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비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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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눈을 감고 그 곳의 바람을 느껴본다.
그 곳의 물기 없는 흙내음을 떠올려본다.
그 곳의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본다.
첫 날 탔던 말의 잘 생긴 엉덩이,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
햇빛에 맑게 빛나던 강,
모든 것들이 너무도 생생하다.
건조한 몽골에서의 7일은
나에게 있어서 단비 같은 휴식이었다.
#1. 고요한 나라와의 만남.
이 곳에 가기 전까지, 나는 도시가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다. 분명히 도로 위의 도시는 시끄럽지만, 우리 집은 산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단 한번도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조용하다’라는 말을 체험해본 일이 없던 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몽골은…정말 대단히 철저하게 ‘조용했다’. 밤에 게르 앞에 앉아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조차 잠들어 버리는 듯 했다.
사람들과 새벽까지 왁자지껄, 걸판지게 술자리를 갖고 나서도 방에 돌아가는 그 짧은 길 위에서는 마치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평소 같이 혼자 있을 때 느끼는 막연한 외로움이나 막막함 대신, 가슴 속이 무언의 행복감으로 풍만하게 차올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5월 인가 6월인가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아버지에게서 왔던 전화를 받던 기억이 생생하다. 도서관 열람실 문들을 지나쳐 서가로 가는 복도에서였다. 복도 중간에 멈춰 서서 나는 게시판에 올라온 방학 한자 시험 대비 수업을 신청할지 말지를 고민하면서 점심 대신 초콜릿 바 하나를 먹고 있었다.
그 때 전화가 왔다.
아빠였다.
간만에 하는 통화였음에도 아빠는 한 마디 안부 인사도 없이 대뜸 물었다.
“너 8월에 연구원들이랑 몽골갈래?”
분명히 평소 같았으면 조금 꺼려했을 일이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을 좀 두려워하는 나로서는 저 길지도 않은 문장에서 분명히 ‘연구원들’이란 단어를 크게 들었을 것이고, ‘no’라고, 최소한 ‘생각해 볼게’라고 말했을 것이다. 근데 어쩐 일인지…그 당시에는 ‘몽골’이 크게 들렸고 그 자리에서 ‘와! 가자!’라고 말했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 돌이켜 생각 해보건데, 당시의 나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던 것 같다. 변화경영연구소에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처럼 나도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지금 생각해도) 철없던 대학교 1학년 동안,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시도했다. 욕심에 앞서 선택한 것들이 결국 결실을 맺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마도 그 때의 나는 완벽하게 나의 일상을 중단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낼 수 있는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기질 상 가만히 있는 것이 싫어서 뭔가 움직이고 싶었다.
어디든 좋았다. 그때 아빠가 기회를 던졌던 것뿐이었고, 그래서 나는 ‘연구원’대신 ‘몽골’을 크게 들었던 거라 생각된다.
그렇게 몽골과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몽골에서 꼭 듣고 싶었던 노래가 있었다. 유명한 노래는 아니고, ‘두번째 달’이라는 국내 에스닉 퓨전계 밴드의 falling star였다.
조용한 가운데 모닥불 피워놓고 둘러앉은 사람들이 짐 꾸러미에서
은 악기를 하나둘 꺼낸다.
기타, 하모니카, 피리, 그 외의 또 어떤 것들…그리고 바람소리에 맞추어
연주를 한다…
그런 느낌의 곡이다. 은하수가 보이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노래를 듣길 바랬는데…mp3를 두고 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본의 아니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귀가 열려있었기 때문에 귀한 말타기 시간에 말잡이 몽골 사람들과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해야 했지만, 또 귀가 열려있었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던 것 같다.
내 온몸의 감각이 살아 있었던 것 같다.
