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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의 공중부양/ 이외수/ 해냄 >
그대가 비록 타고난 재능이 없더라도 공중부양이 불가능하다고는 생각지 말라. 그대가 만약 이 책을 충분히 숙지하고, 노력하거나 미치거나 즐길 수만 있다면, 그대에게도 '떳어요'라고 표현될 수 있는 공중부양의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p6
1. 저자: 이외수
1946년. 경남 함양 출생. 춘천교대 자퇴 후 문학의 길에 입문.
시, 소설, 우화, 에세이 등 다방면의 글을 쓰며 '외수 마니아(Oisoo mania)' 를 형성.
감성마을 촌장으로 자연과 벗하며 글쓰기에만 몰입해 살아가고 있다.
저서에 창작집 『겨울나기』(1980)를 비롯해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 『들개』(1981), 『칼』(1982), 『벽오금학도』(1992), 『황금비늘』(1997), 『괴물』(2002) 등이 있으며, 산문집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1985), 『말더듬이의 겨울수첩』(1986), 『감성사전』,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1998) 등이 있다. 이 밖에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 『외뿔』과 시집 『풀꽃 술잔 나비』,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등 외 다수.
2. 본문 인용
1부 단어의 장(場)
단어에는 생어(生語)와 사어(死語)가 있다
생어는 오감(五感)을 각성시킨다. 오감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을 말한다. 그대가 아직 글쓰기에 발군의 기량을 습득하지 못했다면 될 수 있는 대로 생어를 많이 사용하도록 하라. 생어는 글에 신선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생어는 눈을 자극하고, 귀를 자극하고 코를 자극하고 피부를 ㅈ자극하고 혀를 자극하는 단어다.
표적인 감각은 대표적인 속성이며 대표적인 속성은 대표적인 상징이다. p15
대부분의 한자어들은 사어다. 특히 문화적 문장에서는 한자어들을 잘못 남발하면 문장으로서의 전달력 설득력 현장감 생동감이 떨어질 가능성이 짙다.
그렇다고 생어만으로 이상적인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이상적인 문장은 생어와 사어가 적재적소에 쓰여졌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p16
어휘력이 부족하다고 한탄하지 말라. 그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격적인 단어채집을 시도해 본 경험이 없다. 그대가 만약 이런 방식으로 단어를 채집해서 노트에 정리해 두는 슴관을 가진다면 공중부양의 지름길로 들어선 것이나 다름이 없다.
모름지기 문장을 ㅈ자유자재로 다스리고 싶다면 지극히 미세한 부분에서 지극히 거대한 부분까지를 샅샅이 훑어보고 단어를 채집하는 일에 열중하라. 쓰는 자의 고통이 읽는 자의 행복이 될 때까지. p20
속성찾기
재료의 성질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요리사는 절대로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 단어는 문장의 기본재료이다. 훌륭한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도 문장의 기본재료인 단어의 성질을 잘 파악하고 친밀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쉽게 친밀감을 느끼려면 사물을 의인화시키는 습관부터 가져라.
그러나 친밀감만으로는 부족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아름답게 보고 그 사물에게 애정을 부여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p25
속성 알아맞히기
사물과 친근하지 않으면 단어와도 친근할 수 없으며 단어와 친근할 수 없으면 사물과의 소통도 불가능하다. 글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인간과 신을 소통시키는 도구다. p28
속성에 근거한 대화
어떤 사물이라고 하더라도 다 일장일단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의 단점을 부각시키려면 그것이 지닌 장점부터 파악해 놓아야 한다. 그런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도 결정적인 단점이 있음을 지적해야만 반론의 여지가 없다. 단점이나 장점을 잡다하게 열거하는 것보다는 특성을 제시해서 한마디로 촌철살인하는 능력을 기르자. p44
감정이입
단어 하나의 선택이 떠나간 그대 사랑을 되돌릴 수도 있다
글은 타인의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마음을 바꾸기도 하고 영혼을 바꾸기도 한다. 만약 그대가 사랑에 성공하고 싶다면 일단 그대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먼저 진단하라. 그리고 그대의 진실을 대변해 줄 단어부터 채집하라. p49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진실은 타인의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능력에 따라서는 영혼까지 송두리째 사로잡을 수 있다. p50
본성찾기
글은 쓰는 자의 인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사물의 속성을 파악하는 일은 사물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일이며 사물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일은 사물과의 사랑을 시도하는 일이다. p53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
육안(肉眼)은 얼굴에 붙어 있는 눈이고
뇌안(腦眼)은 두뇌에 있는 눈이며
심안(心眼)은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는 눈이고
영안(靈眼)은 영혼 속에 간직되어 있는 눈이다.
사과에 비유해서 설명해 보겠다.
육안만을 가진 자는 그것이 둥글다는 사실과 빨간색이거나 초록색이라는 사실과 주먹만 한 크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뇌안을 가진 자는 그것이 사과나무에 열린다는 사실과 비타민C를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뉴턴으로 하여금 만유인력을 발견케 만들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겨우 안다는 사실에 머물러 있는 단계다. 보다 중요한 것은 느낀다는 사실과 깨닫는다는 사실이다.
심안을 가진 자는 그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래서 한 알의 사과 속에서 시를 끄집어내거나 음악을 끄집어내거나 그림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것에게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한다.
영안을 가진 자는 한 알의 사과 속에 만우주의 본성이 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만우주의 본성이 사과에게도 있고, 내게도 있고, 신에게도 있음을 깨닫는다. 신의 본질과 우주의 사과의 본질과 나의 본질이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영안을 가진자는 온 세상에 하찮은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만물이 진실로 가치 있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비로소 진실한 사랑을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선각자들이 만공부의 근본은 마음에 있고,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 도가 있다고 설파했다. 그러나 생각과 마음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p56
흥부의 마음, 놀부의 생각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보고 불쌍한 감정을 일으키는 것. 제비와 나를 동일시하는 정서. 그것이 마음이다.
