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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7일 11시 00분 등록
물도 필요없고
비누도
샴푸도
수건도
필요없다

갈아입을 옷도
화장품도
필요없다

그 빛 한가운데서
그저 서 있으면 된다.

아침 한 가운데서
빛으로 둘러쌓인 채
빛의 샤워를 한다.

아침방에 떨어지는 이 겨울햇빛 보며
생각한다

순자가 그리도 좋아했는데
한국의 겨울 햇빛이 너무도 좋다고
네덜란드와는 사뭇다른 겨울이라고

나는 그녀에게 대학로에서
그녀가 그당시 즐겨듣던 한국가수콘서트포스터를
떼내어 보내주었다.

얼마후
그녀는 반고흐미술관의 포스터를 보내왔다.
그 때 난 처음으로 내 방을 쓰고 있었고
그 방은 유난히도 밝았다.
방문에 그녀가 보내준 레몬 빛 나비 너울거리는
양귀비 꽃 그림을 붙여놓았다.

어느날 아버지는 재밌다는 표정으로
저 그림도 네가 그린 것이냐고 물으셨다.
물론 그림은 인쇄된 것임을 아시고 물으신 것이다.
아버지의 위트에 나도 깔깔 웃었다.

가끔 혼자서 버리는 롤페이퍼를 모아다가
낙서같은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리고 방문에 붙여놓고 한동안 보곤 했다.

아크릴물감을 사용해서 겨울 주물난로를
그리는 내 마음은 참으로 아픈 것이었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고
남은 물감을 모두 짜내어
키작은 앵두나무만 겨우 뿌리를 내린 작은
화단 콘크리트에 발라버렸다.
몹쓸 페인트라도 되는 것처럼.
잊어버리려 킹즈싱어즈의 노래를
동네가 떠내려갈 정도로 크게 틀어두고.

어느날 사랑스런 앵두나무는 잘려져 버렸다.
그 앵두나무 가지가 사랑스럽다는 것을
잘려져 나간 후에 상처같이 받아들였다.

빛이 잘들던 그 2층 계단을 오르면
그 작은 앵두나무가
실하지도 못한 열매를 키우느라
애쓰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내게 기쁨이었던 것이다.

나는 나무를 보려고
때로는 그 쪽 빛이 더 환해서
집밖으로도 문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방인 내 거처의
바깥출입문을 열어두곤 했다.

그리고 무슨 뜻인지도 모를 킹즈 싱어즈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좋아라하며 미뤄두었던
집안 청소와 설것이 이불..커텐빨기 세탁기돌리고 널기
책보기 끄적거리거나 낙서같은 그림그리기등을 했다.

봄에는 아버지랑 종로오가에 가서 노오란 튜울립을 사가지고와서
창가에 두고 보고 또보고 했다.
아버지는 상추씨도 사보고 난도 샀다.
어느날 바람에 투울립꽃대가 부러졌을때
속상해 하고 있을 나를 생각한 아버지는
부러진 곳을 다른 것에 대어 붙여보셨다.

그것이 너무 감사해
그 아침에 노란카드에 투울립의사라는 별칭을 쓰며
호들갑을 떨고 출근을 했다

오늘 이 아침 빛이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가네
스물여덟 스물 일곱 그리고 스물여섯..


내가 집을 짓는다면
욕실을 가장 밝은 곳에
두리라

아니면 아침 빛 샤워란 호사를 누리기 위해
따로 작은 방을 마련해 보리라.

아니 아니다
내 가슴에 그 방은
이미 지어져 있다

언제고 문열어 두면
빛으로 가득한
그 방

창가에는 온갖 투울립이 한창인
그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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