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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30일 06시 56분 등록
한계령에서 함께 한 일상의 황홀

지난 목요일 자정이 지나서 일상의 황홀을 읽으며 마친 설악산 여행기를 올리다가 그만 내용이 날아가 버렸어요.

11월 8일 퇴근무렵에 서점으로 달려가 그 책을 찾았습니다. 보통은 인터넷을 이용해서 더 싸게 살 수 없을까 고민고민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책 하나가 출간된 것이 제게 이런 설레임을 선사해 줄 쭐이야.

서점직원이 한 참을 찾아 신간을 꺼내옵니다. 내 책 속지에는 이러한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이 책은 서점한구석에 진열해 놓을 책이 아니다.’ 짐짓 일에 대한 생기나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점원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지나갑니다. 아마 나를 미쳤다고 생각할까요? 생면부지의 사람이 주는 선물에 당황해 하는 마음이겠지요. 하지만 나는 가끔 그러한 충동을 느낍니다. 아무런 관계의 필요가 없는 이들에게로.

글의 형식은 양념이 잘 밴 산나물 같습니다. 일기와 편지의 경계를 허문 자리아래 생기가득한 찰라들이 그윽한 맛과 향을 나누어 줍니다. 이렇게 생생한 작가와의 교감이 즐겁습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독자들을 향한 그의 물음표에 대해 생각하다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음표는 곧 나와의 대화로 연결됐습니다.

수요일 밤 한 친구와 그의 오빠가 살고 있는 안산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여행의 설렘을 안고 느긋하게 읽었습니다. 친구는 두 주전에 설악산 권금성에 다녀오고도 대청봉에 못가 봤다고 이번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오누이가 함께 갤로퍼를 타고 새벽을 달려 한계령에 도착하니 4시반쯤. 한계령 매표소에는 훈련된 하얀 돌구가 혼자 등산로로 새벽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그토록 짙은 안개 속 깜깜한 새벽 숲길을 달리는 것, 한계령까지는 차로 여러 번 지나갔지만 한계령에서 대청봉 오색약수터로 이어지는 양양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도 처음이다.

안개 때문에 일상의 황홀 한부분에서 안개를 걸친 해에 대한 이야기가 내 찬 이마를 지나간다.

나도 껌껌한 밤의 장막이 한 부분을 오려낸 것이 달이고 너무 오래되어 헤어진 작은 구멍들이 별이라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싶은 날처럼 안개로 뚜렷해진 해를 보며 새로 주조된 주홍빛 동전이나 잘익어 빛이 투명한 감처럼 보여 향해 몇 번이나 시선을 돌리곤 했던 것이다.

나의 지나간 시간들이 안개에 싸여 있었다. 막연함과 모호함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갑갑함. 안개란 것은 내게 그런 것이었다. 그것은 두터운 것이었고 빛이 들어올 자리를 주지 않는 짙음이었다.

험한 산새가 주는 긴장감과 조심스러움과 짙은 안개로 하루종일 새벽인 것 같은 신비스러움이 이미 초겨울로 돌입한 나무들과 등산로에만 집중케 한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맞은편 산이나 계곡이 보이지 않으므로) 화려한 일상을 전달해주었던 나뭇잎들이 달려 있던 곳에는 송이 이슬들이

오후가 되어서도 맺혀있다. 오누이 중 하나는 송이 이슬을 받아먹는가 하면, 산에선 암벽과 바위가 가장 멋지다고 한다.

지난 여름 태백산에서 자작나무숲속의 환상이 시작되는 듯한 나무가 한계령 초입부터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낙엽을 덮고 있는 발 아래에서 시선을 위로 위로 올리다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그것은 무정형의 끊임없이 새로 발견되는 공간이다. 붙박힌 뿌리들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중심을 잡고 축을 세우고

나면 나무들은 어떤 공간을 어떻게 나누어 써야 할지 어느쪽으로 가지를 뻗어야 빛과 만나기 쉬운지 끝없이 모색하고 있었다. 목질이 시작되는 부분의 경사 같은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계곡을 휘감아 치는 바람에 쉬 부러질 경사에서도 그들의 모색에는 아무런 주저함도, 거침도 없어보인다.

