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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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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8일 13시 51분 등록
세상의 진리 중, 믿을 수 있는 한 가지는 "내가 흘린 땀은 믿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 며칠간, 내가 뭔가 번잡하게 사는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제대로 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정말 간단하게도 '흘린 땀이 적어서'라는 답을 얻었습니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처음 읽은 책은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라는 책이었습니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의 일화들이 기록된 책인데 이른바 '천재'의 삶은 어떠했는지를 살짜기 엿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너무나도 뛰어난 능력에 질투심도 나고 열등감도 들었지만 책장을 넘길 수록, 아무리 천재라도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단지 차이점이란 것은, 파인만은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쓰일 것인지를 생각하며, 본질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해가며, 즐겁게 했다는 점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를 악물고 극복해야 할 과제로 여기는 것들을 '재미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호기심' 때문입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들이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더군요.



의문점 중 또 하나는 물리학 연구를 비롯하여, 북 연주를 하고 그림도 그리는 등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할 수 있었을까. 여러가지 일들을 동시에 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할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고 실제로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술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엉망이어도 외국어를 하고, 북 치는 것이 궁금하면 어떤 사람에게서라도 북을 배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이것을 잘 할 수 있을까? 이걸 하다가 다른 일을 못하게 되지는 않을까 따위의 걱정은 없었습니다. 단지 하고 싶으면 실제로 '배우고', 잘 될 때까지 '연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즐겁게.

솔직히, 파인만의 가정생활이 어떠한 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쓰여 있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가정생활을 희생했기 때문에 그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란 말은 핑계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그 누구보다 잘한다'라고 할만한 것을 가진 다음에야 그 핑계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저를 괴롭혔던 문제 중 하나는 스스로 여유없게 사는 것 같으면서도, 그에 해당하는만큼의 성취를 이루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보다 더 잘 놀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더 많은 것들을 이루면서도 더 여유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궁금했고 그렇지 못하는 저 자신에게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간 읽은 책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찰을 통해 이제야 차이점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눈치 보지 않는다 - 저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잘 느낍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을 때, 남들이 내 책 내용을 보는 것이 신경쓰여서 안 읽을 때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영어 원서 읽고 있을 때, 혼자 쉬운 영어 단어장 펼치는 거, 많이 신경쓰였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저야 피해 안주면서 저 할 일 하면 되는 것을 스스로 비교하면서 살았습니다. 이제 신경 안쓰렵니다.


문제가 아니라 해결책에 집중한다 - 문제가 있으면 문제에만 신경쓰고 그 문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걱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해결책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을 것입니다. 박사까지 마치려면 그 동안 경제문제를 어떻게 해야 되나 걱정만 하지 말고, 장학금을 알아보는 등 해결 방안을 찾아야 되는데 그간 문제 자체만 바라 보면서 보낸 시간이 많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한다 -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면, 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만 잔뜩 생각하게 되고, 그 결과 시간만 보내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창피해 하지 말고 밀어붙이면 크든지 작든지 간에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글도, 창피해서 쓰다가 중단하려 했지만 어쨌든 계속 써 나가니 유치하지만 나름대로 저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간 몇 번 쓰다가 그만 두어 버린 것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습니다.


그간 '더 많은 땀을 흘리라'는 말을 인생을 그것에 몰빵(!)하라는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다른 것은 그것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중심에 두라는 말이지 다른 것을 소홀히 하거나 팽개쳐야 할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다른 것을 돌보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알고 있습니다. 가져야 할 것은 그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즐거이 그것을 하는 마음가짐과 그것을 이루는 데에는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하루에 18시간씩 투입해서 일주일만에 마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10분씩 365일을 하는 것이 보다 균형잡힌 인생을 사는 길인 것 같습니다. 지금 하는 일을, 해야 할 일을, 극기와 고행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하는 것이(자기암시가 아니라 실제로 즐거움을 찾아내어 하는 것이) 먼 길을 빨리 가는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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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6.12.28 15:39:58 *.145.231.158
공감 만땅인 단어들로만 채웠군요.
불혹에도 깨닫지 못한 이치들을 벌써 알았다니...
정말 놀랍고 변화를 즐기는 꿈 벗들의 발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내년에는 더욱 더 발전하고 꿈을 만들어가는 벗이 되길 바랍니다.
좋은 글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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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6.12.28 18:03:56 *.81.16.163
준일님, 진솔한 글 잘 읽었어요. 내 경우에는 실제로 게으르거든요. 지금도 이틀째 문밖엘 안 나가고 데굴데굴~~하는데, 그러다가 무슨 맘 먹고 새벽에 세 시간만 집중해도 꽤 흡족한 분량을 읽고 쓰겠던데...
아하, 이렇게 두시간씩 1년 하면 괄목할만한 변화가 있겠구나, 하고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지요.

이 홈피 어디선가 소장님이 인용하신 부분이 생각나네요.
Woulda와 Shoulda가 한탄을 하고 있었대요. 하지만 그들은 곧 줄행랑을 칠수밖에 없었지요. Dida가 나타났거든요.
잡설2를 기대하지요.

자로님, 선물이 참 요긴했어요.
여행길에 로션샘플이 떨어졌는데, 이 기막힌 우연이라니~~
자로님의 배려에 감사드리며, 따뜻한 연말연시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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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2006.12.28 20:46:12 *.75.166.98
소중한 경험을 들을 수 있어서 기뻣습니다.
공감합니다. 많이 깨달았습니다.
아울러 반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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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수
2006.12.28 22:03:44 *.4.179.206
준일이형! 오랜만입니다.
확실하게 말로 할 만큼 선명하지 않았던 느낌들이 그대로 글로 옮겨진 것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전 아직 형이 쓴 글을 그냥 글로만 느낄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글귀 하나하나를 막 머리속에 집어 넣으면 좀 나아질까요? 하하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 라는 책도 읽어볼 참이었는데 미리 힌트를 많이 주셨네요. 언제 한번 만나서 이야기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배울게 많을 거 같아요..
아. 형이 쓴 명문은 스크랩해둘께요. 다시 읽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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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6.12.28 23:20:24 *.102.142.30
문제 말고 해결책에 집중하라...이게 인상깊네요.
저도 문제에 집중하는 편이라~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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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꿰 no6
2006.12.29 07:50:07 *.35.191.194
오, 잔뜩 움크리고 있다고 활짝 펼쳐버리는 이 무시무시한 진법을 펼쳐내다니... 다음달 만남을 기대하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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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꿰 무늬만총무
2006.12.29 14:15:52 *.50.171.33
오.. 조아조아..
이준일씨 잡설도 잘하시네
날 좀 잡아봐.
다들 보고싶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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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일
2007.01.04 22:10:50 *.46.159.113
고마우신 답글들 감사합니다. 꿈벗님들의 맑은 마음씨가 많은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됩니다. 글 쓴 것처럼 사는게 쉽지만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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