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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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해거름의 마당이 적요합니다.
안그래도 특히 해거름을 유난히 좋아하는지라 귀가하는 대로
저절로 마당을 한바퀴 둘러보게 됩니다.
오늘 같이 차악하니 비라도 내리는 날은 "나" 만의 해방구가 되죠.
텃밭 가장자리의 공작초를, 보라와 흰별이 흩뿌려진 도라지밭을,
웅성웅성 모여 수런거리는 우엉잎들을, 이젠 한 빛깔 잃은 루드베키아를,
사르락거리며 내리는 어둑사리에 한결 더 진분홍 종소리를
퍼내는 분꽃의 요요함,
허공에 대고 수염을 자랑하는 옥수수대를,
푸른 우산대 옹기종기 모여있는 토란을,
그 위에 후두둑 떨어지는 원시적인 빗소리......
어디나 적요가 가득하여 더 좋습니다.
그 '적요함'은 북적거리던 명절 끝난 후의 적요라든가,
한낮의 적요함과는 또 다른 빛깔이라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아! 그런데 싱싱한 푸른길, 더덕넝쿨에 눈을 주고 있던 전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더덕 줄기마다 몽글몽글 꽃망울이 수도 없이 맺혀 있어요!
말로만, 그것도 올해 학교 김주사님께 들은 더덕도 꽃이 핀다는 소리,
걍 듣고 흘려버렸는데 진짜 그렇게 수많은 꽃망울이 봉긋하게 있을 줄이야!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며 손으로 가만 감싸안았습니다.
너무 어여뻐서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더덕들......
지난 팔월 중순에 강원도에서 사다 냉장고 안에 약 8개월간을 쳐박아
두었던 것입니다.
요리해먹을 때를 놓쳐버린 후 미안함에 버리기 좋은 구실을 만들려고
냉장고 밑바닥에 굴리던 그 것을 꺼내 버리려 하는 순간
그 음습한 구석에서 뽀얀 촉들을
모두 틔우고 있는 그 것을 차마 버릴 수 없었지요.
그래서 산밑 텃밭 가장자리에 빙 둘러 심고 나머지는 울 교실 창가에,
옆 교실에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교실에도 여름내내 푸른 창문보를 만들더만 여기선 그렇게 예쁜 종을
달고 있네요.
참 생명의 신비함이란!
함부로 굴리다 미욱스럽게 마구 버릴려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저렇게 새로운 생명들이 남실대는데......
위의 이미지는 야후에서 가져왔고요.
곧 꽃이 피면 넘실대는 생명의 현장을 따끈하게 한 번 올리겠습니다.
더덕꽃은 초롱과로 여러 해 살이 풀이죠.
소나무 밑에 하양색 초롱꽃도 꼭 더덕꽃 같은 종모양으로 계속 피고 있습니다.
잔잔한 그런 들꽃들이 요즘들어 너무 이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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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 5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귀가하였습니다.
걱정했던 며칠간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마당은 더 두툼한 푸르른 옷을
걸치고 있습니다.
돌확의 연보랏빛 부레옥잠이 만발해서 주인을 맞이합니다.
'가족' 이라는 울타리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올해 일흔 여덟의 연세인 어머님의 건강을 새로 확인할 수 있어 참 감사한
여행이었습니다.
어머님 힘드실까봐 여행사 의뢰하지 않고 잡았는데 아이들 보다 오히려
어머님께서 더 건재하셨습니다.
입추도 지났으니 이제 늦여름으로 가는 길목이지 싶습니다.
늘 향기로운 날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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