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 조회 수 181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검사가 있어 대학로 서울대병원에 갔었습니다. 첫 진료시간에 맞추어 갔기 때문에 아직 이른 시간이었습니다. 주차장을 지나 또 다른 공사를 하고있는 어수선한 작업장 옆 녹지에 작은 등나무 쉼터가 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아직 이슬이 마르지도 않은 시멘트탁자 위에 도시락을 펼쳐 놓고 아침을 들고 있었습니다. 도시락이라기 보다는 밥통하나 반찬 통 두어 개가 전부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입원하셨거나, 한참 나이의 아들이 어디가 아프거나 혹은 이미 중년이 다 된 딸이 심하게 아픈 지도 모릅니다.
밥은 참 이상합니다. 혼자 먹는 것을 보면 왠지 고단하고 처량해 보입니다. 더욱이 그 할머니처럼 초점없이 한 곳을 응시하며 그저 숟가락질을 하는 것을 보면 삶이 달아난 허깨비처럼 보입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오래된 간병의 희망없는 반복에 지쳐 보이는 노인을 보며, 우리 삶의 한 순간이 혹은 너무 오랜 기간이 그런 헛숟가락질의 막막함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할머니가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가면 환자에게는 안심과 의지와 투정부릴 기댈 곳이 되니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그 존재가 쓰일 곳을 찾게되나 봅니다.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06 | 길.나무.산 | 풀 | 2003.10.13 | 1731 |
305 | 어떤 평행선 | 구본형 | 2003.10.10 | 1975 |
304 | -->[re]"시간의 잔고는 아무도 모른다." | 수선화 | 2003.10.09 | 2133 |
303 | 연금술사(3) : 골 때리는 사람이 되자 | 황재일 | 2003.10.08 | 2281 |
» | 쓰일 곳 | 구본형 | 2003.10.08 | 1818 |
301 | ---->[re]문정님께 | 풀 | 2003.10.07 | 1858 |
300 | 기억들 나시지요? | 풀 | 2003.10.06 | 1843 |
299 | -->[re]가을 어느날의 혁명 | 문정 | 2003.10.06 | 1744 |
298 | -->[re]상견례 | 수선화 | 2003.10.03 | 1831 |
297 | -->[re]그림을 보며 | 빨간뺨 | 2003.10.01 | 1711 |
296 | 가끔 혼자 있는 것에 대하여 | 구본형 | 2003.10.01 | 2068 |
295 | 그림( 글.그림 옮겨 발췌) | 풀 | 2003.10.01 | 2000 |
294 | 진취적인 여성.. | 김석원 | 2003.09.25 | 2060 |
293 | 박수소리 | 유관웅 | 2003.09.24 | 1933 |
292 | 蘭이의 향기로운 이야기- 일에 대하여 | 김애란 | 2003.09.23 | 1890 |
291 | 연금술사(2) : 골드칼라의 조건 | 황재일 | 2003.09.23 | 1919 |
290 | 할 수 있는 것 조금씩 | 구본형 | 2003.09.15 | 2282 |
289 | 시골 수탉 | 이운섭 | 2003.09.14 | 1707 |
288 | 한가위날 새벽에 | 김애란 | 2003.09.11 | 2171 |
287 | 연금술사 (1) :연금술사와 골드칼라 | 황재일 | 2003.09.10 | 21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