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d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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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에 잠들다 새벽이면 간간히 깨곤 한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잠들어서 인지
11시 30분쯤 일어나 아가서를 읽고,
[엄마학교]라는 책을 봤다.
내가 생각한 그 집주인이 쓴 것이 맞았다.
퇴근길 담담한 헝겊간판이 눈에 띄었다.
아무 무늬도 없는 누르스름한 무명천에 밥처럼 평범한
글씨체로 [엄마학교]라고 씌여 있어서
더욱 궁금해졌다.
어느날 퇴근길 나는 그 집으로 갔다.
문은 잠겨있었고 안은 신발 하나만 보였다.
계단을 내려와 다시 계동길을 걷다가
재동초등학교 후문으로 연결되는 샛길로 걸어간다
가회동으로 이어지는 이 골목길에서 초등학교 아이들과
선생님들 엄마들... 아침마다 만나 인사하게 되는 수영할 때
얼굴을 안 할머니네 집앞을 지난다.
한 80페이지 읽었을까.. 다시 졸려서
점심방 불마저 다 끈다.
(왜 점심방이냐면.. 새로 이사한 집에는
큰 방 작은방, 그리고 그것보다 작은 깍두기방이 있다.
그런데, 이 방들에 햇살이 들어차는 시간이 다 다르다.
작은 방에는 새벽부터 열두시정도까지 들어차다가 사라져
열두시가 지나가면 큰 방으로 그 빛들이 다시 모인다
그리고 서너시 이후가 되면 그 부엌옆 깍두기방.. 일종의
찬방같은 그런 창고같은 방에 해가 다지도록 빛이 환하다.
그래서 더 좋은 생각이 날 때까지 이 방들을
아침방, 점심방, 저녁방이라고 하기로 했다.
요새 아침방에는 캐논이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 보았다.)
얘기가 끊어져서 좀 그렇지만,
점심방 불을 끄면서 나는 이제 재동씨도 없는데
온통 껌껌하겠네 생각하면 준비를 한다.
껌껌해지는 게 두려워서.
근데, 이어 내 눈이 만난 것은 감빛 가로등..
바깥에서 보면 오렌지빛나는 그 가로등이 침대옆
창가로 비쳐든다. 달빛도 아닌 것이 반갑기가 그지없다.
- 아마 어제 이상한 사람이 초인종을 누르고 문열어달라고 해서
더 한 모양이다.
먼저 은행나무집에 살때는 이보다 훨씬 어두웠다.
화장실도 불을 끄고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새로 이사온 집은 웬지 딱 우리 둘만 사는 느낌이다.
은행나무집은 주인댁과 함께여서 며칠씩 재동씨가 집에
없어도 두렵지 않았다.
새벽에 깨면 새벽빛에 보이던 감나무 잎사귀들이
이 주홍빛 위로 살랑살랑 흔들리며 그림자를 건넨다.
바로 창문앞에 서 있는 것처럼.
사실 그 감나무는 뒷집 감나무인데.
말을 건네듯이. 아니면 손으로 무엇을 쓰다듬는 것같은
움직임이다. 가만히 흔들린다. 수 많은 감잎사귀들이.
언젠가 인도나 태국관련 사진이나 그림등에서 사람의 손이
열개씩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징그럽다고 생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런데 내 마음을 쓰다듬는 이 감나무잎 그림자를 보면서
나무에 달린 잎새들이 셀 수 없는 손으로 보인다.
나도 세상을 향하여서 이렇게 다정한 손을 내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의 손을 더욱 견고히 해야 겠다고 다짐하다가
잠이 다 달아난다.
일기장을 찾아 침대로 가져와 어둠안에서 눈을 감고 일기를 쓴다.
아! 이제 다 썼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한다.
앗, 근데
배고파!
앨버트라는 이름의 복숭아 마지막 한개를 가져와 불도 안켜고 썰어 먹는다.
-그래도 보일 것은 보인다.
감잎사귀 그림자만큼은 보인다.
바로 이 글을 쓰는 아침방 창문을 열면 개복숭아나무가 서 있다.
늦더위와 가뭄에 지쳐 누렇게 비실하게 서 있다.
아침방에서 새벽을 맞으면서 오늘은 무얼할까 궁리한다.
홍천으로 갈까... 아니면 하던대로 동숭동으로 갔다가 성북동으로 올까.
이렇게 잠을 설치면 내일은 그 깍두기방을 정리하고 치울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두서없이 떠다닌다.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아
깨어났다.
그런데 요한님이 주신 한지 노트에 적힌 글을 읽는다.
2006. 8. 5 새벽 다섯시
다시 시작하기
쓰다 쓰다 지운 소망들
구겨져 쓰레기통에 던져진
꿈과 사랑과 우정
더 이상 할말이 없다고
주저앉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 겨울 대학로 횡단보도앞에서
미아처럼 황망하게 정지될 화면처럼.
그러나, 이내 다시 일어났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노트에 새벽노트에 글을 쓴다.
불을 끄고
눈을 감은 채
그것이 내 울음 어느 끝에서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임을 이제야 알겠다.
