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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일 14시 56분 등록
많은 분들이 문경의 후기를 올렸는지라 저는 통영의 바다낚시 후기를 올려볼까 합니다.

문경에서의 꿈 벗 프로그램을 끝내고 우리는 통영의 바다 낚시라는 테마로 몇몇 시간이 허락하는 이들과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게 됩니다.
생각보다 가는 길이 멀더군요. 거의 밤 8시경에 도착하여 근 6년 만에 통영시내의 건재를 확인하고 섬을 향해 배에 올라탔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바다 위의 작은 섬에 딱 한 집만 있다는, 따뜻한 물이 콸콸 나오는 아름다운 숙소를 연상하며 우리는 오늘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몇몇 사람은 낚시를 하고 또 몇몇 사람은 섬 주변을 거니는 그런 깜찍한 상상을 했더랍니다.
도대체 누구십니까?
제게 그런 상상을 하도록 한 이가..

문경에서의 피로가 있어 가는 여정은 힘들었으나 이름도 그럴 듯한 헤밍웨이라는 작은 배에 올라 타 노인과 바다를 상상하면서 저의 깜찍한 기대는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줄 곳 계속되었습니다.
한 십여 분 배를 탔을까요,
드뎌 도착했다는 선장님의 말씀으로 배에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도대체가 모래사장이니 하는 것들이 보이지가 않고 웬 커다란 뗏목 위에 컨테이너 박스를 개량한 듯한 방만 하나 보이더군요.
밤이라 바깥은 전혀 감이 안 잡히는데 얼핏 보더라도 가로 세로 한 십 미터 정도의 뗏목 스페이스가 전부인지라 설마~설마~하며 주위를 탐색했습니다.
일분도 안 걸리는 탐색을 통해 뜨끈한 샤워는 물 건너 갔구나 하는 상황판단이 되더군요.

화장실은 있는 겨?
익숙한 화장실 표시도 안 보이는 지라 두어 번을 더 돌아보았지요.
안 보이더군요.

일순 여인 세 명의 눈이 동시에 마주쳤습니다.
순간 우리는 아마도 작은 배의 귀퉁이에 있었던,
사부님이 껄껄 웃으며 기세 좋게 의자대신 앉으셨던 사면 터진 완전 오픈 스페이스 변기를 생각했었나 봅니다.
설마~하며 우리는 선장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봅니다.
화장실은?
아 바로 저기에요?
우리가 우르르 달려간 곳은 간이 창고 비끄무리 생긴 곳 (실제 창고입니다)으로, 재동씨에게 확인을 부탁한 바 구멍(?)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인들은 일단 휴~하고 마음을 놓습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변화를 추구하는 변화무쌍한 사람들……
이왕 이리 된 거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발상의 전환은 금새 우리들을 헤헤거리게 하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의지는 초고속 스피드 시스템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 때까지도 배낭을 내려 놓지 않고 계속 뗏목 위를 맴돌던 장교출신이라는 한 분 왈.
“퇴로가 완전히 차단되었습니다!”
부대원을 이끌고 섬에 고립되고만 중대장처럼 비장하게 한 말씀을 하시고 배낭을 내려놓는 모습에 우리들은 단단히 각오를 하고 뗏목에서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윽고 낚시 강의 시작.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첨으로 해보는 일이라 어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하고..
잘생기고 박력 있는 선장님의 강의를 마스터한 어리벙벙 우리들은 이윽고 낚싯줄을 드리우게 되고 눈 먼 고기가 낚일 때마다 저마다 꺄꺄 함성을 질러댔습니다.
나이도 없고 성별도 없더군요.
잡힌 고기를 어떡할지 몰라 도망가는 우리들.
팔딱 팔딱 하는 물고기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어찌어찌 하라는 말씀을 듣고 용기를 내어보지만 이 물고기라는 아이들도 만만치가 않은지라 저는 끝까지 그 아이들을 어쩌지 못하고 잡힐 때마다 능숙한 조교님들에게 도움을 받았지요.