성한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린 다음 고쳐주고는 부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다른 것과 나를 분리해서 판단하는 정서. 그것이 생각이다. p57
깃발이 흔들리는가 바람이 흔들리는가
도(道)는 대상과 나를 동일시하고 거기에서 아름다움과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글쓰기도 그와 다르지 않다. p58
본성 접근하기
속성- 현상- 육안・뇌안
사물의 속성은 일차적으로 육안으로 보고, 뇌안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이 단계는 아직까지 현상에 머물러 있는 단계다.
본성- 본질- 심안・영안
속성에 머무르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 마음의 눈인, 심안과 영안으로 사물의 본질을 깨닫는 단계다. p59
딱 보면 알아야 한다
심안에 비치는 것들은 심안으로만 전달된다. p63
발상의 전한
발상의 전환 없이는 글쓰기의 발전을 기대하지 말라
의문은 발상을 전환시키는 도화선이다. 끊임없이 의문을 던져라. 참새는 왜 걷지 못할까. 양심 측정기가 발명되면 어떤 사람들이 가장 강력하게 사용을 반대할까. 물에 비친 달은 물일까 달일까. 돌고래는 정말로 외계에서 온 지성체일까.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면서 해답을 탐구하라. 남들이 보는 시각과 똑같은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을 버려라. 그래야만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남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 p64
발상의 전환이 깨달음을 가져온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아주 하찮은 것들에 눈물겨워한다. 깨달음을 얻고 나면 대개 시가 터져 나온다고 한다. 그런 시를 일컬어 오도송(오도송)이라고 한다. 문학은 이렇게 위대하다. 대부분의 오도송은 자연을 이야기한다. 달빛을 얘기하거나 강을 얘기하거나 산을 얘기한다. 지천으로 공짜인 것들에 대해서 아주 크게 감동ㅎ한다. 그대들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진실로 것들이 어떤 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다이아몬드가 비싼 이유
보석은 세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첫째 희소성이 높아서 구하기가 힘들어야 한다. 둘째 경도가 높아서 물리적 화학적 변화에도 내구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빛깔이나 형태가 아름다워서 보는 이를 즐겁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p66
-희소성: 자기만의 특별한 콘셉트, 내구성: 뚝심, 즐겁게: 가독성으로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대게 육안과 뇌 안의 범주에서 사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심안과 영안의 범주에서 사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대가 만약 심안과 영안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천하만물들이 모두 보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p68
창조의 출발
예술은 모방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말이 있다. 모방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다.
예술은 창조적 욕구로부터 출발한다. 어떤 경우에도 창조적 욕구 없이는 예술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창조적 욕구만으로도 예술에 이르기는 힘들다. 창조적 욕구에 창조적 능력이 구비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남다른 시각부터 가져야 한다.
남들과 똑같은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남들과 똑같은 사고를 하게 되고 남들과 똑같은 사고를 하게 되면 남들과 똑같은 글을 쓰게 된다. 그대가 남들과 다른 글을 쓰고 싶다면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부터 가지도록 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대가 알고 있는 사실 이상의 소득을 얻어낼 수가 없다. 있는 것을 없애고 없는 것을 만들어보는 습관부터 가져라. 물론 실제 사물에게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가급적이면 의식으로 그렇게 하라는 말이다. p74
없을 법한데 있는 것들
오리너구리
오리너구리의 입에는 부리가 붙어 있다. 이놈에게는 귓구멍은 있지만 귓바퀴는 없다. 외형적 특성만으로는 이놈의 소속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오리인가 하면 너구리고 너구리인가 하면 오리다. 이놈은 모방의 천재다. 머리는 오리를 모방했고 몸통은 너구리를 모방했으며 꼬리는 비버를 모방했다. 더구나 이놈은 포유류면서도 난태생이다. 게다가 독이 있는 발톱까지 가지고 있다. 발톱에서 나오는 독성으로 개 한 마리는 너끈히 쓰러뜨릴 수 있다. 호주의 고유종으로 알려져 있다. 호주에 가서 이놈을 만날 기회가 온다면 진지하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넌 뭐니? p77
감각개발
시대적 감각이 뒤떨어지는 축구 해설가들은 선수들이 융통성 없는 볼 처리를 하면 버릇처럼, 축구도 머리를 써야 해요라는 소리를 남발한다. 그러나 머리를 써야 하는 것은 감독이지 선수가 아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는 능력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감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감각에는 머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창작을 하건 감상을 하건 머리보다는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한다. p80
감성사전식 반대말
적절한 단어를 고를 때는 초감각이 필요하다. 초감각은 머리를 써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머리를 맹신하는 습관을 버려라. 머리는 감동을 느끼지도 못하고 사랑을 느끼지도 못한다. 단어에 대한 초감각을 터득하고 싶다면 단어를 깊이 음미하는 습관부터 길러야 한다. p84
2부
문장의 장(場)
"그대가 조금이라도 격조 높은 글쓰기를 하고 싶다면 현재의 자신에서 탈피하라."p90
문장의 기본형식
가급적이면 기호의 나열에 머물러 있는 문장이 아니라 감성과 생명이 부여된 문장을 다루어볼 예정이다.
처음부터 문장을 꾸미지 말라
처음에는 정치법에 따른 문장을 쓰도록 하라. 문장에서의 정치법이란 문장을 이루는 성분을 순서대로 바르게 배열하는 일을 말한다. 나는 매들이 발악적으로 울어대는 오솔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라고 쓰기 전에 나는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라는 문장을 먼저 쓰도록 하라.
정치법을 등한시하면 문장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꾸미는 단어들을 남발하면 문장이 어색해지거나 내용 전체를 망쳐버릴 가능성이 짙다. p93
나는 매미들이 발악적으로 울어대는 오솔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위의 문장에서 고딕으로 처리된 부분은 문장을 꾸며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들은 가급적이면 나중에 적절성을 따져서 삽입하거나 생략하는 습관을 익히도록 하라. 표현의 욕구룰 최대한 자제하고 반드시 필요할 때만 적절한 부분에 적절한 수식어를 첨가하도록 하라.
