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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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달이 환하게 뜬 밤이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달이 좋아진다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달라지는 것은 하루를 특별하게 보내기 때문일 것이고, 한 달을 주기로 되풀이하는 것은 변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일상의 질서를 잊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달이야말로 '일상의 황홀'을 즐기는 대표적 거시기인 셈입니다. 그래서 좋아진 모양입니다.
이 날 저녁은 그곳에 있는 아주 많은 분들과 보낸 축제 같은 것이었습니다. 3 시간 동안 나는 그 곳에 있는 그 많은 분들을 위해 존재하는 듯 했습니다. 나는 없고 ‘우리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엑스터시였지요. 그 세 시간은 11월 25일을 아주 특별한 날로 기억하게 해 주었습니다. 본업을 통해 기여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이 날 우리가 사용한 단어들의 배합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주변에서 중심으로 - 그물코
미래의 회고
오늘이라는 유일한 현재
조금만 노력하면 우리 모두 조금 더 자유로워 질 수 있다.
내가 장악하는 시간의 양 - 자유의 의미
자유는 그 내용을 스스로 채워 넣어야 한다
추신 :
강연이 끝나고 손을 나누다 한 분이 내게 물었습니다. 평소 좌우명 같은 것이 있냐는 것이었지요. 몇 가지 단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와 답을 미뤘습니다. 이들을 통합할 핵심 단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찾아낸 단어는 ‘사무사’(思無邪)입니다. 생각에 거짓됨이 없다 - ‘생각의 정직’ 이지요. 나는 생각의 힘을 믿어요. 공자가 시경 삼백 편의 핵심이라고 말한 그 한 단어지요.
박세당이 ‘사변록’에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아 놓았습니다. “시 3백편에는 비록 선함과 악함이 뒤섞여 있지만 모두 자연스러운 감정에서 나온 것으로 꾸미거나 거짓된 말이 없기에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
사마천의 ‘사기열전’의 등장 인물들 역시 인간을 미화하지도 과장하지도 왜곡하지도 않아요. 그 인간의 드라마를 그래서 좋아한다 말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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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옥
며칠전 '일상의 황홀'을 읽다가'사무사'란 글귀가 인용된 것을 보며 많은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오늘 '사무사'란 제목의 편지를 받아 읽으며 또 한번 감회가 새로워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제가 이 말을 처음 대한 것은 대학시절, 동양학을 공부하시던 저희과 교수님께서 저희를 위해 사서를 강독해 주셨는데... 그 때 논어에서 이 말을 처음 들으며 가슴 설레이며, 삶의 좌우명으로 삼아 받아들였었는데.... 오랫동안 무심히 지나치며 잊고 살다가 떠올렸답니다. 부끄러운 순간이기도 했고, 다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답니다. 글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통찰해 보게 해 주심 감사 드리고, 오늘도 열심히 소장님의 책을 읽어 보게 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찍새유닉
방금전에 메일을 받아보고 들렸습니다.
그날의 느낌은...
침묵, 하지만 정돈되지 않은 --> 공감, 인정하는 --> 메니아(9시가 넘어서자 빈자리가 많이 보였지요. 덕분에 앞에 앉아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구요^^;; -->축제, 60년동안 일기를 써오신 권기범님의 말씀을 시작해서 소장님의 마무리, 그리고 사인과 악수, 사진찍기, 감동전하기 등등 그 시끌벅적함이 정말 축제 같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소장님의
'축제'라는 단어가 참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메일을 보고 '그물코'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립니다.
무슨 뜻이었더라???........ 이내 생각이 납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 그래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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