#2. 몽골의 일상
사실 몽골 초원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은 그리 아름답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실재로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분명히 세나 언니, 소라 언니, 은미 언니, 희석이 형에 나까지 총 다섯 명이 누워있었음에도, 내 발 밑에는 시커먼 개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별도 별이지만, 나는 낯선 동물의 출현에 크나큰 두려움을 느끼며 누워있었다. 누워있다는 상태가 매우 무방비한 상태라는 것을 그 때 처음 절실히 깨달았다. 만약 내가 그 개의 꼬리를 무심결에 밟아 심기를 건드려서 이 녀석이 나한테 달려 들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그 날카로운 이빨에 팔이라도 한쪽 떼어주어야 했을 거고, 행여나 게르 캠프 문 밖에서 소리도 없이 늑대 떼가 들이닥쳐 마침 그날 마당에 누워있다가 고깃덩이가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라고 까지 비약이 되니, 밤하늘이 더더욱 차게 빛났다. 휴
씻지 못하는 상황은 그리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한국에서도 잘 안 씻으니까 삼-사일 정도 머리를 감지 못하는 것도 별로 상관 없었다. 다만, 사일째 아침에는 그리 깨끗하지 않은 물임에도 샤워기 밑에서 뜨끈한 물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정말 감사했다. 오죽했으면 초원이 파아랗게 대단히 싱싱해 보였겠나 싶다.
지금도 기분 좋은 상상은 기운 센 흰말을 타고 초원 저 멀리의 지평선을 향해 마구 말을 달렸던 일이다. 말을 타고 초원을 누비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특히나 말을 타기 시작한 첫날 마지막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게르 캠프를
한바퀴 돌고 났을 때의 그 흥분, 두근거림, 황홀경의 경험은 말타기만이 가진 오묘한 매력에 나를 열중시키기 충분했다.
#3. People
이번 여행의 또 하나의 기쁨은, 함께 간 사람들이었다. 최영장군님, 원영이, 종윤오라버니, 창용오라버니, 써니누님, 오병칸옵화, 소라언니, 세나언니, 은남누님, 윤이언니, 은미언니, 희석이형, 재순언니, 교주님, 정화언니, 민선언니, 도윤오빠 (빠진 사람 없죠?) 와 싸부라 불리는 아빠.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들은 함께 ‘살았다’.
우리는 함께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으며,
말을 탔고,
몇 가지 게임을 했고,
식사를 함께 했고,
강점 발표 시간에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며,
별을 보면서 소원을 말했다.
나는 선천적으로 INFP형 인간이었다. 특히 어렸을 때엔 굉장히 내향적이었다.
전화로 피자나 치킨 따위를 주문할 때도 마음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한 번 돌려보고 하지 않으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꽁꽁 얼어있었던 게 나의 과거였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ENFP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지금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외향형이겠거니 한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서 선천적 내향성과 후천적 외향성은 많이 다툰다. 어떤 때에는 외향성이 많이 발휘되어 다른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운이 쪼옥 빠져 의기소침하고 남들과 입을 섞기 싫어하는 원래의 나로 돌아가버린다.
뜬금없이 내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이번에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에게 내향적인 구해언도 외향적인 구해언도 무리 없이 섞일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성격 특성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문제해결을 위한 의견을 나누는 동안에도 커다란 장애 없이 해결되었다.
이번 여행 때 나는 타로 카드를 가져갔었다. 사실, 이번 여행을 위해 한 벌의 카드를 새로 구입했다. 가지고 있던 카드들은 사촌언니 집에 놓고 와서 도저히 여행 전까지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저녁 강점 발표 시간 때 조금 소문을 흘리고, 몇 명의 점을 봐주고 나니, 금새 구경꾼들이 몰렸다. 관광봉고 특등 관람석(앞자리)에 함께 앉았던 세나 언니와 둘이 동업을 계약(?)하고 VIP손님들을 늘려갔다. 가장 나를 괴롭혔던 사람은 민선언니!였다.
타로점 개시 첫날 저녁 마지막 손님으로서 많은 질문 공세를 퍼부으며 연거푸 점을 쳤다. 예쁜 얼굴에 점점 수심이 드리워지는 모습을 보며 귀엽다고 생각했다. (허허, 누님 죄송합니다.)
점을 치면서 느꼈던 점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점괘 그 자체가 아닌 어떤 일에 대한 ‘확신’ 이라는 점이었다. 사람들의 고민과 그에 대한 해결은 항상 자기 자신 안에 존재한다. 회사를 바꿀까 말까에 대한 고민은, 조직 사회 속에 자신이 더 이상 예속 되고 싶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부의 소망에서부터 시작된다. 1인 기업이 자신에게 맞을까 그렇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은,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희망을 현실과 결부시키고자 하는 의지에서부터 비롯된다.
'모든 것은 자신의 내부에서 시작된다. '
그런 점에서 내가 준비한 이 작은 이벤트가 함께 여행했던 분들의 마음 속에
한 가지 자신감과 확신으로 남길 바란다.
