도박판이 밤마다 벌어지는 곳이었다. (여자 낚시꾼/ 오노레 드 발자크)
그러나 이는 카페의 한 면만을 본 때문이다. 무엇보다 카페는 사람들에게 안락함을 주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간의 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p137
카페가 외로운 사람들의 피신처인 것은 당연했다.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들은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었고, 때로는 외로움이 빛나는 훈장처럼 변했다. 카페는 어머니의 품과도 같았다. 따뜻한 온정이 있는 집이기도 했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조용한 세계 같은 곳이었다. (독/ 레옹 폴 파르그)
때때로 카페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까지 넉넉하게 맞아주는 유일한 곳이었다. 힘겹게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에게 카페의 구석자리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카페에는 그들의 푸념을 성심껏 들어줄 친구가 언제라도 있었다. 그러나 거짓으로 동정을 사려고 해서는 안 되었다. 과장된 슬픔에 대하여 카페는 사무적인 친절함으로 보답할 뿐이었다.
카페는 일종의 도피처였다.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멀리 떨어진 딴 세상이었다. p138
망설임이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결심을 세운 듯했다. 땅바닥에 누워 있는 사내가 마침내 꿈의 바다에 도착한 듯했다. 그의 미소에서 분명히 일어낼 수 있었다. '나를 가만히 놓아두겠나? 슬픔의 그림자는 이제 짙은 안개 뒤로 완전히 살라졌어, 이제 나는 꿈의 하늘에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을 거야! 이제부터는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숭고함의 극치였다. 그러나 술에 취한다는 것에는 그 이상의 숭고함이 있다. 혼자 카페를 찾지만 나올 때에는 언제나 동반자가 있는 사람들도 흔했다. 행복을 찾아서 혼자 항해한다는 생각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는 부류였다. 그들에게는 마차를 함께 탈 친구가 필요했다. 그들을 동반자와 희망의 세계로 이끌어 줄 끈으로서의 마차 말이다. 서 있던 사내가 누워 있는 사내를 밧줄로 묶고 천천히 걷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보들레르는 행복이 있는 만남의 광장으로 데려가는 것으로 보았다. (인공 낙원/ 샤를 보를레르)
실패한 사람들은 카페에서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 카페에서 살면서 카페에서 용기를 얻어,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찾아 카페 문을 나섰다. 카페에서 희망과 꿈을 되찾았다. 결국 진정한 삶이 카페에 있었던 게 아닐까? p142
여자
카페와 여자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사회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카페에나 여급을 두었고, 창녀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카페를 힐끔거렸다. 그리고 결국에는 여자도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시작했다.
여자는 집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었다. 일요일에 성당에 다녀오고 빨래터를 오갈 수는 있더라도 카페 출입은 절대 금지였다. 물론 손님을 접대하는 여자는 예외였지만 그것도 카운터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녀들은 언제나 공손하게,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웃는 얼굴이어야 손님을 끌 수 있었을 테니까! 여자의 웃는 얼굴은 카페의 성공을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p143
여자들의 좌절감도 남자들의 좌절감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사회는 알코올에 빠진 남자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줄 정숙한 아내를 원했다. 술로 좌절감을 이겨보려는 여자는 다행히도 무척이나 드물었다.
그러나 시대는 계속 변했다. 여자가 카페에 혼자 앉아있어도 누구도 옛날처럼 경멸이 담긴 수상쩍은 눈빛을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p147
민중
카페는 나라의 의견이 모이는 곳이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으며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되었다. 때로는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만 모이는 카페도
있었으며, 정치인들은 그런 카페를 자신들의 기반으로 삼았다.
국가도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카페를 감시하였으며,
일반 시민에게 카페는 정치교육의 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치와의 접점
시골에서 카페는 교회나 공립학교처럼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장소였다. 사람들은 카페에서 신문을 읽었다. 가십거리가 그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었다면 정치에 대한 소식은 그들의 열정을 뜨겁게 달구어주었다. 보클뤼즈 주 카르팡트라의 한 비스트로에서 있었던 한 장면이 그런 열정을 확연하게 증명해준다. p177
그러나 민주주의가 성숙해지면서 이런 전쟁도 누그러졌다. '공화국'이란 이름을 내건 카페가 마을의 중심지에 들어섰다. 광고적인 대립이 사라지고 화합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카페는 기쁨과 환희가 있는 곳으로 바뀌었고, '자유, 평등, 박애' 라는 슬로건이 가장 어울리는 세계가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치 토론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카페를 찾는 진정한 목적은 세상 사람들을 만나는 데 있었다. 카페에서는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있었다. 실제로 만남을 위해서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p178
닫는 글
아담한 카페에서
내일, 또 봅시다!
