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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5일 12시 58분 등록

모처럼 둘째 딸과 데이트를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로 우리는 같이 놀 시간이 많이 없었습니다. 공부에 대한 압박이 그 아이의 여유를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원한 버스를 타고 로뎅 미술관에서 오노 요코를 만났습니다. 그녀의 지시문을 읽으며 상상 속의 작품을 함께 만들어 가기도 했고, 웃음을 채집하는 거울 상자 속에 우리의 웃음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전이 한참일 때, 뉴욕의 거리에 간판처럼 걸려있던 존 과 요꼬의 크리스마스 메시지도 읽었습니다.
The War
is
Over
if you want it

그리고 조금 걸어와 시립미술관 전시매장에서 예쁜 자동 연필을 두 자루 사고, 정동길을 거쳐 광화문 교보로 걸어 왔습니다. 교보 2층에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약간의 사치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의 데이트니까요.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 풀과 색연필을 샀습니다. 다리가 아플 만 하여 스타벅스에서 프라푸치노를 한 잔 씩 마셨습니다. 나는 스타벅스를 싫어하지만 내 딸아이는 좋아합니다. 내가 싫어하는 이유는 시끄러워서이고, 내 딸이 좋아하는 이유는 왁짜지껄 신나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싫어하고 같은 이유로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새로 산 색연필로 낙서를 하며 놀았습니다. ‘오늘 우리’를 그렸고, ‘어제 우리’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내일 우리’를 그렸습니다. 마지막 프라푸치노 방울이 빨 때 끝을 벗어나면서 ‘쪽’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저녁에 처와 딸아이는 미사를 보러 갔습니다. 나는 집에서 책을 보았습니다. 아주 좋은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내일 또 살 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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