#4. 닫는 글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한가지 마음 속으로 결심한 것이 있다. 에딘버러 궁전에서도, 일본의 모리 빌딩 위에서도,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내가 했던 말은 ‘와! 멋있다/아름답다’ 라는 단 하나로 수렴되었다.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그 어떤 곳을 가든지 그곳의 풍경을 기억하면서 ‘멋있었다’ 밖에 말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남지 말 것.
나의 결심은 바로 그 것뿐이었다.
정작 몽골 가서는 그 생각은 잊고 지냈다. 나는 그 어떤 자연풍경을 보면서도 멋있다라든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마음 속에 풍경을 억지로 그려 넣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초원을 스치는 바람처럼, 대륙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었고, 새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했었다. 기를 쓰고, 뭔가 얻어가겠다라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몽골에서의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글을 써야겠다는 압박감도 없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그렇게 지내다 왔다. 모순이지만 무에서 유가 나온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몽골은 분명히 시각적으로 사람을 감동시키지 않는다. 베르사유를 보고 루브르를 보고, 오르세를 보고 왔다. 라고 말하는 것과 몽골을 다녀왔다고 말하는 것은 그 느낌이 매우 다르다. 다만 몽골을 다녀온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 곳은, 아주 자연스럽게 휴식을 위한 안식처로 평화롭고 푸근하게 남아있어 줄 거라고 믿는다.
IP *.239.150.118
눈을 감고 그 곳의 바람을 느껴본다.
그 곳의 물기 없는 흙내음을 떠올려본다.
그 곳의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본다.
첫 날 탔던 말의 잘 생긴 엉덩이,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
햇빛에 맑게 빛나던 강,
모든 것들이 너무도 생생하다.
건조한 몽골에서의 7일은
나에게 있어서 단비 같은 휴식이었다.
#1. 고요한 나라와의 만남.
이 곳에 가기 전까지, 나는 도시가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다. 분명히 도로 위의 도시는 시끄럽지만, 우리 집은 산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단 한번도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조용하다’라는 말을 체험해본 일이 없던 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몽골은…정말 대단히 철저하게 ‘조용했다’. 밤에 게르 앞에 앉아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조차 잠들어 버리는 듯 했다.
사람들과 새벽까지 왁자지껄, 걸판지게 술자리를 갖고 나서도 방에 돌아가는 그 짧은 길 위에서는 마치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평소 같이 혼자 있을 때 느끼는 막연한 외로움이나 막막함 대신, 가슴 속이 무언의 행복감으로 풍만하게 차올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5월 인가 6월인가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아버지에게서 왔던 전화를 받던 기억이 생생하다. 도서관 열람실 문들을 지나쳐 서가로 가는 복도에서였다. 복도 중간에 멈춰 서서 나는 게시판에 올라온 방학 한자 시험 대비 수업을 신청할지 말지를 고민하면서 점심 대신 초콜릿 바 하나를 먹고 있었다.
그 때 전화가 왔다.
아빠였다.
간만에 하는 통화였음에도 아빠는 한 마디 안부 인사도 없이 대뜸 물었다.
“너 8월에 연구원들이랑 몽골갈래?”
분명히 평소 같았으면 조금 꺼려했을 일이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을 좀 두려워하는 나로서는 저 길지도 않은 문장에서 분명히 ‘연구원들’이란 단어를 크게 들었을 것이고, ‘no’라고, 최소한 ‘생각해 볼게’라고 말했을 것이다. 근데 어쩐 일인지…그 당시에는 ‘몽골’이 크게 들렸고 그 자리에서 ‘와! 가자!’라고 말했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 돌이켜 생각 해보건데, 당시의 나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던 것 같다. 변화경영연구소에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처럼 나도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지금 생각해도) 철없던 대학교 1학년 동안,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시도했다. 욕심에 앞서 선택한 것들이 결국 결실을 맺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마도 그 때의 나는 완벽하게 나의 일상을 중단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낼 수 있는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기질 상 가만히 있는 것이 싫어서 뭔가 움직이고 싶었다.
어디든 좋았다. 그때 아빠가 기회를 던졌던 것뿐이었고, 그래서 나는 ‘연구원’대신 ‘몽골’을 크게 들었던 거라 생각된다.