그러나 내일은 오늘과 다르다. 이 카페가 내일도 문을 열까? 카페가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문을 닫는 카페가 늘어나고 있다. 1차 세계 대전 전에는 거의 50만 곳의 카페가 있었지만 이제는 5만 곳밖에 남지 않았다. 카페는 여전히 삶의 일부이지만 잔인하게도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 몽마르트르의 카페들이 은행 지점이나 자동차 수리점으로 하나식 변해가리라는 파르그의 예언은 전국적으로 화산되어가고 있다. (파리의 산책자/ 레옹 폴 파르그)
시골에서도 농부들이 만남의 장소를 잃었다. 도시에서도 눈에 띄지 않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요즘도 카페는 여전히 충분한 듯 하지만 전성시대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간판은 더욱 화려하게 반짝거린다. 과거의 단골손님들도 이제는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예전에 비해 집이 안락해진 것은 사실이다. 또한 커피나 술을 마시러 일부러 카페를 찾아갈 이유도 없다. 냉장고에 온갖 마실거리가 시원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은가! 길모퉁이에 있는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기보다는 집으로 친구를 초대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신문을 읽으려고 붉은 인조가죽이 씌워진 의자에 힘들게 앉아있을 필요도 없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세상 소식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세상이 아닌가! 텔레비전 리모콘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권태를 쉽게 날려버릴 수 있다. 게다가 컴퓨터와 인터넷의 시대가 도래했다. 덕분에 외출할 필요조차도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되짚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카페는 나름대로의 강력한 사회적 역할을 갖는다. 한 세기 전에 '살롱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살롱'이라 불렸던 비스트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서민들의 친구로 남아있다.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가족을 도시에 빼앗긴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주며 기분과 건강을 묻는다. 푸념에 귀를 기웅여주고 그들의 기분을 북돋워주려 애쓴다. 덕분에 그들은 약간의 위안을 얻고 외로움을 잊은 채 집을 돌아갈 수 있다. p191
스타일이 제각각이었듯이 음악도 제각각이었다. 재즈, 로큰롤, 라틴음악, 그리고 클래식까지. 고성능 하이파이 음향 시설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연주가 행해졌다. 대중과 함께 호흡하면서 재능을 펼쳐 보일 기회가 음악가들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인터넷 시설이 갖추어진 카페도 생겨났다. 또한 커다란 스포츠 경기에 돈을 공개적으로 거는 카페도 있다. 큰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의자는 커다란 스크린을 향해 나란히 배치된다. 마치 소규모 강연장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누가 승리할지, 돈을 딸지 아니면 잃을지는 문제가 아니다.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기에 더욱 재밌는 시간이다. 이 때문에 돈을 따면 더욱 즐겁고 돈을 잃어도 그다지 실망스럽지는 않다. p192
카페는 모두에게 소중한 공간이다. p193
3. 소감
카페에 관심을 두고 뒤늦게 탐방대원에 합류하게 되면서, 카페의 역사와 커피가 주는 의미가 무엇이며,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내력들을 갖고 유래되어 왔는지 궁금하던 차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카페와 문학을 잘 매치시키며 역사 속의 카페의 형성과 기능, 예술과 사람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 카페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였다. 특히 문학 혹은 미술작품에 표현된 자료들과 연결하며 구성한 점이 돋보인다. 카페의 역사성 한편, 예술의 나라 프랑스인들이 카페라는 문화와 함께 어떻게 일상을 영위하였는지를 그들 민족의 예술성 및 생활상과 연관하여 시대적 변천사와 사회상을 흥미롭게 펼치며 기술하였다.
이 책은 두 개의 장으로 나뉘었는데, 번역의 묘인지는 알 수 없으나, 2장에서의 키워드로 보는 카페의 부분에서는 카페라는 의미가 주는 이미지와 실제 생활에서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참여자부분에 대해 간결한 단어로 함축하여 놓았다. 따라서 목차성 단어만을 보고도 프랑스인들에게 카페가 무엇이고 그들의 일상과 어떻게 젖어들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런 간결한 목차로서 전체 내용을 내포하는 방식도 꽤 괜찮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이러한 형식의 접근이 매우 마음에 든다.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카페 관련 서적들은 천편일률적인 형식을 취하며, 카페를 선전하는 잡지인지 유행성 정보 책자인지를 헛갈리게 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다만 어디에 어떤 카페가 있는지 막연할 때에 지도나 안내서 역할이 되어주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실용성과 경영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다 보니 그런 식의 접근이 유효할 테지만, 어쩐지 책마다 무슨 특색이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럴듯한 사진과 광고성에 가까운 멘트들에 식상한 감이 들게 하는 우리나라의 출간 서적들과 달리 이 책의 면모는 사뭇 대조적이며, 학습효과까지 누리게 해주어 의미있게 느껴진다.