IP *.142.145.9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잠들어서 인지
11시 30분쯤 일어나 아가서를 읽고,
[엄마학교]라는 책을 봤다.
내가 생각한 그 집주인이 쓴 것이 맞았다.
퇴근길 담담한 헝겊간판이 눈에 띄었다.
아무 무늬도 없는 누르스름한 무명천에 밥처럼 평범한
글씨체로 [엄마학교]라고 씌여 있어서
더욱 궁금해졌다.
어느날 퇴근길 나는 그 집으로 갔다.
문은 잠겨있었고 안은 신발 하나만 보였다.
계단을 내려와 다시 계동길을 걷다가
재동초등학교 후문으로 연결되는 샛길로 걸어간다
가회동으로 이어지는 이 골목길에서 초등학교 아이들과
선생님들 엄마들... 아침마다 만나 인사하게 되는 수영할 때
얼굴을 안 할머니네 집앞을 지난다.
한 80페이지 읽었을까.. 다시 졸려서
점심방 불마저 다 끈다.
(왜 점심방이냐면.. 새로 이사한 집에는
큰 방 작은방, 그리고 그것보다 작은 깍두기방이 있다.
그런데, 이 방들에 햇살이 들어차는 시간이 다 다르다.
작은 방에는 새벽부터 열두시정도까지 들어차다가 사라져
열두시가 지나가면 큰 방으로 그 빛들이 다시 모인다
그리고 서너시 이후가 되면 그 부엌옆 깍두기방.. 일종의
찬방같은 그런 창고같은 방에 해가 다지도록 빛이 환하다.
그래서 더 좋은 생각이 날 때까지 이 방들을
아침방, 점심방, 저녁방이라고 하기로 했다.
요새 아침방에는 캐논이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 보았다.)
얘기가 끊어져서 좀 그렇지만,
점심방 불을 끄면서 나는 이제 재동씨도 없는데
온통 껌껌하겠네 생각하면 준비를 한다.
껌껌해지는 게 두려워서.
근데, 이어 내 눈이 만난 것은 감빛 가로등..
바깥에서 보면 오렌지빛나는 그 가로등이 침대옆
창가로 비쳐든다. 달빛도 아닌 것이 반갑기가 그지없다.
- 아마 어제 이상한 사람이 초인종을 누르고 문열어달라고 해서
더 한 모양이다.
먼저 은행나무집에 살때는 이보다 훨씬 어두웠다.
화장실도 불을 끄고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새로 이사온 집은 웬지 딱 우리 둘만 사는 느낌이다.
은행나무집은 주인댁과 함께여서 며칠씩 재동씨가 집에
없어도 두렵지 않았다.
새벽에 깨면 새벽빛에 보이던 감나무 잎사귀들이
이 주홍빛 위로 살랑살랑 흔들리며 그림자를 건넨다.
바로 창문앞에 서 있는 것처럼.
사실 그 감나무는 뒷집 감나무인데.
말을 건네듯이. 아니면 손으로 무엇을 쓰다듬는 것같은
움직임이다. 가만히 흔들린다. 수 많은 감잎사귀들이.
언젠가 인도나 태국관련 사진이나 그림등에서 사람의 손이
열개씩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징그럽다고 생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런데 내 마음을 쓰다듬는 이 감나무잎 그림자를 보면서
나무에 달린 잎새들이 셀 수 없는 손으로 보인다.
나도 세상을 향하여서 이렇게 다정한 손을 내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의 손을 더욱 견고히 해야 겠다고 다짐하다가
잠이 다 달아난다.
일기장을 찾아 침대로 가져와 어둠안에서 눈을 감고 일기를 쓴다.
아! 이제 다 썼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한다.
앗, 근데
배고파!
앨버트라는 이름의 복숭아 마지막 한개를 가져와 불도 안켜고 썰어 먹는다.
-그래도 보일 것은 보인다.
감잎사귀 그림자만큼은 보인다.
바로 이 글을 쓰는 아침방 창문을 열면 개복숭아나무가 서 있다.
늦더위와 가뭄에 지쳐 누렇게 비실하게 서 있다.
아침방에서 새벽을 맞으면서 오늘은 무얼할까 궁리한다.
홍천으로 갈까... 아니면 하던대로 동숭동으로 갔다가 성북동으로 올까.
이렇게 잠을 설치면 내일은 그 깍두기방을 정리하고 치울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두서없이 떠다닌다.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아
깨어났다.
그런데 요한님이 주신 한지 노트에 적힌 글을 읽는다.
2006. 8. 5 새벽 다섯시
다시 시작하기
쓰다 쓰다 지운 소망들
구겨져 쓰레기통에 던져진
꿈과 사랑과 우정
더 이상 할말이 없다고
주저앉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 겨울 대학로 횡단보도앞에서
미아처럼 황망하게 정지될 화면처럼.
그러나, 이내 다시 일어났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노트에 새벽노트에 글을 쓴다.
불을 끄고
눈을 감은 채
그것이 내 울음 어느 끝에서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임을 이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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