제법 큰 가지사이로 잎을 낸 여린 가지들도 방향이란 방향을 모두 찾아내 뻗어있을 뿐 아니라 그 간격이 실로 예술이다. 경쾌하게 가지를 흔들고 날아가는 박새 소리마저도 이곳에서는 피콜로 연주처럼 들린다. 사근사근한 그 실가지들의 이야기들이 들릴것도 같다. 구름안개가 투명한 날이면 공중으로 날아가버릴 작은 소리마저 붙잡아 들려준다.

왠지 나는 그들에게 어떤 동질감을 느끼며 송이 미소를 이슬아래 달아둔다. 논리를 뛰어넘는 논리가 통하는 그곳.

그곳에 자유의 질서가 춤추고 있었다.

도시 가로수의 일렬종대나 궁궐이나 정원, 파헤쳐서 훼손을 막아보려는 사람들의 손이 간 뒷산의 법도는 그곳에서는 잊어야 한다.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다.

시스레나무라 명찰을 달고 있는 이 나무도 자작나무과라 한다. 은빛 수피가 안개 속에 신비로 발한다. 물푸레나무는 수피가 꼭 곰팡이 핀 빵같다. 곰팡이와 솔이끼 가득한 나무 위를 보니 주목나무열매보다도 훨씬 작은 열매들이 빨갛다.

그러고 보니 발 밑 여기저기 그 앙증맞은 빨강 열매들이 송이째로 흩어져있다. 맛을 보니 첫맛은 달큰한데 뒷맛은 떫고 쓰다.

친구는 안개에 절여진 소나무가 얼마나 싱싱한지 솔잎을 몇 개 씹어본다. 나도 따라해 본다. 와.. 음 이렇게 향기로울수가, 무엇보다 선인장가시같이 까칠하던 솔바늘들도 이렇게 폭신하고 부드러울 수 있다는 걸 음미하게 되었다.

같은 소나무나 주목나무라해도 그 수피는 다 다르다. 단풍나무의 단풍잎의 색깔은 노랑도 있고 어두는 초록에 보라도 있다 같은 빨강이라도 다 다르다.

대청봉에 다다르기전에 중청대피소에서 친구에게 공중전화를 했다. 늦은 점심을 먹는 모양이었다. 작년 겨울즘 스위스의 유명한 산에서 나에게 엽서를 띄운 그 친구의 마음을 생각한다.

오누이와 각자 컵라면 한 그릇을 뚝딱. 걷는 내내 계속 먹어대는 나… 비상식량 아껴야 한다하는데도 줄곧 무언가를 씹고 있다.

계곡이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아 대청봉에 도착한 후 조금 아쉬었는데 내려오는 길 – 아, 그렇게 많은 계단은 처음이다. 끝없을 것같던 층층의 계단들을 내려서니 설악폭포를 만난다. 어찌나 반갑던지 양말도 벗고 시린 계곡에 발을 담그고 이리저리 흔든다.

이제 부슬비가 시작되더니 조금 피로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7시 반쯤 시작해서 3시가 넘도록 계속 넘고 넘었으니.

(대청봉에서 오색약수터로 내려오는 길은 내려가는 듯 하다가 올라가고 산자락을 돌게 되어있다) 내려가는 길에 약한 발목이 많이 부었다. 옷도 부슬비가 굵어져 제법 젖었다. 오색약수터에서 한계령으로 가는 버스를 타자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기암괴석들도 보이고 봉우리와 봉우리사이의 구름 호수도 보인다. 구불구불한 길을 즐기며 한계령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집으로 출발이다. 안산에서 우리는 지하철로 갈아탄다. 나는 일상의 황홀로 연결될 묵직한 발목의 피로를 느끼며 책을 꺼내본다. 비 그친 서울은 싸늘하게 식어있는 방구들같다. 여행에 초대해준 친구에게 옅은 핑크빛장미한송이에다 그녀가 좋아하는 국화한다발을 고른다. 향기 만큼 짙은 분홍색의 작은 송이들이 동화처럼 피어나 있는 것으로 골랐다. 잰 걸음의 그녀를 쫓아가느라 포장은 달랑 비닐하나이다. 나의 재촉에 다른 포장을 하다만 꽃집 아줌마에게 사탕 하나와 함께 계산을 치르고 서둘러 쫓아 간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지쳐있던 그녀는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다 한다. 뜨거운 오뎅은 자기가 사겠단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무럭무럭 오뎅국의 김을 바라본다. 저기 녹색 1111번이 돌아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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