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 초대 - 달콤한 새벽 속 독백]
1. 벡터를 안은 푸른 새벽이 말걸어 올때
푸른 새벽이 말을 걸어온다. 배고픔처럼 참을성 없고 졸음처럼 몽롱한 어투로 말이다. 꿈결인지 잠결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어제 밤부터 계속 재생되고있을 Kind of blue 음반의 Blue in green이 낡은 스피커를 통해 들린다. 푸른 새벽의 속삭임과 뒤엉켜서 그 경계가 모호하다. 모호한 음표와 속삭임들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그렇게 나의 눈꺼풀도, 웅크린채 이불을 놓지 않고 있는 손등도 안개 선율과 속삭임에 가려 점차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존재하는데 보이지 않는 나의 몸이 온전히 새벽 안개 속에서 사라진다. 눈을 떴는데 내가 없다. 아니 내가 점차로 보이지않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안개속에 사라지는 듯 하더니 서서히 투명해져 가고 있다. 생각으로만 존재하는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일단은 나를 찾고 봐야된다는 생각만 맴돈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심정이 이러한 것일까.
'답답해, 숨을 쉬고 있는데 이렇게 막막한 기분이 들다니 난 지금 어디에 있는거지, 내가 보이지 않아'
없는 내가 있으려고하는 나에게 말을 건다. 거울을 보아도 내가 보이지 않는다. 정말로 난 어디로 사라진걸까. 그때 나의 온몸을 가려버린 안개너머로 새벽의 속삭임이 더 크게 들려온다.
'펜을 잡아, 종이를 펴봐, 그리고 글을 써봐, 네가 너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써봐 그러면 서서히 너를 볼 수 있을 거야. 그냥 시작해봐'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건지. 여전히 몽롱한 상태에서 나는 약간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오래된 나무 책상에 앉는다. 밤새 창문이 열려 있었나 보다. 겨울의 한기가 이불 밖의 사물들에 내려앉아 있다. 정신이 든다. 방안은 점점 더 자욱해져가는 짙은 안개로 이제 바로 앞의 사물 형체도 분간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펜마저 보이지 않을까봐 일단 펜을 하나 집어든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나의 형체가 두려워지고 있다. 두려움은 더더욱 시야를 흐린다. 분명히 무게와 부피감은 느껴지는데 시야에서는 멀어지고 있는 느낌. 열어두었던 창문 사이로 다시 한 번 차디찬 겨울의 청명함이 코 끝으로 들어온다. 이대로 멍하니 있다가는 펜을 잡을 힘도 없어질 것 같다. 일단 책상위에 펼쳐져 있는 노트위에 무엇이든 적기 시작한다. 푸른 새벽의 속삭임에 따라서 안개 속에 가려져 보이지않는 나를 구원하기 위한 사투가 시작된다.
'방향도 없고 크기도 없다. 나는 방안 어디에도 없다. 아니 방안 전체에 파동으로 흩어지고 있다. 있지만 없는 이 묘한 상태 ....졸리다. 아니 춥다. 손이 잘 움직이질 않는다... '
그렇게 무작정 우주의 속삭임에 응답이라도 하듯 자동 기술법으로 써 나간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글을 써나감과 동시에 나의 모습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뿌연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흡사 복권뒤에 은박 부분을 열심히 스크래치해야 숫자가 드러나는 것처럼 난 열심히 나의 모습을 살리기 위해서 미친듯이 글을 써내려간다. 점차 사물과 나의 간격이 드러나고 손과 얼굴이 드러난다. 책상 옆 거울로 나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그렇지만 낯설다. 나의 모습이 저랬던가. 가까이서 보면 글자들의 모자이크처럼 보인다.
