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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2일 15시 10분 등록
예전에 중국에서는 유토피아를 '대동大同 세상'이라고 했답니다.
'대동'이라는 말이 동同자가 본래 상형 문자인데 그게 천막을 쳐 놓고
그 밑에서 사람들이 함께 밥 먹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동양에서는 이상 사회가 별 게 아니라 사람들이 밥을 같이 먹는 세상 여럿이서 같이 땀을 흘려 일하고, 같이 놀고, 서로 보살피면서 함께 밥 먹고 사는 데서 사람다운 삶이 존재한다는 뜻이랍니다.

한해의 시작이라는 입춘을 지나고부터 슬슬 즐거운 셈을 놓기 시작했던
마당 구석구석.
그날 정월대보름날은 마침 휴일이라 해당화 꽃밭을 만들려고
올해 첫삽질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단순히 해당화 몇 그루만 심는 게 아니고 2년만에 아름드리 울타리가 된 그것들을 울타리 경관을 해칠 지경이라 옮겨 심기로 했습니다.
가시에 찔려가며 다섯그루의 그것들을 뽑을라네, 심을라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무들도 조화를 맞춰 새로 옮겨 심어야할 것이
여러 그루 되어서 남편과 저는 구슬같은 땀을 흘리며 일에 빠졌습니다.
몇 번의 채근을 받은 후에야 흙투성이 옷을 툴툴 털며 들어서니
마을 사람들 다 모였습니다.
넉넉한 인심과 맛솜씨 소문난 앞집 안주인이 내어준 오곡밥과 갖은 나물,
백미였던 무침회로 마을 주민들 모두 음식을 나누고 정월대보름
윷놀이를 하며 어릴적 정월대보름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맛보았습니다.
그때는 마당에 덕석(멍석)을 깔고 가운데 새끼줄 질러놓고 했죠.
윷놀이 열기가 무르익으면 마을 장정들이 풍물 울리고 신명 많던 우리 할머니 비롯한 안노인들께서 어깨춤 덩실덩실 추시고
막걸리 몇 순배로 불콰해진 장정들 만면에 웃음 가득입니다.
곧 이월이 되고 골 깊은 노동이 시작되겠지만 그날 만큼은 부자입니다.
덩달아 신났던 우리들은 괜히 이 쪽 저 쪽 윷판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고......
하룻만에 끝나질 않고 며칠간 동네잔치는 이어지고 마지막날쯤엔
가가호호 지신밟기를 했습니다.
아랫동네서 시작한 징소리 점차 윗뜸인 우리집으로 지잉지잉 올라오면
곧 들이닥칠 풍물패를 위해 술상 준비하던 할머니,
고모 손길이 바빠지고 풍물패 꼬리에 주욱 따라오던 마을 사람들
삽작에 들어서면 괜히 우쭐했습니다.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수시로 음식을 나누는 농민의 풍습이
살아있다는 것에 위안 얻었습니다.

어제 토요휴무일, 그저께 나무시장 갈때 트럭을 빌려준 앞집에 보답도 할겸 무침회 준비하여 동네 사람들 다 청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술을 곁들인 '참'으로 시작했는데 그건 저의 좁은 생각에 불과했고
그럴 경우 반드시 '밥'을 준비하여 끼니를 이어야 한다는 것을
새로 깨달았습니다.)
사실 전 회만 샀고 음씨 솜씨 좋은 그녀가 집에서 직접 기른 겨울난 야채들
준비해 온마을 사람들이 즐겁게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크게 한 식구로 사는 세상, 혈연, 지연, 낮은사람, 높은 사람 따위를 따지지 않고 그냥 세상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는다는 세상을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공업화, 도시화로 삭막하다지만 마음 열면
대동 세상을 실천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서든지.
작은 음식이지만 나누길 참 잘했다 생각하며 '유토피아'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새끼밴 소가 출산 임박해 안절부절 못한다는 얘기, 올해 파종할 씨앗들 얘기......반장님의 굵게 패인 주름살에서,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이는 아주머니의
거센 머리카락올을 보면서 농산물이 제대로 대접받는 세상을 그려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농촌이 반드시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화원化園으로 봄단장 위한 첫나들이 했습니다.
꽃출석부 펼치면 해마다 거르지 않고 출석하여 진급하는 녀석들도 있지만
일년만 다니고 그만 두는 얘들도 많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머리핀, 머플러, 벨트, 머리띠 역할을 하는 악세서리들이죠.
늘 그자리에서 한평생을 하는 것들은 든든함을 주지만 톡톡 튀는 얘들은
마음에 드는 아이들만 불러올 수 있어 또다른 설렘을 줍니다.
주로 작은 울타리 밑(돌이나 기왓장으로 만들어 놓은)을 장식할 얘들이
없다면 늘 입던 옷 그대로라 얼마나 밋밋함을 줄란지!
노랑색 벨트에, 분홍 머리띠, 하양색 핀 등 내가 원하는 디지인에 색상으로
새뜻함을 줄 수 있으니 화원으로 향하는 발길은 아예 겅중겅중 뜁니다.
올핸 어느 옷엔 어떤 악센트를 줄까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입니다.
그런날은 그만큼의 노동을 전제하는 날이라 힘들만도 한데 한바탕 일하고
나면 몸이 참 가뿐해집니다. 대개 어둑사리 질때 까지 일합니다.
튜울립, 아리산, 마가렛, 마라고이데스, 노랑마가렛은 여름이 올때까지
예쁜 얼굴로 많은 위안 주겠지요.
아, 튜울립은 구근이라 해마다 그 자리에서 볼 수 있겠군요.
그리고 오늘 팔공산 화훼단지에서 편입한 수국, 작약은 따로 제 집을
장만해주었고 데크밑 기와장 낮은 울타리 장식할 '옥실란스(참사랑)는
처음 심어보는데 꽃잎이 참 잔잔한 분홍색입니다. 다년생이라는군요.
집뒤쪽 고추밭에 취꽃과 야생화 꽃씨도 뿌렸습니다.
작년에 고추 210포기 심어 겨우 너근 반 수확이고 무성한 번식력의
잡초를 이겨낼 재간 없어 올핸 아예 야생화 꽃밭으로 만들려고요.
벌개미취, 왜성과꽃 같은 큰 키의 가을꽃들은 마당보다는 그런 야생단지가
더 잘어울릴 것 같아 과감하게 옮겨심기 또는 씨앗 파종을 하고 있습니다.
제 머릿속은 온통 꽃셈을 놓느라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가 분주합니다.
하지만 그런 지독한 연애가 없습니다.
온통 고것들 생각으로만 가득차있으니 무엇에 비유할까요!
새로 출석한 얼굴들 그려봅니다.
저번에 몇 번까지 불렀더라...... 어차피 돌림병처럼 꽃들이 번지기 시작하면
순서가 없을꺼라 막 불러봅니다.
참나리, 둥글레, 미니수선(노랑꽃 드디어 고개 내밈), 보랏빛 크로커,
진분홍 너도 부추(우리 야생화), 큰으아리꽃(우리 야생화, 덩굴식물)
할미꽃...... 호미 가는 곳마다 생명의 흔적 보이면 경건해집니다.
밀레 '만종'의 농부 내외가 저녁종이 울려퍼지는 들판에서 왜 경건하게
합장을 하고 있는지 알듯도 합니다.
저녁 늦게까지 광기에 가까운 열정으로 많은 일들 해내고
일한 자국 둘러보며 대견해 합니다.
9시간여 산행을 한 후 내 발자국 흔적 묻혔을 능선을 바라보며
흐뭇한 마음으로 피로를 씻을때와 같습니다.

