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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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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3일 09시 57분 등록

출근 길, 황금빛 태양아래 샛노란 누드베키아(천인국) 화사한 도로 한쪽길이 유쾌했는데 학교 도착할 무렵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DJ DOC의
<디오시와 춤을>이라는 노래에 더욱 신나는 하루를 예감합니다.
게다가 오늘은 시험일이라 저는 여유가 한껏이죠.
그래서 이렇게 아침에 인사드릴 수도 있구요.
아이들이야 죽을 맛이겠지만. 후훗.....
그저께 처음 인사드렸는데 너무 자주 들락거리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군요.
이 곳 포항은 연일 무덥습니다. 4층 교실이라 아침부터 찌는 듯 하지요.
남쪽으로 난 창문으로 바다가 보이긴 하지만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열기는
걷어내지 못하는군요.
며칠전 친구홈에 올렸던 '여름'에 관한 글 다시 올려봅니다.
쪼매 길어서 읽기가 좀 지루하실지 몰라요.
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구요.


플라터너스 시원한 그늘을 지나 윤씨네 집을 지나면 논둑 길, 혹은 밭 덤불에 메꽃 연분홍 별들이 수줍게 길을 내고 있다. 메꽃은 우리 산하 어디서든 볼 수 있으며 덩굴줄기를 이용하여 옆으로 넓게 뻗으면서 자란다. 나팔꽃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메꽃은 토종 야생화며 나팔꽃은 외국에서 관상용으로 씨를 가져와 재배한 귀화식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메꽃을 보면 나팔꽃의 화려함에 가려 한 걸음 물러서 있지만 그렇게 마음이 당기나 보다. 왼쪽으로 난 들머리 길 조금 지나면 백씨네 넓은 배 과수원이 언덕배기에 펼쳐져 있고 그 아래뜸에 백씨네와 반장 댁 두 집이 이마를 맞대고 있다. 낮으막한 둔덕 같은 산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른 기지개를 켜며 정담을 나눈다. 새벽길의 풋풋한 음이온에 온 몸 내맡긴 채 동구밖 길을 파워워킹(팔을 크게 휘저으며 걷는 것) 하며 하루를 연다.
좀 더 내려가면 이제 좀 수그러든 인동초꽃 덤불이 아직 은은한 향을 달고 있고, 땅찔레 소담스러운 흰빛으로 키 낮은 향으로 수줍게 인사한다. 인동초꽃 한창일 때는 곁에 가서 진한 목소리로 향을 들려주는(법정 스님의 향기는 귀로 듣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그 것들을 한참을 보고 쓰다듬으며 함께 한다. 얼마전 농부들의 부산한 손놀림으로 모내기 끝난 무논은 그 새 싱그러운 녹색바람 되어 선들거리고 부드러운 그 지휘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옆으로 차르르 몸 기대며 눕는 그 것은 바로 갈뫼빛 완벽한 하모니였다.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연습한 적도 없건만 자연은 저렇게 완벽한 연출을 하며 우리들에게 안복(眼福)을 안겨준다. 한낮엔 세상을 하얗게 표백 시켜 버릴 듯한 햇살들이 벼 포기포기 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니며 한차례 숨바꼭질 할 터였다. 동구밖길 다 벗어나면 지난 봄 청둥오리떼 군무가 장관을 이루던 못이 나온다. 부식되어 벌건 알몸을 군데군데 드러내고 있는 주의문 표지판이 정겹다. 건너편 산쪽으로 새벽 물안개 피워올리는 그 곳 까지가 나의 아침 산책길이다. 거기서 못을 돌아 다시 동네어귀로 들어오는 길, 차바퀴 자국 움푹 패인 안쪽 야생잔디 사이로 시계풀 하얀꽃 다닥다닥 달고 있고, 산딸기는 연두빛 탱글탱글한 열매를 부풀리고 있다. 온갖 풀꽃들, 나무들이 제각기 다른 모양의 옷을 입고 싱그러운 아침을 열고 있다. 땅에 붙은 것부터 서로 키 재기를 하며 길 양옆으로 빼곡이 도열한 그들 역시 이른 아침의 바람에 잠깨어 함께 까르르 거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내 손에는 항상 뭔가 들려있다. 주로 찢기어진 소나무 가지지만 가끔씩 함부로 버려진 페트병이나 검정 비닐봉지, 빈 음료수통들도 있다. 소나무 가지는 집 모퉁이에 쌓아 두었다가 불쏘시개로 쓰기 위해서다. 소나무가지 태우는 내음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무시로 잔가지 툭툭 분질러 모닥불 놓기 일쑤다.

