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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31일 09시 33분 등록

오후 1시 햇빛 쏟아지는 광화문 거리 교보 앞에서 한 젊은이를 픽업하였습니다. 그는 매번 10분쯤 늦습니다. 다른 일을 하는 양을 지켜보면 게으른 사람은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약속 시간에는 늘 늦습니다.

무한한 시간의 흐름 중간 어디를 끊어, 바로 그 때, 시간 맞춰 그 자리에 나오는 것이 생소한 모양입니다. 그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은 뭉텅뭉텅 썰거나 대충 한 움큼씩 집어넣는 손맛 요리법 같은 지도 모릅니다. 딱 맞춰 나타나는 것보다는 대략 그 시간대에 나타나면 된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삼청동에서 노란 기장을 섞어 넣은 보리밥을 비벼 먹고 북악 스카이웨이를 타고 봄볕이 초여름처럼 따갑게 차창 안으로 밀려드는 길을 구비구비 흘러내리다 구기터널을 지나 구파발쪽으로 향했습니다.

꽃가게에서 이태리 봉숭아 꽃을 샀습니다. 프라스틱 작은 화분 두 개를 헐어 하얀 도자기 화분에 옮겨 담아 청년에게 주고 잘 키워 보라 했습니다. 나머지 15개의 화분은 커다란 종이박스에 담아 차에 실었습니다.

우리는 서울을 벗어나 고양에 있는 중남미문화원으로 갔습니다. 햇빛과 해바라기와 태양으로 가득한 중남미 유물들을 마치 직접 그 나라를 방문한 여행자들처럼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수백개의 가면으로 가득한 방에서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빠스 Octavio Paz의 글귀를 읽었습니다.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이름과 가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결국 가면이 바로 우리의 본질이었음을 알게 된다.”

건물 안 창문 밖으로 해가 물러가고 서서히 어두워지자 우리는 밖으로 나와 아직 햇빛이 잔설처럼 남은 반짝이는 늦은 오후의 길을 되짚어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구기동에서 올해 아마 마지막이 될 겨울 과메기에 마늘 줄기와 썰는 고추를 곁들여 소주 한 잔 씩 하고 헤어졌습니다. 또 하나의 좋은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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