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운 이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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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몽골여행팀의 서기 희석입니다.
일상의 일들과 밀린 업무 때문에 모두들 바쁜 한 주를 보내시겠군요. ^^
몽골 여행을 정리하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저희들의 동선을 적어봅니다.
서기로서 보다 충실히 기록하지 못한 아쉬움이 드네요. ^^
기록 보존용으로 만든 자료이니 재미는 없을 겁니다.
후기 쓰시는 데에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정리는 제가 기록한 수첩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첫째날. 8월 14일 화요일
몽골시각 8월 14일 오후 2시 35분
해발 1,300미터의 울란바토르 도착.
“습도가 낮아 끈적끈적함이 없는 쾌적한 더위다.
해발이 높아서인지 구름이 무척이나 가깝다. ^^ ”
우리 19명은 봉고차 3대에 나눠 탔다.
그리고,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뭉근머리트로 Go~ Go~ 씽~~~
“무려 다섯 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란다.
시원한 바람, 초원, 그리고 도로 위로 불쑥 뛰어드는 소.
이들을 통해 내가 낯선 곳에 와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울란바타르 시내의 화력발전소가 이채롭다.
화력발전소가 마치 (중국 영화에 나오는) 나무로 만든 욕조처럼 생겼다.
시내를 벗어나서는 최고시속 110km로 달렸는데도
아무 것도 없는 초원에 있으니 빠르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마치 비행기 차창 밖을 봐도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뭉근머리트로 달리는 이 때가 아마 관광봉고가 탄생했던 시기였으리라.
오병칸, 신재동, 김영훈, 오세나, 박소라, 구해언, 김민선 이렇게 맞나?
나는 다른 차에 있었기에 명단이 정확하진 않았지만, 저 분들로 기억된다.
내가 탄 차에는 은미누나, 은남누나, 영훈형, 원영이, 도윤형, 그리고 잉케가 탔다.
오후 8시 50분 뭉근머리트 도착.
네 번의 밤을 묵을 곳이다. 몽골 전통 숙소인 ‘게르’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점심 기내식 이외에는 밥을 먹지 못한 일행은 곧바로 식당으로 갔다.
미역국과 밥을 먹었다.
그리고, 7개의 ‘게르’로 나누어 여장을 풀었다. 우리는 이렇게 들어갔다.
1번 게르 : 정선이, 박소라, 오세나
2번 게르 : 이은남, 한정화, 김민선
3번 게르 : 사무실
4번 게르 : 이은미, 오윤, 구해언
5번 게르 : 사부님, 신재동, 이희석
6번 게르 : 송창용, 오병곤, 신종윤
7번 게르 : 최영훈, 김영훈, 김도윤, 최원영
개인 짐을 풀어 정리하고 사무실에 모이니 10시 35분이었다.
박수를 3번 치는 것으로 시작된 하루 점검 시간.
영훈형이 내일 일정을 간단하게 설명했고
사부님은 여권 간수를 잘 하라는 당부를 하셨다.
한국여권이 굉장히 비싸다고 한다. (500만원 정도라니~)
우리는 오랜 시간 이동한 것으로 첫째날을 마무리했다.
각자의 집 → 인천국제공항 → 칭기즈칸 공항(울란바타르) → 뭉근머리트
첫째날, 밤하늘에 별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날이 흐리었던 것이다.
나는 여행 전날 밤을 꼬박 새었기에 피곤했나 보다. 곧바로 잠들었다.
둘째날. 8월 15일
사부님의 “일어나야지” 라는 부드러운 음성 소리에 잠을 깼다.
시계를 보니 7시 20분이다. 몸이 조금 뻐근했다.
7시 30분 아침 식사, 8시 30분 승마교육, 9시부터는 말을 타는 일정이었다.
40분 동안 느긋한 아침 식사를 하고, 간단한 승마교육이 진행되었다.
우리는 오전에 말을 탔다. 90분 정도를 탔던 것 같다.