그렇게 잠깐 시간이 흘렀을까……
선장님의 회 먹으라는 소리에 신이나 우르르 달려갑니다.
낮에 잡으셨다는 전갱이란 이름의 생선회.
아주 가지런히 이쁘게 먹을 것이 마련되어 있었지요.
녀석들의 모습은 거의 감동 그 자체로 놓여있었으며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급한 대로 건배가 끝나고 전갱이 회를 뚫어 지게 노려보던 사람들은 마치 저 고지를 향하여 라는 구호를 외치 듯 맹렬한 기세로 젓가락을 들고 녀석들을 향해 돌진합니다.
어느 정도 배가 채워졌을까요.
이윽고 우리들은 문경의 감회를 이야기하고 두 분 선생님들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고 훈훈한 대화가 오가는 자리를 가졌지요.
문경의 감동에 이어 통영의 감동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누군가가 꼬부쳐 두었던 중국 술에 인삼주며 와인……
바다 위에 떠 있는 뗏목 위에서 우리들은 그렇게 한참 동안 따로 또 같은 불꽃을 피웠더랍니다.
그리고 어느 덧 시간이 흘러 연장자 순으로 하나밖에 없는 컨테이너의 방의 한정된 공간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순도순 낚시를 하다가 또 담소를 나누다가 사라져서 어디 갔나 하면 알게 모르게 순서대로 차곡차곡……

드뎌 새벽 네 시 가까이 되었습니다.
남은 사람은 여인 세 명과 대박인지 옹박인지 하는 젊은 총각 하나.

여인 둘은 어떻게든 자리를 확보하여 가냘픈(?) 몸을 누였습니다.
이틀을 날밤을 샐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눈을 붙여야 한다는 급박한 서바이벌 상황.
그러나 우리는 눕는 순간 이 상황의 적응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온냐는 아가씨니까 하며 자진하여 나를 보호하여 경계선에 몸을 던진 착한 그녀.
그러나 눈물겨운 그녀의 살신성인도 잠깐의 감동으로 끝나고 우리는 둘 다 서로의 몸을 주먹으로 치며 몸부림을 참아야 하는 초인간적인 경험을 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이곳은 과연 어디란 말인가?
그 순간 저는 생각하는 로뎅이 아닌, 생각하는 香仁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꾸 이 질문에 답하라는 또 다른 저의 닦달은 일생일대의 생에 대한 처절한 고민으로 이어져 갔습니다.

동물의 우리???
그러나 이 뗏목 위에서 동물이라 불리 울만한 형상은 딱 한 마리,
그리고 녀석의 자는 모습은 화장실 뒤의 구석이었음을 확인하였고……
소위 방이라 명명해도 되는 이곳에는 벌레는 있을지 몰라도 차마 동물은 엄써라……
(죄송합니다, 경상도 사투리에다 급하다 못해 전라도 사투리가 지절로 나오네여~)

그럼 여그가 오케스트라 공연장?
잠깐,
우리는 위의 통영의 저 감동의 순간에 몇몇 인간이 먼저 자수를 했었답니다.
난 코골아, 난 이빨 갈아.
저는 양쪽 다하는 지라 두 개 다 함을 미리 신고하고 양해를 구했지요.

분명 자수한 이는 셋이었다는 기억이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 방안의 음률은 저는 안자는 지라 저를 빼놓고도 2를 훌쩍 넘음이 본능으로 느껴지는 그런 숫자, 최소한도 4는 넘음이라..

순간 저는 포유류가 자신의 신체를 악기로 하여 이러한 음률을 만든 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경탄에 감동을 뛰어 넘어 잠시 그들의 위대함에 눈을 감고 묵념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도레미파솔라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더군요.
그것도 고저 장단으로,
분명 그들이 화음을 맞출 시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도가 바로 레로, 그리고 바로 미로.. 그러다 이제 끝인가 싶으면 바로 파, 솔라시도….하는 바톤 터치의 절묘함..
저는 순간 편지를 읽다가 쉼표가 없어서 죽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가 떠 올랐습니다.
묘한 알 수 없는 공포의 엄습이 저를 감싸기 시작했지요.

