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단군의

/

1단계,

첫

  • 조영미
  • 조회 수 7000
  • 댓글 수 146
  • 추천 수 0
2010년 9월 5일 12시 39분 등록

1. 제목 : 행복한 100일의 새벽 데이트


2. 새벽기상 시간 및 새벽활동 시간 : 5시 ~ 7시
    새벽활동 : 새벽 공기를 들이 마신 후 하루 한권의 시집을 읽고 느낀 점을 적는다 

 

3.나의  전체적인 목표 : 100권의 시집을 읽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주제를 잡는다
 
4. 중간목표
- 매주 읽을 7권의 시집을 도서관대여와 구입을 통해 선정해서 일주일 단위로 목록을 만들어 둔다

- 단군 일지와 블로그를 통해 느낀 점을 기록한다

- 읽지 못한 시집은 휴일을 통해 그 주 안으로 읽는다


5. 목표달성을 위해 직면할 난관과 극복방법

- 남편의 취침시간이 새벽 1, 2시라 같이 깨어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중간에 깰 것을 대비하고 가능하면 10시경 취침해서 자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확보한다.

- 낮시간에 업무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질 것을 대비 점심시간에 30분 정도 잠을 잔다.

- 재미없는 시집도 일단 정한 것은 읽고 본다. 그리고 지루했다고 적는다. 왜 지루했는지 생각해본다

- 읽고 싶은 다른 책이 있으면 우선 시집을 읽고 나서 읽는다
  
6.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나에게 일어날 긍정적 변화

- 새벽 시 읽기를 통해 많은 시인들의 시세계를 이해한다

- 순수한 새벽 시간, 시를 통한 만남을 통해 매일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열어 나간다

- 좋아하는 시인의 시세계를 파고 든다

- 쓰고 싶은 글의 주제가 확실해진다


7.목표를 달성했을 때 나에게 주는 보상 

- 가족들과 제주도 2박 3일 여행을 간다

IP *.41.16.144

댓글 146 건
프로필 이미지
최영옥
2010.11.10 23:55:48 *.160.244.31
나의 꿈

당신이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어서 당신의 머리 위에 지키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여름날에 더위를 못 이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당신의 주위에 떠돌겠습니다
당신이 고요한 가을밤에 그윽히 앉아서 글을 볼 때에
나의 꿈은 귀뚜라미가 되어서 책상 밑에서 <귀뚤귀뚤> 울겠습니다.


반가워요 영미님
모든것은 연결 되어 있다 하더니
이렇게도 인연이란게 만들어 지는군요
님의 단군을 보다가 내가 좋아하던 시 구절이 있어 옮겨 봅니다.
그리고 퍼 갑니다. 가을을 이렇게 보내고 싶어지는건가 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67일차
2010.11.11 06:32:49 *.41.16.144
문인수 시집 '배꼽', 창비시선 286. 2008년 발간. 시인의 연세 64세.
1945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1985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41세때 등단했다는 얘기이다.

'꼭지'라 불리는 독거노인, 뻘을 힘겹게 나와 망태를 내려놓는 노인, 까마귀와 노인들만 사는 마을, 마부아버지를 둔 서정춘 시인, 도배하는 사내, 갑자기 들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법원 앞 횡단보도,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

여기 어딘가에서 아마 이 시인에게 항복해버린 듯 하다.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 길가에 버려진 식당의자, 죽어가며 오글오글 열매를 매단 은행나무, 봉분처럼 환하게 벚꽃나무를 두르고 자는 노숙자 사내, 해독할 수 없는 주름살을 가진 고등학교 동창들의 삶, 빈 소주병이 놓인 바닷가 벤치, 왼발 발가락이 뭉그러진 비둘기, 절망에 빠진 사내를 품어주는 배꼽인 외딴 집, 아프리카의 배고픈 어린이와 파리떼, 엉덩이 자국을 밀어내는 쑥, 비무장 지대 우거진 개판 수풀, 수해지나간 매미 소리, 방음벽에 붙어 무언가를 누설하는 담쟁이 덩쿨, 쇠똥구리, 오백나한 중 애락존자, 헛간처럼 서있는 공중전화 부스, 잠만 자는 쪽방, 사랑하는 이의 부재, 말라버린 향나무 옹달샘, 수족관 문어의 막춤, 털이 무성한 아픈 사내, 중증장애인의 날개 같은 죽음, 동백을 씹어먹는 남자, 부인과 사별하고 두딸과 놀이터를 찾는 저녁산 같은 사내, 시인의 죽음, 어머니의 삶, 오래동안 아무도 치지 않은 피아노,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슬픔, 페허로 남은 서원, 고모역의 낮달...

시인에게 시의 소재로 온 것들이다. 유독히도 시인은 세상의 아픔에 열려 있었다. 그래서 가슴 저리고 눈물 왈칵 쏟아내게 하는 시들이 많았다.

시집을 읽으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고, 시인의 얼굴과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졌고, 그 어떤 시인보다 이분의 시를 읽고 마음이 젖어버린 것을 알았다.

'사람이야말로 절경이다. 그래, 절경만이 우선 시가 된다. 시, 혹은 시를 쓴다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결국 사람구경일 것이다. 사람의 반은 그늘인 것 같다. 말려야 하리. 연민의 저 어둡고 습한 바닥,다시 잘 살펴보면 실은 전부 무엇이냐. 내가 엎질러놓은 경치다.'라고 문인수 시인은 시인의 말을 던져놓고 있다.

연민이다.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유마거사가 세상을 놓지 못하는 그 연민으로 시를 쓰고 있다. 그래서 읽으면서 마음이 함께 젖어들어가 아파지는가 보다.

없다

칸이 여럿 달린 긴 죽음이 지나갔다.

그쪽으로 가던 숱한 볼일들이 어디론가 급히 실려가버리고, 없다.
조금 전 분명 잘 만져졌던 마음,
왜 저기 기억 속에 박혔나, 화살처럼 부르르 떠나.
악수하고 힘껏 껴안을 수 있는, 한대 쥐어박으며 오해
를 풀 수 있는, 장난치며 간질일 수 있는 몸, 정신 차리고
보니 없다. 사방
엄청 큰 허공이다. 지금, 가장 생생하게 피어오르는

얼굴,

꽂진 자리처럼

없다.

없다는 사실! 이 시꺼먼 창고는 비명으로 꽉 찼다.
사람들은 줄지어 불탄 지하철 내부 대리석 기둥이며
벽면에, 기껏 그을음일 뿐인 화마(火魔)위에 깜깜한 자필
로 문질러 쓴다.
인생이란 미처, 그리고 마저 사랑하지 못한 내용일까.
"보고 싶다"고, "우리 꼭 다시 만나자"고...쓴다.

흰 국화, 징검다리 더 길게 놓으며 간다.


프로필 이미지
68일차
2010.11.12 06:27:42 *.41.16.144
김 명인 '따뜻한 적막' 문학과 지성사 2006년.
1946년 경북 울진생.

문학과 지성사 시집보다는 창비 시집에 더 끌린다는 걸 알았다. 김명인은 '동두천'시집으로 알려진 시인이다.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그 아이 혼혈아인/엄마를 닮아 얼굴만 희었던/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연애를 하고/퇴학을 맞아 고아원을 뛰쳐나가더니/지금도 기억할까 그때 교내 웅변대회에서/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마디 말/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 - 동두천 4 중에서

어제밤 고양이 '에토'가 우리집에 왔다. 친구가 2주간 맡아주도록 부탁했다. 4년 전 샴고양이 한마리를 키웠는데 석달을 참다 폭팔하신 어머님이 머그잔 몇개와 의자 하나를 박살내어 눈물을 머금고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했다.

샴과 닮은 버만종 고양이인 에토는 털이 복실복실해 다른 이름은 '털뭉치'이다. 사람들을 좋아해서 졸졸 따라 다니고 털뭉치라는 이름답게 귀엽게 돌돌돌 굴러가는 모습을 보면 뭐라 말할 수 없는 만족스러움이 배 속에서 뿜어나온다. 고양이가 만족스러울 때 내는 골골 소리가 배속에서 오르골처럼 울리는 것이다.

갑자기 왠 고양이 얘기? 고양이에게 관심이 가 있느라 김명인의 시집에 온전히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몇편의 이야기 시를 제외하고는 읽는 독자 입장에서 시상이 분명하게 잡히지 못하는 걸 느꼈다. 고양이 탓이라고 해두자.. 집 한칸 머리에 이고 사는 처지에 공감이 간 시 한편으로 마무리한다.

칼새의 방

십여 년 전인가, 나는
상봉동의 바위산에 올라가
닥지닥지 눌러앉은 서울의 집들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때 집이 없었으므로
눈높이까지 차오른 저 집들의 어디에
나도 마음 누일 방 한 칸 있었으면 했다, 가솔들을 끌고
몇 개월마다의 이사와 가파르던 숨결
그리고 십 년 후에 나는 내 집 근처 약수터 야산 밑으로
이삿짐에 얹혀 트럭에 실려 가는
한 聖가족을 본다. 저기 누군가
아직도 이 도시에서는 모세처럼
식솔들을 끌고 출애굽 하는 가장들이 있는 것이다
어디에 있을 방 한 칸을 찾아
절박했지만, 그러나 방 한 칸 없어 절망조차 없던
그때는 마른풀 가득한 빈 들의 시절이었을까
인생은 그런 것인가, 방 한 칸의 희망을 완성하고
저렇게 나이 들고 무료하면 하릴없이
여기 와서 빈 물통 채우면서
나도 고함이나 한번 크게 질러보는 것인가
빈 것은 빈 것이 아니라고 우기던
겨우 그런 나이를 지나서
저 아래 빈방인 저의 무덤 곁으로
다시 언덕을 내려가는 것일까
어차피 빈방이 없어도 저기 저 바위가 제 식탁이라는 듯
모이를 줍고 있는 칼새 한 마리
누가 뿌린 것도 아닌데 제법 만족한 식사를 끝내고
칼새는 바위에 부벼 제 부릴 닦으며 즐겁게 재잘거린다
저렇게 앉아 있는 모습이 칼새 같지가 않다, 득의한 제왕처럼
날갯짓도 한번 크게 쳐보이면서
아직 집이 없으므로 절망의 둥지는 틀지 않고
칼새는 다만 자유롭게 서성거리면서





프로필 이미지
69일차
2010.11.13 06:51:30 *.41.16.144
다산 정약용 시선 - 허경진 엮음.

다산시집을 읽으니 가난하게 공부하던 시절, 벼슬길에 올라 호기롭게 기생의 칼춤을 넋놓고 구경하던 모습, 임금의 밀지를 받아 암행어사가 되어 백성의 피폐한 삶에 비분강개하는 모습, 어린 자식을 등창으로 잃고 슬퍼하는 모습, 당쟁에 휘말려 유배지로 떠나며 읊는 비통한 심정, 죽은 사람과 갓난아기까지 군적에 올려 세금으로 허덕이는 백성들의 고난, 유배지에서 본 피폐한 백성의 모습이 한 시대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사실적으로 절절히 묘사되어 있다.

다산의 시세계에 대해 해설에서 나온 말이다.