나는 사방에서 매미들이 주변의 나무들이 진저리를 칠 정도로 목청을 다해서 발악적으로 시끄럽게 울어대는,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비켜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비좁은 오솔길을 혼자 쓸쓸히 걷고 있었다.
한 문장 안에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모조리 구겨 넣은 사례에 해당한다. 글을 쓴 사람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지만 산만하면서도 허술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정치법을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치기들이 도처에 숨어 있다. 바둑으로 비유하면 자충수에 해당하고 축구로 비유하면 자살골에 해당한다. 음식으로 비유하면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에 고등어 이면수 오징어를 집어넣고 미나리 당근 시금치 감자 마늘을 첨가한 다음 소금 간장 설탕 된장에 후추를 뿌리고 마요네즈까지 처바른 상태다. 맛이 어떨까. p94
나는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혼자였다. 오솔길은 비좁아보였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마주치면 비켜설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매미들이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발악적이었다. 주변의 나무들이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먼저 제시했던 예문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상황들을 한 가지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러나 먼저 제시했던 예문보다 한결 안정된 느낌을 준다. 특별한 방법을 쓰지는 않았다. 단지 정치법에 따라 단문으로 정리했을 뿐이다. p95
하수와 고수
그대는 어떤가. 비록 고수는 못 될지언정 한평생 하수로 머물러 있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고 싶다면 일단 달라질 각오부터 다져야 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자나 저울부터 과감하게 내던져 버려야 한다.
내가 달라지기 이전에 세상이 달라지는 법은 없다. 내가 달라지면 반드시 세상도 달라진다. 그대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대는 아직 달라져 본 적이 없는 하수다.
인격과 문장은 합일성을 가지고 있다. 문장이 달라지면 인격도 달라진다. 인격이 달라지면 문장도 달라진다. 그대가 조금이라도 격조 높은 인생을 살고 싶다면 현재의 자신에서 탈피하라. p97
글쓰기의 필수요건
진실
글로써 타인을 감동시키거나 설득시키고 싶다면 진실하라. 진실은 사실과 다르다. 사실을 통해 그대가 얻은 감정이 진실이다.
글쓰기는 자기 인격을 드러내는 일이다. 글을 쓰면 그대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머릿속에 있는 것들도 실체를 드러내고 가슴속에 있는 것들도 실체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글로써 타인을 감동시키거나 설득시키고 싶다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갈고닦아야 한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궁극으로 하는 최상의 창작행위다.
세인들은 예술이 예술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과는 거리가 먼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은 예술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든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최상의 경지에 이르면 예술을 구사할 수 있다. 경지에 이른 구두닦이가 잘 닦아놓은 구두코 끝에도 예술은 있다.
문학은 예술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통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술이 아름다움을 궁극으로 한다면 문학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글쓰기는 아름다움의 모색으로부터 출발한다. 자신의 내면도 아름답게 만들고 타인의 내면도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소망이 있어야 한다. p98
소망
절실한 소망은 돈지갑을 뚫는다.
예일대학교의 어느 교수가 소망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었다. 어느 날 학생들에게 미래의 소망을 발표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소망의 관리방법을 물어보았다. 97퍼센트의 학생들이 자신의 소망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이따금 떠올리는 관리방법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3퍼센트의 학생들은 자신의 소망을 글로 써서 간직하고 수시로 들여다보는 관리방법을 쓰고 있었다.
교수는 20년 후에 소망의 성취실태를 조사해 보았다. 97퍼센트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소망에 실패했거나 다른 소망으로 교체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3퍼센트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모두 소망에 도달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사회적 기여도를 조사해 보니 놀랍게도 3퍼센트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기여도가 97퍼센트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전체 기여도를 능가하고 있었다.
단언컨대 글에도 그 정도의 초과학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은 간직되어 있다.
언제나 그대의 미래일기를 쓰는 기분으로 그대의 글에다 소망을 불어넣어라. 어떤 시점에 이르러 세상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대들의 글 때문이다. 하지만 남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죽었다 깨어나더라도 그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p100
감성
지성은 뇌안의 범주에 속하고 인간을 아는 경지에 이르게 만들고 감성은 심안의 경지에 속하며 인간을 깨닫는 경지에 이르게 만든다. 감성은 오로지 마음에 의해서만 생성되고 마음에 의해서만 감지되고 마음에 의해서만 표출된다. 그러나 감성은 마음 바깥에 있는 것들에 의해서 척박해지기도 하고 무성해지기도 한다. 마음 바깥에 있는 것들과의 교감이 없으면 감성의 생성이나 감지나 표출은 불가능해진다.
그대가 죽은 문장으로 점철된 글을 쓰고 싶지 않다면 끊임없이 마음 바깥에 있는 것들과의 교감을 시도하라. p101
애증
사랑할 수 없으면 증오라도 해라. 사랑이나 증오는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사랑도 눈물겹지만 증오도 눈물겹다.
예술에는 시간의 한계도 없고 공간의 한계도 없다. 아인수타인은 예술가를 하나님 다음가는 창조주라고 말했다. 원고지 속에서나 캔버스 속에서는 화가나 시인이 절대자다. 대통령도 그 권한을 박탈할 자격이 없고 참모총장도 그 권한을 박탈할 자격이 없다.
사랑을 근거로 글을 쓸 것인지 증오를 근거로 글을 쓸 것인지는 그대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하지만 그대가 진실로 감동적인 글을 쓰고 싶다면 방관만은 금물이다. 방관은 그대의 모든 감성을 말라 죽게 만들고 그대의 모든 소망을 말라 죽게 만든다. 그것들이 말라 죽은 상태에서는 국어사전을 만들거나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제격이다.
예수나 부처는 인간에게 자비와 사랑을 가르친다. 하지만 작가는 인간에게 증오도 가르친다.
