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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0일 22시 36분 등록
오늘은 책상을 뒤집는 날....

오늘은 한 달에 한번 책상을 뒤집기로 정한 날이다.
매달의 절반에 해당하는 날에 한번 뒤집고 새로 정리된 마음으로 또 시작하는 것이다.

우선 큰 박스를 갖다 놓고, 책상 위에 있는 것 모두(전화기까지), 책상 서랍 속 모두,
컴퓨터 테이블의 위와 밑에 있는 것 모두를 다 쓸어 넣는다.
비우는 작업은 신난다. 순식간에 박스 안에 다 쓸어 넣고, 텅 빈 책상을 보며 후련한 마음에
커피한잔 마시고 나서 책상을 닦기 시작한다.

책상 위 유리판을 유리세정제를 뿌려가며 지문하나 없이 닦아낸다. 그리고 진공청소기에
뾰족한 끝 부분을 끼우고 서랍 속 구석구석 작은 먼지도 다 빨아낸다.
머리 속에 있는 온갖 작은 상념들까지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머리 속도 개운해 진다.

완벽히 비워 버리는 것.....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들을 들어냈을 때, 그 바닥과 주변에 남아있는 그 오래된 자국
까지 다 닦아버렸을 때의 그 시원함을 아시는가?

몰래 감춰두고 있는 것 또는 남이 알면 안 되는데 아직 치우지 않은 것이 있어서, 혹시
그게 들킬까봐 마음한구석 염려하던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이 다 정리되었을 때.......
내 마음이 유리알처럼 투명해지는 그런 기쁨을 아는가?
누가 내 눈을 들여다보아도 정돈되고 깔끔해진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가진
내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지 않는가?

책상 청소를 끝내고 하나하나 다시 채우기 시작한다.
비우는 작업보다 몇 배나 시간이 걸리고 인내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어떨 땐 하루종일 걸리기도 하는 작업이다.
완결서류들은 파기되거나 해당 파일로 자리를 찾아가고, 미결은 결재판 안으로 들어간다.
책상 위에는 전화기와 미결 서류들만이 처리할 순서에 따라 놓여지게 된다.

책상 속에 들어있는 사적인 것들은, 기록할 것은 다이어리에 기록을 남기고 버릴 것은
버리고 집으로 가져가야 할 것은 따로 가방에 챙겨 넣는다.
필기류와 몇 가지 사무도구들이 서랍 속에 제 위치를 잡고 얌전히 들어앉는다.
이때는 클립이나 핀들도 오와 열을 맞춰서 머리도 동일한 방향으로 두고 눕는다...ㅎㅎㅎ

깨끗하게 비워지고 다시 절반의 부피로 채워진 책상 앞에서, 나는 또 한잔의 커피를 마신다.
정돈된 상태의 여유로움.......
해야할 일들이 모두 확연히 드러나서 순서에 따라 내 앞에 얌전히 놓여져 있을 때....
그 일들은 내 밥이지 더 이상 내게 스트레스를 주진 못한다.

이 자리에서 내가 떠나기로 결정되었을 때.......나는 5분 안에 떠나고 싶다.......
떠날 때 내가 지니고 갈 것은, 호주머니에 넣는 분량정도여서 어느 누구도 내가 짐을 챙겨
떠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

후임에게는 한 권의 업무목록으로 내 일해온 내역과 남아있는 일들을 알려줄 수가 있어서,
악수와 동시에 내 자리를 내어줄 수 있음 좋겠다.

정리된 책상처럼.......날 붙잡고 있는 어떠한 금전적, 감정적 부채도 그때그때 정한 날에
정리해 두고 싶다.
그래서 떠나는 날에 정리 안된 옛 감정 때문에 머뭇거리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자리를 떠나 낯선 곳에서 커피를 마시게 될 때........
나는 또다시 떠날 준비를 하게 되겠지..........
나의 자리는 앉아서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뒤에 올 사람을 위해 깨끗이 닦고
비워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슬퍼하면 안 된다......슬픔은 미련 땜에 생기는 것...

여유작작하게 커피를 음미하면서 좌측으로 눈길을 돌리는 순간......윽!!.....이 혼란함....
무질서의 덩어리가 거기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컴퓨터!!!........................

그 정리되지 않은 하드웨어....여기저기 내부에 산만히 흩어져 있을 파일들의 쪼가리........
책상처럼 완전히 들어내어 비워버릴 수도 없고...포맷할 수도 없는 이 애물단지여!!!!

다시 또 컴퓨터에 들러붙어 앉아 파일 정리할 생각하니....아휴~~~~~~지겨라~~~~~
고상한 감상에 젖어 있었는데......생각지 못한 스트레스가 밀려오기 시작하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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