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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4일 11시 48분 등록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

- 이 오 덕 선생님 유고시중 -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
나도 너희들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왔단다.

그까짓 어른들의 노래, 알 수 없는 말
맛도 향기도 없고 신명도 안 나는 소리
더러는 엉터리 거짓도 있고
고약한 냄새 풍기는 것도 많아
듣기에도 역겨워 귀를 막고 살았지.
그래서 아이들의 노래만 부르면서
살아왔단다.

내가 어렸을 때는 들과 산에서
뛰놀면서 일하면서 노래로 살았지.

봄이면 할미꽃, 진달래, 살구꽃 노래,
보리밭 종달새, 빨랫줄의 제비들도 함께 부르고,

여름이면 냇물에서 버들치와 피라미와 함께 부르고,
풀밭에서 송아지와 염소들과 뛰놀면서,
꼴을 베면서ㅡ 꼴망태 지고 오면서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 부르고,
물새 소리, 바람 소리 따라 휘파람으로 부르고,
꾀꼬리 장난 소리, 뻐꾸기 흥겨운 장단, 산비둘기 구성진 노래
맞춰 부르고,
감자를 캐면서 감자 구워먹는 소리,
옥수수를 꺾으면서 고소한 옥수수 먹는 노래 부르고,

가을이면 가을 바람 시원해라 수수밭 조밭에서,
허수아비 서 있는 논에서 후여 후이 새 쫓는 노래,
나물 쑥을 뜯으면서 냉이를 캐면서
산에 올라 머루 다래 따먹다가 해가 지면
새빨간 구름을 쳐다보며 노을 노래 부르고,

겨울이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떡가루 눈,
눈을 받으며, 쌓인 눈을 밟으며, 눈을 뭉치며 눈 노래 부르고,
얼음을 타면서, 처마 끝 고드름 쳐다보면서도 부르고,
밤에는 호롱불 밑에서 옛이야기 듣다가
부엉이 부엉부엉 함께 부르고
이렇게 사시장춘 노래로 살았단다

마을에는 가는 곳마다 아이들 소리
골목마다 아이들 소리.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없구나. 노래 소리가 없구나
아이들 모두 어디로 갔지?
그렇지, 모두 모두 방 안에 갇혀 있구나
방 안에서 노래소리도 없이 살아가는구나
들풀의 향기, 다 잃어버리고, 방 안에 갇혀
몸도 마음도 그 무엇에 짓눌려 노래가 나오지도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귀다툼으로 살아가는구나 어제도 오늘도.
그래도 음악시간이 있다고? 그렇지,
음악책에 나오는 노래를 선생님 따라 부르지.
그러나 그 노래는 너희들 것이 아니지.
너희들의 몸에서 터져나온 노래가 아니지.
그래서 음악 시간에만 부르는 것으로 되어 있지.
너희들은 노래를 잃어버리고
노래를 빼앗겨 버리고
그래서 괴상한 어른들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괴상한 어른들이 되어가고 있단다.

이 세상에 노래 없이 자라나는 아이들보다 가엾은 아이들이 있을까.
이 세상에 노래를 빼앗긴 아이들보다 불행한 아이들이 있을까.
그러나 여기
천만 다행히도 너희들의 노래가 나왔구나.
너희들의 노래가 터져 나왔구나
살아 있는 싱싱한 너희들의 말,
온몸에서 터져나온 너희들의 시.



IP *.142.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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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애
2007.03.24 23:09:51 *.224.156.96
아, 선이님 이오덕 선생의 글이 정말 좋군요. 우리반 학급 홈페이지로 퍼 갑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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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2007.03.26 11:18:25 *.133.120.2
저도 이오덕 선생님 시를 좋아하는데요, 한 동안 잊고 살았는데 덕분에 다시 떠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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