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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0일 13시 11분 등록

어제(18일) 셀린 디온 쇼를 보았다. 장소는 올림픽 체조 경기장. 지난 2월 남아공을 시발로 1년 반 동안 세계를 돌며 공연하게 될 ‘셀린 디온 테이킹 챈시스 월드 투어’(Taking Chances(새로 발매한 앨범의 주제곡) World Tour’의 한국 공연. 내일까지, 두 번의 공연이 있다.

그런데 8시 30분 시작 예정이던 공연은 아무런 예고 없이 9시까지 지체되었다. 사람들은 아직 도 다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주최측은 지연에 대한 아무런 예고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9시가 지나면서 객석에 불이 꺼지고 술렁이는 분위기, 무대 정면 뒤쪽의 LED 메인 화면과 무대 양쪽의 두 개의 화면(대형이라고는 하지만 2층 정면 200미터 이상 떨어진 내 자리에서는 화면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에 뮤직 비디오가 먼저 뜬다. 그제서야 사람들 박수를 치며 기다린 지루함을 날려보낸다. 뮤직 비디오는 ‘I drove all night' 이다. 또박또박 걷는 그녀의 구두와 다리가 클로즈업되고, 멋진 스포츠카가 기어를 넣고 어딘가를 향해 질주한다. 흑백 화면이다. 비디오 안의 디온이 칸막이의 뒤로 사라지면서, 스포트 라이트가 무대 중앙을 향해 집중된다. 그 무대에는 마치 사라진 화면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셀린 디온이 서 있다. 그녀는 화면에서처럼 당당하고 우아하게 계단 중앙에서 무대 아래로 걸어 내려온다. 함성과 함께 쏟아지는 박수. 짜릿한 전율과 함께 드디어 공연 시작이다. 짧고 까만 탱크탑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세련 그 자체다. 팔목에 찬 팔찌 외에는 일체 액세서리를 하지 않았다. 멋진 금발에 굽이 높은 심플한 블랙슈즈, 슈어홀릭다운 패션이다.

그 이후로 쏟아지는 그녀의 노래들. 그녀의 가창력은 누구도 따라 갈 수 없다. 고음과 저음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레인지가 넓은 그녀의 목소리는 파워풀하면서도 동시에 한없이 달콤하다. 한 노래 안에서도 톤을 다양하게 구사하는 변화무쌍한 그녀의 창법은 그 누구 것도 아닌 그녀만의 카리스마로 넘친다. 가끔씩 마이크를 잡지 않은 오른 손을 히틀러처럼 힘있게 뻗어 올릴 때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작당에 함께 목숨을 걸고 싶은 시위대처럼 열광을 한다.

나는 이미 그녀의 쇼 ‘A New Day’를 2003년에 라스베가스 시저스 호텔 ‘콜로세움’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쇼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녀의 쇼는 정말 테크놀로지의 승리를 보는 듯 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초대형 LED 스크린을 동원하여 신기에 가까운 디지털 영상들을 선보이고, 갖가지 엄청난 소품들은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어 자동으로, ‘적시에’ 무대에 등장하였다. 거기에 50명이 넘는 댄서들의 박진감 넘치는 퍼포먼스는 셀린 디온의 공연을 단순한 디바의 리사이틀이 아닌, 정말 볼거리가 풍부한 한 편의 완벽한 라스베가스 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무대의 연출가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태양의 서커스 (Cirque du Soleil)’의 ‘O’를 연출한 프랑코 드라곤(Franco Dragone)이었다고 한다.

사전 지식 없이 호텔방에 앉아 볼만한 쇼가 없나 가이드북을 뒤적이던 나는 별 기대 없이 ‘노래 잘하는’ 그녀의 공연이라면 적어도 실망은 하지 않겠지 하는 심정으로 티켓을 예약했었다. 그러나 공연을 본 후에는 그녀 쇼 한 편으로 명성으로만 듣던 라스베가스 쇼 산업의 막강한 파워와 진면목을 다 체험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표 값이 왜 이렇게 비싼거야’ 했던 불만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표 값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뭐니뭐니 해도가장 감동은, 쇼의 핵심이랄 수 있는 그녀의 노래 실력에 있었다. 그녀는 정말 노래를 잘 했다. 관객을 향한 따듯하고 세련된 매너는, 프로의 것이었다. 그러니 애초 3년 계약이었던 그녀의 쇼가 거듭 계약 연장을 거쳐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라스베가스의 명품으로 자리를 지킨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콜로세움 공연장을 나오면서 기념품 부스에서 셀린 디온 향수를 샀다. 웬지 지적이고 따뜻한 그녀의 매력이 향수를 뿌릴 때마다 내게로 옮겨올 것만 같아서....)