더 타고 싶었지만, 가이드가 처음이라 무리하면 안 된다고 했다.
숙소로 돌아와 돌아와서 농구와 미니축구를 하기도 하고,
몇몇은 쉬기도 하고, 발야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활도 한 번씩 쏘았다.
점심을 먹은 후, 1시 30분부터 2시까지는 양 잡는 것을 봤다.
2시부터 5시 30분까지는 말을 탔다.
배불뚝이 유목민인 나의 말 주인은 이름이 ‘시내’ 였다.
그 동네에서 아주 부자라고 한다. 양 400마리, 소 200마리, 말 100마리를 가졌다 한다.
우리는 ‘시내’의 집 앞에 있는 언덕에 올랐다.
언덕에서 초원을 내려다보니 가슴이 시원했다.
그 곳에서 한국 VS 몽골의 노래자랑이 잠깐 있었다.
우리는 4명의 대표선수가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윤, 오병곤, 정선이, 신종윤!
돌아오는 길에서는 나의 주인인 ‘시내’와 함께 신나게 말을 달릴 수 있었다.
7시 20분부터 8시경까지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8시 30분부터 최영훈, 오윤, 한정화, 이렇게 3명의 과제 발표 및 피드백을 하였다.
8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각에 시작하여 11:47분에 끝났다.
그 후, 잘 사람은 자고, 마실 사람을 마시는 술자리가 이어졌다.
종윤형이 3번 게르 문을 잠그고 나온 시간이 2시였나, 3시였나, 4시였나?
셋째날. 8월 16일
역시 사부님의 “니네들 일어나야 할 텐데” 라는 소리에 잠을 깼다. 7시였다.
“생각보다 몸이 가볍다. 상쾌하다.”
다른 게르를 둘러보니 기상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나 보다. 일어난 분이 몇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아침 식사를 거르지는 않았다.
19명밖에 안 되니 밥 먹는 이들이 빠졌나, 하고 둘러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식사를 하고 일기를 썼다.
9시 45분 말을 타고 어느 마을을 향했다.
그 마을의 우체국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고, 우리는 삼삼오오 무리 지어 말을 달렸다.
내가 탔던 말의 주인 ‘시내’는 이 날부터 나더러 혼자 탈 수 있도록 내게 고삐를 쥐어주었다.
아~! 신난다. 아직 말이 내 말을 잘 듣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다.
11시 45분에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는 상점에서 ‘광천수’를 사서 목을 축이고 12시 10분에 다시 출발했다.
(내 마음대로) ‘구름동산’이라 이름 지은 언덕 옆의 천막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맛있는 비빔밥을 큰 대접에 담아서 먹었다.
너무 많이 비벼서 남게 된 밥을 가위 바위 보를 해서 벌칙으로 서로 먹이기를 하다가
결국 팀을 나눠 닭싸움을 하여 진 팀이 모두 먹기로 했다. 우리 팀이 이겼다. 다행이다.
은남누나, 종윤형과 함께 구름동산에 올랐다.
꽤 높은 동산이었고 오를수록 환상적인 기분을 느꼈다. 뽕 같았다.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혼자 빙그르르 돌기도 했다.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여기서 하늘로 점프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
그리고, 우리는 칭기즈칸이 자주 올랐다는 돌산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돌산에 오르고 내리는 30분 사이에 유목민들이 술을 많이 마셔 약간의 불상사 발생.
다행히도 우리의 큰 사고는 없었다. (소라누나가 낙마할 뻔 했지만 침착하게 잘 넘겼다.)
말을 달려 6시경이 되자 모든 일행들이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로 이동할 때 소라누나의 말이 급하게 달려가는 바람에
하마터면 떨어질 뻔한 일이 일어났다.
너무나도 다행스럽게도 소라누나는 침착하게 말을 꼭 붙들고 있어서 무사했다.
뒤쫓아 간 세나누나의 활약이 있었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나는 ‘시내’와 그의 동생이 술에 취한 까닭에 잉케가 차에 타라고 하여
돌아오는 길에는 말을 타지 못했다.
