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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17일 09시 22분 등록

장마가 지난 후 손대지 않아 잡초가 무성해진 밭에 나갔습니다. 고추밭에는 붉어지기 시작하는 고추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대추나무 두 그루를 가지치기 해주고, 늦대추를 반 양재기 땄습니다. 형님의 기일이라 상위에 올리면 푸른 가을 햇빛이 방안에 가득할 것입니다.

저녁에 제사를 지내고 같이 밥을 먹다가 이미 아이 엄마가 된 큰조카 딸애의 민감한 자식애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지금 네 살인 아이가 꺽정하니 키만 크고 산만하고 말귀를 못 알아듣고 어쩌고 하며 걱정을 늘어놓았습니다. 그 아이는 걷는 것도 늦고 말도 늦은 아이였습니다. 애 엄마는 늘 그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구요.

아마 우연이겠지요. 이날 낮에 가을 햇빛 속에서 그 찬란함을 즐기던 것들은 늦자라는 대추와 고추였습니다. 대추는 봄이 절정에 이를 때까지도 가만히 있어 죽은 나무로 종종 오해받기도 합니다. 고추는 봄에 다른 푸성귀들과 함께 심으면, 상추 쑥갓들은 쑥쑥 자라 한참 먹고 억새지기 시작할 때쯤 돼야 작은 흰꽃을 피우며 귀여운 고추들을 달아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가을까지 의젓하게 남아 있는 것들은 늦게 시작한 이 놈들입니다.

일찍부터 야무지고 영리하고 반짝이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을 모를 리가 있나요. 그러나 부모됨은 늘 조금 떨어진 곳에서 믿음을 가지고 오래 기다려 주어야 하는 가슴 아픈 역할이기도 합니다.

"걱정마라 얘야, 다 잘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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