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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2일 01시 46분 등록


가을...그 아름다움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볼 때,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볼 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간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의 대중가요에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가사 하나에도 곧잘 귀를 모은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멀리 떠나 있는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깊은 밤 등하에서 주소록을 펼쳐 들


친구들의 눈매를,그 음성을 기억해낸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



한낮에는 아무리 의젓하고 뻣뻣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해가 기운 다음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 하나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 하나에도 마음을 여는


연약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알아차린다.



이 시대 이 공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연줄로 맺어져


서로가 믿고 기대면서 살아가는 인간임을 알게 된다.


.
.
.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


잡힐 듯 하면서도 막막한 물음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은,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생자필멸, 회자정리, 그런 것인 줄은 뻔히 알면서도


노상 아쉽고 서운하게 들리는 말이다.


내 차례는 언제 어디서일까 하고 생각하면


순간순간을 아무렇게나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두고 싶다.



이 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 때,


오 아무개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 익혀두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주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될 것 같다.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



- 법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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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2004.10.13 13:45:09 *.208.7.129
무량한 햇빛, 청명한 하늘, 아파트 뒷 산에 올라 흰머리를 풀어 일렁이는 억새의 모습에서 스산한 바람을 보았습니다. 그 적막한 숲속에 있는 무덤들을 보며 죽음을 삶의 연장선에 두어 단지 옷을 갈아 입는 것일 뿐이라는 말이 떠 올랐습니다. 그것과 대면해서 초연하고 의젓한 품위를 갖기 위해서는 결국 생활을, 사람을, 그리고 인생을 웃는 겸허한 사랑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 길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빛과 색 의 아름다움이 극에 이르는 가을의 "소멸식"을 곧 접하겠군요. 모두들 단 한 사람라도 서운하게 하지 않는 가을을 보낼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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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브레인
2004.10.13 19:19:46 *.104.208.250
수선화님 가을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멋진 덧글 감사합니다. 바쁜 일상 중에도 이유모를 허전함을 가을 탓으로 돌려보며 .. 생활에 최선의 노력을 해야겠지요.이 계절을 맘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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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2004.10.14 10:17:16 *.253.185.82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조금은 비워짐을 느끼게 됩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사랑하며 살고 싶어집니다. 좋은 글 기쁩니다. 아름다운 가을에 모두가 아름답게 살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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