그렇게 몽골과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몽골에서 꼭 듣고 싶었던 노래가 있었다. 유명한 노래는 아니고, ‘두번째 달’이라는 국내 에스닉 퓨전계 밴드의 falling star였다.
조용한 가운데 모닥불 피워놓고 둘러앉은 사람들이 짐 꾸러미에서
은 악기를 하나둘 꺼낸다.
기타, 하모니카, 피리, 그 외의 또 어떤 것들…그리고 바람소리에 맞추어
연주를 한다…
그런 느낌의 곡이다. 은하수가 보이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노래를 듣길 바랬는데…mp3를 두고 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본의 아니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귀가 열려있었기 때문에 귀한 말타기 시간에 말잡이 몽골 사람들과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해야 했지만, 또 귀가 열려있었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던 것 같다.
내 온몸의 감각이 살아 있었던 것 같다.
#2. 몽골의 일상
사실 몽골 초원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은 그리 아름답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실재로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분명히 세나 언니, 소라 언니, 은미 언니, 희석이 형에 나까지 총 다섯 명이 누워있었음에도, 내 발 밑에는 시커먼 개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별도 별이지만, 나는 낯선 동물의 출현에 크나큰 두려움을 느끼며 누워있었다. 누워있다는 상태가 매우 무방비한 상태라는 것을 그 때 처음 절실히 깨달았다. 만약 내가 그 개의 꼬리를 무심결에 밟아 심기를 건드려서 이 녀석이 나한테 달려 들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그 날카로운 이빨에 팔이라도 한쪽 떼어주어야 했을 거고, 행여나 게르 캠프 문 밖에서 소리도 없이 늑대 떼가 들이닥쳐 마침 그날 마당에 누워있다가 고깃덩이가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라고 까지 비약이 되니, 밤하늘이 더더욱 차게 빛났다. 휴
씻지 못하는 상황은 그리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한국에서도 잘 안 씻으니까 삼-사일 정도 머리를 감지 못하는 것도 별로 상관 없었다. 다만, 사일째 아침에는 그리 깨끗하지 않은 물임에도 샤워기 밑에서 뜨끈한 물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정말 감사했다. 오죽했으면 초원이 파아랗게 대단히 싱싱해 보였겠나 싶다.
지금도 기분 좋은 상상은 기운 센 흰말을 타고 초원 저 멀리의 지평선을 향해 마구 말을 달렸던 일이다. 말을 타고 초원을 누비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특히나 말을 타기 시작한 첫날 마지막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게르 캠프를
한바퀴 돌고 났을 때의 그 흥분, 두근거림, 황홀경의 경험은 말타기만이 가진 오묘한 매력에 나를 열중시키기 충분했다.
#3. People
이번 여행의 또 하나의 기쁨은, 함께 간 사람들이었다. 최영장군님, 원영이, 종윤오라버니, 창용오라버니, 써니누님, 오병칸옵화, 소라언니, 세나언니, 은남누님, 윤이언니, 은미언니, 희석이형, 재순언니, 교주님, 정화언니, 민선언니, 도윤오빠 (빠진 사람 없죠?) 와 싸부라 불리는 아빠.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들은 함께 ‘살았다’.
우리는 함께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으며,
말을 탔고,
몇 가지 게임을 했고,
식사를 함께 했고,
강점 발표 시간에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며,
별을 보면서 소원을 말했다.
나는 선천적으로 INFP형 인간이었다. 특히 어렸을 때엔 굉장히 내향적이었다.
전화로 피자나 치킨 따위를 주문할 때도 마음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한 번 돌려보고 하지 않으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꽁꽁 얼어있었던 게 나의 과거였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ENFP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지금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외향형이겠거니 한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서 선천적 내향성과 후천적 외향성은 많이 다툰다. 어떤 때에는 외향성이 많이 발휘되어 다른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운이 쪼옥 빠져 의기소침하고 남들과 입을 섞기 싫어하는 원래의 나로 돌아가버린다.
뜬금없이 내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이번에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에게 내향적인 구해언도 외향적인 구해언도 무리 없이 섞일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성격 특성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문제해결을 위한 의견을 나누는 동안에도 커다란 장애 없이 해결되었다.
