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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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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6일 01시 46분 등록
전 아주 어릴적에 무척이나 착했답니다.^^ 얼마나요? 글쎄요...^^

국민학교 4학년 때 학교내에서 교육감 표창장 줄 어린이를 한명 뽑아야 하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학교에서 투표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보통은 전교학생 회장이 받아가는 건데, 아마도 민주화바람이 불었었나 봅니다. 반에서 투표를 실시해 표가 가장 많이 나온 어린이에게 교육감이 주는 표창장을 주기로 했죠.

투표라는 것을 처음 해 봤는데, 어이 없게도 우리반에서 저에게 몰표가 나왔었습니다. 선생님도 놀라고, 반아이들도 놀라고, 저 또한 놀랐지요... 왜냐하면 제가 반에서 별로 주목을 받는 어린이도 아니었고, 조용하고 그저 그렇게 묻혀 가는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제가 착하다고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애들도 모두 저를 찍었다는 사실에 다들 놀랐지요.

결국 전교생 대표로 운동장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교육감 표창장을 받았었지요. 남들은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전 그때 솔직히 많은 충격을 받았었죠. 전 제 스스로가 착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냥 애들이 뭘 부탁하면 해주고 별 생각이 없었는데, 애들은 날 아주 착하다고 생각 한 걸 보면, 저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아무생각없이 산다... 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착하기만 하던 제가 사춘기를 언제 겪었나 하면 대학교 1학년때입니다. 전 사춘기가 뭔지 몰랐죠. 역시 전 착한 것이 아니라 늦되는 것이었습니다.

전 세상이 정말 좋은 곳이고 또 바르고 정직한 곳이고, 또 이 세상의 어른들은 너무나 훌륭하고 대단한 분들인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대학교 1학년때 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우리 작은아버지가 작은 어머니를 놔두고 다른 여자랑 바람을 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전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를 그냥 엄마, 아빠라고 불렀었거든요. 특히나 작은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무척이나 컷었습니다.

작은아버지가 너무나 미웠습니다. 어떻게 그럴수가... 어떻게 그럴수가... 작은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하다니 용서할 수가 없었지요. 하루는 우리집에 제사가 들어서 식구들이 모두 모였는데, 저는 거기서 대범하게 작은아버지에게 막말을 했습니다.

"나가라. 니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 오는데!'

엄청난 반란이었습니다. 어른에게 그것도 작은아버지에게 제가 한말에 어른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지요. '재가 대학을 들어가더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나 보다'라시며 어른들은 모두 저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퍼부우셨죠. 전 그날 이후로 점점 어른들에 대해서 더 반항적이 되어 갔던 것 같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작은 아버지가 너무나 미웠고,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했죠.

정작 모든 화살은 작은아버지가 아니라 저에게 돌아왔습니다. 특히나 가장 충격받은 분은 작은어머니였습니다. 전 작은어머니를 너무 사랑해서 작은아버지에게 뭔가 자극을 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상처받은 분은 작은어머니였습니다.

조카가 남편에게 막말을 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신 겁니다. 그때부터 작은 어머니를 저 보기를 거부하셨죠. 그리고 내가 작은집에 가면 그 쌀쌀한 눈빛과 냉정한 말투... 전 무척이나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내가 미워하지 않는 이가 나에게 보내는 미움, 그속에서도 식지않은 작은 어머님에 대한 나의 사랑은 너무나 많은 갈등과 괴로움속에서 몇년을 보내게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저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잃기 싫은 것은 작은어머님이 아니라, 작은어머님을 사랑하는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작은엄마가 나를 미워한다고 해서, 사랑하는 작은 어머님을 내 마음에서 잃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나의 사랑하는 눈빛을 느껴보곤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나를 밖으로 보내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지켜보곤 합니다.

전 요즘도 내 마음을 지키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잘 안될때도 많지만...^^ 수많은 오해와 비난과 갈등속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씩 잃어 간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비록 나를 미워한다 할지라도, 또 나를 힘들게 한다고 할지라도 소중하게 지켜가는 것이 내 마음의 보석을 잃지 않는 길인 것 같습니다. 나의 마음은 나의 것이기에 그 순수한 마음들을 지켜가고 싶습니다.

또 다시 사랑을 하는 거죠... 마치 처음 사랑하는 것처럼...

그때 그 찐한 사춘기를 겪으면서 전 많은 것을 깨닭았습니다. 내가 안 놀라운 사실은 작은어머님이 작은아버님의 그러한 면에 그리 힘들어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또 그 집의 자녀들인 작은 동생들 또한 별로 관심이 없더라구요.