인위적이 아닌 자연의 소리는 분명 아름다움이리라 믿씸니다만......(강조버젼)
그거이 거시기 톱질 하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곧 숨 넘어 가는 소리, 연달아선 소화 안 되는 듯한 소리……돼지가 멱을 따면 이 소릴까 하는 비명 비슷한 소리, 한국어의 격음과 경음이 총 망라된 들숨과 날숨의 극한 소리, 중간중간 잠시 침묵도 있었으나 단 이 초를 넘기지 못하고 이윽고 다시 연결되어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처음 들어보는 해괴함의 또 다른 벅찬 감동의 집합들……
..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저는 그 날 이 주문을 계속 외었습니다.
새로운 음률을 느낄 때 마다 눈물을 콕콕 찍는 감동의 도가니탕이 몰려 오는 순간, 인내라는 단어를 전신으로 체험하면서 잠의 신이 찾아와 주기를 빌고 또 빌었지요.
그러나 그 순간 오랜 독신이었던 저는 그만 간만의 양기충전 배터리가 초고속으로 급속히 충전되면서 졸음이 화악 달아나버리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 아무 것도 모르는 선남선녀는 빼꼼하고 들어와설랑 이 기괴한 오케스트라에 합류하겠노라는 의사를 비치더군요.
충분히 감상을 끝낸 저는 기꺼이 선녀에게 제 자리를 반납하고 선남에게는 너의 능력으로 저 무리 속에 끼어들라는 자문을 하고 성스러운(?) 그 자리를 빠져 나왔습니다.

아침 8시쯤 되었을까요.
이미 선생님 두 분께서는 벌써 일출 무렵에 기상하시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고 사진작가와 시인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은 여전히 예의 현장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지요.

“낚시하러 왔지 자러 왔습니까? 깨우시지요”
특유의 경상도 카리스마 억양의 선장님 말씀에 현장으로 달려가 잠시 상황을 관찰했습니다.

태양은 언제나 그렇듯 커튼 없는 현장의 모습을 여과 없이 비추고 있었지요.
밤과는 달리 아침엔 표정이 또 압권이었습니다.
목이나 코에 피로가 쌓이셨는지 연주는 잠시 쉬고 계시더군요.

주무시다가 출출하셨는지 어떤 분은 입을 벌린 상태로 무언가을 넣어주기를 바라는 듯 하셨고 또 어떤 분은 머리에 꽃을 꽂으신 듯 한 홀린 표정, 또 한 분은 햇빛이 싫으셨는지 얼굴근육을 이용하여 주름의 극치를 연출하시며 그렇게 머리를 산발들을 하신 채로 자신의 몸을 최대한 바닥에 밀착 시킨 자세로 쓰러져 계시더군요.
잠시였지만 저는 현장의 참혹함에 혹 저들이 열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마저 했답니다.


저 분들 덕택에 가끔 찾아오는 저의 우울증은 당분간 안 오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감사 드립니다.

기상을 하고 아침나절에 잡은 전갱이로 이번엔 회 덮밥을 해먹곤 헤밍웨이를 타고 다시 육지로 나왔습니다.
여러 님들과 아쉬운 작별의 포옹을 끝으로 이렇게 통영의 즐거운 밤낚시여행을 끝냈답니다.
같이 가지 못했던 여러분들에게 문경의 혹한기 훈련에 이어 통영의 해병대 훈련을 마쳤음을 보고 드리면서......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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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2006.11.02 15:14:45 *.75.166.117
ㅎㅎㅎ