아직도 세상에는 증오해야 마땅한 것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p102
경계해야 할 병폐들
가식
글을 쓰기 전에 철저하게 가식을 경계하라. 가식은 여러 종류의 척하는 병들을 불러들일 뿐만 아니라 글쓴이의 인격을 격하시키고 글의 궁극적인 목표인 감동이나 설득력을 깡그리 말살시킨다. p107
욕심
그대가 진정한 화가가 되고 싶다면 아이 같은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라.
고흐의 말이다.
아이들은 가식도 없고 욕심도 없다. 잘 그린다는 기준도 없고 못 그린다는 기준도 없다. 단지 자기의 생각이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즐거움에 심취한다.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어떤 대가도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다. 아이들의 그림에는 기술 이상의 진실이 담겨 있다. 그래서 보는 사람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대가들도 나이가 들면 아이들의 그림을 닮아간다. p108
첫 번째 경계의 대상으로 언급했던 가식도 욕심이 허영과 간통을 해서 만들어낸 사생아다. 문장은 쓴 사람의 내면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리고 쓴 사람의 내면은 문장을 거쳐 읽는 사람의 내면으로 전이된다. 하지만 범인으로서는 쉽게 욕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욕심을 소망으로 바꾸라고 충언해 주고 싶다. p109
하지만 소망은 그것들과 전혀 다른 혈통에서 태어난 정상아다. 자신이 불행과 비극을 감내하면서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성정을 가지고 있다. 그대의 문장에서 욕심을 퇴출시키고 소망을 불러들이지 않으면 그대의 글쓰기가 공염불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p110
허영
허영은 자신의 정신적 빈곤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가식이나 욕심과 마찬가지로 문장의 생명력과 설득력을 말살시킨다. p111
우리는 수만 년 동안 철학의 대상이 도(道) 하나였다.
물론 서양의 그것들이 틀렸다거나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정체성을 상실하고 시대적 조류나 경향에 편승해서 부화뇌동을 일삼거나 혹세무민을 일삼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 있는 글솜씨를 가지고 있어도 정신적 빈곤에 연계되어 있는 허영을 버리지 못하면 자신도 비천해지고 문장도 비천해진다. 어찌 남을 감동시키는 글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p112
왜 쓰는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천재는 결코 위대한 존재가 아니다. 타고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라. p137
무엇을 쓸 것인가
쓰고 싶은 글을 써라.
글은 충동과 의욕에 의해서 쓰여지는 것이다. 그리고 충동과 의욕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의해서 고개를 쳐드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글쓰기는 장님이 외부의 사물을 온몸으로 감지하면서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행위와 흡사하다. 모든 촉수를 곤두세우고 사물들이 간직하고 있는 진실을 탐지하는 습관을 기르라. p139
어떻게 쓸 것인가
진실하게 써라. 글쓰기에는 무엇보다 진실이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재담가라도 자신이 감동받지 않은 소재로 타인을 감동시킬 수는 없다. 먼저 닫혀 있는 그대의 가슴을 열어라. 진실은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있는 것이다. 감동도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머리로 쓰지 말고 가슴으로 써라. p140
누가 읽어줄 것인가
제일 먼저 그대가 그대의 글을 읽게 된다. 그러나 그대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가 쓴 글이 일기이거나 낙서가 아니라면 최소한 그대의 측근들만이라도 그대의 글을 읽어주기를 바랄 것이다. 물론 감동까지 받는다면 그대는 적지 않은 기쁨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중성이라는 것이 있다. 겉으로는 진정한 독자가 한 명만 있어도 자기는 글을 쓰겠노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전 인류가 자신의 글을 읽고 극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작가적 이중성이다. 아무도 감동받지 못하는 글이라면 가치 면에서 차라리 백지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전 인류는 아니더라도 전 국민이 그대의 글을 읽고 극찬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글에서도 욕심은 금물이다. p140
물론 아무리 위대한 작가라도 쓸 때마다 불후의 명작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대가 만약 작가로 성공한다고는 하더라도 한평생 데뷔작이 대표작인 채로 살아가는 작가로 전락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p143
글이 밥을 먹여주는가
물론 밥도 먹여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글을 쓴다면' 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대가 고작 밥을 먹기 위해서 글을 선택했다면 단언컨대 그대는 밥조차 먹기 힘든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대의 의식을 밥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채우지 말고 그대의 의식을 글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채우라. p145
비결이 있는가
비결은 하나뿐이다. 나는 앞에서 몇 번이나 사물에 대한 애정을 강조했다. 사물에 대한 애정은 글쓰기의 기본에 해당한다. 모든 술은 대상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p146
그대가 진실로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먼저 사물에 대한 거부감이나 혐오감부터 몰아내 버려라. 설사 그대가 길을 가다 개똥을 밟았더라도 개똥에게 거부감을 느끼거나 혐오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 개똥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라. 개똥은 다리가 없기 때문에 피하지도 못했고 그대는 다리가 있는데도 피하지 못했다. 그대 마음 바깥에 존재하는 그 어떤 사물도 그대에 대한 거부감이나 혐오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대가 그것들에게 애정의 눈길을 주는 순간 그것들도 그대에게 애정의 눈길을 준다. p147
그대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대가 어떤 장르를 선택하든지 그대가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는 예술이다. 하지만 세인들은 흔희 예술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허튼소리가 아니다. 모든 예술의 길은 비포장이다. 때로는 세인들에게 미친놈 소리를 들어가면서 때로는 지독한 외로움에 치를 떨면서 때로는 사막을 맨발로 걷거나 때로는 가시덤불을 알몸으로 헤치고 예술이 그대를 굳게 끌어안을 때까지 혼자 공복으로 걸어가야 한다. 자신 있는가.
