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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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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4일 21시 35분 등록
남쪽으로 난 창가의 화분들,
제일 왼쪽부터 더덕, 나팔꽃, 가지, 수세미, 스킨다비스 몇 줄기 분양한 것,
고구마, 방울토마토, 수경재배고구마 이상 자그만치 8개나 있습니다.
지금 한창 싱그럽게 창문을 타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제일 짙푸른 것이 더덕인데 가까이 가면 더덕향기도 제법 납니다.
모종 내놓고 아이들과 함께 애타게 기다리던 나팔꽃은 한 번 순이 쑤욱
올라오더니 하루가 다르게 고 귀여운 덩굴손을 쏘옥 내밀며 천정까지
닿았구요. 가지는 벌써 두 개나 열렸습니다.
약을 주지 않아서인지(아이들과 손으로 진딧물 잡아 주었지요) 열린 가지
모두다 등이 굽었습니다.
수세미는 넓적한 푸른손을 자꾸만 내밀더니 드디어 어제 노오란 꽃 두 송이
달았는데 모두 수꽃이라 수정을 못해 안타깝습니다.
수정을 해야지 수세미 열매를 거둘 수 있을텐네...
아마 다음 주쯤엔 암꽃도 피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무성한 원 화분에서 세 줄기 짤라서 옮긴 스킨화분은 싱싱하게 줄기 내밀며
자기 갈 길 부지런히 가고 있구요.
고구마는 일찌감치 하트모양의 덩굴손 억시기 무성하게 내며 올라가더만
어느 선에서 정지 한 채 더이상 올라가지 않네요.
지 갈길 다 갔나 봅니다.
방울 토마토는 벌써 두 차례나 따서 아이들과 나눠 먹었는데 모둠활동 제일
꼴지 하는 모둠에게 우선으로 줬지요. 먹고 힘내서 모둠활동 열심히 하라고... 엄청 좋아합니다. 혼자 있을땐 줘도 안 먹던데... 군중심리 위력인가 봐요.
수조에 담긴 고구마순은 그렇게 무성히 뻗어나가더니 이제 하나 둘 누런 잎을
내밀어 아침에 오면 그 것 부터 정리해주는 것이 일과입니다.
우리 반 제일 꼴통(?) 녀석에게 맡겼는데 처음엔 관심 가지고 열심이더니
요즘은 시들해져서 제가 주로 관리를 하죠.
다른 반 보다 월등히 싱싱하게 푸르름을 더해가는 창가의 작은 식구들은
아마 아이들의 사랑 때문이지 싶어요.
학교 오자마자 자기 모둠의 것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인사를 하게 하거든요.
이런 식물들의 자람에, 변화에 고개 끄덕일 줄 아는 아이들로 자라게 하고
싶어 제가 맡은 교실 창가엔 늘 푸른식물들 식구가 많습니다.
파란색 큰 플라스틱 물조리개를 까치발 들고 기울이며 물 주는 녀석들의
얼굴이 얼마나 진지한지 참 이뿝니다.
수업시간엔 도저히 볼 수 없는 살아있는 풍경이지요.

후훗... 이 더운 날, 교실 청소를 남학생 두 녀석이 했습니다.
이유인 즉슨...
어제 청소를 하지 않고 토꼈다는(도망갔다는 경상도 사투리) 것입니다.
모둠원이 6명인데 4명은 홀가분하게 가고 두 명이서 이 무더운 날
땀 삐질 흘려가며 청소하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우스워요.
두 녀석 불러다 의의 없냐니까 맑은 두 눈 내리깔며 수긍합니다.
그전에 한차례 와서 고자질 한 다른 여학생이나 수긍하는 두 남학생이나
왜 그리 우스운지요! 칠판에 도망 간 사람 누구누구라고 삐둘하게 적힌 것은
우리들 어릴적 풍경이나 하낱도 다를 게 없네요.
저는 그때 배아푸다고 거짓말 하고 교실청소 몇 번 빼먹은 기억 납니다.
킥킥...... 담임 닮았나?
이 얄개들!!! 함께 했더라면 이런 일 없을텐데 글쎄, 도망은 왜 간답니까?
그저 우스워서 혼자 킥킥 거리다 짐짓 야단치는척하며 함께 청소
도와주면서 개운하게 마쳤습니다.
지들도 오히려 즐거워하면서 하네요.(올해 6학년 담임입니다.)