'다산은 기본적으로 시를 이해함에 있어 시경의 시정신을 존중하여, 좋은 시를 쓰려면 먼저 높은 지기(志氣)를 가져야 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는 말하기를, "시란 언지(言志)이다. 지기가 본래 비굴하면 비록 맑고 고상한 언어를 억지로 써도 이치를 이루지 못하며, 지기가 본래 좁고 낮으면 아무리 광달한 언어를 억지로 써도 사정을 절실하게 그릴 수 없다"라고 하여, 뜻이 크고 높지 않으면 아무리 미사여구를 늘어 놓더라도 어떤 일의 진실을 그려 내는 좋은 시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참된 시는 단지 말재주나 손끝의 기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세계에 많은 온축(蘊築)이 있은 다음에 나온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다산은, 시는 자기수양과 인격의 소산이라고 본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시가 자기의 독백이나 감정의 분식이 되어서는 안되고, 민중의 고통과 시대의 아픔을 같이 나누는 그런 애국연민의 사상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산은,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며, 어지로운 세상을 아파하고 퇴폐한 습속을 통분히 여기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며 진실을 찬미하고 허위를 풍자하며 선(善)을 드러내고 악(惡)을 징계하는 뜻이 없는 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했다.'

오늘날의 신경림이나 고은이 썼을 법한 시를 쓴 정약용의 시와 시관을 읽고 보니 무엇을 쓸 것인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시를 쓰게 만든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다. 

지사로서 시를 쓰라는 것. 이런 기상과 뜻으로 쓰는 시가 제대로 된 시라는 오랜 믿음과 전통으로 인해 민중시, 참여시들이 나오고 있다.  이 세상의 모순과 비리를 고쳐야 할 것, 비판해서 개선해야 할 것으로 볼 때 현실참여적, 사회비판적 시가 나온다. 말과 행동의 일치를 이룬 시인이라면 시를 쓰는 관점에 맞는 삶을 살고 있을 겻이다.

독자로서 문지보다 창비의 시에 많이 끌린다는 내 글에 한선생님께서 사회의식보다는 언어자체의 마술에 한발이라도 더 가 있을 것 같은데 창비가 더 맞다니 의외라고 하셨다.  독자로서 문지의 시들보다 창비의 시들에 많이 공감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진정성을 가지고 삶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시를 쓰는 시인들의 시가 창비에 많이 실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비의 시들이 더 이해하기 쉽다.^^ 창비의 시들도 더이상 현실참여적, 민중시들만 있는게 아니다. 90년대 이후 민중시, 참여시, 순수시의 경계는 무너져 버렸다.

이런 시에 대한 공감이 있다고 나역시 이런 시들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끄적거리는 습작은 이런 생각과는 달리 내 감정에 치중해 있다.   아마 내가 현재 사회와 이 세상을 보는 인식의 틀 때문일 것이다. 나의 경우는 이 사회의 모순을 삶의 모순 정도로 이해하고 가능하면 이 체제 안에서 지혜롭게 잘 살아보려는 인식이 강하다. 내 시선은 주로 외부의 모순보다는 내부의 모순으로 많이 향해 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왕십리하고 각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물론 안팍을 보려는 인식의 확장이야말로 우선 순위일 것이다. 그러나, 이왕 내부의 것을 보고 있다면 안으로 더 파고 들어가 내가 관심과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에 진지하게 답하려하는 것이 나의 진정이요, 순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침부터 생각을 너무 많이 했나? 오늘은 괴산 워크샵, 오늘 새로 만나게 될 사람들, 오늘 접할 것들에 대한 기대가 있다. 당시의 피폐한 삶과 다산의 일상, 그리고 성품을 엿볼 수 있었던 시 한편,

호박을 훔쳐 왔다고

열흘 내내 장마비 내려 길이란 길 다 끊어지고
성안에도 마을에도 밥 짓는 연기 사라졌어라.
성균관에서 글 읽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문안에 들어서자마자 떠들썩한 소리 들려라.
들어보니 쌀 독 빈 지가 벌써 며칠 되었다고
호박으로 죽을 쑤어 겨우겨우 때웠다고.
어린 호박까지 다 따먹고 어쩔 수가 없었다네
늦게 핀 꽃 지지 않아 새 호박은 안 열렸었다네.
옆집 채마밭 넘겨다봤더니 항아리처럼 살진 호박
계집종이 남모르게 훔쳐다가 바쳤다네.
"뉘가 너에게 도둑질하라 가르쳤더냐."
충성을 바치고는 도리어 매를 맞네.
아서라, 그 애는 죄 없으니 꾸짖지 말라
내가 이 호박 먹을 테니 다시는 따지지 말라.
채마밭 늙은이에게 떳떳하게 말하라
오릉중자 작은 청렴 따윈 마음에 없어라.
이 몸도 때맞게 바람만 만나면 날개 돋쳐 날을 테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금광이나 파 보리라.
만 권 책 다 읽었다고 아내 어찌 배 부르랴
밭 두 마지기만 있었더라도 계집종 도둑질 안했을텐데.

다산이 아직 벼슬길에 나서기전 성균관에서 수학하며 쓴 글. 
'좀만 기다려봐. 이제 출세하면 배는 안굶길게.'하며 식솔들에게 미안해 했을 다산.
이후 임금에게 크게 중용되었다가 유배를 떠난 이후의 삶을 생각해보니 참 인생이 허망하다.





프로필 이미지
70일차
2010.11.14 20:06:53 *.44.124.42

글통삶  MT로 충북 괴산 백오산방에서 맞은 아침.
지난밤 11시까지 워크샵을 하며 저마다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을 꿈꾸었다. 바베큐를 구워 먹으며 모닥불 곁에서 새벽 4시가 넘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잠시 들어가서 눈붙이다 알람에 깨어나니 4시 45분. 현무부족의 영옥님과 영미님도 5시가 기상시간이라 바깥으로 나가신다. 나무님과 꺠졍님도 일어나서 분주히 서울로 올라 가셨다. 영옥님과 영미님은 비탈진 깜깜한 산길을 산책하고 오시겠다고 한다. 나는 감히 엄두가 안나서 산방 베란다에 서서 야란님과 함께 얘기를 나누며 새벽을 보내었다.  숲속에서 맞는 새벽 공기가 청량하다.  

사방이 캄캄해서 시집을 읽을 수는 없다. 노인요양사로 일하시며 탁월한 치료사의 자질을 보여주시는 야란님께서 논산 집 주변 호숫가를 새벽에 산책한다는 얘기와 함께 핸드폰에 저장된 호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야란님이 풍부한 음성으로 새벽공기를 가르고 읊어준 김남조 시인의 시,

사랑은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야란님 덕분에 시와 함께 한 새벽을 보내었다. 아침을 먹은 후 김용규님의 숲해설과 함께 한 오전.
천년을 이어갈 숲을 가꾸고 싶다는 김용규님. 나무의 입장에서 나무의 생태를 얘기한 김용규님의 값진 깨달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하늘을 빙둘러 병풍처럼 둘러선 나무에선 사사삭, 낙엽비가 흩어져 내리고 숲의 청량한 기운이 마음 속까지 파고 드는 자연 속의 시간이었다. 숲의 건강함이 덫에 걸린 산이의 발도, 생각이라는 형별에 묶인 우리의 마음도 자연 치유력으로 하루 바삐 복원시켜 주기를 빌어본 축복의 시간이었다.

 

치유의 숲

숲에는 현자가 산다.

저마다 싹트는 마음을,

햇빛 찾아 줄기 내는 마음을,

꽃피워 유혹하는 마음을,

잎 떨어뜨려 바닥 덮는 마음을,

앙상한 가지로 눈감고 선 마음을,

투명한 손길로 다독이는 그.

숲속의 모든 생명은 제 운명을 견디며

제 몸에 간간히 놓였다 가는

그 투명한 손길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 계절에 매달리지 않고

다음 계절의 도래를 미리 아는 것이다.

투명한 손길은 패인 상처에도 살며시 놓였다 가서

저마다 생명은 치유의 샘을 찾아낸다.

숲에서 사는 이는 투명한 손길이 스친

자리를 보듬다 스스로 숲이 된다.

프로필 이미지
조영미
2010.11.16 06:00:54 *.41.16.144
은하님, 감사해요~ 기도로 맞는 새벽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앞으로 기도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은하님은 항상 기도하고 계시죠?
프로필 이미지
2010.11.16 05:13:05 *.151.166.64
영미님, 정말 특별한 워크샵이었군요.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 함께 맞이한 새벽. 그리고 숲의 자연 치유력을 느낀 시간. 
확실히 재충전의 좋은 시간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올려주시는 좋은 시들. 항상 잘 읽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프로필 이미지
71일차
2010.11.15 06:29:36 *.41.16.144
신현림 '세기말 블루스' 창작과 비평사 1996년.

세월, 갈 테면 가라지요

멸종된 인간은 그리움이지만
멸종된 시간은 두통이다

사라진 어제를 향해
"그래, 네 맘대로 가라"
문을 열었다 닫는 순간
팔십년대의 그림자가 피걸레처럼 뒹굴고
투사의 외로운 운동화가 쓰러진 곳에
우르르 삐삐와 쇼핑백을 든 이들이 몰려갔다
가는 곳마다 종말의 쇠사슬인 차가 밀렸다
사람들은 제멋대로 흩어졌다
어떤 친구는 따분하다며 무덤으로 갔고
나의 할아버지는
밥 한끼 먹었을 뿐인데 백년이 지났단다
기계의 나사가 빠지면 재빨리 갈아끼우듯
세대교체는 간편했다
세월은 구름처럼 단조롭고 졸리지요
영화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을 보니
노을만큼 눈이 화악 떠집디다
비디오는 이 시대의 마약입니까?
저승가는 길에도 비디오방에 들르시오
잠옷처럼 편한 바람이 불면
그날만큼은 TV를 끄고 시를 읽어주세요

제 청춘의 바톤을 받으시고
흐지부지 끝나는 인연만큼이나 슬프지만
세월, 갈 테면 가라지요
그만 커튼을 내리시고 전기불은 꺼주세요
불빛이 꺼지면 나나 당신들
아예 지구에서 사라지면 어떡하죠
빨간 잉어가 왕겨 같은 눈물을 흘립니다
세월, 갈 테면 어서 가시지요

프로필 이미지
72일차
2010.11.16 05:50:36 *.41.16.144
이영춘 시선집 '들풀'.

시집을 고를 때 출판사가 중요하다. 자비로 아무나 시도, 산문도 출판할 수 있는 요즘, 기본적으로 출판사가 시를 먼저 선별한다. 제목과 뒤에 실린 문학평론가/시인의 평을 보고 집어든 시집이다. '순진무구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시를 쓰는 시인', 상처받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치유하는 자신의 아픔, 흔들림의 근원을 캐 들어가는 과정이 시쓰기의 비밀, 오랜 세월 베를 짜듯 시를 짓는 시인의 인고.. 이것이 평론가들이 찍어낸 카피들이다.

내 마음의 현을 별로 울리지 못하며 시를 읽었다. 두개의 시가 마음에 다가 왔는데 그 중 하나이다.