아쉬웠지만, 잉케가 너무 흥분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를 도와야 했다.
봉고를 타고 먼저 숙소에 도착했다.
잠시 후, 사부님과 도윤형 등이 말을 타고 신나게 달려오는 장면을 보면서
아쉬움이 또 한 번 들었다. ^^
봉고를 타고 온 후, 통나무 게르(?)에서 씻을 물을 받고 잠깐 쉬었다.
종윤이 형의 탈레반 사진을 찍었다.
8시가 식사 시간이었고, 식사 시간 전에 우리는 활쏘기 대회를 벌였다.
맥주 한박스 내기 시합이었고, 한 팀은 5명으로 구성되었다.
5명이 2발씩 쏘아 모두 10발을 쏘게 된다. 많이 맞추는 팀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맞히면 이길 수 있는 경기였고 우리팀이 졌다.
명사수 사부님이 한 발을 명중시켰기 때문이다.
사부님은 이번 여행기간 동안, 3발이나 맞추셨다.
저녁을 먹고 9시 10분부터 11시 45분까지 과제 발표 및 피드백 시간을 가졌다.
이 때, 시작시간보다 10분 남짓이 넘어서야 모두 모여서 사부님의 짧은 경고(^^)가 있었다.
발표는 김도윤, 이렇게 1명이었다. (캠프파이어를 위하여 한 명만 발표했다.)
발표가 끝난 후, 광란의 캠프파이어가 시작되었다.
3기 연구원이 아닌 분들이 준비한 “저별은 나의별” 공연이 한층 분위기를 띄웠다.
처음에는 돌아가며 솔로 무대를 가졌다.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었고
나중에 가서는 다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신명에 몸을 맡겼다.
모나지라, 여행을 떠나요, 젊음의 노트, 제3한강교, 내가, 당신의 의미, 저별은 나의 별,
사랑했어요, 호랑나비, 여름날의 추억, 새들처럼 등의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몇 가지 에피소드.
의자를 태울 것일까?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민선 누나와 화장실 뒤에 있는 나무를 구해 온 것.
사부님께서 2곡의 노래를 연이어 부르시던 장면
캠프파이어가 끝난 후, 게르 밖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별을 보다 들어간 5인방.
(넷째날 부터 마지막 날까지의 기록은 오늘 밤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IP *.134.133.71
일상의 일들과 밀린 업무 때문에 모두들 바쁜 한 주를 보내시겠군요. ^^
몽골 여행을 정리하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저희들의 동선을 적어봅니다.
서기로서 보다 충실히 기록하지 못한 아쉬움이 드네요. ^^
기록 보존용으로 만든 자료이니 재미는 없을 겁니다.
후기 쓰시는 데에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정리는 제가 기록한 수첩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첫째날. 8월 14일 화요일
몽골시각 8월 14일 오후 2시 35분
해발 1,300미터의 울란바토르 도착.
“습도가 낮아 끈적끈적함이 없는 쾌적한 더위다.
해발이 높아서인지 구름이 무척이나 가깝다. ^^ ”
우리 19명은 봉고차 3대에 나눠 탔다.
그리고,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뭉근머리트로 Go~ Go~ 씽~~~
“무려 다섯 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란다.
시원한 바람, 초원, 그리고 도로 위로 불쑥 뛰어드는 소.
이들을 통해 내가 낯선 곳에 와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울란바타르 시내의 화력발전소가 이채롭다.
화력발전소가 마치 (중국 영화에 나오는) 나무로 만든 욕조처럼 생겼다.
시내를 벗어나서는 최고시속 110km로 달렸는데도
아무 것도 없는 초원에 있으니 빠르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마치 비행기 차창 밖을 봐도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뭉근머리트로 달리는 이 때가 아마 관광봉고가 탄생했던 시기였으리라.
오병칸, 신재동, 김영훈, 오세나, 박소라, 구해언, 김민선 이렇게 맞나?
