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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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출판사에 ‘ 내 인생의 첫 책 쓰기(가제)’ 원고에 대한 최종 답신을 보냈다. 메일을 보내면서 문득 승완이와 이 책을 같이 쓴 과정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그 중에 기억나는 몇 가지 장면을 소개해본다.
(아래 글은 가을에 출간될 책의 부록에 실려 있는 ‘출간 일기’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구본형 사부님께 목차와 서문을 메일로 보냈다. 밤늦게 답신이 왔다. “좋다. 나무랄 데 없다. 이제 어서 불 싸지르 듯 내용을 불러 와라.” 강렬하게 재촉하신다. 부지깽이로 불 쑤셨으니, 이 한 몸 장렬하게 불 싸지르리라 다짐한다.
책을 쓰면서 한 가지 부담이 다가온다. 이 책이 책 쓰기에 관한 책인데 책 쓰기의 모범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당신들조차 지키지 못할 말을 쓴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글과 실천이 하나로 일치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목적이며 아웃풋이다. 초고를 쓰고 난 후 우리가 세운 원칙과 실천방법, 노하우로 검증해봐야겠다.
자신이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수정하는 방법이 좋다고 한다. 읽다 보면 술술 넘어가지 못하고 막히는 곳이 고칠 부분이다. 알면서도 익히 써보지는 못했다. 둘째 재아를 꼬셨다. “재아야, 아빠 원고 읽어주면 아이스크림, 윙스 통닭 사줄께.” 순진한 재아, 큰 소리로 대답한다. “좋아. 아빠~ 빨리 쓴 글 줘. 읽어줄께.” “헉~ 아빠 아직 못썼는데...” 납기를 재촉하는 이가 하나 더 늘었다. 내 이마에 주름이 한 줄 그어졌다.
(둘째, 재아가 책 제목을 지어주었다. '나는 무슨 책을 쓸 수 있을까?' 패러디 냄새가 나서 채택은 안됐지만...ㅎㅎ)
행복한 하루였다. 병곤 형과
일어나자마자 세수만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탔는데 다행히 거리가 한산했다. 운도 좋았다. 한남동에서 세검정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사부님 댁까지 신호 한 번 걸리지 않았다. 서울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도착하니 사부님과 병곤 형이 대화 중이었다. 형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형이 웃어주었다. 고마웠다. 통합 원고에 대해 형이 정리한 것을 중심으로 서로 의견을 나누고 조율했다. 형이 원고를 꼼꼼히 검토했기 때문에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협의를 마치고 초고 수정 작업에 착수했다. 북한산의 기운을 받아서 일까, 수정 작업이 잘 풀렸다.
공간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사부님 댁은 위치가 참 좋다. 풍광과 공기가 아주 좋다. 뒤에는 바로 북한산이 있고 앞에는 인왕산이 보인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공기가 신선하다. 우리가 작업한 방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큰 창으로 바람이 불어와 선선했다. 발코니에서 태우는 담배는 어느 때보다 맛있었다.
이런 곳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병곤 형과 함께 글을 쓰는 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하다.’
사부님과 사모님은 우리를 위해 특별한 점심식사를 마련하셨다. 우리는 야외에서 사부님이 직접 구운 스테이크를 즐겼고, 사모님이 직접 조리하신 샐러드와 빵은 기가 막혔다. 나는 평소보다 2배 쯤 많이 먹었다. ‘행복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수정 작업은 까다로웠지만 나의 에너지는 넘쳤다. 내가 글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글과 내가 하나 되는 듯이 몰입했다. ‘행복하다.’
집에 도착하니
(손수 스테이크를 구워주시는 사부님의 귀여운 엉뎅이만 나왔네.ㅎㅎ
멀쩡한 와인은 그냥 구경만..ㅜ.ㅜ)
승완이가 몸살 기운이 있어 만나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나 홀로 원고 수정을 했다.
까칠한 원고 4개를 수정했다. ‘목차 구성하기’, ‘원고 한 절 쓰기’, ‘친절하고 매력적인 저자라 되라’, ‘싱싱한 재료를 찾는 법’이 그것인데 역시 프로세스 만드는 게 어렵다는 걸 실감한다. 책쓰기 전체를 관통하는 프로세스를 1-2장으로 정리해서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1차 원고 수정이 막바지다. 이번 주말에는 승완이와 원고 하나 하나를 해부하면서 완성도를 더 높혀야겠다. 출판사와 저자 인터뷰도 진행해야 하고 이번 주는 바쁜 한 주가 될 것 같다.
지난 주 밤늦은 시각에 우연히 모 프로에서 소설가 이외수가 출연한 프로그램을 보았다.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삶의 지혜도 얻을 수 있었다. 이외수 책 중에 내가 읽은 건 고등학교 때 읽은 ‘들개’와 작년에 후다닥 읽은 ‘날다 타조’가 전부였다. 그러다 우연히 정혜신의 이외수 인물 평전을 읽게 되었는데, 그만 이외수에 대한 애정을 넘어서 존경심이 나올 정도였다.
그는 알코올중독이라는 진단이 내려진 그날부터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랬지만 이외수는 자신이 가진 재산을 정신력 하나밖에 없다고 굳게 믿었다. 그는 석 달 동안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술 생각이 치밀어 오를 때마다 콘크리트벽에 이마를 들이받으며 수도자가 고행하는 기분으로 고통을 견뎌냈다. 결국 그는 정신력 하나만으로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났다.
지금 이 책을 쓰면서 우리는 금주를 했다. 벌써 한 달이 훨씬 지났다. 생각보다 난 금주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불쑥 찾아 드는 허전함을 견디기 어려운 때도 있었다. 책을 쓴다는 것은 때로는 고행과도 같다. 철저한 자기관리가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포기하거나 흐지부지 끝나게 된다.
이외수는 책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밤을 새워 글을 써본들 무슨 낙이 있으랴. 언제나 닿아오는 것은 절망뿐이다. 써놓고 다시 읽어보면 엿 같다는 생각만 든다. 마누라는 옆방에서 잘도 잔다. 백매를 쓰고 천매의 파지를 만든다. 그리고 다시 써놓은 백매를 태워 버린다. 울고 싶은 심정뿐이다. 기침을 한다. 목구멍에서 약간의 피비린내가 나고 있다. 어디까지 망가져 있는 것일까. 그러나 망가져도 좋으니 하나만 쓰게 해다오.”
치열한 목마름과 끊임없는 실천이 오늘날 그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오늘 아침 그를 본받고 싶은 마음이 불쑥 치밀어온다.
(금주의 절박함과 안타까움을 극명하게 표현한 이 한 장의 사진~, 사이다에 고추라...)
저녁에 출판사와 미팅이 있었다. 퇴근 후 병곤 형과 함께 위즈덤하우스의 사무실을 찾았다.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는데 잘 될 것 같다.
미팅이 끝나고 병곤 형과 근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기분 좋게 소주 잔을 부딪쳤다. 중요한 고개를 하나 잘 넘긴 것 같다.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기 전에 크로스체킹을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원고를 크게 작게 수정한 것이 몇 번인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래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수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분 좋은 밤이다.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나서 승완이와 마포 공덕동 시장에서 족발에 한잔했다. 여기는 벅적벅적하지만 부담없이 가볍게 한잔할 수 있다. 예전에 승완이가 첫 월급을 탈 때 사부님에게 쏜 아주 유서깊은 시장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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