길에 누워 있는 입

길바닥에 웬 숟가락 하나가
떨어져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심코 밟고 간다
누군가 한 생애
담금질하던 입
많이 아프겠다
언뜻 한 솥 밥을 먹던 얼굴 하나가
찌그러진 숟가락에
겹친다

길가에 버려져 있는 숟가락 하나에서 시인은 한 생애의 입을 바라본다. 어젯밤 생의 '창조하는 능력'과 삶에 대한 믿음에 대해 얘기하는 '삶의 예술' 세미나에 다녀왔다. 삶에 대한 근본적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으로 현재 상황을 수용하기, 내게 주어진 기회에 집중하기, 아름다움을 찬탄하고 찬양하기, 모든 것을 축복하기가 주어졌다. 삶을 예술로 만드는 원리로는 내 정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내 의식의 초점을 내가 지향하는 것에 두며, 생명의 흐름에 대해 이해하고 조율하며 아픈 정서와 상황을 잘 다룰 것을 얘기했다.

지나치게 아프거나 슬픈 정서에 빠져 그 기운으로 쓴 시들을 읽고 싶지 않다. 삶을 깨우는 시들을 읽고 싶다. 아무래도  내 자신의 기준을 세우고 이런 식의 잣대를 들이대는 걸 보니 시읽기가 막바지에 왔는가 보다. 100일 단군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이 크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쓰고 싶은 것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다가올 때 들린다는 종소리, 그 종소리를 따라가고 싶다.
프로필 이미지
73일차
2010.11.17 06:11:59 *.41.16.144
김 정미 시집 '바닷가 사서함' 2010년.

시인이라는 직업? 이외에 휴먼카운슬러, 웃음치료사, 레크레이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시인.
불혹이 지나 시를 쓰기 시작했다 했으니 40대 중,후반은 되었으리라.

신선하고 감각적으로 읽히는 시들을 대하니 시의 소재를 잡아내는 시인의 관찰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직조하는 거미의 운명을 지니기는 했지만 우선 무엇보다 고요히 바라봄이 우선이다. 그 다음에 화려한 직조이다. 거미줄의 소재는 결국 외부의 사물을 고요히 바라보는 그 시간과 공간의 버무려짐이겠다.

침묵이 불편하던 차에 내 습작이 관념적이고 억지스럽다는 언니의 말에 어제밤은 몹시 우울했다. 글이 그렇다는 것은 내가 그렇다는 것 아닌가 싶어 스스로가 참 메마르고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 아침 김정미 시인의 시집을 읽고 보니 결국 고요한 관찰을 통해 새롭게 보는 힘이 생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걸 내가 어떻게 내 글로 가져와 적용할지가 과제이지만..

유리창의 부부

거실 유리창을 닦는다
박박 문질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자국으로부터
우리의 갈등은 시작되었다
너는 왜 이렇게 더러운 거야!
무슨 소리야! 나는 깨끗해, 너를 닦아봐 분명히 깨끗해질거야
말도 안 돼! 난 투명한 존재라니까 널 만나 이 꼴이 된거야
그럼 난, 불투명해? 불쌍한 건 진짜 나라구! 속았다구!!

먼발치서 구경하던 하늘이 호통을 친다
우르릉~ 쾅쾅~~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무서운 법
적과의 동침이라면 짜릿하기라도 하겠지만
이러쿵저러쿵 해봐야 결국은 하나인데
나만 깨끗하다고 칭찬받을 수 없는
너만 더럽다고 욕할 수 없는
양면의 창
안이면서 밖이고 밖이면서 안인 뫼비우스의 띠처럼

뽀드득빠드득 이빨 소리 그치자
구름이 집 안으로 들어와
파란 차렵이불을 슬며시 깐다

유리창을 닦는 뽀드득빠드득 소리에 부부싸움을 연상한 시인. 부부싸움이기도 하고 어쩌면 내적인 갈등이기도 할테고.  실컷 싸우고도 결국 한이불 덥고 자는 부부싸움을 연상케하는 구름이 까는 파란 차렵이불 묘사도 재미있다.

프로필 이미지
74일차
2010.11.18 06:51:38 *.41.16.144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1996년 발간. 2010년 5월 19쇄 발행.

시 한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긍정적인 밥 중에서-

함민복 시인의 시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시 일 것이다. 시를 써 이름도, 돈도, 명예도 얻지 못했던 가난한 시절. 그래도 이렇게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으로 회복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스스로 마음을 따스히 달구는 시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시집의 초반에 나온 시들은 고향, 어머니, 아버지, 사랑했던 여자, 그리움에 대해 다룬다. 정갈하고 수채화처럼 담백하게 아름답다.  중반에는 자연과 구도에 대해 잠시 얘기하다, 자본주의에 피폐해진 농촌과 마치 시인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듯한 도시 생활이 그려진다. 그리고 다시 시집의 뒷 부분은 정체성의 회복과 같은 자연으로의 회귀가 담겨 있다.

앞의 시도 좋았지만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시들이 좋았다. 함민복 시인은 지금 바닷가에서 홀로 살고 있다. 강화도에서 전업시인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교수도, 소설가도, 강사도 겸업하지 않은 전업시인이다. 소비를 극도로 줄이고, 스스로 선택한 수도자같은 삶을 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근원적인 것들이 담겨있기에 이 시집이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은 것으로 이해가 된다. 그저께 삶의 예술 세미나에서 박유진 선생님이 얘기하시기를 우리가 김탁구, 글로리아 같은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고난 속에서도 삶에 대한 긍정, 삶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지 않는 주인공에 감동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의 역사는 이러한 근원적 신뢰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쓰여져 온 것이라고.

함민복 시가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 이런 근원적 신뢰와 긍정을 노래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이 그러한 삶에 대한 긍정을 가진 이유는 아마 시인을 중심으로 품은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시인이 마음에 보석으로 품은 시의 힘 덕분일 것으로 생각된다. 마음 속 힘으로 태어난 시는 다시 시인의 삶으로 완성되어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두 편의 시를 소개한다.

몸이 많이 아픈 밤

하늘에 신세 많이 지고 살았습니다
푸른 바다는 상한 눈동자 쾌히 담가주었습니다
산이 늘 정신을 기대어주었습니다
태양은 낙타가 되어 몸을 옮겨주었습니다
흙은 갖은 음식을 차려주었습니다
바람은 귓속 산에 나무를 심어주었습니다
달은 늘 가슴에 어미 피를 순환시켜주었습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프로필 이미지
75일차
2010.11.19 06:31:37 *.41.16.144
박남준 시인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구본형 선생님이 많은 감동을 받았던 그 아저씨 박남준 시인은 별로 날 감동시키지 못했다. 첫부분에 자연에 대한 시는 산중 생활을 반영하듯 고요하고 맑았지만 내 마음을 울리지는 못했고 뒷부분의 4대강 운하사업을 반대하며 써내려간 이념시들은 갑자기 톤을 바꿔  '여네가'를 반복하는 신문 칼럼을 읽는 듯 했다. 3, 40대 전환기에 이른 내가 찾는 시들은 아니었다.

한잠 자고 일어나 나와서 날 바라보며 야옹~거리는 에토에게 밥을 주니 허겁지겁 먹고 있다. 자고 일어나자 마자 저리 배가 고팠나? 역시 감동은 주관적인 것이다.

어젯밤 브릿징에서 세실리아와 인터뷰한 내용을 번역하던 중에 나온 말.

자신이 하는 것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말씀하셨듯 자신을 믿고 자신의 가슴을 믿고 자신이 있는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들도 그에 반응하기를 바랄 뿐이죠.  그리고 음악은, 제가 진정으로 믿는 바는, 음악 안에는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이에요. 음악뿐만이 아니라,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어떤 에너지가 있어요. 저는 그게 어떻게 작용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작용해요. 언젠가 어떤 콘서트 여자분이 내게로 와서 말하는 거에요. ‘오늘 정말 여기 오고 싶지 않았어요. 치통이 심했기 때문이에요. 너무 고통이 심해서 사실 치과에 갔었어야 했어요. 그런데 콘서트 중반쯤 되니 고통이 사라지고 그후로 다시 아프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세실리아 같은 세계적인 가수도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자신을 믿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글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나는 무덤덤하지만 누군가는 가슴으로 절절히 느끼고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고. 다만 보편적인 것들을 다룰 때 보편적인 공감이 생기는 것 같다. 사랑, 어머니, 아버지, 가족, 전환.. 당장 생각나는 보편적인 주제들...그중 사랑을 다뤄 아름답게 느껴지는 박남준 시인의 시.

나도야 물들어 간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대의 곤한 날개 여기 잠시 쉬어요
흔들렸으나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작은 풀잎이 속삭였다
어쩌면 고추잠자리는 그 한마디에
온통 몸이 붉게 달아올랐는지 모른다
사랑은 쉬지 않고 닮아가는 것
동그랗게 동그랗게 모나지 않는 것
안으로 안으로 깊어지는 것
그리하여 가득 채웠으나 고집하지 않고
저를 고요히 비워내는 것
아낌없는 것
당신을 향해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작은 씨앗 하나가 자라 허공을 당겨 나아가듯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여간다는 것
맨 처음 씨앗의 그 간절한 첫 마음처럼
프로필 이미지
76일차
2010.11.20 06:48:35 *.41.16.144
오규원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문학과 지성사. 1987년 출판.

문지사 시집으로 오늘도 실패했다. 제목 좋고 초판은 12쇄까지 재판은 6쇄까지 발행된 시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인은 시를 뭔가 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시를 통해 삶을 낯설게 만들기인가?

오늘 아침에는 눈을 감고 몸이 원하는 대로 다독이고 두드리고 뻗치기를 한동안 했다. 그리고 같이 놀아달라고 책 위에 누으며 내 손가락을 깨무는 에토와 놀았다. 시는 여전히 어려웠다.

도대체 시인은 암호같은 시들로 뭘하고 싶었던 것일까? 낯설게 보기, 느끼기 그 너머의 것은? 이상의 계보를 잇는 오규원 시인으로 인해 시가 낯설다. 단조로운 것은 생의 노래를 잠들게 한다, 머무르는 것은 생의 언어를 침묵하게 한다고 한 시를 읽으니 얼핏 왜 낯선 시들을 쓰는지 알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고..
광고 카피와 같이 읽히는 시어들.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

              선언 또는 광고 문안
단조로운 것은 生의 노래를 잠들게 한다.
머무르는 것은 生의 언어를 침묵하게 한다.
人生이란 그저 살아가는 짧은 무엇이 아닌 것.
문득---------스쳐 지나가는 눈길에도 기쁨이 넘치나니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CHEVALIER

                 개인 또는 초상화
벽과 벽 사이 한 女人이 있다. 살아 있는 몸이 절반쯤만
세상에 노출되고, 눌러쓴 모자 깊숙이 감춘 눈빛을 허리를
받쳐들고 있는 한 손이 끄을고 가고,

                
빛 또는 물질
짝짝이 여자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다
짝짝이 코 끝에 영롱한 스포트라이트의
구두 발자국.

시 해설을 쓴 김 현은 이 시집에 대해서 '타락한 시장 경제 체제에 대한 그의 비판은 더욱 깊어지고 신랄해져서 이제 그것의 비인간성을 방법적인 탐구로 발전시키고 있으며, 그러는 그만큼 현대의 물신주의를 극복하고 참된 자아를 회복하려는 그의 진정성의 서정은 보다 섬세하게 고양되고 원숙해진다. 그의 이 시집에서 우리가 근원적 슬픔을 느낀다면, 그것은 이 갈등들의 자제된 언어 속에서 속살을 드러내는, 우리의 타락한 상황에 대한 자기의 발견 때문일 것이다'라고 썼다. 아, 짜증난다!
프로필 이미지
77일차
2010.11.21 06:20:52 *.41.16.144
행운의 77일차.
조정권 '산정묘지' . 1991년 민음사 발간.