나는 다른 차에 있었기에 명단이 정확하진 않았지만, 저 분들로 기억된다.
내가 탄 차에는 은미누나, 은남누나, 영훈형, 원영이, 도윤형, 그리고 잉케가 탔다.
네 번의 밤을 묵을 곳이다. 몽골 전통 숙소인 ‘게르’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점심 기내식 이외에는 밥을 먹지 못한 일행은 곧바로 식당으로 갔다.
미역국과 밥을 먹었다.
그리고, 7개의 ‘게르’로 나누어 여장을 풀었다. 우리는 이렇게 들어갔다.
1번 게르 : 정선이, 박소라, 오세나
2번 게르 : 이은남, 한정화, 김민선
3번 게르 : 사무실
4번 게르 : 이은미, 오윤, 구해언
5번 게르 : 사부님, 신재동, 이희석
6번 게르 : 송창용, 오병곤, 신종윤
7번 게르 : 최영훈, 김영훈, 김도윤, 최원영
개인 짐을 풀어 정리하고 사무실에 모이니 10시 35분이었다.
박수를 3번 치는 것으로 시작된 하루 점검 시간.
영훈형이 내일 일정을 간단하게 설명했고
사부님은 여권 간수를 잘 하라는 당부를 하셨다.
한국여권이 굉장히 비싸다고 한다. (500만원 정도라니~)
우리는 오랜 시간 이동한 것으로 첫째날을 마무리했다.
각자의 집 → 인천국제공항 → 칭기즈칸 공항(울란바타르) → 뭉근머리트
첫째날, 밤하늘에 별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날이 흐리었던 것이다.
나는 여행 전날 밤을 꼬박 새었기에 피곤했나 보다. 곧바로 잠들었다.
둘째날. 8월 15일
사부님의 “일어나야지” 라는 부드러운 음성 소리에 잠을 깼다.
시계를 보니 7시 20분이다. 몸이 조금 뻐근했다.
7시 30분 아침 식사, 8시 30분 승마교육, 9시부터는 말을 타는 일정이었다.
40분 동안 느긋한 아침 식사를 하고, 간단한 승마교육이 진행되었다.
우리는 오전에 말을 탔다. 90분 정도를 탔던 것 같다.
더 타고 싶었지만, 가이드가 처음이라 무리하면 안 된다고 했다.
숙소로 돌아와 돌아와서 농구와 미니축구를 하기도 하고,
몇몇은 쉬기도 하고, 발야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활도 한 번씩 쏘았다.
점심을 먹은 후, 1시 30분부터 2시까지는 양 잡는 것을 봤다.
2시부터 5시 30분까지는 말을 탔다.
배불뚝이 유목민인 나의 말 주인은 이름이 ‘시내’ 였다.
그 동네에서 아주 부자라고 한다. 양 400마리, 소 200마리, 말 100마리를 가졌다 한다.
우리는 ‘시내’의 집 앞에 있는 언덕에 올랐다.
언덕에서 초원을 내려다보니 가슴이 시원했다.
그 곳에서 한국 VS 몽골의 노래자랑이 잠깐 있었다.
우리는 4명의 대표선수가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윤, 오병곤, 정선이, 신종윤!
돌아오는 길에서는 나의 주인인 ‘시내’와 함께 신나게 말을 달릴 수 있었다.
7시 20분부터 8시경까지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8시 30분부터 최영훈, 오윤, 한정화, 이렇게 3명의 과제 발표 및 피드백을 하였다.
8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각에 시작하여 11:47분에 끝났다.
그 후, 잘 사람은 자고, 마실 사람을 마시는 술자리가 이어졌다.
종윤형이 3번 게르 문을 잠그고 나온 시간이 2시였나, 3시였나, 4시였나?
셋째날. 8월 16일
역시 사부님의 “니네들 일어나야 할 텐데” 라는 소리에 잠을 깼다. 7시였다.
“생각보다 몸이 가볍다. 상쾌하다.”