이번 여행 때 나는 타로 카드를 가져갔었다. 사실, 이번 여행을 위해 한 벌의 카드를 새로 구입했다. 가지고 있던 카드들은 사촌언니 집에 놓고 와서 도저히 여행 전까지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저녁 강점 발표 시간 때 조금 소문을 흘리고, 몇 명의 점을 봐주고 나니, 금새 구경꾼들이 몰렸다. 관광봉고 특등 관람석(앞자리)에 함께 앉았던 세나 언니와 둘이 동업을 계약(?)하고 VIP손님들을 늘려갔다. 가장 나를 괴롭혔던 사람은 민선언니!였다.
타로점 개시 첫날 저녁 마지막 손님으로서 많은 질문 공세를 퍼부으며 연거푸 점을 쳤다. 예쁜 얼굴에 점점 수심이 드리워지는 모습을 보며 귀엽다고 생각했다. (허허, 누님 죄송합니다.)
점을 치면서 느꼈던 점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점괘 그 자체가 아닌 어떤 일에 대한 ‘확신’ 이라는 점이었다. 사람들의 고민과 그에 대한 해결은 항상 자기 자신 안에 존재한다. 회사를 바꿀까 말까에 대한 고민은, 조직 사회 속에 자신이 더 이상 예속 되고 싶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부의 소망에서부터 시작된다. 1인 기업이 자신에게 맞을까 그렇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은,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희망을 현실과 결부시키고자 하는 의지에서부터 비롯된다.
'모든 것은 자신의 내부에서 시작된다. '
그런 점에서 내가 준비한 이 작은 이벤트가 함께 여행했던 분들의 마음 속에
한 가지 자신감과 확신으로 남길 바란다.
#4. 닫는 글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한가지 마음 속으로 결심한 것이 있다. 에딘버러 궁전에서도, 일본의 모리 빌딩 위에서도,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내가 했던 말은 ‘와! 멋있다/아름답다’ 라는 단 하나로 수렴되었다.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그 어떤 곳을 가든지 그곳의 풍경을 기억하면서 ‘멋있었다’ 밖에 말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남지 말 것.
나의 결심은 바로 그 것뿐이었다.
정작 몽골 가서는 그 생각은 잊고 지냈다. 나는 그 어떤 자연풍경을 보면서도 멋있다라든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마음 속에 풍경을 억지로 그려 넣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초원을 스치는 바람처럼, 대륙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었고, 새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했었다. 기를 쓰고, 뭔가 얻어가겠다라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몽골에서의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글을 써야겠다는 압박감도 없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그렇게 지내다 왔다. 모순이지만 무에서 유가 나온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몽골은 분명히 시각적으로 사람을 감동시키지 않는다. 베르사유를 보고 루브르를 보고, 오르세를 보고 왔다. 라고 말하는 것과 몽골을 다녀왔다고 말하는 것은 그 느낌이 매우 다르다. 다만 몽골을 다녀온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 곳은, 아주 자연스럽게 휴식을 위한 안식처로 평화롭고 푸근하게 남아있어 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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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언아, 집에 들어오자마자 세수만 하고 니 글부터 읽었어.
너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나. 아, 저런 여동생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정말 잘 챙겨줄 수 있을텐데~ 싶었거든. 근데 이렇게 조금은
특별한 곳에서 우리 인연을 시작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몰라.
너의 글을 보고 있노라니, 언니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
다녀온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몽골에 대한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거 있지. 너의 글이. 감동을 넘어 읽는 사람
으로 하여금 액션을 취하게 하는 글이라면 꽤나 성공적인 글이겠지?
몽골에게 참 많이 고마워. 너를 만나게 해줘서 ^^ 풉 ㅎㅎㅎ
오늘 오후 5시 비행기로 내 동생이 다시 미국 들어가는데 남동생 떠나 보낸 대신 여동생 하나 생겨서 난 완전 복 받았어 ㅋㅋ
너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나. 아, 저런 여동생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정말 잘 챙겨줄 수 있을텐데~ 싶었거든. 근데 이렇게 조금은
특별한 곳에서 우리 인연을 시작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몰라.
너의 글을 보고 있노라니, 언니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
다녀온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몽골에 대한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거 있지. 너의 글이. 감동을 넘어 읽는 사람
으로 하여금 액션을 취하게 하는 글이라면 꽤나 성공적인 글이겠지?