수묵화로 그린 신선도 속에 높은 산에서 쏟아지는 폭포가 있다.  그 폭포 옆 어딘가쯤 절벽 위에 작은 정자가 하나 놓여있다. 그 곳에서 신선 한분이 앉거나 서서 폭포를 바라보고 있다.

산정묘지를 읽고 난 느낌이다. 선비라기 보다는 승려나 신선의 시선을 지향하며 쓴 시들인 듯 하다. 상당히 추상적인 언어들로 쓰여졌다. 산정의 희박하고 청량한 공기에 머리를 두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느껴진다. 

세속을 떠나 세속을 초월하겠다는 의지가 많이 읽힌다. 그래서 현실감이 없어 보인다. 사용되는 시어들의 추상성 덕분에 마치 번역시처럼도 읽힌다. 한편으론 내 정신이 이 시어들을 수용할 정도로 깨어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새벽을 깨어 맞는 정신을 그린 시 한편.

산정묘지 9

그대 아는가.
아직 태어나지 않는
미래의 歌人들.
내가
허공에서 日月을 뜯어
그대의 수틀에다 새겨넣은
탄식과 비탄을.
내가 수없이 허공에서 장미송이를 꺽어
그대의 수틀에다 짜넣은 심장과
고통치는 세계의 포효를.
내가 가시덤불과 가시나무로서
수놓은 영혼의 방패와 창과 화살.
내가 허공에서 한 줄 바람을 퍼
허공에다 새겨놓은 노래 구절을.
그 속에서 움트는 미래의 눈동자가 얼마나
하늘의 별보다 높이 반짝이는지,
내 가까이 다가가면서
얼마나 빛으로 떨리는지를.
그대 친구들이여 아는가.
새벽하늘 위에서 부시시 깨어나는 비밀스런 눈동자처럼
아직은 태어나지 않은 고요,
아직은 태어나지 않은 시간,
아직은 태어나지 않은 노래.
별과 같은 가인의 미소는 얼마나 부드러운지.
만조 무렵 새벽별과 함께 고요한 바다의
바위 기슭으로 올라와 짠 물을 토하는 조개처럼
그대의 꿈은 망망대해의 잠 속에서
백합꽃송이를 끌어올리고,
오, 흰 거품을 자랑스레 뿜으며 열리는 백합처럼 그윽하게
그대의 미소는 새벽 공기와 입맞추며
입술에서는 달콤한 숨소리가 떨려오는지,
그대 느끼지도 보지도 못하는가.
보라 친구들이여
미풍의 파도는
혀끝처럼 달콤하고
내가 그것을 마시고 호흡하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의 향기 속에서 얼굴 파묻고 숨을 거두는 백합처럼
내 그대의 미소 속에 익사하여
몇 번이고 두 심장이 성스럽게 고동치고 있지 않은가.
보라 친구들이여,
그대는 듣지 못하는가.
그리하여
환희의 절정에서 소리치는 세계의 침묵이여.
내 가슴을 통과하고 높이 비상하여
내 주위에서 성스럽게 울려퍼지는
경이롭고 부드러운 음률이여.
혀끝처럼 감미로운
음률이여.
프로필 이미지
78일차
2010.11.22 06:35:46 *.41.16.144
에밀리 디킨슨 ''영혼은 꽃마차를 타고'

어제 저녁 개그 콘서트를 다 보고 잤더니만.깨어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줄곧 앉아서 졸다가 발도 저리고..
그러다 문뜩 눈에 쏙 들어오는 시를 발견했다. 단군하시는 분들이 좋아할만한..

아침은 만인에게

아침은 만인에게 주어지는 선물
몇 사람에게는 밤이 주어지고
몇몇 영웅에게는
새벽의 영광이--

1883년

에밀리 디킨슨은 특별한 시인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고 1800여편의 시를 남겼는데 살아있을 때는 단 7편만을 발표하였다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살다 갔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시인.
프로필 이미지
조영미
2010.11.22 17:10:48 *.44.124.42
아, 수희향님, 감사드려요. 변함없는 묵묵함이라면 수희향님이 으뜸이죠^^. 
출석률은 꾸준하지만 실제 졸다 말다 제대로 읽지 못한 날도 많습니다.  다음번 200일로 들어가면^^ 천복을 넘어 천직을 발견하는 작업을 하고자 합니다. 좋은 자리 마련해주신 공덕이 크십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0.11.22 15:42:37 *.207.0.12
영미님 저에요, 수희향이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참으로 변함없는 단군일지에 꾸준한 출석률까지.. 화선지의 붓과 같은 묵묵함이 느껴집니다..^^
언젠가 제게 주신 싯구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고이 간직하고 늘 함께 하면서요..

에밀리 디킨스의 시, 단군이라 그런지 말씀처럼 좋은데요 ㅎㅎ
1800편을 쓰고 단 7편 발표라.. 신기하네요.. 어쩐지 세속과는 좀 거리를 두었던 시인같기도 하고..

무튼, 100편의 시와 함께 한 이 가을이 영미님께 좋은 의미로 각인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느새 100일차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파티날 뵐 수 있게 되어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초겨울로 접어드는 100일차 여정 끝날까지 멋진 마무리하시기를 기원하며, 함께 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79일차
2010.11.23 06:33:39 *.41.16.144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 - 창비시선 300. 기념시선집.

누구의 시를 읽어야할지 좀 지친 감이 있어 여러 시인들의 시가 선별되어 있는 기념시선집을 읽었다. 그림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 숨겨진 아름다움이 언어를 통해 드러나는 시, 생각치 못했던 의미가 드러나는 시, 그런 시들이 마음에 뛰어 든다.

김수영의 '해금을 켜는 늙은 악사'에서 감탄한 구절이다. 해금연주를 들으며 늙은 악사가 빠졌던 구렁과 굽이가 보이는 것이 참 놀랍다.

그가 빠졌던 숱한 구렁
그 굽이에서 건져올리는 저 질긴 소리

이 중기의 '참 환한 세상'에서는 파꽃의 노골적인 욕망의 수사와 늙은이의 대비, 그리고 참 환한 세상이라고 이름지은 그 시인의 관점이 참 환하게 느껴졌다.

이면우의 '저녁길'은 외국인 노동자가 길을 물을 때 그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환하고 따듯한 방으로 뻗은 길' 을 물었을 것이라 본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박규리의 '산그늘'은 산 속 암자의 산그늘 속 돌소나무밭 돌맹이를 일구다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 하필 그리워져서 눈물 찔끔 떨구는 참 맑은 겨울날' 을 그렸는데 그 눈물 떨구는 마음이 처연하게 다가왔다.

이상국의 '시로 밥을 먹다'는 시 한편의 원고료로 보내온 쌀로 밥을 해먹으며 '철원평야 들바람과 농사꾼들 발자국 깊게 파인 논바닥이 훤히 보이고 두루미 울음까지 들어있는 쌀' 이라고 표현한 그 시인의 쌀 한톨에서 평야의 들바람과 두루미 울음까지 본 그 눈이 좋았다.

신대철의 '눈오는 길'

막 헤어진 이가
야트막한 언덕집
처마 밑으로 들어온다.
할 말을 빠뜨렸다는 듯
씩 웃으면서 말한다.

눈이 오네요

그 한마디 품어 안고
유년시절을 넘어
숨차게 올라온 그의 눈빛에
눈 오는 길 어른거린다.

그 사이 눈 그치고
더 할 말이 없어도
눈발이 흔들린다.

이렇게 막 헤어졌다가도 뛰어와 씩 웃으며 '눈이 오네요' 하고 말 건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프로필 이미지
80일차
2010.11.24 06:42:09 *.41.16.144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 후반부  - 창비시선 300. 기념시선집.

오늘은 강은교의 '차표 한장'부터 김선태의 '조금새끼'까지, 2006년 발간된 창비 259부터 2009년 3월 발간된 299까지 시집이 출판된 시인들의 시이다. 간간히 나이 드신 시인들도 있지만 아직 젊은 시인들이 대부분이다. 

시 속에 이야기가 실린 시들이 많이 발췌되어 있었다. 시인들의 정서가 비애와 불안, 절망에 기초해있는 경우가 많았다. 시대의 반영인가?  전쟁과 생존의 불안에 시달리지 않은 적이 없었던 이 시대가 그러하니 시인들의 정서가 그러함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오늘도 에또가 책상 위에 올라와 놀아 달라고 조른다. 책을 읽지 말고 자기를 읽고, 무얼 적지말고 자기를 적어 달란다. 쓰다듬어 주면 가르랑, 가르랑 눈을 감고 기분 좋은 화음을 울려 댄다. 에또랑 잠시 놀고..

이 재무 시인이 참 좋았다. 이 재무 시인의 '국수'

국수

늦은 점심으로 밀국수를 삶는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
소면은 일직선의 각진 표정을 풀고
척척 늘어져 낭창낭창 살가운 것이
신혼 적 아내의 살결 같구나

한결 부드럽고 연해진 몸에
동그랗게 몸 포개고 있는
결연의 저, 하얀 순결들!

엉키지 않도록 휘휘 젓는다
면발 담긴 멸치국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코밑 거뭇해진 아들과 겸상을 한다

친정 간 아내 지금쯤 화가 어지간히는 풀렸으리라
프로필 이미지
81일차
2010.11.25 06:44:41 *.41.16.144
시,사랑에 빠지다 - 현대문학 55주년 기념시집. 2009년

시인들의 사랑시와 그들의 짧막한 시작노트를 담아놓은 시집이다. 70인의 시인들이 직접 선정한 사랑시를 선보이는 자리인가보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릴케가 충고했다.

- '나는 글을 꼭 써야 하는가?' 깊은 곳에서 나오는 답을 얻으려면 당신의 가슴 깊은 곳으로파고 들어가십시오. 만약 이에 대한 답이 긍정적으로 나오면, 즉 이 더없이 진지한 질문에 대해 당신이 '나는 써야만 해'라는 강력하고도 짤막한 말로 답할 수 있으면, 당신의 삶을 이 필연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십시오. 당신의 삶은 당신의 정말 무심하고 하찮은시간까지도 이 같은 열망에 대한 표시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자연을 향해 다가가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은 것에 대해서 마치 이 세상의 맨 처음 사람처럼 말해보십시오. 사랑시는 쓰지 마십시오. 이처럼 우리에게 너무 흔하고 평범한 것들은 우선은 피하도록 하십시오. 그것들은 다루기가 아주 힘듭니다. 왜냐하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훌륭하고 탁월한 작품들이 무진장한 곳에서 당신의 개성을 보여 주려면 크고도 완전히 성숙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첫번째 편지'

맞다. 사랑시가 제일 어렵다. 사랑시를 읽는 내 마음도 그랬다. 사랑의 감정과 기억은 상당히 은밀해서 영혼까지 울리지않고서야 그 사랑을 고스란히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사랑시를 선보이는 시인들도 어쩌면 곤혹스러웠을지도.. 마치 밑천 드러내는 것처럼.

그 중 마음을 깊이 울린 손택수 시인의 '모과'. 손택수 시인은 70년 담양출신이다.