마당녀라 불리고 싶습니다.
호미들고 장화 신고 흙투성이 옷 입고 잔디모자 눌러쓰고 일하는 모습은
마당녀를 지나 여전사를 방불케 한답니다.
덜덜 떠는 사람 꼭 한 사람 있습니다. ㅎㅎㅎ

가뭄 끝에 빗방울 후두둑 떨어지면 폭폭 먼지 일며 피어나던 흙내처럼
꽃출석부 펼치면 욕망 덩어리 얼룩진 내 영혼에 꽃향내 포슬포슬 올라 옵니다.
불완전하고 유한한 삶이 지닐 수 밖에 없는 가슴속 폐허가 가려집니다.
IP *.122.6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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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3.13 07:11:13 *.115.160.23
행복을 만들어내는 솜씨는 누구와도 비길수 없는 분입니다.
젊은이들이 쓴 홉스봄의 글에 묻혀 송현님의 아름다운 정원에 들어 왔다 한마디 노래소리 없이 가버린 나를 보고 아마도 그들의 열정에 매료 된것 같습니다.

송현선생!
올 여름 울릉도에 갈 때 집에 들리면 우릴 위해 죽도 시장에서 횟감을 구해 회비빔밥을 만듭시다. 그와 같이 어름속에 넣어둔 연한 소주와 같이하면 여름이라도 운제선생 마당에 봄꽃이 필 것입니다.

밭일하다 덜석 주저앉은 송현님의 바지에 봄흙이 묻어 있는 모습이 보임니다. 지금우리 집에 귀한 소님이 와서 늦잠을 자고 있습니다. 백오라고 김용규씨 아시죠. 부산 기장군 연화리에 있는 숲을 견학하고 왔답니다. 늦께까지 숲이야기하다 잠이들어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손님이 와서 늦잠을 자니 저는 정말 좋습니다. 왜냐면 우리집이 편하니까 그런 것 아니 겄습니까. 다음에 운제님 집에서도 늦잠을 자고 싶습니다. 싱그런 일송정의 정기가 맞다인 곳에서...

*부디 매일 행복하세요. 그게 저의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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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2007.03.13 11:15:10 *.254.127.246
대동에서 큰 이불과 밥같은 사람이 있는데 송현님과 달국님같아요.
하동에서 삶의 향기나는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봄은 남쪽에서 시작되나봐요.
마을구경 화단구경 잘 하고 행복 가득히 퍼갑니다.
늘 봄날같은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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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3.14 05:19:15 *.70.72.121
덜 덜 떠는 한 사람 우리는 알지요.ㅋㅋ 사부님께서 늘 사랑하시고 믿으시는 그분께서 봄바람에 떠시다니요. 홍삼이라도 좀 다려드려야 하는 것 아니신지요? 두 분 함께 드셔요. 러브샷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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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
2007.03.14 10:33:41 *.243.45.194
써니님, 잘 지내시죠? 햇살이 참 곱게 풀리는 아침입니다.
바야흐르 봄 행진이 시작되나 봅니다. 나이가 들수록 봄이 좋아진다던 어른들 말씀이 생각납니다. 희망을 꿈꿀 수 있게 해줍니다. 봄은.
팍팍한 삶의 여정에 단비를 뿌려주기도, 황폐해진 가슴 부드럽게 만져주기도 합니다. 그쪽도 따뜻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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