하지만 처음부터 예술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설정할 필요는 없다. 문인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소박하게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글로 정리해 보고 싶다는 목표라도 상관이 없다. 다만 그대의 발전에 따라 목표를 수정할 필요성을 느낄 때는 망설이지 말고 목표를 수정하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대가 예술의 길로 접어들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대가 예술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술이 그대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소박한 미래일기를 쓰기로 하자. 미래일기는 자기 영혼과의 약속에 해당한다. 자기 영혼과의 약속은 의외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대가 앞으로 힘겨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마다 그대를 굳건히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p148
심안과 영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글을 쓰는 사람은 가급적이면 육안과 뇌안의 범주를 탈피해야 한다. 육안과 뇌안은 현상을 보는 눈이고 심안과 영안은 본성을 보는 눈이다. 육안과 뇌안에 의존해서 글을 쓰면 다변화하는 현상에 따라 글의 생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그대의 글이 오래도록 생명을 유지하기를 바란다면 심안과 영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p152
그대의 눈에는 어떤 사물이 하찮아 보이는가.
그대의 눈에는 어떤 인간이 하찮아 보이는가.
그대의 눈에는 어떤 사물이 추악해 보이는가.
그대의 눈에는 어떤 인간이 추악해 보이는가.
그대는 그것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그대 자신을 먼저 혐오하거나 증오해야 한다. 그대가 눈으로 보고 사실로 여기는 것들이 반드시 사실이 아니라면 글을 쓰는 자로서의 사물과 인간에 대한 그대의 편견은 일종의 죄악이다. p153
문장의 적용
글은 문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늘날은 생활 전반에 걸쳐서 필수적인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텔레비전의 모든 프로가 글을 필요로 하고 컴퓨터의 모든 사이트가 글을 필요로 한다. p154
글쓰기의 실제
어떤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구상한다
뼈대를 만드는 과정이다. 어떤 글을 어느 정도의 분량으로 시작해서 어떤 방식으로 끝맺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기승전결의 대략적인 뼈대와 거기에 따른 분량도 이 과정에서 생각해 두어야 한다. p160
일단 구어체로 스케치 한다
처음에는 스케치를 하는 기분으로 문장을 구사하라.
스케치의 단계는 정밀성을 요구하는 단계가 아니다. 초반에 전체적인 조화를 염두에 두고 대상의 형태와 화면에 가볍게 표현하는 단계다.
글쓰기에서도 스케치를 생략하면 전체적인 균형을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 특히 긴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스케치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밀하게 묘사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스케치의 단계는 바둑에서 포석의 단계와 같다. 포석의 단계를 무시해 버리고 다짜고짜 전투를 감행하면 대부분 하수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스케치는 친한 친구에게 말하듯이 구어체로 거침없이 써내려 가는 것이 효율적이다. 가급적이면 정치법에 의거한 단문을 사용하자. 이 단계에서 간혹 헛소리를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나중에 고치면 된다고 생각하고 결말에 이를 때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써내려 가도록 하라.
스케치 단계에서는 의식을 경직시키지 말아야 한다. 처음부터 의식을 경직시키고 명문을 만들어나가면 초반부터 기력이 소진해 버린다. 아무리 수정을 해보아도 어딘지 모르게 불만족스럽기 마련이어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탈진해 버릴 우려가 있다. 두문불출하고 날마다 열심히 원고지와 씨름하면서도 작품을 완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스케치 단계에서 문장마다 완전성을 시도하면서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일단 습관이 되어버리면 고치기 힘든 악습이다.
결말에 도달한 다음에는 전체적으로 세심하게 읽어본 다음 필요 없는 부분을 찾아내어 삭제해 버리고 첨가할 내용이 있으면 첨가한다. 이 단계에서는 기승전결에 맞게 문장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글쓰기는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권장하고 싶지 않은 대상들이 있다. 바로 논술고사를 치르는 입시생들이다. 하지만 논술고사를 치르기 전에 이러한 글쓰기에 익숙해지면 스케치 단계를 생략하고도 완성도가 높은 글을 쓸 수가 있을 것이다. p163
; 실제로 글쓰기에 대한 이런 저런 조언을 해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조언이 하나도 이롭지 않았다. 심지어 글을 쓸 수 없도록 만들기까지 했다. 다시 돌아오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던 초기에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 한 한 달 혹은 3개월이면 다 쓸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안의 감정들을 살리지 못하고 꺾어버리게 한 계기가 되었고, 시간이 지나며 다른 일들에 봉착하지 새삼스러운 일이 되는가하면 그때의 그 감정들이 살아나지 않거나 어느 부분은 해소되기도 하여 몰입을 유지시켜나가기가 어려웠다.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치명적인 독이 된 사례임을 똑똑히 기억하는 바다. 그때 사부님께서 지리산 단식 여행을 권하였는데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인하여 이행치 못한 것이 매우 후회되었음을 상기한다.
세련된 문장 만들기
삭제하기
아무리 보아도 어색한 문장이 있다. 그러나 글쓴이는 그 문장을 버리기가 아깝다. 그래서 수십 번을 고친다.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을 준다. 흔히 멋을 부린 문장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원인은 무엇이며 해결책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글 전체가 그 문장을 거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과감하게 삭제해 버리면 무난하게 해결된다. p168
절단하기
태어나자마자 용인의 한 고아원에서 버려진 저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를 마치는 동안 이렇게 세상만사에 무관심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연수행이 작성한 글이다. 특별히 멋을 부린 부분도 없는데 어딘지 문장이 어색한 느낌을 준다. 예문 속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사실이 내포되어 있다.
태어나자마자 용인의 한 고아원에 버려졌다는 사실.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를 마쳤다는 사실. 그러는 동안 세상만사에 무관심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
이 세 가지 사실을 한 문장으로 모두 구겨 넣었기 때문에 글쓴이의 의도가 모호해져 버리고 말았다. 이 세 가지 사실을 각각 한 문장으로 독립시켜 정리해 보자.
저는 태어나자마자 용인의 한 고아원에 버려졌습니다.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를 마쳤지요. 그러는 동안 이렇게 세상만사에 무관심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p169
수식하기
적절한 수식어는 문장에 설득력과 생명력을 부여해 주지만 남발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참ㄱ기름을 넣었으면 그만이지 또 들기름을 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한 문장에 같은 성분을 가진 수식어를 연달아 쓰면 반드시 문장이 어색해진다.
