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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7일 00시 43분 등록

감기에 걸렸다.
며칠동안 콧물이 흘러 집에 굴러 다니던 감기약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이젠 아주 목이 감겼다.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도 몇 번이나 되 묻는다.  답답하다.
이렇게 목소리가 안 나오기도 첨이다. 그것도 체력짱, 강철체력인 내가. 하기야 강철체력이니 몸살은 동반하지 않은게지.
말을 하려다가도 참는다. 안해도 되는 말이구나 싶다. 핸드폰을 누르다가도 못알아 들을 듯하여 멈춘다. 안해도 되는 전화구나 싶다. 느린 손가락 놀림으로 정겹게 안부 문자만 보낸다.
신께서 침묵의 시간을 주심인가.

어제는 간송미술관에 다녀왔다. 간송미술관은 봄, 가을로 일년에 두번 개관 한다는데
지금,  10월 12일~26일까지 2주간 가을 전시를 한다.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에 10만석 재산과 문전옥답을 팔아 일본으로 해외로 팔려나가는 우리 미술품을 모은 '문화열사'라고 한다. 덕분에 조선시대 미술품을 간송미술관에 고스란히 남겨 놓았단다.
보화각이라고 불리었던 간송미술관. 올해가 70주년 기념 서화대전이란다.
가기 전, 얼핏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신문기사에는 지금 드라마로 방영되는 "바람이 화원"의 인기로 더 성황리란다. 이럴땐 드라마를 안 본 것이 약간은 불편하다. 드라마 보기를 누르니 남장 여자아이가 나온다.
신윤복인가 보다.

성북동에서(081015) 037.jpg

간송미술관.
건물은 밖에서 윤곽이 다 보이지 않는다. 울창한 숲 속에 자리 잡았는데 큰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건물을 가렸다. 좁은 터인지라 전체 사진을 찍으려 해도 각이 나오지 않는다. 아, 저것이 간송미술관이구나 하는순간  좁은 정원길로 들어가야 한다고 안내판이 말했다.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아기 자기한 정원을 돌면 출입구가 나온다. 아니. 건물이 출입구가 왜 이쪽에, 건물의 뒷쪽에 있지?  예전에는 뒷쪽 같은 앞쪽으로 길이 나 있었었나?
1938년에 설립한 최초의 사립 박물관이라니 그사이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건물은 어느 컬럼리스트의 우려와는 달리 튼튼해 보였다. 건물은 작고 하얗다. 온통 하얗다.
노오란 국화꽃을 지나고 잘익은 석류에 감탄사를 보내며 입구에 들어섰다.

실제로 평일 오전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사람들은 엄청 많았다. 줄을 서서 전시 유리곽으로 고개를 숙인 사람들. 느린 움직임. 1층의 이런 풍경을 보는 순간 2층으로 먼저 갔다.

거기도 마찬가지인지라 줄을 섰다. 시계방향으로 느린 움직임이 시작된다. 기다리는 동안 내부를 둘러보았다. 여긴 지금도 1930대다.
미술관하면 떠오르는 그 흔한 작은 스포트라이트하나 없다.  아, 그 이전에 여긴 벽에 전시된 것이 없다.
조명은 하나도 없다. 천장에 달려 있어도 켜지 않았다. 자연채광이 조명이다. 길게 내린 창문에 브라인드를 쳐 은은한 간접조명을 연출했다. 많은 인파에 후덥지근하고 덥다. 같이 간 다섯살 우리집의 햇살은 나가잔다. 어떻게 기다린 줄인데.. 복도와 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라 했다.

작품들은 벽에 세워진 유리 진열장안에 들었다. 모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먼저 초서, 해서등 한문이다. 필체가 예술이다. 분명 내용이 좋을 터인데 글씨를 그림만으로 본다.
한문이 짧으면 역사에는 길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니 그 시대가 그려지지 않아 답답하다. 그리고 안타깝다. 하여간 이런 작품전시회나 고건축을 답사할때 느끼는 것은 한문의 짧음이다.
누군가가 와서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나만 들을 수 있는 선비요정이라도 내 어깨에 내려 왔으면 했다.

한복을 정갈하게 입고 반듯하게 앉아 풍경좋은 정자에서 아님 고즈넉한 사랑방에서 그 멋진 한자를 쓰는 선비를 그려 본다.

