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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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강연
얼마 전 출판사에서 전화가 와서 어떤 남자분이 책을 보고 연락한다면서 내 연락처를 물어 보길래 알려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그 남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 여보세요. ‘음식보다 마음을 팔아라’를 쓰신 박 선생님 되십니까?
- 예, 맞습니다. 누구시죠?
- 안녕하세요? 저는 전남대 외식경영자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000교수라고 합니다. 선생님 책을 읽었는데 책을 잘 읽었습니다. ······ 중략 ······ 저희 과정에 강의를 부탁드리고 싶은데 시간이 괜찮으시면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아, 예 ······ 그런데 저는 강의 같은 것을 거의 해 본적이 없는데요.
- 그냥 책에 있는 내용 그대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허락하신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날짜는 3월 10일이구요. 강의시간은 약 3시간 정도입니다. 그럼 허락하신 것으로 알고 그날 뵙겠습니다.
- 아, 네 ······ .
핸드폰을 내려놓고 과연 잘 한 것인지 조금 멍한 상태로 한동안 앉아 있었다.
머릿속에는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강의도중에 버벅대는 모습이며, 자료준비가 부족해 허둥대는 등 나쁜 쪽 생각들이 먼저 떠올랐다.
괜히 한다고 한 것은 아닐까. 그냥 다음에 할 걸. 다시 전화해서 미룰까?
강연일정까지는 보름 정도의 시간 여유가 있었고 하루 더 고민을 해보고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무슨 내용을 해야 할까?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정말 수능시험 전 날처럼 깨다 잠들기를 시간마다 반복하였고 새벽녘 혼자 날이 새는 것을 보면서 “그래 해보자, 까짓 거 하다 보면 방법이 생기겠지 뭐.” 하면서 준비에 들어갔다.
2월 말과 3월을 시작하는 토, 일요일은 식당일에 매여 사느라 꼼짝 못하고 정확하게 일주일 전부터 내용을 잡기 시작하였다.
먼저 강연의 주제를 잡았다.
책의 제목이 ‘음식보다 마음을 팔아라.’니까 주제를 그것으로 잡아도 무관하겠지만 예전부터 식당 사장님들한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어서 그 내용을 주제로 잡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정한 강연 제목이 ‘식당 사장이 된다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책의 내용과 새로 보완하게 될 부분까지 해서 약 30페이지 정도의 텍스트를 만들었고 이것을 파워포인트로 정리하고, 식당 ‘마실’에 대한 자료도 같이 만들었다. 텍스트는 혼자 작업했지만 파워포인트는 컴퓨터 능력이 부족해서 직원에게 부탁해서 만들었다.
강의 전날까지 자료준비 하느라 허둥대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마무리하고 드디어 강연 날이 다가왔다.
아내가 새로 사 준 넥타이로 단장을 하고 광주로 가는 KTX 열차를 타기 위해 천안아산역으로 갔는데 아뿔사 2분 차이로 떠나 버린 것이 아닌가!
인터넷으로 확인한 시간과 실제 시간 차이가 10분이나 났던 것이다. 여유 있게 왔어야 하는데 이런 낭패가 다 있나.
할 수 없이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부랴부랴 빛고을 광주로 향했다.
강의실을 가득 채운 40여명의 광주, 전남지역 외식경영자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담당 교수님의 소개를 받고 단상에 올랐다.
떨린다. 말이 목을 타고 정확하게 나오는지 궁금했다.
차분하게! 침착하게! 천천히!
첫 10여분이 어떻게 흘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참이 흘렀을까? 그제 서야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내가 말하고 있는 내용과 차트가 보였다.
첫 시간은 ‘마실 이야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다. 인수 첫 달 매출과 작년 12월 정확하게 첫 달의 3배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하기까지 지난 2년의 굴곡과 경험 그리고 마케팅내용을 설명하였다.
[술 보다는 밥, 저녁보다는 낮 장사, 남자보다는 여성고객, 광고보다는 입소문, 가격보다는 맛] 등의 차별화를 시도한 포인트와 [야외조경, 실내개선, 개인매트, 포인트 카드, 기부 프로그램, 언론 마케팅] 등 실제 진행했던 외식마케팅 내용들을 하나하나 사진을 보여주며 나름 최선을 다했다.
둘째 시간엔 ‘식당 사장이 된다는 것’이란 주제로 연구원 시절 공부하고 배운 고객을 돕는 식당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경영자가 해야 할 내용들을 20여 가지의 항목으로 분류하여 혼자만 부지런을 떨면서 강의하였다.
특히 마실의 일일분석과 결산파일로 사례분석을 할 때 모든 눈동자가 집중되는 느낌을 받았고 그 때의 짜릿한 느낌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조는 사람이 있으면 책임은 옆 자리 앉은 사람과 강사 책임이라는 말에 강의 시간 내내 조는 사람이 있는지 둘러보는 것도 신경 쓰이게 하는 요인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조는 얼굴이 눈에 뛸 때는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해 지기도 했다.
불고기 부라더스의 정인태 사장, 발효퓨전한정식의 대가인 박명서 할매집 사장, 한국외식정보의 박형희 대표, 경기대 진양호 교수, 놀부의 김순진 회장, 약선요리로 성공한 권수열 도리원 사장 등 외식업계의 기라성 같은 분들이 강연자로 예정되어 있는 이 과정에 내가 첫 강연의 테이프를 끊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혹 첫 강의 예정자가 펑크를 내서 대타로 뗌빵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아직도 버릴 수 없긴 하다.)
이것이 책을 쓴 힘이 아닐까?
책을 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강의를 할 수 있었을까? 또한 책이 아니었으면 그들이 나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광주를 비롯해 영광, 화순, 순천, 담양, 전주에서 온 그들에게 내가 겪었던 지난 몇 년의 풍상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었던 힘도 책을 쓰고자 했던 지난한 과정에 있었을 것이다.
강연 한 번이 무슨 대단한 일도 아니긴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가슴 설레는 일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강의 후 책을 내밀며 사인을 부탁하던 어느 사장님의 미소가 떠오른다.
내가 꿈꾸는 미래의 출발선상에 서 있다는 느낌에 이 봄이 그리 싫지만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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