호수 건너편에 관광객을 위한 지붕이 빨간 아담한 방갈로가 지어졌다.
위 문장에서 수식어를 모두 제거하면 '호수 건너편에 방갈로가 지어졌다'가 된다. 그런데 방갈로를 수식하는 단어들, 관광객을 위한, 지붕이 빨간, 아담한, 등을 연달아 남발해서 문장이 어색해졌다. 이럴 때는 수식어별로 문장을 절단해 주어야 한다.
호수 건너편에 관광객을 위한 방갈로가 지어졌다. 지붕이 빨간색이었다. 아담해 보였다.
얼마나 간명한가. 수식어를 많이 쓸수록 유식해 보인다는 생각도 버리고 수식어를 많이 쓸수록 아름다운 문장이 된다는 생각도 버려라. 그런 생각들이 가식을 불러들인다. p170
수사법
수사법을 가장 적절하고도 다양하게 활용한 문장을 보고 싶다면 지상 최대의 베스트셀러로 알려져 있는 성경을 읽으라. 성경은 가장 다양한 수사적 표현들을 소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수사법의 표본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고전소설들도 만만치 않다. 기막힌 수사법들이 도처에서 빛을 발한다. 개성 있는 문체와 격조 있는 화법을 구사하고 싶다면 필수적으로 수사법을 익혀라.
수사법은 표현 방업에 따라 크게 비유법(比喩法), 강조접(强調法), 변화법(變化法), 세 가지로 나눈다.
직유법
어떤 사물이나 개념의 유사성을 토대로 처럼, 같이, 듯이, 인 양 등의 조사를 붙여서 표현한다. 먼저 대표속정으로 유사성을 찾아서 비유하면 직유법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급적이면 신선하고 독창적인 표현이 아니라면 굳이 수사법을 활용할 필요가 없다. 문장에 겉멋이 들린 사람일수록 수사법을 남용하기 십상이지만 적절하지 못한 표현일 경우에는 읽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끼게 만든다.
거북이처럼 머뭇거린다.
깃털처럼 높이 날아오른다.
위의 문장들은 문법적으로 틀린 부분은 없지만 직유법을 적절하게 활용한 문장들이 아니다. 거북이의 대표속성이 '머뭇거리다'가 아니고 깃털의 대표속성이 '높이 날아오르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북이처럼 머뭇거린다'는 앞에 '방향감각을 상실한' 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적절해지고 '깃털처럼 높이 날아오른다'는 '높이' 라는 부사어를 '가볍게' 라는 부사오로 바꾸어야 적절해진다. p174
직유법을 겉멋으로 구사하지 말라
얼치기 작가 지망생들이 대개 자신의 문학성을 돋보이게 만들 목적으로 직유법을 남발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직유법도 기본을 모르고 구사하면 안 쓰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다양한 수사를 구사하는 것보다 정확한 수사를 구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설픈 수사를 구사한 문장은 차라리 죄악에 가깝다. 어설픈 수사법을 구사하느니 담백하고 정직한 문장을 구사하라. 그대가 문장을 꾸미고 싶을 때 수사가 그대를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어설픈 겉멋이 그대를 수렁에 빠뜨릴 우려가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라. p176
은유법
시(詩)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수사법이다. 가장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표현기법이다. 쓰는 이에게도 읽는 이에게도 얼마간의 사유(思惟)를 필요로 하는 수사법이다.
직유법이 유사성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표현기법이라면 은유법은 전혀 유사성이 없는 사물이나 개념을 대비시켜 동일성을 느끼도록 만드는 표현기법이다. 예를 들자면 '내 마음은 황무지' 라는 표현에서 '내 마음'과 '황무지'는 표면적으로 유사성을 발견하기 힘든 관계다. 그러나 글쓴이는 그 두 가지를 동일시하고 있다.
은유법은 표면적 유사성보다 내면적 동일성을 중시한다. 그래서 사유를 통해 찾아낸 의미를 전달할 때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은유법이야말로 공중부양의 지름길이다. p177
은유법의 두 가지 형식
직유법이 음료수와 흡사하다면 은유법은 발효차와 흡사하다. 직유법은 문장을 경쾌하고 신선하게 만들어주고 은유법은 문장을 심오하고 운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적절하게 활용할 경우에만 그러하다.
직유법과 은유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싶다면 먼저 속성찾기와 본성찾기에 주력하라. 직유법은 속성에 근거를 두고 있고 은유법은 본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p179
활유법(活喩法)과 의인법(疑人法)
그대는 글을 쓰는 순간부터 일체의 제약을 무너뜨리고 신적(신적)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존재가 된다. 활유법으로 팔다리가 없는 바위를 춤추게 만들 수도 있고 의인법으로 입이 없는 나무를 노래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명심하라.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섣부른 수사법의 남발은 글 전체를 망쳐 버릴 수도 있다. P180
제유법(提喩法)과 대유법(代喩法)
사물의 일부로 자체나 전체를 대신해서 표현하면 제유법이고 사물의 속성으로 자체나 전체를 대신하면 대유법이다. p182
점층법(漸層法)
읽은 이의 감흥을 고조시키려면 쓰는 이의 감흥도 고조되어야 한다. 쓰는 이가 느끼지 못하는 감흥을 읽는 이에게 기대하는 습성을 버려라. p188
설의법(設疑法)
설득을 목적으로 할 대 자주 쓰이는 수사법이다. 질문이 합당한 이치를 내포하고 있어야만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p189
대구법(對照法)
대구법의 요령은 가급적이면 유사한 문법적 구성과 비슷한 글자 수로 앞뒤의 구를 구성하는 데 있다. 글자 수에 차이가 많이 나거나 문법적 구성에 차이가 많이 나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 p192
대조접(對照法)
대조법은 앞뒤에 상반되는 사물을 대비시켜 그 상태를 더욱 명백히 하는 표현기법이다.
