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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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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4일 22시 12분 등록
앞 글 김달국 님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는 순간 바로 떠오른 생각을 올립니다.

저희 아버지는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예술적인 멋을 알고 계셨던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크리스마스였는지 아주 어릴 때였습니다. 다섯 남매중에서 세 딸들에게는 카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제 아버지깨서 가신지도 10년이 지났고 우리도 그 당시의 아버지보다 더 많이 나이를 먹었습니다.
한 번은 언니와 여동생 모두 40여년 전의 그 카드를 가슴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파르스름한 군청색 밤하늘을 가로질러 싼타 할아버지가 사슴 마차를 몰고 가는 그림이었습니다. 아래는 집들의 지붕이 펼쳐져 있었지요.

이렇게 설명하면 금방 그림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이제는 흔한 카드지만 그 당시만 해도 우리는 그런 환상적인 색감을 처음 만났습니다.

지금도 제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고르며 늘 이런 군청색 하늘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 신비스런 밤하늘의 파란색이 없으면 크리스마스처럼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그러고보니 고호의 밤의 카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 카드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네요.

내가 그 파란 색의 하늘에서 아래에 있는 집들의 지붕을 내려다 보는 꿈을 꾼 적도 있습니다. 꿈 속에서도 너무 아름다워서 감격했었어요.

텔레비전에서 온갖 판타지를 다 접할 수 있는 요새 아이들에게는 무엇이 이런 신비감을 줄까요?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또 하나의 선물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은 김영랑 시집입니다.

지금도 그 책의 표지까지 기억합니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하드카바였습니다.
책을 펼치면 양쪽에 꽃 바구니를 든 머리수건을 쓴 여자아이 그림이 페이지마다 그려져 있었고 그 위에 시가 쓰여 있었습니다.

지금 눈으로 보면 조악하기 짝이 없는 시집이지만 그 시집이 준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김영랑 시인의

언덕에 바로 누워
가 없는 하늘을 바라다가
나는 잊었습네 눈물도는 노래를
그 하늘 아슬하야
너무도 아슬하야

이 시는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외워지네요.
도시의 가난한 작은 집, 다섯 남매와 엄마, 아버지 일곱 식구가 절대적 공간이 부족한 속에서 부딪힐 때였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이었을까요? 제게 김영랑 시인의 시는 산소와 같았습니다.

이 시를 떠올리면서 4학년 여자아이가 언덕에 누워 아슬한 하늘을 바라보는 그 때의 상상이 그대로 살아옵니다.
그 탐미적이 시인의 시상이 가슴에 와서 박혔었지요.


역시 우리 다섯 남매 모두 이 시집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표지가 나달나달 해지고 나서 마지막에 제가 보물로 간직한 것 같은데 어느 형제가 빼돌렸는지 지금은 행방불명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아버지에게 감사해서 가슴이 뻐근합니다. 힘들 때 마음에서 꺼내 볼 수 있는 카드를 되살려준 김달국님의 크리스마스 카드 감사합니다. 송년 모임이 지척에서 이루어졌는데 못 갔습니다. 다음에는 꼭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Merry Christmas!
IP *.217.10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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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진
2005.12.24 22:49:55 *.118.67.206
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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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닮
2005.12.25 00:05:55 *.152.57.155
저도 이런 작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 꿈의 그림이 이런모습을 닮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좋은연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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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기원
2005.12.25 00:07:29 *.190.172.63
마음에서 꺼내보는 크리스마스카드는 이곳이 아니면 만나지 못할 소중한 것입니다.
5월이면 감격적인 상봉이 있을 것같군요.
기다려집니다.
늘 좋은 날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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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국
2005.12.25 08:32:27 *.224.76.184
저로 인해서 김미혜님이 행복해질수 있었다고 하니
저도 기쁩니다.
행복은 행복을 낳고
성공은 성공을 낳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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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일
2005.12.26 08:41:53 *.238.209.191
저도 추억이 떠오르는군요. 순수한 열정의 고교시절
투병중인 친우를 돕고자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판매 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도시의 의료기술에 대한 부정적인, 아픈 추억입니다.
그보다 더 젊었던 중학시절
우리집은 6남매에 부모님과 할머니까지 9식구가 원룸에서 한,두해 살았답니다.
여러사건이 난무하였지만, 뒤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하었습니다. 학창시절 16년, 우수상을 딱 한 번 받았는데, 그시절이랍니다.
그때의 험한 삶의 경험이 지금 저의 원동력이 되고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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