아이들 없는 빈 교실엔 작열하는 태양 사이로 몇 줄기 바람이
살짝 안부 전하는 하오의 풍경이 정겹습니다.
어제, 오늘 이틀간의 시험으로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부담은 되었는지
하교길 놀 궁리로 야단법석입니다.
오후 수업 있는 날인데 하지 않으니 그 시차만큼 놀겠다는 계획이지요.
평소엔 학원 쫓겨다니느라 변변히 놀 수 없지요.
그런 생각하면 도시의 아이들, 아니 요즘 아이들 너무 가여워요!
빨리 학원으로, 학원으로 내몰기 위해 세련된 간식 준비하며 기다리는 어머니들의 마음도 편하지 않기는 매일반일테지요.
가방 던져놓자 마자 놀기 바빴던 우리들 유년시절이 참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하긴, 지나고 나니 그런 생각 들테지만요.
어쨌든 요즘 아이들 너무 찌들려 삽니다.
그렇다고 성적이 향상된 것은 결코 아닌 것 같은데......

내일 벌써 유월 토요 휴무일이군요.
토요 휴무일 꼽아보면 한 달이 어떻게 갔는지 금새 떠오릅니다.
요즘 시간들의 흐름들은 가속이 마구 붙는 것 같아요.
브레이크 없는 벤츠의 속도가 이럴까요!
열심히 살아야지요. 그래야지요!

모처럼 토요휴무일 향기롭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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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2005.06.24 22:06:50 *.193.36.128
교실에서 느끼는 오후의 단상이 참 행복해 보입니다. 제겐 까마득한 초등학교 시절 청소할 때 머리 쓰다듬어 주시던 처녀 선생님의 마음도 사랑이셨겠지요. 웃으실 때 얼마나 이뻤는지 모두들 뿅 갔지요. 이젠 할머니 되셔서 주름은 있으시겠지만 미소는 여전히 아름다우실 것 같습니다. 서정애 선생님의 미소도 참 아름다우십니다.
세월의 속도는 나이 먹는 만큼 빨라진다지요. 20대는 20Km, 30대는 30Km, 40대는 40Km, 50대는 50Km.. 어이쿠! 나는 이거 큰일이네요. 브레이크도 없는데... 농축해서 더 욜씨미 살아야지요, 그래야지요!^^.
달국 선생님과 행복한 휴일 보내시고 햐기로운 글 계속 많이 올려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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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기원
2005.06.25 23:07:35 *.190.172.179
선생님 덕분에 행복한 주말 보내고 있습니다. 살아가시는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교육이 되리라 보여져요. 저도 그 아름다운 교실의 학생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음이야기도 기대됩니다. ㅎㅎㅎ 저도 그시절에 도망간 녀석들이 참 밉고 미웠었는데.... 참 통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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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애
2005.06.25 23:29:22 *.150.31.44
안녕하세요? 요즘 아이들 참 "똑" 소리 납니다. 두 명이서 청소 하라고 한 것 저희들이 결정한 것이예요. 난 그저 지들 결정에 따른 것 뿐이지요. 합당하다 싶어서... 예전엔 도망간 녀석들 고자질로 끝나고 함께 청소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였는데... 저도 이글 올리고 다시 보니 그녀석들의 결정이 아주 맹랑하다는 생각입니다. 후훗... X세대 답습니다.
잘들 계시지요? 건강한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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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자
2005.06.26 09:32:56 *.48.30.29
참 기분이 좋아지는 글입니다... 읽으니까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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