몽골에게 참 많이 고마워. 너를 만나게 해줘서 ^^ 풉 ㅎㅎㅎ
오늘 오후 5시 비행기로 내 동생이 다시 미국 들어가는데 남동생 떠나 보낸 대신 여동생 하나 생겨서 난 완전 복 받았어 ㅋㅋ

선비 언
와~이렇게 많은 립흘이+_+ (부끄럽군요!)
변경연에 자주 글을 올려야 겠다는 뿌듯한 기분이 차오릅니다. 허허허
이한숙// 허허 감사합니다. 그냥 너무 좋았던 것을 좋았다고 쓴 것뿐인데 이렇게 칭찬 해주시다니.. 다음에는 꼭 뵈었으면 좋겠네요!^^/
고요한 바다// 언니!!>ㅅ<//역시역시역시역시!! 적극 PR은 언니에게밖에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긴 답글을...ㅋㅋ 기대하고 있을게! 언니의 글도+_+ 내일 데이또도..호호호호호호
한정화// 허허 정화언니. 앞으로 남은 연구원 생활도 재미있게 하셨으면 합니다. (저도 앞으로 계속 함께할 예정이여요. 소근소근)
써니// 누님! 앞으로 분발하겠습니다!!!
최영훈// 음, 그래도 간만에 좋은 여행이었으니, 멋있는 글 기대할게요. 저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맺음말은 함께 했던 분들의 몫입니다.
(참! 이번 여행때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장.군.님.~)
호정// 아, 역시, 아직 안 올라 온거 였군요. 이 글 변경연에 올리기 전에 남자친구한테 보여줬는데 타로점에 민선언니라는 분 얘기는 쫌 사적인 것 같아 안쓰는게 좋지 않겠냐고 했는데 못들은 척했어요. ㅋㅋㅋ글, 기대하겠습니다~
여해// 사부님과는 또다른 향기!!! 노력하겠습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습니다.
백산//몽골은...특별한 곳인것 같습니다. 저도 다녀온지 불과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서울에서는 그게 쉽지가 않네요.. 허허 제가 조만간 들르겠습니다 백산 오라버님!
오병칸// 어제 둘째따님 뵙고 기분이 더 좋아졌습니다. 몽골에서의 칸과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보내드리기로 한 사진은 답글 남기고 보내겠습니다. (사실 어제는 정말 경황이 없었네요.ㅠ)
신촌오시면 연락하세요! 허허허허
변경연에 자주 글을 올려야 겠다는 뿌듯한 기분이 차오릅니다. 허허허
이한숙// 허허 감사합니다. 그냥 너무 좋았던 것을 좋았다고 쓴 것뿐인데 이렇게 칭찬 해주시다니.. 다음에는 꼭 뵈었으면 좋겠네요!^^/
고요한 바다// 언니!!>ㅅ<//역시역시역시역시!! 적극 PR은 언니에게밖에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긴 답글을...ㅋㅋ 기대하고 있을게! 언니의 글도+_+ 내일 데이또도..호호호호호호
한정화// 허허 정화언니. 앞으로 남은 연구원 생활도 재미있게 하셨으면 합니다. (저도 앞으로 계속 함께할 예정이여요. 소근소근)
써니// 누님! 앞으로 분발하겠습니다!!!
최영훈// 음, 그래도 간만에 좋은 여행이었으니, 멋있는 글 기대할게요. 저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맺음말은 함께 했던 분들의 몫입니다.
(참! 이번 여행때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장.군.님.~)
호정// 아, 역시, 아직 안 올라 온거 였군요. 이 글 변경연에 올리기 전에 남자친구한테 보여줬는데 타로점에 민선언니라는 분 얘기는 쫌 사적인 것 같아 안쓰는게 좋지 않겠냐고 했는데 못들은 척했어요. ㅋㅋㅋ글, 기대하겠습니다~
여해// 사부님과는 또다른 향기!!! 노력하겠습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습니다.
백산//몽골은...특별한 곳인것 같습니다. 저도 다녀온지 불과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서울에서는 그게 쉽지가 않네요.. 허허 제가 조만간 들르겠습니다 백산 오라버님!
오병칸// 어제 둘째따님 뵙고 기분이 더 좋아졌습니다. 몽골에서의 칸과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보내드리기로 한 사진은 답글 남기고 보내겠습니다. (사실 어제는 정말 경황이 없었네요.ㅠ)
신촌오시면 연락하세요! 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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