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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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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30일 01시 28분 등록
여름날 썸벅썸벅 자라던 힘이 기운이 다 빠진 듯
빛 낡은 꽃송이들을 달고 있는 벌개미취,
갈색 씨를 여물고 모로 누워있던 달맞이꽃대,
계속 피어나는 송이들이 있는가 하면 벌써 빛 낡아가는 꽃송이들도
함께 있는 공작초들,
며칠전 그들을 거두어 해거름녘 쉼터에서 장렬하게(?) 태웠다.
특유의 향을 피워 올리는 공작초 곁에서 한참을 앉아서 그들을,
한 계절을 충실히 살다간 그들의 향기를 품었다.
전신을 감아올리는 것은 싸아한 가을향기일진대.

봄부터 형형색색으로 피고지던 그 꽃들의 넋들은 다 어데로 갔을까?
봄을 제일 먼저 알리던 노오란 어린 수선화, 보랏빛 크로코,
주황색 애기 튜울립(개량종), 섬노루귀, 보랏빛제비꽃에 이어
토종 야생화 산마늘, 석죽, 영산홍, 꽃창포, 채송화, 옥잠화, 비비추,
둥글레꽃, 시원한 여름을 알리던 주황빛 원추리
데크밑을 한동안 주황빛 카핏으로 수놏던 한련화 꽃넝쿨,
소나무를 마구 감아가던 나팔꽃,
늘 서성이며 꽃의 산고를 함께 지켜보았던 쉼터 아치문의 능소화,
장독대의 초롱꽃, 섬초롱, 봉숭아, 진꽃분홍색 요요하던 분꽃,
텃밭의 보라 흰별의 도라지꽃, 꽃등 수없이 허공에 달던 더덕꽃,
잔잔한 보랏빛 꽃망울들의 범꿩의 다리, 노루오줌, 섬백리향, 루드베키아......
그들의 넋들은 필시 땅속에서 겨울의 냉기를 견뎌내고
찬란한 다음 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늦봄에 피던 해당화, 이즈음 힘겨운 듯 몇 닢 분홍빛 꽃잎들 내밀고 있는 것은 차라리 숭고함을 준다.
혼기 놓친 처녀처럼 가을 한가운데서 피어난 늦봄꽃이라니!
그가 속울음 삼키며 견뎌냈을 인고의 세월켜가 꽃잎에도 고스란히 얹혀
있는듯 피어서도 이틀을 못가고 분홍 꽃이파리 툭 떨어진다.

사루비아, 석죽, 다알리아, 씀바퀴꽃들은 고운 넋 차마 그대로 보내기
아쉬운 듯 스르르 가는가 싶더니 다시 꽃대를 올리며 간간히 피어난다.
유월초부터 끊임없이 피어나는 난타나, 파라솔등과 함께 아마 서릿발
마주보면서 까지 함께 피어 있을 것이다.
요즘 한창 만발하는 보랏빛 왜성과꽃과 들녘 한 언저리 가늘가늘 피어있는
코스모스와 함께 그들을 가을꽃 부류에 넣어도 좋을런지......
아니될 말이다.
어찌 아지랑이와 재잘거리는 새소리와 함께 봄날 한 번 다녀갔던 것을
가을꽃이라 할 수 있을까!

가을꽃들은 아지랑이와 종다리 소리를 모른다.
찬 달빛과 비오듯 흐르는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그들의 슬픔이요
숙명인 것 같다.
그래서 가을꽃에는 보라색이 많은가?
왜성과꽃, 방아꽃, 해국, 쑥부쟁이, 꽃향유......
그들이 슬픈 보랏빛깔인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가.

꺼칠한 산수국 이파리, 누릿누릿 성긴 잎들을 안고 있는 앵두나무,
듬성듬성 중간부분들은 투두둑 떨어져버리고 가장자리 잎들마저 누릿해지고 있는 꽃사과나무들..... 어디를 둘러보아도 야위어가고 있는 마당이다.

유년의 가을걷이 막 끝낼 무렵에 한 해의 큰 행사가 창호지 바르는 일인데
그 날은 온 식구들이 하루 해에 꼬박 매달리던 날이다.
문짝을 떼어서 입에 물을 잔뜩 넣어 ‘푸푸’ 품어서 헌 종이를 불려서
곱게 떼낸다.
그것들을 함부로 버리는 일 없이 곱게 접어 두는 것은 겨울날 연 만드는
재료로 훌륭히 쓰기 위해서다.
종이 한 장도 귀하게 여겼던 그 시절의 근검생활이었으니.
준비해둔 새 문종이를 식구 여럿이 함께 맞잡고 붙이는데 그때 문 아래께
손잡이 근처에는 국화잎이나 맨드라미 잎을 뜯어다 꽃 모양으로 둘러놓고
그 부분은 투명한 백지로 바르곤 했었다.
썩 밝은 가을 달밤이면 스르르 피어나던 ‘문엣꽃’의 아련함이라니!

벌레 먹어 성긴 이팝나무 이파리 틈으로 보이는 하늘엔 구름 몇갈피 곱게
끼워져 있었는데 소리없이 슬쩍 들어선 어둠이 그들을 쓰윽 안아 가버린다.
일순의 일이다.
무상하다. 神인 자연의 창조물들은 무상하지 않으면 고여서 썪는다 하던가.
그러니 무상함에 너무 애달파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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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슬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을입니다.
빌딩숲 사이에 걸려있는 구름이 역동적입니다.
나날이 청량해지는 대기의 입김이 계절속으로 자꾸 밀어넣습니다.
우리집 근처의 코스모스밭이 문득 스치는 아침이군요.
늘 향기로운 나날들 되시길!
IP *.46.1.130

프로필 이미지
숲기원
2005.10.02 02:03:24 *.190.172.122
가을꽃이라?
아하 이렇게 많이 있었군요.
가을꽃을 구경하러 찾아나서야겠습니다.
서정애선생님 생물학 아니 꽃박사님이신가요?
좋은글 잘 읽고 가슴깊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이글에 배경음으로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을 들어봅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그아름다운 집의 뒤에 병풍처럼 펼쳐진 대나무와
주인의 정성이 가득한 화단이 그려집니다.
4계절 언제나 아름다운 집의 안과 밖에서
아름다운 꽃의 향기가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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