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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25일 08시 08분 등록
약속

여행을 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그리고 온 가족을 데리고 가겠다고 철썩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잊고 살았습니다. 서예선생님께서는 한 달간 끙끙대며 여행 스케쥴을 만들고 방을 예약하고 프로그램을 짰습니다. 선생님은 한 달 동안 몇 가족의 며칠 동안의 여행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희생해 가면서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며칠 전 드디어 여행 프로그램이 다 만들어 졌으니 다들 모여서 상의도 하고 계획도 추가하는 등 얼굴 함 보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전 가족들하고 얘기를 해 보니 가지 않겠다는 의견이 많아서 미안하지만 가기가 어렵겠다고 연락을 하였습니다. 그 때 선생님의 표정이란.

서예 선생님과의 약속을 이번 한 번만 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산을 가자는 약속도 해 놓고 가지 못했던 적도 있었고, 전 번 여행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과의 약속을 유달리 자주 어겼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을 만나면서 얼굴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아마 저 때문에 한 달간 준비한 여행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다음부터는 약속을 중히 여기고 잊어버리자는 말씀에 속으로 삭힌 화를 생각하고 예하고 조용히 물러났습니다. 아, 이런 어리석음이여.

포항에 사는 꿈 벗이자 같이 연구원 활동을 한 옥균형이 서울에 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저녁에 얼굴 보자는 말과 함께 연구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승완이는 연락과 장소 예약까지, 오랜만에 선생님까지 나오신다는 연락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착오를 해서인지 그날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의 강연이 있다는 것을 늦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음 주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지방에서 그 분의 강연을 듣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었을뿐더러 기업인들은 당연히 자발적으로 들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지역에서는 그런 기업인들이 많지 않습니다. 저라도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리를 채워주어야 하는 의무감도 있지요. 게다가 꿈 벗 회장이신 허영도 사장님께서도 연락이 와 같이 가자는 것입니다.

몇 번 고민하다가 강연을 들으러 가기로 하였습니다. 옥균형과 승완이한테 미안하지만 이해해 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참석하시면 굳이 없어도 모임은 화기애애하게 잘 될 거라고 믿었던 거지요. 그래도 미안한 마음은 가눌길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옥균형에게 전화해 거듭 미안하다고 했지만 약속을 아주 쉽게 어기는 절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승완이는 전화도 받지 않네요. 미안혀. 네가 이해해 주라. 응.

그러고 보니 지키지 못한 약속이 한 둘이 아닙니다. 영훈씨한테 주어야 할 돈이 있는데 벌써 몇 달째 주지 못하고 얼굴 볼 때만 기억나니 이런 정신머리하고는. 올 여름에는 꼭 포항모임을 하자고 해놓고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기만 하니 어당팔 형님이 ‘뭐 이런 자식이 있어’ 할까봐 겁납니다. 미영이하고도 한 약속이 있는데 제 일 때문에 아마 제가 까맣게 잊어먹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몽실이들하고 원주가자고 해 놓고도 되려 큰소리만 하고 있으니 이러다 약속불이행표 인간이 될까 무서워 집니다.

약속은 천금같이 지켜야 합니다. 불가피하게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즉시 그 내용을 말하고 그로인한 불편함이나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것을 사전에 방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종종 있는 것을 봅니다. 성격이 모질지 못해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거나, 끊고 맺는 것이 분명하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술자리에서 약속을 잘하는 사람들이 대개 이런 부류들입니다. 제가 이 세 가지 부류에 다 들어갑니다.

약속은 지켜지면 당연한 것이지만 지키지 못하게 되면 신뢰가 깨집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주위에서 말이 돌게 되면 당사자는 대인관계가 어려워집니다. 같이 재미있게 놀기는 하지만 중요한 일이나 행사에는 제외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을 맡길 수 없는 법이니까요. 물론 마음까지 그런 이는 별로 없겠지만 약속은 신뢰를 동반하는 동전의 뒷면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번 일로 서예선생님과 같이 가기로 했던 일행들에게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옥균형과 승완이 그리고 그날 참석했던 이들에게 죄송합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도 맙시다. 얼굴 뜨거워 집밖을 나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 쪽팔려~.

IP *.118.6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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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일
2006.06.25 10:27:19 *.103.179.22
술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최근에 술에 대한 절제공력를 높이신다는 말씀이 있었으므로,
그 만큼의 실수가 줄어드는 성과가 곧 있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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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2006.06.25 13:31:46 *.147.17.39
술 사라~
내가 너무 사악한가~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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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옥균
2006.06.25 19:36:56 *.62.201.47
너무 상심하지 마시게나. 당연히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고 못 지킬 약속은 하지도 말아야 하는게 원칙이지. 하지만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그럴 때가 있지. 적어도 박노진이란 사람이 중요한 약속에 있어 그렇게 가벼운 사람이 아니란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아니겠는가. 그날 자로님 덕분에 많은 분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난 정말로 만족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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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2006.06.25 23:48:47 *.140.43.38
솔직히 이야기 하시는 박사장님이 부럽습니다. 저 또한 가족을 비롯하여 여러사람들에게 뻥친 것이 하나 둘이 아닌데.. 반성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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