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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3일 18시 02분 등록



추석에 모두 며칠 푹 게으른 잠 때문에 눈이 조금 붓고
그날은 모처럼 다 모여 먹고 또 먹고
영화보고 화투치고 책도 보고 뒹굴거리길

혹시 아직 객지에 있어
고향에 가지 못한 쓸쓸함이 몰려들면
달보며 가벼운 술 한잔 하길

어찌 되었든
추석엔 모두 웃음의 곁을 떠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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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2004.10.05 21:52:42 *.229.146.63
이번 추석을 나는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커다란 달을 마음껏 즐기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지요. 추석 전날 나는 119 구급차에 실려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니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답니다. 사건이 생긴 그날 점심때쯤, 우리 집 부엌 개수대 물이 나오지 않았지요. 수도꼭지 역할을 하는 분수기가 고장이 났더군요. 명절이라 이미 철시를 한 을지로 상가를 뒤져 분수기를 사다 갈아 끼웠습니다. 싱크대 밑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몸을 디밀고 1 시간 가량 서툰 작업을 하고 나니 물이 멋지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식구들이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애쓴 보람이 있었지요. 문제는 몇 시간 뒤에 생겼습니다. 오후의 햇빛이 눈부시기에 산에 가려고 나섰습니다. 함께 가려고 모처럼 개의 목에 줄을 묶다가 그 엉거주춤한 자세로 꼼짝을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어서지도 앉을 수도 없이 허리에 격렬한 통증을 느꼈지요. 응급차에 실려온 그날 나는 병원에 누워 몸을 뒤척이기조차 어려웠답니다. 안쓰던 근육이 놀라 뭉쳐서 생긴 비극이었지요. 이틀째 통증은 조금 가라앉았고, 누운 자리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겨우 일어설 수 있게 되었구요. 잠시 일어 서 있다 다시 침대 위에 나를 눕힐 때, 나는 심한 곤혹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침대까지 1미터도 안되는 수직거리가 엄청난 공포로 다가 왔습니다. 마치 높은 건물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뛰어내려야하는 사람의 절망감 같은 것이 순간 나를 스쳐갔습니다. 조금만 각도가 어긋나도 내 허리는 비명을 질러댈 것입니다. 그래서 정교한 굴절각만을 허용하는 ‘침대에 날 눕히기’ 작전이 시작되었지요. 무릎을 서서히 굽히고 오른 손을 천천히 뻗어 침대 위을 짚었습니다. 일단 성공입니다. 가슴과 배를 침대 위에 걸치고, 아주 천천히 왼쪽 다리를 들어 침대 위로 올리고 이윽고 오른 쪽 다리 마저 침대 위로 올리는데 성공했습니다. 엎드린 자세에서 팔을 가슴 밑으로 밀어 넣은 다음 힘을 주어 조금씩 몸을 밀어 올려 겨우 침대 위에서 제자리를 잡았습니다. 온 몸에 땀이 비오듯했고 온 정신은 바로 이 단순한 움직임에 몰두하고 있었지요. 그때 스스로 꿈틀거리는 배추벌레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 필사의 노력이 얼마나 무력하고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느껴졌는지요. 침대에 누워 아내가 마음대로 앉고 걷고 비스듬히 눕는 것을 보며 부러웠습니다. 그때 나는 그 일상의 움직임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니까요. 며칠 후 나는 걸어서 퇴원했고, 허리는 아직 묵직하지만 나도 아내처럼 다시 앉고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때, 필사의 노력이 벌레의 꿈틀거림 같을 때도 있습니다. 노력이 만들어 놓은 감지하기 어려운 시시한 성과에 마음을 상할 때도 있답니다. 특히 어려운 때, 그 희망없는 하루하루가 견디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회복되기 전에는 몸이 스스로를 추수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작은 무수한 벌레적 굼틀거림을 되풀이 해야합니다. 나는 그 굼틀거림이 회복의 필수적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은 움직임이 이윽고 큰 움직임이 됩니다. 그 작은 물결같은 무수한 움직임들을 우리는 노력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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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2004.10.06 16:45:24 *.208.11.161
그만하기가 다행이십니다. 그저 당연한 듯 그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한,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사건으로 생각하셔야 겠군요. 선생님의 파란메일이 있어 제 일상의 표정이 생동합니다. 생의 감사와 충만으로, 때로는 망망한 바다 위의 하나의 섬처럼 한없는 외로움 속에 칩거하면서 그렇게 파란메일로인해 사물화를 막아갑니다. 일상의 서정성을 찾아내는 선생님의 감성에 감탄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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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기원
2004.10.06 23:41:38 *.61.127.41
미소가 참 보기 편안하고 좋아서 너무나 부럽습니다. ^^* "고진감래"-아무리 말이 아름답고 좋은들 어떤 소용이있겠습니까? 그것이 나에게 우리에게 어떤의미를 가질수있게하고 또한 어떠한 습-행위를 할수있게 할수있는지가 참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성경이 좋은들 내가 어떤의미로 다가가서 배우고 행하지않는다면 의미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학이시습지행이 잘 이루어져야 하는데.. 소장님처럼 언제쯤 쉽게 이루어 질 수있을지? 많이 배우고 갑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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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
2004.10.07 09:12:09 *.229.121.154
소장님의 건강 회복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허리 다침이 우리 주위에 흔히들 볼수있엇는데 소장님에게도 예외는 아니군요.^^* 작은 꿈틀거림이 큰움직임으로... 또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가을 하늘만큼 맑고 투명한 생활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영덕군 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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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두요
2004.10.07 19:10:34 *.160.71.173
사십여일전 목디스크 판정을 받고 몸조심을 하고 있습니다. 책도 보지 마라. 그림도 쉬어라.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사처방과 갑자기 내몸이 내말을 안들으니 참 처연했니다. 그러나 다행히 심하지 않아 몸을 달래고 쉬며 걷기부터 하고 있습니다.구선생님도 쾌차하시길 빕니다. 앞으로는 매사에 무리하시면 아니될듯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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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2004.10.08 19:14:01 *.187.141.87
늘 잔잔하고.........또 뭉클한 메일을 보내주시다가 명절 병원 메일을 받고 놀랬지요? 퇴원하시고 회복되어 가신다 하니 그만하시기 다행입니다. 책으로 글로 생활속에 잔잔히 감동으로 오래 뵐 수 있기를...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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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phany
2004.10.10 12:02:44 *.58.17.55
지금은 말끔히 쾌차하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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