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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맛 따라 - 금강 옛길 여행
얼마전 선생님께서 갑자기 술 끊고 운동해서 배에 王자를 새기겠다고 하셨을 때 가리늦게 왠 王자? 했었지요. 그러다 뜬금없이 금강으로 여행을 가자고 하시는 게 아닙니까. 올 해 들어 놀러가는 것에 재미가 붙은지라 옙! 하고 따라 붙었습니다. 할 일 없고 시간 많은 백수들인 저와 영훈씨까지 부르셨네요. 과연 王자가 만들어졌는지 얼굴도 함 뵙고 싶기도 했구요, 이런 저런 재미난 얘기들을 이틀 동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는 것이 아니잖아요. 공식적인 외박 허락(?)을 받을 수 있어 아주 夜한 밤을 보낼 수 있으니 생각만 해도 ㅋㅋㅋ.
천안 톨게이트에서 픽업하기로 약속해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서울팀을 기다리는 동안 여행가면 항상 가지고 다니는 'Me story'를 읽어 봅니다. 언제 봐도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글귀들이 가슴 가득 들어옵니다. 저도 이런 사십대를 보내고 싶은 생각입니다. 특히 마흔에 관한 이야기들을 적은 초반부는 심장을 뛰게 합니다. 어떻게 내 맘을 들어갔다 온 것 마냥 똑 같을까. 마흔이 되면 좀 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려 하고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을 수용’하게 되지요. ‘명료하고 구체적인 일상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는 나이 마흔이 저에게도 훌쩍 다가와 버렸거든요. 어쩌면 그래서 더 선생님에게 응석을 부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월간 중앙 권선생님이 운전하시는 씩씩한 차 렉스턴을 이틀 동안의 애마로 삼고 첫 출발지인 행정중심도시로 출발하였습니다. 이번 옛길 여행은 신행정중심도시가 들어서게 될 연기·공주지역을 에돌아 흐르는 금강의 샛길들을 따라 가며 백제의 유적과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 보기도 하면서 금강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과 흔적들을 찾아보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금강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전 애기 엄마랑 연애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다니던 학교가 공주에 있었거든요. 공산성에도 가고, 부여 낙화암에도 가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데모하던 현장에서도 같이 다녔지요.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에서 발원하여 충청남북도를 거처 강경에서부터 충청남도·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루면서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강입니다. 장수에서 발원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지만 근 400km나 된다는 것에 새삼 놀랐습니다. 금강하면 그냥 공주, 부여를 지나가는 작은 강 정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해상교통의 발달을 가능하게 해 주었고, 호서평야와 전북평야를 만들어 강경, 부여, 공주의 지방도시를 발전시켜오기도 한 중부지역의 대표적인 강이기도 합니다.
점심을 공주 새이학가든이란 곳에서 따로 국밥을 시켜 먹었습니다. 공주를 다녀 간 수많은 정치인들이라면 한번쯤은 다녀간 역사가 있는 식당입니다. 진한 국물맛이 뱃속을 든든하게 한 다음 이번 기행의 첫 출발지로 갔습니다. 연기군 금남면 양화리라고 하는 곳으로 ‘양화리 은행나무’로 더 많이 알려진 곳입니다. 수령이 600년 정도 된다고 하는 암수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듬직하게 그 동네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은행나무는 꼭 암수가 같이 있어야 열매가 열린다고 합니다. 1910년 한일합방과 6.25 동란때 은행나무가 울었다고 하며, 일제 때 왜놈들이 베어 버리려고 했지만 은행나무에서 울음소리가 나서 베지 못했다고 하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영험이 있는 나무라고 합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 은행나무처럼 유달이 수령이 오래된 큰 나무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합호(合湖)서원이라는 곳에도 갔습니다. 고려시대 주자학을 처음으로 전해 온 안향선생을 모신 서원입니다. 안향 선생은 호를 회헌이라고 하는데 주자의 호인 회암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영정을 모셔 논 서당이 드문데 이곳은 영정을 모셔논데다 서원도 아주 잘 꾸며놓았습니다. 이 동네 이름이 합강리입니다. 말 그래도 강이 합해진다고 해서 합강리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이 아주 자연스럽다 싶네요. 얼마 전 강진에 갔을 때 구강포를 본적이 있는데 이름의 연원이 아홉게의 강이 하나로 모인다 하여 구강포라 하더라구요. 우리말의 시골스러운 자연미가 그대로 드러나지 않습니까.