외형상으로는 대구법과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혼동할 우려가 있지만 대조법은 앞뒤에 상반되는 사물을 대비시킨다는 점을 특성으로 삼는다. p193
자료의 활용
그대가 비록 천재라 하더라도 오로지 그대 자신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지식이나 재능만으로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인터넷 검색창을 이용하고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관계서적을 찾아보는 행위와 그것들을 응용하는 요령까지가 그대의 능력이다. p195
3부
창작의 장(場)
시
시는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고, 인격의 표현이 아니라 인격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엘리엇의 말이다.
시는 언어의 정점이고 감성의 궁극이다.
어떤 이는 시를 은유의 숲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은유는 숨겨서 비유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표현허지 않고 간접적으로 표현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는 논리적 설명을 불허한다. 시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숨겨서 비유하는 시의 진정성을 상실하게 된다. p204
예술의 일차적인 목적은 감동이다. p205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은 대상에 대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발아한다. 그런데 대상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어떻게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으며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사랑을 할 수가 있겠는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이 필요하다. 이성간의 사랑도 필요하지만 만물과의 사랑도 필요하다. 그대가 진실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그대가 먼저 만물에게 눈길을 주어라. 만물에게 눈길을 주는 일이 만물과의 사랑을 시작하는 일이다.
그대가 만물에게 눈길을 주는 순간 만물도 그대에게 눈길을 준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그대의 심안도 열릴 것이다. p212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도구를 만들어 쓸 수 있기 때문도 아니며 문자를 만들어 쓸 수 있기 때문도 아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만물을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p213
후회 없는 인생이란 많은 것들을 사랑하면서 살아온 인생이다. 우리는 수시로 우리들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들에게 눈길을 주면서 그것들에게 사랑을 느꼈는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가슴 안에 사랑이 간직되어 있지 않은 인간은 결코 예술을 느낄 수도 없으며 예술을 행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p214
의식의 날개를 달자
적어도 그대가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몇 번씩이라도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하라. 그대 스스로 몽상의 고치 속에 고립되어 절대고독을 감내하고 등껍질이 찢어지는 아픔을 감내하라. 그것이 글을 쓰는 자로서의 올바른 정신상태다. p220
소설에 대해서
특히 글쓰기의 성패는 기술의 탁마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탁마로 결정되는 것이다. p222
장인정신(장인정신)
장인은 전문적인 기능과 도덕적인 품성을 중시한다. 자신의 손가락을 모두 잘라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부당한 방법으로 물건을 만들거나 불순한 목적으로 물건을 만드는 법이 없다. 자신이 만드는 물건에 자신의 혼을 불어넣어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부끄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바로 장인정신이다. p223
소설의 기본요소: 주제, 구성, 문체
주제- 끊임없이 의문을 던져라
이론의 족쇄에 발이 묶이면 문학의 길을 걷기가 불편해진다
그대가 알고 있는 소설의 이론이 있다면 쓸 때는 꺼내지 말고 쓴 다음에 꺼내도록 하라. 지나치게 이론을 의식하면 창작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이론이 주체가 되고 만다. 소설을 쓰는 순간만은 소설이 주체가 되도록 하라. 이론에 맞추어 소설을 쓰는 행위는 의복에 맞추어 몸을 개조하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 그대에게 감흥을 주는 소재를 발견하면 일단 이론을 배제하고 진실에 입각해서 소설을 쓰도록 하라. 나름대로 주제를 설정하고 나름대로 구성이 틀을 짜서 나름대로 개성 있는 문체를 직조하라. 그대의 창조물이 기존의 이론을 뒤집어엎고 새로운 이론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p229
구성의 기본요소: 인물, 사건, 배경
인물
작중인물들은 모두 작가의 분신이다
작중인물이 어떤 악행을 저지를 경우 작가는 반드시 독자가 납득할 만한 필연성과 합리성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독자가 납득할 만한 필연성과 합리성을 만들어 주는 철저성을 산문정신이라고 한다. 산문정신이 결여되어 있으면 독자는 소설에 거리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감동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비록 지나가는 행인 하나를 묘사하더라도 산문정신에 입각해서 묘사하는 자세를 가져라. p231
사건
상징적 의미의 효용성
어떤 사건을 소재로 삼았을 때 작가는 먼저 그 사건이 간직하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사건이 삶의 본질이나 존재의 본질에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때 상징적 의미가 드러난다. 작가가 상징적 의미를 되새겨보지 않고 사건을 연출하면 독자들은 작품에서 깊이나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상징적 의미가 내표되지 않은 사건은 의도가 불분명하고 주제와 동떨어진 느낌을 주게 된다. p250
문체
문체는 작가의 내면을 그대로 반영한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개성을 형성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정답 맞추기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정답 맞추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개성 있는 문체를 만들 수 있을까에 골몰하라. p262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져라
예술은 개성이 생명이다.
작가가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문체로 소설을 쓸 수 있을 때 자기 목소리를 가졌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가질 수 있을까. 자기 목소리가 없는 작가는 자기 세계가 구축되지 않은 작가다. 어디서 작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는지 몰라도 작가로서는 아직 자격미달이다. p274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지름길
첫째, 인간을 탈피하라
명색이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자로서, 시종일관 뻔뻔스럽게 인간으로만 살아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둘째, 현실을 탈피하라
그대가 글을 쓰는 순간에는 불가능이 존재하지 않는다. 문학은 과학을 초월한다. 그대는 시공의 제약으로부터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다. 절대로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적어도 그대가 글을 쓰는 순간만은 그대가 바로 절대자다. - 내가 바로 그것이다가 생각남.^^
셋째, 지식을 탈피하라
그대가 지식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무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과 진배없다. 자신이 무엇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것은 곧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체 중에서 머리와 가슴 사이가 가장 거리가 멀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머리는 앎을 대신해서 쓰인 단어고 가슴은 깨달음을 대신해서 쓰인 단어다. p278
점검
지루하지는 않은가
자신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철학이나 지식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특히 지적 허영이 지나치면 현학적인 전문용어나 관념어들을 남발하기 십상이다. 어떤 철학이나 지식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상태라면 그것을 소재로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글을 못 쓰는 것은 결코 죄악이 아니다. 그러나 글을 못 쓰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척 행세하는 것은 지탄 받아야 할 죄악이다. p280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가
용두사미를 피하려면 집중력과 긴장감을 고르게 유지시키는 요령이 필요하다. 그리고 요령은 끊임없는 습작을 통해서만 터득된다.
