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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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때쯤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부장님, 저 아무개입니다'라는 목소리가 전해져 왔습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처음 관리자가 되었을 때, 신입사원을 뽑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내가 뽑았던 그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호칭인 부장님이라 불렀습니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한 때 익숙한 호칭이었지요.
영리하고 두뇌회전이 빠르고 차돌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나오기 전에 회사를 그만 두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만난 지 적어도 7-8년은 족히 된 것 같습니다. 함께 다니던 회사를 나와 여기저기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옮겨 다니다 자기 사업을 시작한 모양입니다.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참 이상한 것은 그 사람 목소리가 그렇지 않았는데 매우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좀 쉰 듯한 목소리여서 처음에는 감기에 걸린 목소리로 인식되었지요. 그러다가 점점 그 목소리는 속이 빈 듯한 헛바람같은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도 애를 먹어서 속이 다 녹아 쏟아져 내린 빈들 지나는 바람같은 목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우린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생각나서 전화했다 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 목소리가 긴 여운을 가지고 남아 있습니다. 나는 그가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속이 꽉 차고 성숙한 좋은 경영자로 다시 서기를 바랍니다. 그 어려움이 그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좋은 점은 누구를 위해 진심으로 빌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역'에 변화에 관한 좋은 말이 나옵니다.
易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궁이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양적인 변화와 양적인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다. 그래서 꽉 막힌 상태다. 이러한 상태 속에서는 비로소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질적인 변화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 이것이 '통'의 의미다. 이렇게 열린 상황을 답보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워지면 오래 간다는 뜻이다. "
살다 보면 꽉 막힐 때가 있습니다. 사방이 절벽인 때도 있습니다.
그 때 이 부적 같은 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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