오히려 작은 아버지는 작은 엄마 그리고 동생들에게도 아주 잘했고, 또 그 여자에게도 잘했기 때문에 다들 별로 관심도 없고, 별로 힘들어 하지도 않았는데, 괜시리 저만 흥분해서 혼자 비난의 화살을 다 맞고, 엄청 가슴앓이 하면서 몇년이나 힘들게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아버지는 결코 바람은 피지 않으셨지만, 언제나 술 많이 드시고 힘들게 하셔서, 우리집이 그리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중에 과연 누가 함께 하는 이들을 행복하게 하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살이가 참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생각하고 다른게 너무 많더라구요.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나 봅니다. 같은 일들을 보거나 겪어도 이제는 많은 다른 시각에서 봅니다. 문제라 생각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고,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문제이기도 하죠. 나이를 먹어가니 생각이라는 것이 느슨한 고무줄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세상을 약간 풀어진 눈으로 보는 거죠. 풀어진 눈동자로 게슴츠레하게...^^

옛날에는 제 눈이 많이 올라간 눈매였거든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인가 제 눈이 점점 쳐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견딜만 하지만, 예전의 그 큰 날렵한 눈은 벌써 세월의 잔주름과 함께 조금씩 쳐지고 있죠.^^

밤이 흘러갑니다.^^ 자기 싫은데...^^ 심심하다....
IP *.90.4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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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권양우
2008.06.16 10:42:44 *.223.104.12
대학 다닐때 나의 지인 한명은
87학번 입학시부터 쉼없이 계속되었던 민주화항쟁 및 반미투쟁에
늘 선봉에 서 있었습니다.
그 애와 한번씩 이야기를 할 때면
어떻게 저렇게 서스름없이 자기 주관이 무섭도록 뚜렷할까..
부럽기도 하고, 한편 두렵기도 하고.. 암튼 그랬습니다.

세월이 흘러 졸업을 하고 몇 년이 지난 후
우연히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모습도 조금은 변해 있었구요.
그 친구는 한국에 들어와 있는 미국기업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복지와 처우가 역시 외국기업은 남다르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는 몇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던 것이..라고 타협으로 치부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각이라는 것이 느슨한 고무줄이 되어 버린 것 같다는 효정님 말씀에 일부 공감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매 순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선택은 자신의 몫이자, 그 과정 또한 자신을 만드는 일부입니다.

어제 잠은 잘 주무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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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제
2008.06.16 11:00:36 *.41.121.44
도종환의 책<부드러운 직선>처럼
그리고 <어당팔>처럼 살아가는 것이
좋다는 것을 느낀다면 벌써 <철>이 것입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지요.
효정님을 생각하면 왜 자꾸 <S>글자가 생각나는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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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政
2008.06.16 12:32:12 *.193.94.124
저도 그러했지만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느낍니다.
직장생활이 그러하겠지만 힘들고 여러사람과의 부딪침으로 보낸 그날들이 느슨해진 고무줄이 되어 버린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눈꼬리가 올라가 조금은 매서워 보였던 눈매가 요즘은 그리 유순해 보일수 없네요.
세월의 가르침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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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17 00:16:17 *.36.210.11
운제 선배께서 나의 생각과 동감인가 봅니다. 권가와 홍가가 심상치 않아요.ㅎ

왠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네요. 두 가지 다.

난 초등학교때 점심 시간이면 매일 교단에 나가서 원맨쇼 등을 하곤 했는데 순전히 선생님을 도와 조용히 시키려는 것이었지만 나중에 오락부장에서 일약 한 표 차이로 부반장에 당선 되었다는.ㅋ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는 전교에서 1명 선행상 같은 봉사상을 탔더라는 은근 자랑스런 이야기.ㅋ

그런데 효정님 말마따나 나도 내가 늦되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아예 사춘기를 겪지 않다가 뒤늦게 한꺼번에 몽땅 겪었지요. 그저 세상이 내 맘 같은 줄 알았고 또한 내가 옳은 줄만 알았어요. 지금도 그게 강한 편이라 수행과 덕을 쌓아나가야 하지요.


무엇보다 작은 어머님에게 느끼신 감정에 대해 이해가 되어요. 나도 말로는 거칠게 원망하거나 밉다고 하면서도 밉지 않은 혹은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지만 덜 미운 사람이 있거든요. 그게 누구냐면요 헤어진 시어머니랍니다. 요상하게도 연민이 많이 느껴져요. 그게 제 아픔이기도 하지요.

연구원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는데 어떤 글을 쏟아낼지 궁금해요. 폭포수 같은 글이 마구 쏟아져 내릴 것 같거든요. 여성들의 거센 함성이 벌써부터 들려오는 듯 하군요. 특히 위의 세 여자분들 말예요. ㅎㅎㅎ

아, 그리고 참 좋군요.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기, 동심으로 혹은 근원으로 돌아가기와 맞닿아 아주 좋아요. 나도 그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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