다른 게르를 둘러보니 기상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나 보다. 일어난 분이 몇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아침 식사를 거르지는 않았다.
19명밖에 안 되니 밥 먹는 이들이 빠졌나, 하고 둘러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식사를 하고 일기를 썼다.
9시 45분 말을 타고 어느 마을을 향했다.
그 마을의 우체국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고, 우리는 삼삼오오 무리 지어 말을 달렸다.
내가 탔던 말의 주인 ‘시내’는 이 날부터 나더러 혼자 탈 수 있도록 내게 고삐를 쥐어주었다.
아~! 신난다. 아직 말이 내 말을 잘 듣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다.
11시 45분에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는 상점에서 ‘광천수’를 사서 목을 축이고 12시 10분에 다시 출발했다.
(내 마음대로) ‘구름동산’이라 이름 지은 언덕 옆의 천막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맛있는 비빔밥을 큰 대접에 담아서 먹었다.
너무 많이 비벼서 남게 된 밥을 가위 바위 보를 해서 벌칙으로 서로 먹이기를 하다가
결국 팀을 나눠 닭싸움을 하여 진 팀이 모두 먹기로 했다. 우리 팀이 이겼다. 다행이다.
은남누나, 종윤형과 함께 구름동산에 올랐다.
꽤 높은 동산이었고 오를수록 환상적인 기분을 느꼈다. 뽕 같았다.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혼자 빙그르르 돌기도 했다.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여기서 하늘로 점프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
그리고, 우리는 칭기즈칸이 자주 올랐다는 돌산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돌산에 오르고 내리는 30분 사이에 유목민들이 술을 많이 마셔 약간의 불상사 발생.
다행히도 우리의 큰 사고는 없었다. (소라누나가 낙마할 뻔 했지만 침착하게 잘 넘겼다.)
말을 달려 6시경이 되자 모든 일행들이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로 이동할 때 소라누나의 말이 급하게 달려가는 바람에
하마터면 떨어질 뻔한 일이 일어났다.
너무나도 다행스럽게도 소라누나는 침착하게 말을 꼭 붙들고 있어서 무사했다.
뒤쫓아 간 세나누나의 활약이 있었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나는 ‘시내’와 그의 동생이 술에 취한 까닭에 잉케가 차에 타라고 하여
돌아오는 길에는 말을 타지 못했다.
아쉬웠지만, 잉케가 너무 흥분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를 도와야 했다.
봉고를 타고 먼저 숙소에 도착했다.
잠시 후, 사부님과 도윤형 등이 말을 타고 신나게 달려오는 장면을 보면서
아쉬움이 또 한 번 들었다. ^^
봉고를 타고 온 후, 통나무 게르(?)에서 씻을 물을 받고 잠깐 쉬었다.
종윤이 형의 탈레반 사진을 찍었다.
8시가 식사 시간이었고, 식사 시간 전에 우리는 활쏘기 대회를 벌였다.
맥주 한박스 내기 시합이었고, 한 팀은 5명으로 구성되었다.
5명이 2발씩 쏘아 모두 10발을 쏘게 된다. 많이 맞추는 팀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맞히면 이길 수 있는 경기였고 우리팀이 졌다.
명사수 사부님이 한 발을 명중시켰기 때문이다.
사부님은 이번 여행기간 동안, 3발이나 맞추셨다.
저녁을 먹고 9시 10분부터 11시 45분까지 과제 발표 및 피드백 시간을 가졌다.
이 때, 시작시간보다 10분 남짓이 넘어서야 모두 모여서 사부님의 짧은 경고(^^)가 있었다.
발표는 김도윤, 이렇게 1명이었다. (캠프파이어를 위하여 한 명만 발표했다.)
발표가 끝난 후, 광란의 캠프파이어가 시작되었다.
3기 연구원이 아닌 분들이 준비한 “저별은 나의별” 공연이 한층 분위기를 띄웠다.
처음에는 돌아가며 솔로 무대를 가졌다.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었고
나중에 가서는 다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신명에 몸을 맡겼다.