모과

아파트 화단에 떨어져 있던 모과를 주워왔다
올 겨울엔 모과차를 마시리라.
잡화꿀에 절여 쿨룩이는 겨울을 다스려보리라
도마에 올려놓고 쩍 모과를 쪼개는데
잘 익은 속살 속에서
애벌레가 꾸물거리며 기어나온다
모과 속살처럼 노래진 애벌레가
단잠을 깨고 우는 아이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애벌레에게 모과는 인큐베이터 같은 것
눈 내리는 겨울밤
어미 대신 자장가를 불러줄 유모의 품과 같은 것
이미 쪼개버린 모과를 다시 붙여놓을 수도 없고,
이 쌀쌀한 철에 애벌레를 업둥이처럼 내다버릴 수도 없고
내가 언제부터 이깟 애벌레 한 마리를 두고 심란해했던가
올 겨울 나는 기필코 모과차를 마시리라
짐짓 무심하게 아내를 바라보는데
아직도 책장 어딘가에 애벌레처럼 웅크린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놓쳐버린 아기의 태기를 놓지 못하고 있는 모과
속을 드러낸 거죽에 검은 주근깨가 숭숭하다
수술실에서 나올 때 흐느끼는 내 어깨를 말없이 안아주던 너
칼자국 지나간 몸 더거칠어가는 줄 모르고
바깥으로만 바깥으로만 떠돌던 날들이 있었는데
날을 세운 불빛에 움찔거리는 애벌레처럼 허둥거리는 한때
빈속에 쟁인 울음이 아리디 아린 향을 타고 흘러나온다

모과와 나와 아내와 애벌레가 다 하나이다.
시보다 더욱 시 같았던 고은 시인의 시작노트 단 한마디.

나 아직도 사랑 잘 몰라요

ㅎㅎ 저두요.

프로필 이미지
82일차
2010.11.26 06:17:43 *.41.16.144
오늘도 '시, 사랑에 빠지다'

이상하다. 시인들이 선택한 사랑의 시들이 별로 사랑시같지 않다. 잃어버린 사랑의 추억, 회한, 단절 이런 것들을 노래한다. 가장 진실했던 사랑의 순간들을 시집에서 발견할 줄 알았는데 시인들의 가로막힌 자아의식만 잔뜩 발견한 기분이다.

사랑, 하면 뭔가 진득하거나, 순수하거나, 기쁘거나, 처절하거나, 진실한 그 무엇일걸을 기대하다가 각자가 경험한 사랑의 쓰라림, 소외됨, 기대, 채워지지 않음 같은 마음의 제약들을 발견하니 실망스러운가 보다. 

시를 읽어갈수록 시는 이래야해 라고 생각하는 기대치가 있음을 발견한다. 좋은 시읽기는 아니다. 24살쯤 시쓰기를 포기할 무렵 '문학도 노동이다. 시인, 작가도 노동자이다'라는 말 속에서 실망과 날개꺽임을 느꼈었다.  '고귀하고 자기 자신이 아니고 무언가 좀더 높고 신적인 존재로 가는 외나무 다리처럼 느껴지던 문학'이라고 적은 걸 보면 나는 문학을 어떤 구도의 도구처럼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지금도 문학에서 뭔가 고양되는 영적인 것을 기대하고 있나보다. 그래서 내가 폭이 넓지가 않은 것일까?

내가 왜 시쓰기를 포기했던가가 생각났던 시읽기였다. 오늘 좋았던 시는 장옥관 시인의 허브도둑.

허브도둑

'난초 도둑'이란 소설도 있지만 정말 허브를 도둑맞는 일이 있었습니다.
새들새들한 게 안쓰러워 거름 주고 햇볕도 주려 복도 끝 창가에 내놓았지요.
그런데 잠시 자리 비운 사이에 화분이 감쪽같이 사라진 겁니다.
기막히고 허탈했지만 이내 맘을 바꿔먹고 짧은 쪽지를 써 붙였지요.

이자리에 놓여있던 화분을 가져가신 분께

아마 저보다 더 그 꽃을 사랑하실 분인 것 같습니다. 오늘 마침 거름을 넣어주었으니
6개월 안에는 거름을 주지 않아도 됩니다.

부디 그 꽃을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런데,

오늘 화분이 돌아왔습니다. 볼일 마치고 오니 그 자리에 화분이 머쓱하게 앉아 있습니다.
그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 낯선 얼굴이었습니다. 써 붙인 쪽지 떼어내고 이런 쪽지를 붙여놓았더군요.

이 화분에 대해서 걱정하고 계신 분께

이 화분이 잠시 새로운 지평선이 보고 싶어서 짧은 여행을 다녀왔어요.
이제 돌아왔으니 행복하다고 하네요. ^^

배수로에 엎드려 하의 벗긴 채 발견되지 않고 말짱하게 돌아온 허브의 알리바이가 기적 같았습니다.
올 봄 허브꽃은 아무래도 깨끗한 속옷 빨래처럼 희디희게 피어나겠습니다. 축축한 골짜기마다
굴러다니던 막돌에서 하얗게 난초꽃도 빠져나오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83일차
2010.11.27 10:17:58 *.41.16.144
최승호 시집 - 고비 2007년 현대문학.

고비는 고비사막을 말한다. 최승호 시인이 방송제작진과 함께 고비사막을 여행한 기록이다.  모르고 도서관에서 골랐다. 그야말로 고비사막을 들어가면서 시를 쓰기 시작해서 나오면서까지 쓴 시들을 모아 펴낸 시집이다. 사막에서 한 일은 시 쓴 것 밖에 없겠구나 싶어진다. 주로 모래, 적막, 외로움에 대해 읊다가 다시 모래, 적막, 외로움..

도적

뭘 좀 얻어보겠다는 도둑놈 심보로
사막에 갔더니
텅 빈 집 안으로 들어선 것 같더군요
뭘 얻기는커녕
있는 걸 내놓아야 할 판이더군요
옷을 내놔! 이 도적놈아!
모자를 내놔! 신발을 내놔!
사막에서는 다 빼앗길 판이더군요
몽땅 털리고나면
나는 더 벗을 것도 없는 허공처럼
가난해지는 것인지
큰 도적에게 잘못 걸렸다는 느낌
다 내놔! 다 내놔! 이 도적놈아!
살을 내놔! 피를 내놔!
몸뚱이를 내놔!
사막이야말로 정말 큰 도적이더군요
어디론가 도망쳐야 하는데
사방이 다 사막이더군요

프로필 이미지
84일차
2010.11.28 07:17:00 *.41.16.144
고재종 시집 '날랜 사랑' 창비 1995년.

어찌 어영부영하다보니 11시가 훌쩍 넘어 잠들었고 , 아침에는 꾸벅 꾸벅 졸았다. 일어나는 건 어렵지 않으나 책상에 앉아 꾸벅 꾸벅 졸 때는 대책없다.

90년대 중반의 농촌 풍경, 혹은 현실을 그린 고재종 시인의 시. 도시의 삶에서 이런 저런 가닥으로 궁리가 많은 내 처지에 그다지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나보다. 그래도, 시인의 언어가 무척 정제되어 있고, 현실을 그리는 눈이 결코 팍팍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요즘 시를 계속 읽을까, 아님 지금 하고 싶은 번역을 할까 갈등이 있다. 해야할 일이 있는데 아무 시집이나 골라 아까운 시간을 흘려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고, 그래도 원래 계획대로 100일은 시집을 읽고 느낌을 적어야지 싶은 마음도 있다.

곽재구 시인의 말대로 '못된 시'들이 많다. 반면, 읽으면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시들도 많다. 아래 시처럼.

가난을 위하여

꼭두새벽, 넉점도 못됐는데
눈빛 비쳐든 창호문 새하얘서
맑게 깨어나는 정신, 서재에 들어
한기 뚝뚝 듣는 寒山詩 펼친다
봄에 논밭 갈아 가을에 씨 거두고
엄동삼동에 책 읽는 버릇
그 무슨 천금을 줘도 못 바꿀레라
내 비록 가문 들판, 몇줌 곡식 거둬
세안 양식에 못 미칠지라도
아내 몰래 쌀과 바꿔온 몇권의 시집들
벌써 책장이 너덜너덜 닳았음이여
그 서책 닳는 만큼 깨이는 넋인 양
헛간 장태에선 수탉울음 청청하고
창호에 비쳐든 눈빛은 하도 좋아
시 일편에 담고자 펜끝 세우니
늙은 아버진 벌써 고샅길 샘길 내느라
쓱쓱 눈 쓰는 소리 바쁘시다
옳거니, 세상의 진실과 아름다움은
숫눈 쌓인 날 제때 기침하여
사람 내왕할 길부터 내는 데 또 있는 것
책 덮고 급히 앞문을 차니
눈부셔라, 울 너머 큰 눈 얹힌 청대숲
그 휘적휘적 휘어진 대줄기에서
포르릉 눈 털며 일군의 새떼 치솟나니
마침내 나 사랑하리, 이 가난한 날들의
천지 사계 공으로 누리는 사치며
거기에 죄 한점 더하지 않는 꿈이랑.

이 시를 적다보니 남은 16일, 좋은 시집들을 선별하여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좋은 시는 마음을 맑혀준다.
프로필 이미지
85일차
2010.11.29 06:30:29 *.41.16.144
신대철 시집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 창비 242. 2005년 발간.

계속 졸아서 시집을 많이 읽지 못했다. 다시 누을까, 말까의 갈등이 컸다. 제목 때문에 선택하기도 했지만 며칠전 접한 신대철 시인이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물방울

물방울이
풀잎에 매달려 있다
초원을 배경으로
몰래 잎 사이를 비춘다
우박 녹은 자리에
연둣빛 스치고
별꽃 아롱거리고
찰칵

풀벌레들 잎 위로 올라오다
물방울을 톡 떨어뜨린다
 
온 아침이라 눈에 대한 시가 몇 편있어 눈에 들어왔다. 날도 춥고 으스스해서 더욱 겨울처럼 느껴지는 날.
마음 속에 한꺼풀 벗겨내야할 장막은 무엇일까?
프로필 이미지
86일차
2010.11.30 06:14:48 *.41.16.144
정희성 '길'.

마음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바깥으로 떠돌면 아무 것도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다. 마음이 고요해야 시의 아름다움도 들어오고, 숨겨진 의미도 마음을 두드리고 하는데.. 시를 읽을 마음의 고요함이 부족한가 보다.

요며칠 줄곧, 마음이 바깥으로 가거나, 잠에 쫓겨 헤매이거나 시읽기가 힘들었다. 오늘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
어느덧 초심을 잃고 있나 보다. 시인들이 무엇을 소재로, 어떤 순간에 영감을 받아 시를 쓰는지 공부하고자 했는데. 지금은 어떤 시가 내 마음에 들어오나 안들어오나 재듯이 바라보고 있다.