그림과 글씨가 조화롭고 한지의 느낌이 좋다. 눈 높이가 맞지 않아 안겨서 보는 햇살이는 "왜 그림에 한문이 있어요? 뭐라고 써있는지 읽어주세요. 네,엄마"라고 말한다. 대략난감이다. "옛날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면 멋있으라고 한문을 몇자 적었대."하고 넘어갔다.
아직 글씨를 모르는 지라 진열장에 붙은 글씨는 뭐라고 쓰였는지 다 물어본다.
"진열장에 손대지 마세요."라는 문장을 수십번은 읽은듯 하다.

제일 안쪽에 다다라서야 진짜 그림이 나왔다. 그 유명한 신윤복의 그림이다. 쉽게 지나가지 못하고 모두둘 오래 들여다 본다. 단오을 즐기는 단오풍정이라는 그림에서 그네타는 아낙네 옆에 앉아 따아진 머리를 두갈래로 내려
청포감는 아낙네를 보고  햇살이가 "엄마, 저쪽에서는 또 그네를 만들고 있어요. 근데요 왜 다 쭈쭈를 내놓고 있어요? 챙피하게."라고 말해 모두 웃었다. 
선비들이 뱃놀이 하는 주유청강이든, 단오풍정 이든, 달빛아래서 만나는 남녀를 그린 월하정인이든 묘사가 너무나 아름답다. 그러나 모두 표정이 없다. 꼭 다문 입. 모두들 표정이 같다. 단오때 청포감는 아낙네들의 모임에서 수다가 없는 듯하다. 양반의 품에 안긴 치마를 감아올린 여인네에겐 애교가 없다.  저 자태에 약간의 미소를 있다면 더 느낌이 올 듯한데...
신윤복은 왜 얼굴에 표정을 넣지 않았을까? 그 시대엔 그랬나? 희노애락을 얼굴에 담으면 안 되었나?
음악도 생음악이 느낌이 팍팍오듯이 그림도, 글씨도 직접보니 감동 백배다. 종이의 오랜 느낌, 선하나 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1600~1700년대 사람들과 마주 앉은 듯하다.

주유청강.jpg
                                                                                                                                         <출처 :신문기사에서>

이런 문화유산에 문외한인 나도 이렇게 떨림이 이는데 전 재산을 들여서 이것을 보았을 때 전형필 선생의 떨림은 오죽하였으랴.
고개 숙여 감사 할 다름이다. 그러기에 고개를 숙여 작품을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층으로 내려갔다. 그 사이 사람이 더 많아져 복도까지 줄을 섰다. 아이의 보챔으로 또 다시 그 느린 행렬에 들어서지 못하고 둘러 본다. 벽에 걸린 그 유명한 미인도가 보인다. 앞에서 사람들의 머리사 이로 멀리서 바라본다.
참하다. 단아하다. 수줍어 보인다. 누군가 말한것 처럼 관능적이진 않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네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를 닮았다.  맞다. 모나리자를 닮았다.

1층 복도에선 원본사이즈와 똑 같은 크기로 복사하여 서화을 판매했다. 나이드신 분들이 사시는 걸 보며 나도 더 나이들면 사야지 다짐한다. 보화각에서 연구 집필한 간송문집을 샀다.이 안에 선비요정이 있겠지 하며.  집에 가서 찬찬히 읽어보리라.

키 큰 노란 국화와 단풍든 담쟁이를 바라보며 건물을 한바퀴 돌아 나왔다. 뒤가 산이다. 천천히 산책이 하고 싶었다. 출입금지다. 실망하며 살짝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조각된 흉상이 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시다. 자신은 헌 내의를 입을 지언정 사비를 털어 미술품을 수집해 민족 문화를  지키려 했던 그.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 앉아 보라색 표지의 간송문집을 펼친다. 이렇게 보화각을 지음이 미술사 연구를 통해 문화광복을 이룩하여 민족문화 자존심을 되찾는 것이 그 목적이란다.  일제 강점기였음에도 반드시 광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미술사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을수 있다고 확신한 그.
그 깊은 뜻을 되짚어 본다.

키 큰 은행나무에 노오란 빛이 완연하다. 저 은행나무는 이 보화각을 지을때 부터 있었을까? 확신에 찬 발걸음의 그를 보았을까?  은행나무를 밑둥에서 부터 나뭇가지로 또 잔가지로 그 가지에 달린 잎사귀로 찬찬히 올려다본다. 맨 끝에 달린 것은 은행잎 사이로 보이는 파아란 하늘 조각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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