모나지라, 여행을 떠나요, 젊음의 노트, 제3한강교, 내가, 당신의 의미, 저별은 나의 별,
사랑했어요, 호랑나비, 여름날의 추억, 새들처럼 등의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몇 가지 에피소드.
의자를 태울 것일까?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민선 누나와 화장실 뒤에 있는 나무를 구해 온 것.
사부님께서 2곡의 노래를 연이어 부르시던 장면
캠프파이어가 끝난 후, 게르 밖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별을 보다 들어간 5인방.
(넷째날 부터 마지막 날까지의 기록은 오늘 밤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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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희석이 한 마리 고삐풀린 망아지 였지. 온통 초원을 누비고 우리들 마음까지 속속들이 파고들며 새로운 몽골 신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되었지. 오병칸과 더불어 쿠빌라이석으로 불러도 무방할 듯^^
너의 진가와 아름다운 모습을 함께 누린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는 비내리는 테를지의 밤에 탄생한 MK BLACK의 아직까지 유일한 남자 회원은 오직 너 뿐이란다.
요한선배 내년에 또 같이 가자구요. 오병칸과 더불어 신재순(?) 두 분의 선배들의 동행이야말로 즐겁고 든든함 그 자체였다오.
착한 민선이 관광봉고를 들락날락 정신없었지... 이 봉고는 인원이 너무 많아 늘 9명이나 탔어도 지원자가 계속 밀렸다우.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우리 차에 따라붙은 몽골 현지가이드 간조리그도 한 몫 단단히 끼었고 드라이버 간수끄의 명음악 퍼레이드는 애시부터 우리들의 여행의 서막을 장식했으며, 그 날 내내 손뼉치며 가느라 비명에 가까운 즐거움과 자지러질 듯한 웃음은 세나세나 오세나양과 함께 해거름의 초원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관광봉고를 열광의 도가니탕으로 펄펄 끓게 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대단히 힘찼다오.
넷째 날 수영모자까지 뒤집어 쓰고 오직 하나만 입고 이판사판 공사판으로 밀어붙이듯 향산의 물에 빠진 야생마처럼 쌩쌩달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환상 그 자체였다오. 육중한 몸매에 쫙 달라붙은 타이즈에 가까운 차림은 조각 같은 향산의 몸매를 그대로 보여주며 마음껏 눈요기를 하게 해 주었다는... ㅋㄷㅋㄷ
너의 진가와 아름다운 모습을 함께 누린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는 비내리는 테를지의 밤에 탄생한 MK BLACK의 아직까지 유일한 남자 회원은 오직 너 뿐이란다.
요한선배 내년에 또 같이 가자구요. 오병칸과 더불어 신재순(?) 두 분의 선배들의 동행이야말로 즐겁고 든든함 그 자체였다오.
착한 민선이 관광봉고를 들락날락 정신없었지... 이 봉고는 인원이 너무 많아 늘 9명이나 탔어도 지원자가 계속 밀렸다우.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우리 차에 따라붙은 몽골 현지가이드 간조리그도 한 몫 단단히 끼었고 드라이버 간수끄의 명음악 퍼레이드는 애시부터 우리들의 여행의 서막을 장식했으며, 그 날 내내 손뼉치며 가느라 비명에 가까운 즐거움과 자지러질 듯한 웃음은 세나세나 오세나양과 함께 해거름의 초원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관광봉고를 열광의 도가니탕으로 펄펄 끓게 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대단히 힘찼다오.
넷째 날 수영모자까지 뒤집어 쓰고 오직 하나만 입고 이판사판 공사판으로 밀어붙이듯 향산의 물에 빠진 야생마처럼 쌩쌩달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환상 그 자체였다오. 육중한 몸매에 쫙 달라붙은 타이즈에 가까운 차림은 조각 같은 향산의 몸매를 그대로 보여주며 마음껏 눈요기를 하게 해 주었다는... ㅋㄷㅋ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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