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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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 번째로 인사드려요. 월요일은 잘 보내셨나요?
최근에 라디오에서 월요일이 힘든 이유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참 공감이 되었습니다.
보통 주말동안 잘 쉬고 있다가도 일요일 오후만 되면 다음날을 미리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분명히 일요일을 보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는
월요일을 미리 만나고 있는 착각을 하구요.
그래서 월요일은 평소 요일보다 많게는 2배로 길게 느껴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월요일이 힘든 건 “일요일의 월요일화”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전 “뭐 다 알고 있는 이야기잖아~”하고 넘기려 했지만
그 주 일요일 오후에 어김없이 찾아온 월요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답니다.
하지만 현무부족 여러분들은 현명하시니까 자신만의 월요병 치료약을 가지고 계시겠죠?
저도 큰 건 아니지만 저를 제어하기 힘들 때마다 꺼내드는 것이 있는데 바로 CD입니다.
IT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저장매체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그 덕에 자연스럽게 CD가
없어지고 있지만 전 여전히 CD를 사랑한답니다. 아직도 CD 플레이어를 열심히 사용 중이구요.
(지하철에서 CD 교체할 때 많은 분들이 쳐다봐 주십니다. ㅋㅋ)
처음 CD를 구입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첫 CD는 지금은 잘 듣지 않는 메탈리카의 CD였습니다.
왠지 그땐 그런 걸 들어줘야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물론 학생이 구입하기엔 가격이 꽤 고가였기 때문에 구입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 당시에 아버지 구두 정말 많이 닦았습니다. ㅠ)
그 전엔 테이프를 들었는데 CD로 음악을 들은 후로는 테이프에 관심이 가질 않더라고요.
어쨌든 그 날부터 꾸준히 CD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듣고 싶은 음악을 만나면 용돈을 모아 CD를 구입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CD가 없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만약 이렇게 MP3가 생길 줄 알았다면 구입 안했을 겁니다. ㅋㅋ
그렇게 모은 CD가 한 장 두 장 쌓여 500장 가량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단지 듣고 싶은 음악 때문에 CD를 구입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CD를 모으는 것이
단지 물건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추억을 저장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8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전 버스를 타고 있었어요.
버스 안에는 고장 난 에어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참지 못해 온갖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고 남는 손을 이용해 연신 손 부채질을 하고 있었죠.
버스는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려다가 급하게 뛰어나온 손님에 놀라듯 급정거를 했고
사람들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불평을 내뱉었어요.
덕분에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에 먹먹한 타이어 자국이 남았고
그 자국 위로 타이어 타는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올랐습니다.“
그 때 전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제 귓가를 울리고 있던 건 루시드 폴의 노곤한 음성이었습니다.
사실 그 여름날 버스가 급정거한 게 큰일은 아니잖아요.
근데 제게 이렇게 생생히 기억될 수 있는 건 루시드 폴 3집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그 음악이 제 오감의 촉수를 더 민감하게 만들었고 잘 발달된 오감으로
그 순간을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찰각하고 찍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렇게 한 장 두 장 CD가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서 저절로 제 추억의 저장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하고 피곤한 날 아침엔 추억의 공간인
CD장을 노려보죠. 그럼 예전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자~ 오늘은 입대 전날 밤잠 설치며 괴로워했던 그 날로 돌아가 볼까?
그럼 그 때 밤새 들었던 펫 메스니 CD를 꺼내 출근길에 오릅니다.
그 날 출근길은 입대 전 어려움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겠죠?
현재의 어려움이 과거의 어려움과 같을 순 없겠지만 적어도 이 CD는
다른 유형의 어려움을 대비해주는 백신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CD가 다 추억이 있고 아주 사소한 추억까지 또렷이 생각나는 건 아니지만
CD를 듣다보면 저도 기억하지 못했던 일상의 추억이
바람에 스치듯 자연스레 떠오르는 경우가 있죠.그럼 또 행복해 집니다.
아~ 내 보물 같은 추억이 이 작은 물건에 보관되어 있었구나! 하구요. ㅋㅋ
이 CD들은 나중에 제 아이에게 아빠의 삶이 담겨있는 추억 냉동고로 전해주려고 합니다.
아빠! 이 CD 들을 땐 뭐했어? 엄마가 아빠 잘 안 만나줘서 이 CD 듣고 많이 울었다며? ㅋㅋ
뭐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죠? ^^
아! 참. 혜정님은 CD로 가을을 선물해 주셨는데 저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요. ㅠ
조만간 좋은 곡 묶어서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오늘도 신나는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