언제부턴가 아파트 생활이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터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도심 생활 중 제일 힘든 것이 자연의 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 기온이 어떤지, 새싹이 올라오는지 도대체 자연의 숨결과는 차단된 생활이 답답하다. 아파트 배관을 타고 내리는 문명의 빗소리가 아닌 여름날, 후박나무라든가 무성한 고구마 순 이라든가 고추이파리에 흔건히 쏟아지는 그런 자연의 빗소리를 간절하게 듣고 싶었으며 나무와 물과 흙과 풀과 벌레와 곤충 같은 생명이 있는 것들과 몸 섞으며 살고 싶었다. 아주 간절하게...... 기회는 우연하게 찾아왔고 우여곡절 끝에 이 곳에 조그만 둥지를 튼 것이 지난 여름이었다. 도심에서 그리 떨어진 곳이 아닌데도 완전 시골 형상을 하고 있다. 70 노령임에도 거뜬히 농사를 짓는 혼자 사시는 옆집 김노인, 몇 년전 옆 마을에 살다가 아내를 잃고 이 곳으로 이주해오신 기름장수 최노인, 노총각으로 같은 종교 덕분에 어여쁜 필리핀 아내를 맞이하여 남매까지 둔, 올해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한 장씨. 그는 몇 년 전 제천에서 오직 경운기 하나에 살림살이를 다 싣고 이 곳 포항까지 왔단다. 도대체 거기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인가! 경운기가 못 쓰게 될 정도로 쉼 없이 몰고 왔다는 그는 이제 남의 농사도 부치고 도심 근교의 공터를 갈아주는 품을 들고,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되어 정부보조금도 받으며 그럭저럭 살만하다며 옛날 더 힘들었을 적 얘기를 하곤 한다. 한창 밭갈이 일이 많을 때는 그 날 번 돈을 내어서 세며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모처럼 한 턱 내고 싶어하는 순박한 사람이다. 윤씨네......발동이 한 번 걸리면 두 달 이상도 오직 소주로만 연명하는 그는 마을 뒤쪽에 배과수원을 두고 있어 자주 우리집 앞을 나다니는데 요즘 계속적인 음주기간이라 마치 산송장이 걸어 다니는 듯 하다. 그래도 잠깐씩 정신이 있을 때는 얼마나 예를 갖추어 격식을 차리는지 모른다. 질박하지만 진솔한 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가뭄을 걱정하고, 농사일 얘기도 하며 가끔씩 덤 너머로 음식을 보내기도 하는 이 곳, 퇴근길 만나면 “ 들에 갔다 오십니까?” 라는 잃어버렸던 인사말을 건넬 수 있는 이 곳이 마치 늘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온 듯 푸근하다.
바야흐로 사방에 꽃기운 펄펄 넘치는 젊은이의 계절, 녹색 생명력 무성한 여름이다. 작년 음식 찌꺼기 묻어 두었던 곳에 모종을 낸 호박은 다른 곳의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짙푸른 잎사귀 뻗으며 힘차게 초록길을 내고 있다. 음식물 거름으로 하루게 다르게 무성해져 가는 호박넝쿨을 보며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더미로 골치를 앓고 있는 오늘날 현대문명의 이기를 생각하며 자연으로부터 얻은 모든 것들을 다시 돌려주며 자연에 순응하며 기대어 살았던 선조들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삼이웃’ 이라는 정겨운 옛말을 생각해본다. 아파트의 두꺼운 철문 대신, 흙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질구레한 일이라도 함께 걱정하고, 기뻐하며 작은 음식 하나라도 나누며 살았던 우리들의 이웃을 두고 한 말이다. 자연의 경이로운 은혜에 감사하고 순응하면서 조그만 것이라도 함께 나누며 도심에서 잃어버렸던 이웃간의 정을 하나씩 찾으며 그렇게 ‘삼 이웃’으로 살고 싶다.
대숲 우듬지에 까치발로 서서 온마당을 휘휘 둘러보며 텃밭의 소중한 생명들이 잘 자고 있는지, 돌밑의 도룡뇽 새끼들, 돌확의 고인 물에 놀던 비단 개구리들 잘 자고 있는지 들여다보며 쓰다듬어주는 열 하루 달의 음영이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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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뫼)빛 : 짙은 초록빛의 고유어
우듬지 : 나무의 끝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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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5.06.23 10:30:47 *.247.37.150
사모님의 수려한 문체가 예술입니다.
김사장님의 좌중을 휘어잡는 눌변의 사상적 근원이 여기셨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잘나서 그렇다고 고집피우시는 김사장님
데리고 사시는 사모님이 대단하십니다.
항상 행복한 두분 뵈니까 저도 닮고 싶어집니다.
이 공간에서 우리들의 삼 이웃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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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05.06.23 21:44:17 *.190.243.146
와 우...()... 읽고 또읽었습니다. 서정애 선생님의 작품성 최고입니다. 왜 이효석 생가를 가려고 했는지 이제 이해가 갑니다. 곧 부부작가가 탄생하리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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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옥균
2005.06.24 07:48:17 *.62.203.206
횡성가는 길에 들렀던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문학관과 평창의 이효석선생의 가산문학관을 굳이 들러고 싶은 마음을 알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날 보여주신 해박한 지식에 새삼 놀랐습니다. 두분 모두 책을 많이 읽긴 하지만 분야가 서로 다르다구요. 한분은자기경영, 한분은 문학이라... 저는 개인적으로 두 분야 모두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깊이가 약하지요. 오늘 이 글을 읽으니 형수님의 집풍경이 손에 잡힐듯이 다가오며 가슴속으로 들어섭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두분의 모습 참 보기좋습니다. 조만간 한번 찾아갈께요. 얼마전에 사신 큰 무쇠솥 질(?)을 한번 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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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나루
2005.06.25 07:34:21 *.254.144.118
좋다... 읽으니까.. 참 좋습니다... 편안하구요... 내 동네 시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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