오늘 읽은 정희성 시인의 '길'



아버지는 내가 법관이 되기를 원하셨고
가난으로 평생을 찌드신 어머니는
아들이 돈을 잘 벌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어쩌다 시에 눈이 뜨고
애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나는 부모의 뜻과는 먼 길을 걸어왔다
나이 사십에도 궁티를 못 벗은 나를
살 붙이고 살아온 당신마저 비웃지만
서러운 것은 가난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시대는 없는 사람이 없는 대로
맘 편하게 살도록 가만두지 않는다
세상 사는 일에 길들지 않은
나에게는 그것이 그렇게도 노엽다
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라
평생에 죄나 짓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살기가 죽기보다 어렵구나
어쩌랴, 바람이 딴 데서 불어와도
마음 단단히 먹고
한 치도 얼굴을 돌리지 말아야지

우리가 지닌 평화라는 것이 얼마나 가볍게 찢어질 수 있는지 확인하는 요즘이다. 바깥에 천둥소리인지, 아니면 포성소리인지 의심할 정도로..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프로필 이미지
조영미
2010.12.01 15:45:29 *.44.124.42
아, 은하님, 감사해요. 오늘은 출석만 하고 조금 있다가 다시 잠들어버렸어요 ㅠ.ㅠ
2시간 남짓 잔 것 같은데 별로 시달리지 않고 푹 잘자고 일어나 오늘 컨디션은 오히려 좋네요^^.
100일 완주하여 15일날 축하주 한잔 해요~~^^*
프로필 이미지
2010.11.30 13:05:36 *.126.91.37
영미님, ^^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새벽 5시에  아들과 함께 집앞 중학교 교정에 운동하러 나갔었는데요.
운동장을 몇 바퀴 돌 무렵에 진짜 천둥소리가 우르릉 쾅쾅 나면서 곧 비가 쏟아질 기세더라구요.
그때 우리 아들이 , " 엄마, 연평도에서 또 폭탄 공격이 있는게 아닐까? "그러더라구요.
물론 농담이었지만, 요즘은 정말 우리의 평화가 이토록 위태한 것이었나 생각하게 된답니다.

단군 100일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영미님도 조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시는군요.
저도 한동안 참 많이 힘들었는데, 이제 조금 마음을 추스렸어요.
영미님, 힘내세요. 지금까지 누구보다 잘 해오셨고, 또 앞으로도 가장 멋지게 달려가실 분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화이팅!!!

프로필 이미지
87일차
2010.12.01 16:01:01 *.44.124.42
출첵만 하고 잠들었다. ㅠ.ㅠ.
근데 잠이 들면서도 전혀 아쉬움 없이,

그래, 잠과 싸우며 에너지 소모하기 보다는 홀가분하게 자야해. 그게 더 좋은 거야.

라는 속삭임을 듣고 미련 없이 잠들었다.  갈등 없이 잠들어서인지 몸도 가뿐하고 기분도 좋다. 
어제는 달콤한 술이 먹고 싶어 와인 한 병을 사서 집에 와서 반병 적도 먹고 잠들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 13일.
읽어야할 시인 목록은 만들었는데 서점에 가서 책구입을 아직 못했다.  
'유종의 미'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겠다. *^ ^*
프로필 이미지
88일차
2010.12.02 06:24:47 *.41.16.144
신성철 시집 '3천 원짜리 봄' - 고요아침 2010.

'세상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힘이고 무기였던 시'
앞을 보지 못하는 신성철 시인
심안으로 그려내는 73편의 눈부신 상상력

그리고 '신성철 시인의 작품에는 건강함과 신선함이 하나하나 살아있습니다'라는 글을 읽고 시집을 선택했다.
눈이 안보이는 분이라고는 생각이 안될 정도로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져있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졌는지도 모르겠다.

시들은 좋았으나 오늘도 쏟아지는 잠을 어쩔 수 없었다. 어젯밤 9시 넘도록 김장을 하고 잠들었었는데 피로함이 남아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어제 하루 맘껏 자버리고 나니 오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작용했을 수도 있고..

암튼 불꽃을 되살려야 한다.

성냥

고 쬐그만 암자 속
말라깽이 납자들이 모여
앉지도 못하고
포개 포개 누워서 참선하는 곳

부처도 쇠북도 목탁도 뒤집어쓰고
모시고 울리며 두드리는데
도솔천 미륵불 기다릴 것 없다
내 한 몸 불태우면 그만이지
한 어둠 사르는데 스님 하나 죽는다
까까머리 불꽃에 네 번뇌를 사뤄라 사뤄라
온몸으로 온몸으로 죽어주리라
(2009 부산 점자도서관 대상 수상작)

프로필 이미지
89일차
2010.12.03 07:22:52 *.41.16.144
이면우 시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창비211. 2001년.

시를 다 읽고 나니 눈물 몇 방울이 솟아난다. 이면우 시인은 중졸에 아파트 보일러공, 건축배관공이다.
41살이 되어 펴낸 첫 시집 '저 석양'도 등단을 거치지 않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1991년 지방에서 출판했다고 한다. 
10년이 지나 2001년 창비에서 두번째 시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가 발간되었다.

그러니 남들이 시인면허를 내준 등단을 하니 못하니, 이래서 글을 쓰겠느니 못쓰겠느니 다 소용없다. 에밀리 디킨슨이나 이면우나 그냥 살면서 무면허로 시를 쓴 사람들이다. 인터넷을 보니 2002년에 세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출간의 말들은

《저 석양》
나는 이 속의 어떤 시편을 줄줄 울면서 썼다. 천 권의 책 읽기를 끝낸 네해 전 나는 생물도감, 느타리버섯 기르기, 원예사전 각 한 권씩을 이삿짐에 꾸려넣고 여편네를 앞세워 마침 진눈깨비 내리던 이 호숫가 오두막으로 왔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보다 원초적이다. 사람의 사는 일이 이리도 풍성한 은총 속에 있음을 내 이곳에 체득하였다.

 

  •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일찍 자연학교 학생이 되었다. 생각하기보다 느끼기에 더 적당한 짐승으로서 고백하지만 나는 몸을 살았으므로 행복했다. 숲을 걷는 동안 자주 부추겨지는 그 느낌은 도시 한가운데, 사람들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고맙다.
  •  

  •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못 만나뵀지만 박용래, 김관식은 시와 삶의 스승이다. 두 분은 자기 몫의 시와 가난을 앞서 살아냈다. 피해가지만 않는다면 가난은 시의 큰 밑천임을 배웠다. 시로 돌이켜보면 다 아름답다. 내 여름날 같이 땀흘리고 다투고 껄껄대던 사내들이여, 고맙다.
  • 일전 '저녁길'이라는 시에서 이면우 시인의 따스함과 속깊음을 발견했었다. 거기에다 한선생님의 추천으로 이면우 시인의 시집을 읽고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이런 저런 사연을 제끼고 우선 시들이 참말 아름다웠다. 이분의 이력이 드러난 것도 시집의 말미인데 그전까지 참 맑은 마음을 가진 분이시구나 생각하며 읽었다.

    아름다운 시편이 많았으나 첫 마음에 쑥 들어온 시두편.

    거미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노천시장

    나무 되고 싶은 날은
    저녁 숲처럼 술렁이는 노천시장 간다
    거기 나무 되어 서성대는 이들 많다
    팔 길게 가지 뻗어 좌판 할머니 귤탑 쓰러뜨리고
    젊은 아저씨 얼음 풀린 동태도 꿰어 올리는
    노천시장에선 구겨진 천원권도 한몫이다 그리고
    사람이 내민 손 다른 사람이 잡아주는 곳
    깍아라, 말아라, 에이 덤이다
    생을 서로 팽팽히 당겨주는 일은, 저녁 숲
    바람에 언뜻 포개지는 나무 그림자 닮았다
    새들이 입에서 튀어나와 지저귀고 포르르릉 날다가
    장바구니에, 검정 비닐봉지에 깃들면
    가지 끝에 매달고 총총 돌아오는 길
    사람의 그림자, 나무처럼 길다

    프로필 이미지
    90일차
    2010.12.04 08:31:52 *.41.16.144
    김경미 시집. '고통을 달래는 순서', 창비시선 296. 2008년 12월 발간.

    선명한 이미지가 잡히지 않는 추상화 시들이었다. 현대회화의 추상화들은 언제나 이해가 어렵다. 왠만히 단련된 눈이 아니고서는. 그저 시인의 정서를 느낄 뿐이다.

    부재중, 단절, 고통, 외로움, 눈물, 변덕.. 주제가 되는 시어들이다. 시인으로서 살아가는 고통에 대해 김경미 시인은 아래와 같이 얘기한다.

    '하지만 방에 들어서서 원고를 보자마자 시라는 장르 자체가, 시인이란 사실 자체가 너무 가혹하게 느껴진다. 시인으로서 얻은 아름다운 방과 부재의 기쁨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만큼 가혹하다. 왜 하필 시인이 되었을까. 누구나 다 제 일이 가장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는 거겠지만 시인이란 게 가장 고통스럽고 그러면서도 쓸모없는 존재인 듯 쓰라리다.'

    시를 써서 쓰라리고 괴롭다면 시를 안쓴다면 어떠할까? 물론 창작의 괴로움을 얘기한 것이겠지만 시인의 눈이 지나치게 고통과 부재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독자의 마음을 불쑥 낯설게 하는 것, 시의 기능 중 하나라고 배우긴 했지만 시인이 파고든 동굴이 불편하다. 물론 비슷한 부재의 계절을 겪고 있는 이들에겐 어쩌면 엄청난 위로가 될 시들일지도.

    마음에 다가온 시 중 하나.

    고요에 바치네

    내가 어리석을 때 어리석은 세상 불러들인다는 것
    이제 알겠습니다

    누추하지 않으려 자꾸 꽃 본다 꽃 본다 우겼었습니다

    그대라는 쇠동전의 요철 닳아
    없어진 지 오래건만

    라일락 지는 소리들 반원의 무덤이던 아침부터
    대웅전 앞마당 지나는 승려들 가사먹빛 다 잦아들던 저녁,
    한 여름의 생선 리어카와 봄의 깨진 형광등과
    부러진 검정 우산 젖어 종일 접히지 않던 검은 눈동자까지
    다 내가 불러들인 세상임을

    그 세상의 가장 큰 안간힘,
    물 흔들지 않고
    아침 낯과 저녁 발 씻는 일임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91일차
    2010.12.05 06:54:21 *.41.16.144
    김수영,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 창비시선 145. 1996년 출간.

    30분도 안되어 시집을 읽었는데 미안하게도 마음에 들어오는 시가 하나도 없었다. 어제 읽던 책 '클라시커 50 여성, 세상을 움직인 절반의 힘, 위대한 여성 50'을 계속 읽었다.여성의 사회 활동이 금기시되던 시대에 활동했던 뛰어난 여성들의 삶이 소개되어 있다. 바바라 지히터만 이라는 독일 여류 작가가 쓴 글이라 그리스, 로마, 이집트, 유럽, 미국 여성 위주로 서술되어 있다.

    자기 시대의 저항을 온 몸으로 뚫고 살아간 여성들의 삶이 흥미롭다. 이 시대 살아있는 여성 중에는 아웅산 수지와 마돈나가 선택되었고 바비인형도 위대한 여성 중 하나로 선택되었다. '위대한 여성'이라 이름 붙인 건 번역된 책의 부제이고 그냥 '50 여인'이라는 제목이 적합할 것 같다.

    어제 도서관에서 빌린 책 중에 또 한 권은 '길어진 인생을 사는 기술'이라는 책이다. 40대 이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할 수 있도록 생각을 던져주는 책인가 보다. 무엇이 되든 스스로 선택하는 삶, '알고 사는 삶'에 대한 요구가 크다.