방 안 가득히 퍼져 있던 나의 파동들이 다시금 하나로 모이고 있다. 하나로 모여서 글자 하나 하나가 보이지 않는 나를 드러내고 있다. 재미있다. 단숨에 써내려갔다. 무슨 말을 적고 있는 지도 알 수 없었다. 단거리 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결승전에 다 와서 보니 달려온 거리가 보인다. 거의 A4 2장 분량의 글이 적혀 있었다. 다시 읽어보지는 않았다. 기진맥진한 상태, 그로기 상태이다. 시간이 잠시 멈춰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젠가 시간은 관념일 뿐 움직이는 건 행위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한 점에 모이는 그 점에 스타카토처럼 서 있었던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그저 거울속에 돌아온 선명한 자신의 모습이 반가울 뿐이고 신기할 뿐이였다. 어느 새 음악도 멈췄고, 하늘의 푸른 빛도 방안을 뿌옇게 감싸던 안개도 걷히고 없다. 지금의 느낌은 마치 자기 자신에게 인공호흡이라도 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에 위협을 받았을 수 있는, 영원히 자신을 잃고 푸른 새벽의 하늘 속으로 사라질뻔한 그런 경험 말이다.
그 푸른 새벽은 나를 살리고는 어디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걸까. 생각해보니 지난 며칠간 의식이 하나 둘 빠져나가버려서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았던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 같다. 책상 위 흔적들을 보니 술을 마셨었나 보다. 무얼 찾는지도 모르는 채, 무얼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그 아득함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답답했었다. 책꽂이에 있던 책들을 미친듯이 손이 가는대로 읽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었나보다. 온 몸 가득 대상에 대한 소비 습관이 자신도 모르게 들어 있었나 보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삼키듯이 흡수했다. 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글자들을 먹어치웠다. 삶을 음미하지 못한채로 방치되어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무기력의 끝에서 대롱 대롱 삶의 끈을 잡고 있었나 보다. 사람이 길을 잘못 들면 걸음이 바빠진다고 했던가. 나의 지난 밤까지 발걸음은 바쁘기만 했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채로 살고 있었다니, 자신이 사라져도 모를 판이었다. 오늘 새벽의 이야기는 우연이 아니다.
졀묘한 타이밍이다. 그 때 푸른 새벽의 속삭임에 귀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파리의 새벽하늘의 그 짙은 코발트 빛을 기억해 낸 것이다. 인공호흡의 끝자락을 살리기 위해서 찾아낸 것이다. 삶의 조각난 편린들 속에서 그래도 살아있던 순간들, 삶을 온전히 사랑했던 순간들을 자기도 모르게 기억해 낸 것이리라. 그래서 오늘 아침의 충격요법이 터져나오게 된 것이리라. 그 날의 그 새벽 그 공기의 여운을 온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날도 낯선 이국땅이여서인지 몰라도 잠이 오지 않아 새벽부터 책상에 앉아서 글을 썼었다. 그리고는 창문 너머로 한 참 동안 그 푸른 새벽의 하늘이 지날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낯선 창을 통해서 맞이하는 낯선 풍경의 속삭임, 그 때 내 안에서 반응하던 그 선명한 느낌 말이다. 있는 그대로 느끼고 생각하고 머무르던 그 기억을 끄집어 낸 것이다. 살면서 사라져 버렸던 먼지가 뽀얗게 내려 앉아 버렸던 그 순간들을 더듬어 본다. 여행자로서 예술가로서 펄떡이는 가슴을 안고 살던 그 기억들을 편린들을 주워담아 다시 퍼즐 맞추기를 해본다.
한 생각 바로 하지 못한채 계속 삶의 이정표에서 흔들거렸다. 자신의 근원이 바로 서지 못해서 생겨버린 일들이다. 이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사라지는 두렵고 불쾌한 경험은 다시는. 방향성 없이 흔들리고 있던 나에게 최후의 통첩처럼 우주가 이야기를 건넨것이다. 그 가슴 가득 채운 열정이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불타버릴 즈음이다. 길을 잃고 있는 순간에는 방향을 알려주는 무엇이든 반갑고 간절한 법. 푸른 새벽이 보내 온 모험 초대장을 감사히 받아든다. 오늘 부터 난 소중한 나와의 대화 시간을 허락한 그리고 내게 새로운 호흡을 불어 넣어 준 그 노트에 '푸른 새벽'이라고 이름 붙였다. 모험의 시작이다. 내 삶의 창조자로서 아침을 연다.
http://www.youtube.com/watch?v=A9EzL-cUTw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