지나치게 이론을 의식하지 않았는가
이론의 틀에 맞추어 글을 쓰는 행위는 액자에 맞추어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흡사하다. 당연히 생동감이나 독창성을 기대할 수가 없다. 창작이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는 고등어라면 이론은 그 고등어를 잡아서 깡통 속의 통조림으로 제작하는 행위와 진배없다. 고등어의 대가리와 지느러미와 내장들을 제거하고 토막을 친 다음 깡통 속에 집어넣고 가열, 살균하면 통조림이 된다. 자신의 창작물이 통조림과 흡사해지기를 원한다면 이론의 틀에 맞추어 글을 써도 무방하다. p281
독자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았는가
물론 작가는 독자를 무시해서도 안 되고 독자를 신봉해서도 안 된다. 오로지 장인정신과 작가정신만으로 독창적인 문학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그래서 진실한 작가는 독자가 많다고 하더라도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p282
4부
명상의 장(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되기를 소망하지 말라
나이는 결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나이는 아름을 발효시키고 지혜를 숙성시킨다. 산도 나이를 먹어야 생명체들과 조화하는 성정을 가지게 된다.
그대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되기를 소망하지 말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평지가 되기를 소망하라. 한 글자 한 문장이 그대가 허무는 살과 뼈가 되기를 소망하라. 그대가 허무는 살과 뼈들 속에서 수많은 생명과 영혼들이 무성하게 자라 오르기를 소망하라. p288
그대는 우주의 중심
우주의 중심에서 쓰여지는 글들은 조화로울 수밖에 없고 조화로울 수밖에 없는 글들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좋은 글을 쓰려면 예술의 본성도 아름다움에 있고 우주의 본성도 아름다움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p290
그대는 지금 어디에서 놀고 있나
인연에는 악연이 있고 호연이 있다. 글을 쓰는 자에게는 글을 방해하는 인연이 악연이고 글에 도움을 주는 인연이 호연이다. 그대가 어떤 인연을 만나든 상관하지 않고 향내가 나는 글을 쓸 수만 있다면 적어도 그대에게는 악연이 없다. 하지만 그러한 경지를 획득하지 않았다면 가급적이면 좋은 물을 찾아다니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라. p292
글에도 기운이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기감(氣感)이 매우 발달해서 언어의 그러한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된소리인 경음(硬音)이나 거센소리인 격음(激音)을 쓰지 않았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격음이 들어간 '칼' 은 '갈' 로 쓰여졌고 경음이 들어간 '싸우다' 는 '사호다' 로 쓰여졌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갈' 을 '칼' 로 발음하게 만들었고 '사호다' 를 '싸우다' 로 발음하게 만들었다. 전쟁은 그렇다. 모든 것을 척박하고 살벌하게 만든다. p294
이외수의 문장백신
증세: 완성된 글을 읽어보니 도처에 어색한 표현들이 눈에 뜨인다.
처방: 글에도 기혈의 순환이 있다. 기혈의 순환이 순조롭지 않으면 글도 중병에 걸려서 생명을 잃게 된다. 욕심과 가식과 허영은 기혈의 순환을 방해한다. 진실에 입각해서 글을 쓰는 습관을 기르지 않으면 완치되지 않는다.
증세: 아무리 보아도 문장이 어색하다.
처방: 한 문장 안에 두 가지 이상의 수식어를 쓰지 않았는가. 섣불리 수사법을 남발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수식어를 제하거나 수사법을 제거해 보라. 특히 수사법을 쓸 때는 적절한 단어에 적절한 속성을 부합시켰는가를 확인해 보라.
증세: 위의 방법을 다 써보아도 여전히 문장이 어색하다.
처방: 과감하게 전문장을 삭제해 버려라.
증세: 문장이 어느 한 부분에서 중단된 채 진전되지 않는다.
처방: 거기서 지문을 중단하고 내용을 연결시키는 대사를 삽입해 보라. 또는 거기서 한 단락을 끝내고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라.
증세: 글만 쓰면 급격히 피로감이 엄습한다.
처방: 휴식과 명상을 취한 다음 재도전하라.
증세: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무미건조하다.
처방: 열심히 사랑을 하고 열심히 연애편지를 써라. p299
체험의 글
나는 당신이다
어떤 한계를 통과하는 데에는 다른 기술이 필요치 않다. 약간의 용기만 가지면 된다. p303
당신의 소망이 몸을 만드는 일. 당신의 진실이 몸을 만드는 일. 당신의 생각이 몸을 만드는 일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보다 우선해서, 삼십 년 동안 글쓰는 일만 업으로 삼아온 한 늙은 작가의 진실이 당신이 간직한 진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기노(奇櫓) p304
3. 감상
단군프로젝트와 함께 새벽 기상을 하고 있는 요즘 전날 충분하지 못한 수면으로 잠이 덜 깨거나 글쓰기에 몰입이 어려울 때는 리뷰 인용 작업을 하고 있다. 리뷰를 하다가도 언뜻 글감이 떠오르거나 하면 한두 바닥의 글을 쓰며 임하기도 한다.
저자는 다작의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쉽고 재미난 언어를 구사하며, 글쓰기에 대한 기본적인 맥을 흥미롭게 이해시킨다. 특유의 필체로 가독성을 높이며 누구나 부담 없이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유쾌 힘을 지녔다. 자주 읽으며 더 나은 글쓰기에 도움이 되도록 하여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