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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0일 12시 33분 등록


탄자니아의 한 초등학교에 갔을 때
함께 간 TV 방송국 사람이
도화지와 크레용을 아이들에게 건네주면서 이렇게 부탁했어요.
" 얘들아, 아무거나 좋으니까 동물 그림을 그려보렴. "
아이들은 처음으로 만져보는
흰 도화지가 신기한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어요.
한 시간쯤 지났을까, 선생님께서
" 다 그린 사람, 손들어보세요. "
하며 아이들을 자상한 눈길로 바라보셨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은 저마다 손에 도화지를 높이 들고
자기들이 그린 그림을 앞다퉈 보여주었어요.
하지만 저는 아이들의 그림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어요.
동물을 그린 아이는 단 두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예요.
한 남자애는 도화지 한쪽 끝에 파리를 그렸답니다.
또 한 남자애는 아주 가느다란 두 다리를 지닌 새를 그렸어요.
동물 그림이라고는 그것뿐이었어요.
도대체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지요.
다른 아이들은 물동이나 밥그릇을 그렸더군요.

저는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프리카 아이들이라면 멋진 코끼리나 기린이나 얼룩말을 그릴 거야.
여러분도 아마 그렇게 상상하시겠지요.
하지만 아프리카에 동물을 볼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아요.
몇몇 보호 구역에서만 동물을 볼 수 있어요.
그런 곳 주위에서 살고 있는 아이라면
동물을 보거나 동물에 대해 좀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데도
아프리카 동물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구요?
동물원도 없고 텔레비젼도 없고 그림책도 없기 때문이지요.

저도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아프리카의 야생동물을 모른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요.
일본은 아프리카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코끼리를 그릴 줄 알아요.
얼룩말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평생
아프리카의 동물을 알지 못한 채 살다가 죽어가고 있어요.

아프리카에 가서 어린이들을 만나기 전에는
아프리카는 제게 아름다운 야생의 나라였어요.
아프리카를 마음속에 떠올릴 때마다
저무는 저녁노을 속을 거니는 기린의 모습이
마치 사진처럼 선명하게 눈앞에 나타나곤 했어요.

물론 저도 아직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을 본 적은 없답니다.
제가 방문한 곳은 낭만적인 초원이 아니라
아이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었으니까요.
마실 물도 없고 풀도 자라지 않고 전쟁만이 일어나는 곳이지요.
그러니 어떻게 동물이 살아갈 수 있겠어요.
인간조차도 살아갈 수 없는 곳인데요.

일본도 옛날 전쟁을 하던 중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동물원의 동물들을 모두 죽여야 했어요.
우리 안에 갇힌 코끼리는 재주를 부리면
먹이를 줄까 해서 열심히 재주를 부렸지만
먹이도 얻지 못하고 애처롭게 굶어죽었어요.

우리 생활이 넉넉하고 평화롭지 않다면
우리는 결코 한가롭게 코끼리를 볼 수 없답니다.
우리의 어린이들이 제발 이런 사실을 알아준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 구로야나기 테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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