올림픽 체조 경기장은 라스베가스 식의 쇼를 무대에 올린 만한 전문 공연장이 아니다. 분명 공연을 보면서 나는 실망할 게 뻔하다. 공연기획이 내 밥벌이 중의 하나인데 무대 연출과 관련된 주최측의 과대 홍보를 다 믿지는 않는다 해도 나름 기대를 버릴 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본 공연을 다시 본다는 것은 보통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아티스트의 광 팬이거나, 이전보다 더 멋진 퍼포먼스를 기대할 수 있는 경우이거나. 그런데 두 경우에 다 해당되지 않는데도 나는 셀린 디온 쇼를 다시 보러 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를 초대한 무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광고한 것과는 달리 역시 무대는 기대를 한참 못 미쳤다. 주최측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브리트니 스피어스, 리키 마틴, 최근 스파이스 걸스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수퍼 스타들이 1순위로 꼽는 연출가 제이미 킹(Jamie King)이 초특급 무대를 보여줄 것이라고 떠들어댔었다. 라스베가스에서 함께 했던 최상의 코러스, 밴드, 댄서들도 대거 동반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 것들이 주머니 돈을 털어 비싼 티켓을 사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위무하는 구실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대는 정말 약소했다. 넉넉치 않은 공간에서 댄서들(그것도 남녀 4쌍뿐)의 메인 역할은 셀린 디온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장면들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실력은 있었지만 쇼의 완벽한 일부가 되진 못했다. 그리고 한 가지, 매체 보도를 이용하여 디온이 한국 노래(애국가나, 아름다운 강산 중에서 하나)를 부를 것이라고 광고한 주최측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음향시설과 음향 연출은 거의 완벽했다. 그녀의 호흡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포착하였으며 2시간에 걸친 공연 내내 그녀의 화려하고 다양한 보컬 사운드를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멋지게 컨트롤 했다. 특히 신곡 Taking Chances나, 린다 페리가 자신을 위해 직접 써 준 곡이라며 무릎을 꿇고 부른 My Love는 그녀의 깊은 음색이 가슴에 긴 울림을 남겼다. 한없이 달콤한 Because You Loved Me, 아울러 그녀의 전매 특허인 고음 파트가 유려한 Power Of Love나 All By Myself 노래들은 하나같이 짜릿한 전율과 감동을 선사했다. I Got The Music In Me, I'm Alive, Can't Fight The Feeling 같은 흥겨운 록 뮤직을 부를 때 디온은 긴 블랙 가죽 부츠로 멋을 내고 스탠드 마이크를 끌고 나와 멋진 포즈로 노래를 불렀다.

압권은 그녀가 퀸의 노래 We Will Rock You 와 Show Must Go On을 부를 때 화면에 띄워준 퀸의 뮤직 비디오였다. 프레드 머큐리, 이 못생긴 남자는 마치 종말을 예고하는 제3 종교의 교주처럼 긴 망토를 휘두르며 거침없이 자신의 락 제국(Rock Kingdom)을 건설하고 있었다. 제왕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그 앞에 무릎꿇은 무리들이 바치는 숭배는, 그야말로 광신적인 것이었다. 디온과 함께 위 일 락 유를 외치며 우리도 어느새 그가 건설한 제국의 시민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무릎을 꿇어 열광적인 숭배를 바치고픈 열망은 화면 속의 사람들 만의 것이 아니었다. 아, 그 순간 우리들은 모두 머큐리, 그를 흠모하는 그의 백성들이었다. 그리고 외쳤다. 쇼는 계속 되어야만 한다고, Show must go on!!!!

그래, 이거야,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라가고, 숨통은 확 트였다. 퀸의 비디오 한 편은 완전히 신선한 깜짝 선물이었다.

‘한국에서 공연한 지 10년이 지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요, 월드 투어라고 해도 시간과 거리 문제 상 모든 곳엘 갈 수가 없지요, 그러나 나는 지금 이렇게 서울에 왔습니다’...예상된 박수를 기대하며 너스레를 떠는 디온은 귀여웠다. 그녀는 가는 곳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지금과 똑 같은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할 것이다.

관객을 일으켜 세운 후 티나 터너의 히트곡 River Deep Mountain High와, Love Can Move Mountains'으로 막판 분위기를 띄운 그녀는 앙코르 첫 무대에서도 그 분위기를 그대로 끌어갔다. 그리고 다시 퇴장, 관객들 열렬한 앙코르 박수 다시. 신비감을 주는 긴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관객들이 오래 기다린 타이타닉의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을 열창하며 멋지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어 밴드 뮤지션, 백 코러스, 댄서들을 불러 인사를 시작하자, 복잡해지기 전에 공연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우리 무리들은 자리를 떴다. 그런데 입구를 벗어나기 전, ‘여기 여러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디온의 말이 들리고, 우리는 반사적으로 그 자리에 섰다. 이야기라니?

그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엔딩이었다. 그 엔딩의 주인공은 디온의 월드투어 전속 댄서인 ‘애디 영미’. 마돈나와 같은 유명 가수들의 백댄서를 하며 이름을 알려온 댄서 애디는 어린 시절 미국에 입양된 후 이번 디온의 서울 공연을 통해 처음 한국을 밟는 것이라고. 그리고 백 코러스 여자 가수가 안고 있는 그녀의 아들 ‘루카’. 10살이 안돼 보이는 그 아이 역시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였다. 입양된 후 한국에 처음 방문하는 것이라고.

관객들의 따뜻한 박수는 오래 오래 이어졌다. 내 박수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박수를 치는 내 감정은 참 미묘한 것이었다. 맘껏 축복할 수만은 없는 이 불편함, 제 자식을 책임지지 못한 어머니가, 어느 날 훌륭하게 성장해서 나타난 자식을 보고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는 그런 기분. 왜 그 친구들이 한국 부모의 품이 아니고 거기에 있어야 하는가. 애디는 디온을 껴안으며 눈시울을 적셨지만 끝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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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8.03.20 19:00:11 *.145.231.77
아! 멋진 지상공연입니다.
신문에서 읽었던 사연이 이렇게 중계되니 더 실감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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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08.03.21 08:58:09 *.248.16.2
아...벌써 공연이 끝났군요.. 정말 멋진 공연이었을것 같습니다! 가려고 했었는데 벌써 끝났다니...다음에 또 기회가 오겠지요? DVD라도 사서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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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숙
2008.03.21 14:06:14 *.51.218.156
네, 라스베가스 공연실활 디브이디, 'A New Day'가 출시되었습니다. 그 디브이디를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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