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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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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4일 10시 02분 등록
3월 14일, 화이트데이.
아침부터 교실, 복도가 소란스럽습니다.
사탕을 한웅큼씩 안고 돌아다니며 건네주기 바쁩니다.
교실 뒷문에 주욱 서서 좋아하는 아이들 이름 불러내며 야단법석이군요.
8시 30분부터 9시까지 사제동행 독서시간인데 아무리 타일러도 막무가내입니다. 걍 둬야지 할 수 없네요.

데이문화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인 저는 데이문화에 대해 좋지 않은 점을
수많은 자료를 열거하며 비뚤어진 그 문화에 대해 홍보합니다.
재작년 6학년 맡았을때 빼빼로데이...
학급회의 절차를 거쳐 안하기로 했는데 몰래 숨겨와서 주고받다가 들켜서
난리가 났습니다.
전부 여학생들이 회의결과에 승복 못하고 가져와서 사물함에 숨겼던 거죠.
학급회의 결과 운운하며 모두 빼앗아서 쓰레기통에 넣어버렸습니다.
거의 불량 빼빼로였어요. 그래도 음식인데 버리는 것이 좀 찔렸지만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절기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면서 무슨 무슨 데이는 줄줄이
꿰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교사의 책임도 느끼죠.
절기에 대해서 상세하게 가르쳐준적 예전에 없었거든요.
그때 화장실에서 울고불고 하는 여학생들 모습이 선하네요.

오늘 화이트데이,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 주는 날 맞나요?
아이들 책상에 사탕이 즐비합니다.
특히 간과하지 못할 일은(이것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 무슨 데이때 마다
하나도 받지 못한채 고개 숙이고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가는 아이들입니다.
고학년일수록 상급학교일수록 심각하죠.
(다행히 오늘 4학년 우리반 아이들 책상에는 골고루 다 놓여있군요.)
어른들의 얄팍한 상혼에 멍드는 동심이 안타깝습니다.
출근길에 사탕든 아이들 왁자지끌한 복도 올라오며 바쁜 일정에 밀려
'데이 학습지' 미리 못챙겨 '아차' 싶더라구요.

그런데..... 단발머리 이쁜 혜민이가 직접 색종이로 예쁘게 접은 상자에 사탕
다섯 개를 넣어서 수줍게 가지고 왔네요.(저를 아주 따르는 아이입니다.)
사탕 하나마다 무슨 맛, 무슨 맛 일일이 삐뚤삐뚤한 지 글씨로 정성껏 써서
유리테이프로 붙여서요.
와! 이쁜 정성이라니! (이러면 안되는데...)
혜민이를 보며 순간 '데이문화' 근절에 앞장섰던 제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쩌죠? 후훗......

뒷산에 진달래가 한 두송이 피기 시작했답니다.
넷째주 토요 휴무일에 지인들 모시고 '화전놀이' 해볼랍니다.
처음이니까 흉내에 그칠지도 모르겠지만 울 엄마께 여쭈어 보고
정성껏 준비 하려고요.
찹쌀 가루 적당하게 반죽하여 '부꾸미' 부치고 뒤집어서
씻어 수술을 뗀 진달래 꽃잎 곱게 펴서 지져낸후
지리산 골짜기 솔 효소에 담궜다 건져내려 합니다.
아, 꽃잎 가운데 역시 지리산 골짜기에서 말린 곶감 가늘게
채썰어 고명으로 하고 잣도 하나씩 박으려고요.
어때요? 이만하면 작품이 되지 않을까요?
거기다 눈썹달 하나 걸어 두고 사람향기에 취하며 봄밤과 어우러지고
싶습니다.
초아 선생님 여름에 울릉도 갈때 들리시는 것도 좋지만
가까이 계신다면 초대하고 싶은데 먼 곳에 계셔서 마음으로 그칩니다.
다른 분들께도.....
그리고 삼월말에 무슨 행사도 있는듯 해서......

아, 수업시작종 쳤습니다.
아침에 화이트데이에 밀려 여기까지 와버렸습니다.
민트향 같은 하루 되세요! 혹 오자 있더라도 양해해주시길...


IP *.243.45.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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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
2007.03.14 20:41:09 *.122.106.126
후후..우리네 학창시절이 떠오릅니다..그때는 지금처럼 종류가 다양하진 않았지요...그저 발렌타인데이였던 것 같습니다...그뒤에 나타난 화이트데이....^^
그러고보면 대한민국의 삶이 물질적으로는 많이 풍족해진 것이 이런것에도 잘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사람은 어딜가나 남들보다 잘 챙겨줍니다...속정이 남다릅니다... 데이들을 만들어 1년 내내 챙겨주고 챙겨받습니다... 좋은것, 많은 것을 받아서가 맛이 아니라...기억한다는 것...생각한다는 것...그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는 그 아이적 순수함을 다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데이문화를 좀 수용해봐야겠다 싶습니다..

송현님의 글을 읽으니 김해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제 동생이 생각납니다...오늘 전화해서 발렌타인데이의 이야기를 좀 들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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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3.14 23:21:35 *.152.82.31
아....
수업종소리 ...
화전...
뜬금없는 데이사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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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2007.03.15 17:10:18 *.103.178.142
'무슨데이' 하는 날들이 이젠 어엿하게 우리나라 문화의 한 모퉁이에 자리잡은 것으로 봐야 겠습니다. 선생님께서도 결국,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감동 받으셨네요.
재밌는 일들이 많아 부럽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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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3.15 23:15:45 *.75.152.27
?ダ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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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제
2007.03.16 08:22:01 *.224.196.176
ㅋㅋㅋ
초아선생님의 답글을 읽고 아침부터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킥킥 웃었습니다. 집사람의 글을 보고 저도 그런 느낌을 약간 받았습니다.
3월말에는 초아선생님을 뵈러 사량도에 가야되고
울릉도로 가는 8월까지는 너무 많이 남았으니 그 사이에 좋은 날을
택해서 하늘의 구름을 지붕삼아 대숲에서 나오는 바람을 맞으며
맑고 순한 소주 한잔 나누면서 사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저가 만들어 보겠습니다.
지금 포항에는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비가 내리면 봄기운이 더욱 느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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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
2007.03.16 09:57:53 *.243.45.194
하이고, 초아 선생님, 삐지셨나봐요. ㅎㅎㅎ...
연거푸 행사는 힘드실 것같아 딴에는 배려였는데...
다산은 좋은사람들과의 모임을 만들어 일년에 몇 번 모임을 가지자 했는데 모월 모시가 아닌 눈오는 날, 매화 필 때, 참외가 익을 때, 연꽃이 한창일 때. 국화가 필 때..... 참 운치 있더군요.
어떻습니까? 우리집 뒷숲 아카시꽃 향기 발목까지 출렁일때,
찔레꽃 하얀 입술 수줍게 내밀 때 또는 인동초꽃 향기 동구밖길 자욱할 때쯤은요.
하늘낮은 날입니다. 오늘은 앞집 소두엄 얻어 내기로 했습니다. 동기회도 못가고...
찔레, 인동초도 옮겨심어야하구요. 삼월에는 모든 일정이 전폐입니다. 마당 가꾸는 일에 맞춰야하기 때문이죠. 좋은 봄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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