갑사도 갔지요. 계룡산을 중심으로 대전 방면에서는 동학사가, 공주 방면에서는 갑사가 유명하지요. 백제 시대인 4세기에 지었다고 하구요. 임진란 당시 승려이면서 의병장이었던 휴정대사와 영규의 영정을 모셔 놓은 절입니다.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이기도 하고, 기도의 영험이 있다 하여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들어 소원을 비는 곳입니다. 갑사하면 무엇보다 나무가 예쁜 절입니다. 아름드리 나무들도 아기자기 하고 생각보다 작아 보이는 절도 그러한 느낌을 더해 줍니다. 가을이 되면 단풍이 죽여주지요. 공주에 오시면 꼭 갑사를 한번 들러 보세요. 참 좋습니다. 가던 도중 곰사당도 찾아 갔습니다. 사람으로 변한 암곰이 사냥꾼을 납치해서 자식을 셋이나 두었습니다. 곰이 방심한 틈을 타 도망가 버린 신랑을 원망하며 자식들과 강에 뛰어들어 죽었다고 하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강나루도 흔적이 없을 정도로 아무런 자취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금강 뚝방길을 따라 부여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말 그대로 옛길입니다. 가다 보면 길이 끊어져 돌아갈 때도 있고, 신작로길과 새도로가 합쳐졌다 나눠졌다 하기를 반복합니다. 옛 정이 사라지는 느낌을 줍니다. 강물이 많이 줄어들어 그냥 좀 넓은 냇가 같은 느낌을 많이 주기도 합니다. 전쟁때 놓은 것 같은 철다리도 보입니다. 도로 중간에 교차할 수 있는 곳도 만들어 놓았지만 기본적으로 차 한 대만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좁은 다리입니다. 아마 인근 회사들이 놓아준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낙조를 보면서 한 동안 금강을 바라 봅니다. 강에 떠 있는 해와 산에 걸려 있는 두 개의 해를 보면서 망국의 한이 서려있는 백제의 고도 부여로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어둠이 제법 내릴 즈음 무량사로 들어섰습니다. 다산초당을 찾아가던 기억처럼 인심좋은 민박집이라도 찾아볼 요량이었지요. 그런데 절 입구에까지 가도 민박이라고 써놓은 곳은 보이지도 않고 식당만 세 곳이 있는데 두 집은 이미 불이 꺼졌고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 식당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민박할 곳이 없냐고 물어보는데 마침 술을 먹고 있던 어떤 맘씨 좋은 분이 자기네 집으로 가자고 합니다. 일단 마음 놓고 음식을 주문하고 먼저 나온 막걸리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시골밀주처럼 맛있게 익은 막걸리는 저녁을 먹을 동안 두 통이나 비웠습니다. 은혜식당이라고 하는 그 집 음식 맛이 장난이 아닙니다. 도토리묵무침도 일품이고 특히 묵은지를 씻어 볶은 김치가 너무 맛있습니다. 된장찌개도 시골된장이라서 그만이구요. 음식 손맛이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아주머니 같아서 어떤 음식이라도 맛이 있게 만들 수 있나 봅니다.
