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현동의 비사벌이라는 음식점에서 처음 홍어 찜을 먹던 날,
그 퀴퀴한 냄새에 기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 그런 음식을 비싼 돈을 주면서 먹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그런데 그날 이후 그 독특한 냄새의 기억이
묘하게 제 코끝을 맴돌았습니다.
얼마 뒤 삼각지 칼국수 집 가오리찜을 시작으로
홍어요리를 찾아다니게 되었고
이제는 장안의 3합 잘하는 집을 찾아다니는
홍어 매니어가 되었습니다.
작년 여름부터 릿지(암릉)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권유를 받았을 때
“내가 미쳤냐, 이 나이에 그 위험한 짓을 하게?”라며
완강하게 거절했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산행 때 고교동창의 집요한 회유와 협박에
족두리봉을 릿지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었던 그날,
긴 암벽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았고
정말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것이
원효봉을 비롯하여 숨은벽과 오봉,
염초봉까지 올랐고
얼마 전에는 악어길로 인수봉에도 올랐습니다.
그런 저에게 친구들이
“도대체 무엇 하러 그 따위 위험한 산행을 하느냐?”며
간곡하게 말립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나는 릿지 등반을 하는 것일까?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말을 빌려 봅니다.
“모험 자체가 모험에 대한 보답이다.”
그렇습니다.
위험하기 때문에,
되도록 가지 말고
안전한 길로 우회하라면서 줄을 쳐 놓은 곳이기 때문에,
실수하면 죽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갑니다.
모험 그 자체를 위해 갑니다.
우리는 늘 자일과 하네스, 헬멧을 갖고 다닙니다.
위험한 곳에서는 선등자가 반드시 줄을 내려
혹 미끄러지더라도 줄에 걸리도록 안전장치를 해 놓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안전장치를 하더라도
암릉을 타는 것은 역시 위험합니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줄을 내리지 않는 곳들에도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이 되면
우리는 또 암릉에 매달립니다.
그런 특별한 일상을 통해 작은 죽음의 공포를 겪음으로써
삶이 더욱 선명하고, 나를 둘러싼 환경과 시간들이
너무도 소중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삶이 더욱 역동적이고 가치 있음을 절감합니다.
다시 조셉 캠벨의 말을 인용해 보죠.
“우리는 죽음을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죽음과 화해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삶과 반대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한 측면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죽음과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본 그 특별한 느낌들이
내가 가진 것들을 더욱 값 있게 합니다.
앙코르 와트탐사, 중국내전 참여,
2차 대전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하여
포로로 잡힌 뒤 탈출을 하는 등
늘 죽음과 운명 앞을 희롱하듯 다가서며
치열하게 살아간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말로처럼
죽음 언저리에서 삶을 더욱 진지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인디언 소탕작전을 벌이던 미국의 카스타 장군의 군대가
어느 날 아파치 족을 포위하고 비를 뿌리듯 총탄을 퍼부어댑니다.
그날 전멸한 인디언 전사들의 구호는
“죽기에 참 좋은 날이다”였답니다.
인디언 부족의 용사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죽음을,
삶의 한 측면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삶에의 집착을 넘어서서 두려움을 벗어내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해 진정한 가치를 절감합니다.
저는 이제 막 시작한 릿지 등반의 초보자입니다.
인수봉 등반에서 가장 쉽다는 악어길을 오르면서도
한 번 미끄러졌습니다.
물론 작년에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실력이 비교가 안 되지만
아직 겁도 많이 나고 꽤 긴장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더 강렬하게 살고자 합니다.
유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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