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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3일 10시 13분 등록


보이지 않는
우물이 깊은지 얕은지는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면 압니다.



돌이 물에 닿는데
걸리는 시간과
그 때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
우물의
깊이와 양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깊이는
다른 사람이
던지는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깊으면
그 말이
들어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옮김)






1967년








1968년








1968년









16x19x26cm









35x22x46cm









비구니/49.5x37x24cm










남자 /23x30x49cm/1967년









소녀 /31x20x35cm/1968년











여인 /34x18x28cm/1968년









남자 /36x25x41cm/1967년









여인 /50x19x39cm/











나부/18x30x50cm/1967년










20x35x44cm/1960년










모자상/29x13x16cm










마두/36x59x22cm










화가와 모델/100x70cm/1965년








악사/94x68cm/1964년









봄/76x56cm/1965년










전설/테라코타.채색.68x90cm/1966년










수녀/종이에 잉크,크레용







權鎭圭(1922-1973)








권진규가 한국 조각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65년 9월 신문회관 화랑에서의 테라 코타의
조각전이였다.

테라코타는 물질에 직접 파거나 쪼는 작업을 가하는 조각은 아니며 연토를
초벌구이하는 형식인데,

이것은 우리의 짧은 조각 근대사에서는 처음 발표되는 것이었다.

당시의 권진규는 홀연히 나타난 조각가라는 인상이었다.
그의 형식적인 테라코타라는
고풍스런 유형도 그러했지만,

결코 사교적이랄 수 없고
오히려 은자에 가까운 그의 성품이
그에 관한 일반적인 관심을 통념하게 했었다.

테라코타는 지난 날의 독쟁이가 오지를
구워 내는 단순 노동에 해당되는 기술상의 담백성이 지적되겠지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고독만으로 조각의 일을 끝내는 일종의 결백성을 보여 주고 있었다.

권진규는 1922년 함흥에서 태어나서, 1942년 강원도 춘천 중학교 졸업. 1947년 25세 때
도일하여 1948년 일본 무사시노 미술학교에서 조각 수업을 받았으며

1958년
28세 되던 해에 "이과전"에서 최고상을 수상.
학교 후배인 일본 여성 "도모꼬"와 결혼함.

1973년 5월, 10평 남짓한 성북구 동선동 작업실에서
“인생은 공, 파멸”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그의 작업실


짧고 불운한 생애에 비해 뛰어난 조형 세계의
권진규는 한국 근대 조각사에 기여한 하나의 분명한 실체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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