    '내가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 버지니아 울프
    프로필 이미지
    92일차
    2010.12.06 17:16:25 *.44.124.42
    새벽 출석만 하고 잠들어버렸다. (ㅠ.ㅠ)
    프로필 이미지
    93일차
    2010.12.07 06:47:37 *.41.16.144
    박라연 시집 '빛의 사서함' 문학과 지성 시인선 357. 2009,

    오늘도 비몽사몽하며 앉아서 삐걱거리는 몸을 느끼며 깜빡 깜빡 졸기는 했지만 박라연 시인의 시를 다 읽었다. 음하하하~ 쯧쯔..

    1951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한국방송통신대 국문과와 수원대 국문과 석사, 원광대 국문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는 이력이 특이했다. 시인이 가진 의지의 힘을 느끼게 하는 이력이다.

    '눈물의 힘과 모성적 상상력'이라는 평을 달아 놓았는데 엄마의 눈길처럼 따스하고 애잔하게 세상을 보는 눈이 있었다. 그래서 꾸벅 꾸벅 하면서도 시집을 덮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나 보다. 50대 후반의 나이로 시를 썼음에도 전혀 나이듬이 느껴지지 않았다. 항상 공부하고 감각을 새롭게 단련하는 노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에 다가온 시 중 하나인 '너무 늦은 생각'

    너무 늦은 생각

    꽃의 색과 향기와 새들의
    목도
    가장 배고픈 순간에 트인다는 것
    밥벌이라는 것

    허공에 번지기 시작한
    색과
    향기와 새소리를 들이켜다 보면
    견딜 수 없이 배고파지는 것
    영혼의
    숟가락질이라는 것
    프로필 이미지
    94일차
    2010.12.08 06:17:41 *.41.16.144
    이윤학 시집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문학과 지성 시인선 343. 2008년 발간.

    이윤학 시인의 글씨체는 동글동글하고 귀엽다. 어찌 아냐고 하면 서점에서 산 시집의 첫 장에 누군가에게 사인을 해준 이윤학 시인의 자필 서명이 있기 때문이다. 1965년 충남 홍성 출신, 동국대 국문학과. 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그후로 2008년까지 7권의 시집 발간.  10년에 한번 시집을 내는 시인도 흔히 있는 걸 보면 다작 시인이다.

    이분의 시풍을 보면 주변 풍경의 묘사가 많다. 매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부지런히 피사체를 찍는 사진작가의 성실함이 있다. 긴장 어린 시어가 살짝 부족하지 않은가 싶었는데 가끔 한방 때리는 시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시쓰기가 원래 그런가 보다. 결국 수백편을 써도 남는 건 한, 두편인 법이니까.

    사물화나 풍경화에 가까운 시들을 보면서 이렇게 항상 시의 소재에 대한 관찰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시인의 성실함이 유난히 마음에 다가왔다. 한방은 가끔씩 날려주면 된다. 마음을 울린 시편.

    마늘

    검불을 덮어놓은 겨울 마늘밭
    닭들이 헤쳐놓은 검불 사이
    한 조각씩 박힌 마늘이
    언 땅에 싹을 틔웠다
    마늘은 얼었다 풀렸다 하면서
    싹에게 거름이 되는 것이다
    한 가지 열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겨우내 싹을 잡고 있는 것이다
    얼어 터지지 않기 위하여
    흐물흐물 썩지 않기 위하여
    몸속에 시퍼런 멍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싹과 뿌리를 잇는
    가느다란 줄기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프로필 이미지
    95일차
    2010.12.09 06:36:42 *.41.16.144
    문인수 시인 '뿔' 민음사 1992년 발간.

    문인수 시인에게는 긴장감이 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물을 관찰하다 휙 잡아 낚는 것처럼 긴장감이 가득한 시를 쓴다. 시마다 시선이 신선하다. 새롭다. 이래서 시인이구나 싶다.

    시 읽다가 어느새 앉아 졸고 일어나보니 이 시간이다.

    오징어

    1
    억누르고 누른 것이 마른 오징어다.
    핏기 싹, 가신 것이 마른 오징어다.
    냅다, 불 위에 눕는 것이 마른 오징어다.

    몸을 비트는,
    바닥을 짚고 이는 힘.

    총궐기다.
    하다못해 욕설이다.

    2
    무수한 가닥으로 널 찢어발기지만, 잘게
    씹어 삼키지만,
    너는, 시간의 질긴 근육이었다.

    ------너는, 너의 푸른 바다로 갔다.
    프로필 이미지
    96일차
    2010.12.10 06:20:25 *.41.16.144
    문정희 시집 '다산의 처녀'. 민음사 2010.

    1947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시인은 이미 64세이다. 어제 글통삶 언니들의 인도로 문정희시인을 초청한 논현문화정보마당의 우리문학콘서트에 다녀왔다. 일전 이정록 시인의 문학콘서트에 이은 두번째 나들이다. 고은 시인과 신경림 시인이 받았던 시카다상을 올해 10월에 시인이 수상했다. 참으로 영광스런 상일 것이다.

    시인께 간단한 질문 하나를 드리고 '다산의 처녀' 시집 한 권을 받고 사인을 받았다. 시인과의 대화 사이 제갈인철의 노래를 들으며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세계를 아우르며, 시 속에 세계적인 정서의 숨결을 넣으려 애쓴 시인의 노력과 그야말로 '애걸복걸한다'고 표현한 시쓰기의 고통이 참말 인상적이었다. 시에게 사랑한다 구애 한 번 제대로 했던가, 아님 보름달에 정화수 하나 떠 놓고 빌던 간절함이라도 있었던가? 가뭄에 가장 순결한 처녀를 바치며 비를 빌던 목마름이 있었던가? 내 것을 아무 것도 내놓으려 하지 않고 받으려고만 하는 나의 안일함에 대해 뼈아픈 반성을 한다.

    시에 온전히 매달린 삶의 고통에 대해 얘기하는 시인 앞에서 정말 숙연한 마음이 되었다. 인터뷰어인 김민영씨가 낭독해줄 때 짜릿함이 몰려오던 시 한편.

    쓸쓸

    요즘 내가 즐겨 입는 옷은 쓸쓸이네
    아침에 일어나 이 옷을 입으면
    소름처럼 전신을 에워싸는 삭풍의 감촉
    더 깊어질 수 없을 만큼 처연한 겨울 빗소리
    사방을 크게 둘러보아도 내 허리를 감싸 주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네
    우적우적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식어 버린 커피를 괜히 홀짝거릴 때에도
    목구멍으로 오롯이 넘어가는 쓸쓸!
    손글씨로 써 보네 산이 두 개나 위로 겹쳐 있고
    그 아래 구불구불 강물이 흐르는
    단아한 적막강산의 구도!
    길을 걸으면 마른 가지 흔들리듯 다가드는
    수많은 쓸쓸을 만나네
    사람들의 옷깃에 검불처럼 얹혀 있는 쓸쓸을
    손으로 살며시 떼어 주기도 하네
    지상에 밤이 오면 그에게 술 한잔을 권할 때도 있네
    그리고 옷을 벗고 무념의 이불 속에
    알몸을 넣으면
    거기 기다렸다는 듯이
    와락 나를 끌어안는 뜨거운 쓸쓸
    프로필 이미지
    조영미
    2010.12.13 09:34:49 *.44.124.42
    김민영씨 인터뷰 진행이 정말 매끄럽고 센스 만점이에요. 일전 이정록 시인 문학콘서트에 이어 두번째 갔었는데 김민영씨 진행에도 많이 감탄했었죠. 자기 마음에 맞게 다가오는 시들이 좋은 시들이라는걸 확인해요. 여기 소개된 시들은 내 마음에 다가온 시들..
    프로필 이미지
    권윤정
    2010.12.12 11:50:50 *.154.223.196
    김민영씨의 블로그에서 소식을 읽었는데 여기 다녀오셨군요.
    저는 서울역 근처 그 회사 사무실에서 하는 저자와의 만남에 간 적 있어요. 
    문학콘서트에 조만간 가보고 싶습니다. 
    조영미님 덕분에 처음 듣는 시인들의 시를 뭔 소린지 모르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97일차
    2010.12.11 06:34:21 *.41.16.144
    천양희 '마음의 수수밭' 창비시선 122. 1994년 발간. 1942년생인 시인이 53가 되던 무렵인가.

    천양희 시인의 시어가 좋아서 옛 시집을 찾아 보았다. 천양희 시인에게 끌렸던 몇 가지 이유를 발견했는데, 나열해보자면,

    첫째, 잠언과 같이 강렬하게 마음에 다가오는 구절들이 있다. '그 말이 나를 살게 하고 '에 보면 시인은 강렬하게 다가오는 뼈같은 한 마디를 찾고 있다.

    '오! 육체는 슬퍼라. 나는 지상의 모든 책들을 다 읽었노라던 말라르메의 그 말이,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던 김수영의 그 말이, 흠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던 랭보의 그 말이, 누가 나를 인간에 포함시켰소라던 브로드스키의 그 말이, 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떻게 알겠느냐던 니체의 그 말이,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던 발레리의 그 말이...

    나는 본다
    나에게로 세상에게로
    내려앉는 말의 꽃이파리들
    내 귀는 듣는다
    나에게로 세상에게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말의 발자욱 소리들
    나를 끌고 가는
    밑줄친 문장들.

    그리고 시인은 '나를 당기소서'에서 자신이 끌린 다양한 문장을 얘기한다.

    이러한 뼈와 같은 문장을 찾는 시인은 실은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 시인이 그리는 잠언같은 몇 시어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 마음의 수수밭 중에서-
    지정석에 앉아 이렇게 달리는 게 직진하는 생이냐, 그는 이정표 쪽을 물끄러미 본다 - 동해행 중에서
    생생한 생!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다 - 여름 한 때 중에서
    아, 나는 生으로 세상 부르며 득음하고 싶었다 - 소리봉길
    내 인생도 가파르게 넘었지만, 본가까지 본질까지 다 버리고 월세월세 하면서 도시에서 세월 보낸 친구 - 산행 중에서

    둘째, 시인은 움직이면서 시를 쓴다. 천양희 시인은 아마 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걸으면서 시를 많이 구상할 것 같다. 시 속에 지명이 많이 거론되고 그 곳을 지나가면서 마음 속에 있던 것들과 풍경들을 버무리는 듯한 시를 많이 쓴다. '마음의 수수밭'도 산길 절벽을 올라가는 과정이 서술되어 있고 '동해행', '진로를 찾아서', '원근리길', '소리봉길', '숲을 지나다', '무주에서 하루', '산행', '은행에서', '외동, 외등', '수서를 찾아서', '시냇가에서', '터미널 간다', '청사포에서', '역', '직소포에 들다', '미아리 엘레지', '무심천의 한때', '밤섬', '어디로 갈까' 이 모두 움직이면서 나온 시들이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의식이 많이 움직이고 심상이 떠오르는 걸 경험했기에 이렇게 움직이면서, 이동하면서 시의 소재를 얻는 시인이 좋아진 것 같다. 그럼 시인은 움직이면서 시상을 얻고, 그 시상을 메모했다가 시간을 두고 삭히면서 완성하는 것일까?

    시 하나에 이 년씩 두고 가다듬을 때도 있다는 그저께 문정희 시인의 말에 비추어볼 때, 천양희 시인의 고뇌와 노력도 그에 못지 않을 것 같다.