시골 맘씨 넉넉한 아저씨를 따라 간 집은 무량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옻나무 농장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시면서 고향에 내려와 노후를 준비하시는 분인데 콘테이너를 몇 개 놔서 숙소와 불당도 모셔놓았습니다. 평상 같은 것이 보이길래 앉으려고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약 두 평정도 되어 보이는 넓이의 평상은 나무가 아니라 돌평석이었습니다. 아주 큰 돌을 잘라 끄트머리를 옮겨 논 것인데 이런 멋진 평상은 처음 보았습니다. 돌평상에 앉아 한산 소곡주를 댓병을 가져다 놓고 먹었습니다. 시원한 산 밑에서 향토색 가득한 소곡주를 앞에 두고 여러 얘기들을 나누다 보니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역시 선생님께서는 술을 드시지 않아도 멋진 술자리를 만드시는 재주가 있습니다. 계신 것 자체로 자리가 좋은 것은 고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법이죠. 그렇게 첫 날 밤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좋은 소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호주가 숙적 일본을 격파한 뉴스는 괜시리 하루를 시작을 흥분하게 만들더라구요. 오늘 밤 우리도 토고를 시원하게 물리치고 16강을 향한 가벼운 발걸음을 보여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무량사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과 부도가 있는 곳입니다. 생육신의 하나인 김시습은 조선시대 3대 천재의 한 명이라고 하죠. 사천왕상에서 보인 무량사는 보기에도 오밀 조밀한 게 대단히 소담스러워 보이는 절입니다. 단청이 예스럽게 보이는 대웅전은 이층으로 만들어져 있고 네 귀퉁이를 나무 기둥으로 받치고 있는 모습도 신기해 보입니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은혜식당에서 해장으로 끓여 준 시원한 김치콩나물국으로 아침을 먹고 부여로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혹시 무량사를 가시는 분이 있으면 꼭 은혜식당에 가서 식사해 보세요. 아주 맛있는 투박한 반찬이 반겨줄 겁니다.
낙화암도 보고, 고란사도 구경하고 유람선도 타면서 백제의 고도 부여를 다녔습니다. 어느 곳 하나 망국의 혼이 없겠습니까? 조그마한 도시 전체가 곳곳이 사적지요 유적입니다. 그렇게 다니다 죽림서원도 둘러 보았지요. 조광조, 이황, 이이, 성호, 김장생, 송시열 선생을 모신 서원입니다. 저의 집 선조 중에 조광조와 같이 사화를 당한 한헌당 김굉필 선생이란 분이 계셔서 마음이 남다른 곳입니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부여여행을 마치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장소인 강경으로 떠났습니다.
강경은 젓갈로 유명한 곳이지요. 시장 전체가 젓갈을 파는 것 같습니다. 10월에 하는 젓갈 축제 광고를 지금부터 하는 것을 보면 강경은 젓갈 하나만으로 먹고 사는 도시 같아 보이네요. 시장을 돌아다니며 시골스러움을 둘러보다 우어라고 하는 회를 먹었습니다. 밴댕이 같은 맛도 나고 전어랑도 비슷한 생선입니다. 고소한 맛이 나는 것이 색다른 느낌을 줍니다. 마침 식당에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호주와 일본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여주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역시 여행은 먹는 맛이 반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잘 먹고 나면 나머지 여행도 아주 재미있어지거든요.
이틀 동안의 여행도 이제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몇 군데 유적지를 들러 천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식사를 하고 가시라는 말에도 서로 바쁜 일정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목적이 있어 간 여행이겠지만 저는 그냥 편하게 쉰다는 느낌으로 다녀 왔습니다. 매일 쉬는 놈이 쉬기는 뭘 쉬어? 하시겠지만 휴식이 충전이라는 명언을 믿고 사는 타입이라서요. 어쨌던 덕분에 제가 사는 땅 충청도의 새로운 곳곳들을 알게 되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여행과 휴식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저한테 주어진 운명이 아닐까 하고 느꼈다면 과장일까요? 조금씩 배우고 공부하는 하루의 일상에서 이런 변화도 괜찮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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