과연 이런 정도의 책을 쓸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여야 하는 걸까? 저자의 예술성과 자국의 역사를 아우르는 능력과 설정에 감복하게 된다. 문학이면 문학, 미술이면 미술, 사진이면 사진, 글이면 글 등 도무지 빠지는 것이 없이 조화롭게 연결시켰다. 그러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으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멋도 깃들였다. 또한 카페와 적합한 문학의 글귀를 각 목차와 어우러지게 발췌해 삽입하여 실증함으로써 독자와 시대의 사회상에 대한 이해를 한층 명확히 돕는가 하면, 명화를 실어 감상하게 함으로써 책에 입체감을 줌과 동시에, 카페 본연의 역할과 기능에 한껏 유기체적인 어울림을 형성한 감이 이채롭다. 이런 안목으로 접근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저 부럽기만 하다. ^-^*
하지만서도 관객이야 지루한 장면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맴에 담긴 어쩔 수 없는 응어리를 수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생에게는 그럴 법도 하답디어. 천형 같은 인생에 먹구름의 장막을 거둬내야 마음이 한갓질 것 같아 아직은 울렁거림이 적은 걸 어쩌것소. 긍정적 필요와 이성적인 판단이 안 서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이란 놈의 흔들림이 지절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릴 요량이랍니다. 꼭 당장의 시작이 아니라 할 지라도 언젠가라는 막연한 그림움도 띄워 볼랍니다. 그 언젠가가 내일이 될지 수년이 걸릴 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날엔가 자폭을 하든 쫓겨나든지 할 테지요. 그때까지는 살랑임을 꿈틀대어 볼 밖에요. 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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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이해할 때는 두 개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하나는 아폴론의 시선이고, 또 하나는 디오니소스의 시선이다. 하나는 빛의 시선이고, 또 하나는 황홀과 도취의 시선이다. 하나는 이성의 시선이고 또 하나는 감성의 시선이다. 변화를 계획하고 방향을 정할 때는 이성의 힘을 빌어야 한다. 환한 빛 아래서 계획되어야 후회가 적다. 그러나 변화를 이끄는 에너지는 감정에서 나온다. '지금 여기' 라는 황홀을 느끼지 못하면 그 하루에 미안해야한다.
사람들은 변화가 두 개의 시선으로 조망되는 것에 불편해 한다. 복잡하고 어려워한다. 그러나 그것은 변화를 삶의 원리로 보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숨을 쉴 수 있다. 식도와 기도는 서로 알아서 동시적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는 동일한 부위로 생식과 배뇨를 함께 한다. 우리의 뇌는 좌뇌와 우뇌를 모두 가지고 있어 하나는 생각하고 하나는 느낀다. 그리하여 우리가 된 것이다. 다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멀티 테스킹 능력은 우리의 작동원리인 것이다. 모순과 딜레마와 패러독스는 균형과 조화의 원칙이며, 삶을 흥미진진하게 이끄는 놀이의 핵심이다. 인류가 만들어 낸 신들의 이야기 속에 아폴론과 디오니소스가 모두 등장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그들이 모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억하자. 우리는 질서에 지치면 변화를 만들어 내고, 변화에 피로하면 질서를 만들어 낸다. 먼 목표와 로드 맵을 만들 때는 머리를 쓰지만 그 길을 따라 매일 걸을 때는 새소리와 물소리에 황홀한 미소로 답해야한다. 오늘이라는 아름다운 숲길을 걸을 때는 모든 아름다운 꽃과 향기와 포도주에 심취하여 황홀해야한다. 변화는 방랑과 여행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일상에 지치면 짐을 꾸려 떠나고, 자유에 지치면 돌아와 일상의 평화 속에 머무는 것이다.
공자는 이것을 중용이라고 불렀다. 종종 공자의 중용은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것, 물탄 술, 혹은 죽밥 같은 것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공자의 중용은 떨림이다. 그것은 나침반의 떨림이나 저울의 떨림과 같다. 방향이 바뀔 때 마다 북쪽을 가리키기 위해 스스로를 재세팅해야할 때, 나침반은 떨린다. 새로운 물건을 달 때 마다 저울의 추는 균형을 잡기위해 떨린다.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 우리는 떨리게 된다. 우주적 떨림이 있는 순간 우리는 변화하게 된다. 이 영혼의 떨림에 반응하지 못하면 나침반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항해하는 것과 같다. 결국 표류하게 된다. 그러므로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는 이 떨림에 따라야 한다.
종종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언제가 인생의 전환점인지, 언제 변화해야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말한다. 그대의 영혼이 떨릴 때, 그 떨림을 따라라. 그러나 떨림이 없다면 아직 그대로 가던 길을 가면 된다. 그러면 난감해 한다. 꼭 집어 말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보다 더 그럴 듯하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분명한 것은 이성과 감성으로 만들어진 균형의 나침반은 내면의 정신 속에 장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으나 본인은 그 떨림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그때는 용기를 내어 그 떨림에 부응해야한다.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따라 나서듯,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떨림에 따라 나서야한다.
만일 그 떨림이 교활한 내 무의식의 거짓 투영에 의한 것이라면 어찌할까 ? 나를 망치려는 악마의 부름이라면 ? 그때는 인생이 흥미진진해진다. 커다란 모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두려울 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나는 나의 운명을 따를 것이다. 이것이 변화의 주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