생생합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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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꿰 no6
2006.11.02 16:26:27 *.35.191.194
아니, 누님도 작가 준비하시남요? 일취월장, 아님 꼭꼭 숨겨두었던 무기를 이제서야 발휘하시는건가? 거의 딴지 수준입니다요.. 감동스럽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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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2006.11.02 16:28:27 *.210.111.168
잊을 수 없는 혼숙이었답니다.
게다가 아침에 드러난 창고 속의 구멍과 그 밑에 노니는 물고기 덕분에 정신이 번쩍 났었어요.
첨 잡아본 물고기의 펄떡임, 비릿한 바닷내음, 출렁이는 잠자리, 푸짐한 회덮밥까지.
우연한 경험 치고는 아주 특별한 신선함이었어요.
언니의 통영 후기를 읽으니 와장창 다시 떠오르네요.
재밌는 글,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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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2006.11.02 16:32:56 *.110.0.40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을 누르며 조용히 ~~숨죽이며 후기를 읽고 있는데,,,
하하하 너무 재미있어요
가지못한 것이 아쉬움을 넘어 서럽기까지 하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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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06.11.02 17:22:04 *.190.172.207
통쾌하게 잘 읽었습니다.
궁금한 것이 없을 정도로...
다음 꿈벗모임은 해상에서 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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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동
2006.11.02 17:44:43 *.46.217.50
난 왜 얼굴이 살짝 뜨거워지나 모르겠네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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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2006.11.02 21:00:23 *.39.211.159
아니 혼숙 장면을 이렇게 생생하게... 기여코 저질렀구먼
내가 갔어야 하는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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香仁
2006.11.02 21:58:53 *.131.177.148
듀엣이라면 감당하려 하였사오나 뜻하지 않게 화답하는 엉뚱한 무리들이 있어 일이 커졌나이다.
자수하셨던 재동씨는 얼굴 붉힐 까닭이 없음를 아뢰오.

그리고 읽어주신 분덜!
스크롤 압박,죄송합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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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아이드잭
2006.11.02 23:15:57 *.140.145.80
예정대로 원잭까지 합류했다면 더욱 더 가관이었겠지요..ㅋㅋ
다행으로 아셔야 함돠.. 제가 원래 원조 딴지체였는데 이제부터
향인님에게 허명을 양도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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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06.11.03 01:01:33 *.147.17.149
나도 자수했음. 이빨 잘 간다고. 자수 안 한 사람들 누구야~~

근디, 누나 글 읽다가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네. 무지 웃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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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6.11.03 07:56:49 *.55.54.201
ㅎㅎㅎ 은남누나.
뻥 뚫린 구멍 사이로 물고기가 지나다니는 화장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철학적인 생각을?? ㅋㅋ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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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6.11.03 09:00:04 *.116.34.157
나 그 화장실 정말 좋았어, 밤엔 몰랐거든. 그저 판자 두 뺨쯤 구멍이 나 있었으니까. 그저 시커먼 구멍이었지. 그런데 말야 아침이 되어 알게 되었지. 그 구멍 밑은 아름다운 수족관 같은 것이었어. 초록에 가까운 바닷물 사이로 작은 고기들이 오가고. 음, 최고의 화장실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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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阿
2006.11.14 20:05:37 *.115.35.192
아직 여명은 멀었는는데 나는 재동군의 코 천둥소리에 놀라 잠을 깻다. 밖은 뻥뚤린 허공인데 있는 자리는 엄청복잡하다. 엉거추춤 밖을 나가니 왠 아름다운 여인의 향기가...
그 여인의 손에 바다뱀인지 장어인지를 잡고 어쩔줄 모르는 모습에서 옛 애인의 감상이 왜 생기는질 모르는 걸 보면 아직 ..허허
아홉은 자고 혼자 바닷속의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밤새도록 낚실 하였으니 아마 고기는 향기로 낚은 모양이다.
아가씨! 여긴 연대도 앞바다라는 걸 시집가더라도 잊질 마세요.
붉은 진주같은 일출이 그댈 비추었으니 꼭 행복한 행운이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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香仁
2006.11.16 10:25:23 *.48.41.124
선생님의 덕담 고맙습니다.
후기를 쓰다보니 너무 길어 빼먹은 장면들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셔서 언급해주시니 완성도가 더 높아지는군요.

간만에 듣는 아가씨란 호칭.
왜 일케 기분이 좋은지요.
좋은 말씀 들으니 절로 미소가 씨익..
선생님들도 참 위트가 있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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