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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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모두 며칠 푹 게으른 잠 때문에 눈이 조금 붓고
그날은 모처럼 다 모여 먹고 또 먹고
영화보고 화투치고 책도 보고 뒹굴거리길
혹시 아직 객지에 있어
고향에 가지 못한 쓸쓸함이 몰려들면
달보며 가벼운 술 한잔 하길
어찌 되었든
추석엔 모두 웃음의 곁을 떠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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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이번 추석을 나는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커다란 달을 마음껏 즐기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지요. 추석 전날 나는 119 구급차에 실려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니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답니다.
사건이 생긴 그날 점심때쯤, 우리 집 부엌 개수대 물이 나오지 않았지요. 수도꼭지 역할을 하는 분수기가 고장이 났더군요. 명절이라 이미 철시를 한 을지로 상가를 뒤져 분수기를 사다 갈아 끼웠습니다. 싱크대 밑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몸을 디밀고 1 시간 가량 서툰 작업을 하고 나니 물이 멋지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식구들이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애쓴 보람이 있었지요.
문제는 몇 시간 뒤에 생겼습니다. 오후의 햇빛이 눈부시기에 산에 가려고 나섰습니다. 함께 가려고 모처럼 개의 목에 줄을 묶다가 그 엉거주춤한 자세로 꼼짝을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어서지도 앉을 수도 없이 허리에 격렬한 통증을 느꼈지요. 응급차에 실려온 그날 나는 병원에 누워 몸을 뒤척이기조차 어려웠답니다. 안쓰던 근육이 놀라 뭉쳐서 생긴 비극이었지요.
이틀째 통증은 조금 가라앉았고, 누운 자리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겨우 일어설 수 있게 되었구요.
잠시 일어 서 있다 다시 침대 위에 나를 눕힐 때, 나는 심한 곤혹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침대까지 1미터도 안되는 수직거리가 엄청난 공포로 다가 왔습니다. 마치 높은 건물의 꼭대기에서 아래로 뛰어내려야하는 사람의 절망감 같은 것이 순간 나를 스쳐갔습니다.
조금만 각도가 어긋나도 내 허리는 비명을 질러댈 것입니다. 그래서 정교한 굴절각만을 허용하는 ‘침대에 날 눕히기’ 작전이 시작되었지요. 무릎을 서서히 굽히고 오른 손을 천천히 뻗어 침대 위을 짚었습니다. 일단 성공입니다.
가슴과 배를 침대 위에 걸치고, 아주 천천히 왼쪽 다리를 들어 침대 위로 올리고 이윽고 오른 쪽 다리 마저 침대 위로 올리는데 성공했습니다. 엎드린 자세에서 팔을 가슴 밑으로 밀어 넣은 다음 힘을 주어 조금씩 몸을 밀어 올려 겨우 침대 위에서 제자리를 잡았습니다. 온 몸에 땀이 비오듯했고 온 정신은 바로 이 단순한 움직임에 몰두하고 있었지요. 그때 스스로 꿈틀거리는 배추벌레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 필사의 노력이 얼마나 무력하고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느껴졌는지요. 침대에 누워 아내가 마음대로 앉고 걷고 비스듬히 눕는 것을 보며 부러웠습니다. 그때 나는 그 일상의 움직임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니까요. 며칠 후 나는 걸어서 퇴원했고, 허리는 아직 묵직하지만 나도 아내처럼 다시 앉고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때, 필사의 노력이 벌레의 꿈틀거림 같을 때도 있습니다. 노력이 만들어 놓은 감지하기 어려운 시시한 성과에 마음을 상할 때도 있답니다. 특히 어려운 때, 그 희망없는 하루하루가 견디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회복되기 전에는 몸이 스스로를 추수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작은 무수한 벌레적 굼틀거림을 되풀이 해야합니다. 나는 그 굼틀거림이 회복의 필수적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은 움직임이 이윽고 큰 움직임이 됩니다. 그 작은 물결같은 무수한 움직임들을 우리는 노력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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