    읽고 나서 쏟아지는 물세례를 받은 듯 시원한 느낌을 받은 시.

    직소포에 들다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 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淨土! 나는 늘 꿈꾸어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水宮을.

    폭포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둥소리 같은 우뢰같은
    기립박수소리 같은 -------바위들이 몰래 흔들 한다

    하늘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무한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絶唱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




    프로필 이미지
    98일차
    2010.12.12 06:19:21 *.41.16.144
    칼릴 지브란과 메리 해스켈의 영혼의 속삭임,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세계를 발견하고
    발가벗은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신성한
    소망의 표현,
    그것은 삶을 노래하는
    詩의 정신입니다.

    시인이란 그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가슴속이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한 이들입니다.

    1915년 7월 17일 칼릴 지브란

    시를 항상 삶에 찰싹 붙여 산다던 문정희 시인 말씀이 생각난다. 그러다보면 가끔씩 좋은 시가 옆구리로 나올 때도 있다고. 세상의 모든 좋고 훌륭한 것들은 옆구리로 태어났다나? 부처님도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님도.

    나자신의 비평가가 되기를 배우십시오.
    새로운 세계를 접했을 때, 시인은
    꿈을 품게 됩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그 세계로부터 돌아와,
    그의 꿈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어쩌면,
    그는 아무것도 그의 시 속에
    담아내지 못할런지도 모릅니다.
    -- 그가 화가라면 화폭속에 그려내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그의 시를 읽을 때
    그 한줄 한줄마다
    그는 떠올릴 수 있습니다.
    꿈속에서 보았던 것들을.
    시행을 되읽어 갈 때마다
    시인의 입을 통해
    꿈은 다시 태어납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1920년 9월 7일 메리 해스켈

    선승이 화두를 잡듯 시를 자나 깨나 꿈속에서도 잡고 있어야 좋은 시인이 되나? 문정희시인의 말에 따르면 거의 그런 경지였다. 그리고 그에 따른 고통도 상당한가 보다.
    프로필 이미지
    99일차
    2010.12.13 06:52:26 *.44.124.42
    99일차. 윤동주 시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오래전 쓴 글로 대신한다.
    어린 시절부터 가장 좋아했던 윤동주 시인의 소년.
     
    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씃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 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1939년

    동주의 시에 몇번 등장하는 순이가 누굴까 항상 궁금했다. 윤동주를 순국의 열사처럼 일제에 항거한 민족시인으로 기리는 바람에 그분의 시에 등장하는 순이에 대한 얘기가 일절 없다.

    아마 실상 그가 누군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동주의 시에 순이는 세 번 등장한다.

    달같이

    연륜이 자라듯이
    달이 자라는 고요한 밤에
    달같이 외로운 사랑이
    가슴 하나 뻐근히
    연륜처럼 피어 나간다.

    1939년 9월

    이렇듯 달같이 외로운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걸 보면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외사랑이었을 듯 하다. 마음한번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혹은 않은?

    윤동주가 22살이던 연희전문 1학년 첫학기의 마지막 무렵에 쓴 '사랑의 전당'에 처음으로 순이가 등장한다.


    사랑의 전당

    순아 너는 내 전에 언제 들어왔던 것이냐?
    내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던 것이냐?

    우리들의 전당은
    고풍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

    순아 암사슴처럼 수정 눈을 내려 감아라.
    난 사자처럼 엉클린 머리를 고루련다.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성스런 촛대에 열한 불이 꺼지기 전
    순아 너는 앞문으로 내달려라.

    어둠과 바람이 우리 창에 부닥치기 전
    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 채
    뒷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

    이제 네게는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험준한 산맥이 있다.

    1938년 6월 19일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가늠하기도 전에 이렇게 험준한 산맥과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로 서로의 세계가 갈리는 것을 예감한 이유는 뭘까? 어떤 이였기에. 아마 처음부터 이루어질 가망이 없는 이를 마음에 담은 모양이다.

    39년의 '소년'과 '달같이'를 거쳐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를 반복한 팔복과 위로, 병원, 무서운 시간 등 몇편의 슬프고 외롭고 아픈 시들이 40년에 쓰여졌다. 그후 41년에 눈오는 지도를 쓰며 동주는 순이를 마음에서 떠나 보낸다.

    눈오는 지도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안을 들여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흘흘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조그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1941년3월 12일 25세, 연희전문 졸업 후

    이후에 42년까지 동경에서 쓴 태초의 아침, 새벽이 올 때까지, 십자가, 눈감고 간다, 못자는 밤, 돌아와 보는 밤, 간판없는 거리, 바람이 불어, 또다른 고향, 길, 별헤는 밤, 간, 참회록, 흰 그림자, 흐르는 거리, 사랑스런 추억, 쉽게 씌어진 시, 봄에 이르기까지 관통되는 정서는 그리움, 아쉬움, 서러움, 허무함이다.

    차갑고 외로운 감옥에서 홀로 외로이 죽어간 윤동주에게 속삭여 주고 싶다. 달같이 외롭게 흘러간 당신의 시간과 마음의 흔적들이 별빛처럼 대기처럼 녹아흘러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고. 그러면 동주는 덜 외롭고 덜 서러울까?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부는 가을밤에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 가만히 들여다보는 그 사나이'에게 당신의 순간들이 이렇게 기억되고 있다고 외쳐주고 싶다.

    프로필 이미지
    100일차
    2010.12.14 06:15:47 *.41.16.144
    오늘은 100일차.
    한 매듭을 짓는 날이다.

    문학사상사에서 펴낸 한국대표시인 101인선집 중 고은시선집을 읽었다.

    오래전 젊은 날
    아무것도 없이 하루가 공짜로 가던 시절이었다
    나는 다친 다리로 걷지 못하는 날
    그 빈집 곰팡이와 함께
    하루를 다 보내며
    압록강 같은 서사시를 쓰고 싶었다
    -압록강 중에서-

    수없는 변화를 거쳐왔다고 하는 고은 시인. 이런 마음이 있었기에 시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평생의 노력이 뒤따라왔을 것이다. 젊은 날 쓴 시들보다 나이 들어 쓴 시들이 더 쉽고 더 마음에 다가왔다. 보편성을 얻은 때문인가 보다.

    시인은 어느 순간, 무엇을 노래하며 시를 쓰는가 물으며 시작한 100일이었다. 답은 물론 모든 순간이다. 시가 다가오는게 아니라 시를 찾으려는 시인들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시에 찰싹 붙어있는 삶이 시인의 삶이다. 시를 한시도 몸에서 떼놓지 않기 위해 애걸복걸한다고 문정희 시인이 말했다.

    시에게 온전히 자신을 내준 사람들에게 시가 다가온 걸 배웠다. 내가 온전히 나를 내어주는 그 무엇, 나는 그것이 될 것이다.

    두개골 술잔

    스승께서
    새로 득도한 제자에게
    물 한 잔을 주셨다
    두개골 잔이었다

    스승께서 한마디 덧붙이셨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술 한 잔 받아라
    두개골 잔이었다

    염주 한벌을 꺼내셨다
    두개골 염주였다

    내 두개골도 이 세상 서러운 날 술잔이 되면 좋겠다

    히말라야시편에서






    프로필 이미지
    2010.12.14 07:07:22 *.151.166.64
    영미님과 함께 한 단군 100일동안, 이 곳을  방문하면 항상 읽어 볼 수 있는   '시' 와 그 시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영미님의 멋진 '시평'이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두고 두고 읽어 보고 싶은  소중한 단군일지입니다.
    100일에도 함께 했고, 200일, 300일도 그렇게 함께 갈 수 있는 귀한 동지를 만나 참 기분 좋은 새벽입니다.
    영미님, 고생 많으셨고,  내일 100일 파티에서 뵈요~^^

    프로필 이미지
    2010.12.16 16:25:46 *.93.45.60
    한명석님을 얼마전에 만났는데요,
    글통삶 멤버중에 한명이 단군프로젝트 참여하면서 목표한 시집읽기 10권인가 100권인가.. 제가 숫자에 약해서 잘 기억이 안나는데 100권이겠죠. 하여간 그건 해내더라구요. 하면서 구본형선생님과 수희향님께 자랑하는 것을 들었어요.
    그분이 조영미님이신 것 같네요.  옆에서 보는 사람 감동받게 하시는 면이 있네요.
    변화에 대한 욕구가 사그라들지 않고 너무나 간절하여 그것을 풀어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시더군요.

    조영미님 힘내요~ 단군하다가 만날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말고 만납시다.  제 연락처는요 010-6369-1903 all4jh@naver.com 입니다.  종종 뵈요~
    프로필 이미지
    조영미
    2010.12.18 08:31:16 *.41.16.144
    그림 잘 간직할게요~ 감사합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4 [단군 2기 출사표_현무부족] 신나게 손놀리기 100일 ... file [135] [3] 김소연 2010.09.05 10419
    83 [단군2기 출사표_청룡부족] 100덩이의 진흙을 선물 받... [42] 정세희 2010.09.05 3516
    82 [단군2기-현무부족-출사표] 변환된 삶을 꿈꾸며 떠나는... [127] 강영미 2010.09.05 3645
    81 [단군2기 출사표_현무부족] 아침 두 시간을 통해 스... [25] 이하늬 2010.09.05 3502
    80 [단군 2기 출사표_주작부족] "Play, Happy-Go-Lucky ... [119] 박소라 2010.09.05 3759
    79 [단군 2기 출사표_청룡부족] 다시 새벽을 깨우다. 또... [119] 최점숙 2010.09.05 3617
    78 [단군2기 출사표 - 청룡부족] 나만을 위한 시간 [31] 최용훈 2010.09.05 3811
    77 [단군 2기 출사표_주작 부족] 나는 내가 한다는 ... [9] 박지연 2010.09.05 3668
    76 단군2기 출사표 - 현무부족 양지정 : 20년 나의 필살... [14] 양지정 2010.09.05 3512
    75 [단군2기 출사표 - 주작 부족] 새벽 거인 [125] 이승호 2010.09.05 3729
    74 [단군2기_출사표_주작부족] 가슴뛰는 삶의 시작, 첫 ... [41] 유덕수 2010.09.05 3495
    73 [단군2기_출사표_현무부족] 반복을 통한 습관화 [127] 김경희 2010.09.05 3898
    » [단군 2기_출사표_주작부족] 행복한 100일의 새벽 ... [146] 조영미 2010.09.05 7000
    71 [단군2기-출사표- 주작부족] 매일 새벽 나 자신과 마... [113] 조성희 2010.09.05 4215
    70 [단군2기_출사표_현무부족] 나는 나를 혁명할 수 있... [14] 박승오 2010.09.05 3526
    69 단군2기 출사표-청룡부족.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 [86] 김선화 2010.09.05 3676
    68 [단군2기-출사표-청룡부족] 2막을 향한 출발 [111] 이국향 2010.09.05 4021
    67 [단군 2기_주작부족_출사표] 또랑또랑한 Bookmaker _ ... [25] 차정민 2010.09.05 3557
    66 단군2기 청룡부족 출사표 윤인희 [41] 윤인희 2010.09.04 3508
    65 [ 단군2기- 주작부족 윤맹순 ] 출사표 - 첫 백... [45] 늦을뻔한 수니 2010.09.04 3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