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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5일 23시 21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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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 숲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비싼 비용 때문에 하루에 한 두 번 잠깐 연결할 수 있지만, 그래도 세상 소식을 살필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아울러 쓸데 없이 자주 인터넷에 들어가는 소모를 막을 수 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운제 형님, (그리고 다른 모든 분들도) 안녕하신지요?

저는 많은 분들의 염려 덕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IMG_0345.jpg


이 곳 산방(
山房)에서 매일 잠들고 깨어나고 노닐고 일을 하면서

숲의 이야기를 듣고 새 소리와 바람 소리, 짐승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고 있습니다.

저물어가는 아까운 저 가을의 풍경들을 혼자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山房에는 아직도 소소하게 정리할 일들이 제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동안 살림을 들이고 정리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썼더니 이제 겨우 사람이 기거할 공간으로 변신한 듯 합니다.

마당에는 몇 그루 나무를 심었습니다.

주로 반송으로 사철 초록빛을 더했고,

집 입구에는 어린 왕벚나무를 심고 침실 앞에는 매화를 두어 이른 봄의 정취를 그리워하고자 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 감나무 한 그루와 대추나무를 심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어제는 지난 가을 모임 때 스승님께서 선물해 주신 배롱나무에 짚을 입혀 월동준비를 끝냈습니다.


 IMG_0396.jpg

운제 형님 말씀처럼 지금 숲은 텅 비어가고 있습니다.

며칠 한 눈을 팔고 돌아와 보니 집 앞 중경을 이루는 갈참나무 군락과 일본잎갈나무(낙엽송) 군락도 무척 간결해져 있습니다.

남쪽으로 낸 창으로 들어오는 옹달샘 위의 느티나무는 제 잎을 이불처럼 마당에 펼쳐놓기도 했습니다.

산방 뒤의 행복숲도 제 속을 훤히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숲에 올라가 아궁이에 지필 땔감을 얻고자 장날에 나가 지게를 하나 구해 놓았습니다.

 

 

비어가는 숲은 깊어지는 숲입니다. 저도 숲을 따라 깊어지고 싶습니다.

비어가는 숲은 준비하는 숲입니다. 저도 숲을 쫓아 준비하며 살고 있습니다.

비어가는 숲은 그리움을 키우는 숲입니다. 저도 숲을 따라 그리움을 키우는 나날을 보냅니다.

 

스승님과 이 숲을 거닐다가

어느새 생강나무가 제 꽃 눈을 아리따운 여인의 가슴마냥 한껏 키워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 숲에서는 아마 저 녀석이 제일 먼저 2009년의 봄 꽃 소식을 전하겠지요.

아직 겨울도 제대로 오지 않았지만 제 눈에는 벌써 저 비어가는 숲 너머의 봄이 아른거립니다.


형님, 요즘 세상이 어렵다 하는데 세상에도 겨울이 오는 것이겠지요.

세상도 간결해져야 할 때를 건너고 있는 것이겠지요. 더 깊이 있는 대안을 찾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때가 온 것이겠지요.

세상이 그러하니 그 속을 사는 우리도 그런 시간을 보내야 하는 때인 것이겠지요.

형님은 그곳에서, 저는 이 곳에서 우리 그런 시간을 보내면 되는 것이겠지요.

 

저는 이 숲에 소담하게 눈 내릴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워하는 이들을 청해 술 한 잔 할까 하고 있습니다.

그때 만나주시겠습니까?

뵈올 때까지 강녕하십시오.

 

2008-11-25

깊어지는 숲에서

백오 드림

IP *.189.2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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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8.11.25 23:57:20 *.209.32.129
백오산방에 입주하셨나 보네요.
이제 매화나무가 보초서는 방에서 책을 쓰는 건가요? ^^
참 어려운 길을 간다 싶었는데,
그 길이 살 길이었네요.
용규님은 나날이 깊어지고 건강해지고,
용규님을 아는 우리들에게도,
청량한 바람 한 줄기 보내주시니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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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제
2008.11.26 08:09:10 *.41.121.110
지금도 백오산장에서 내려다 본 아름다운 풍광이 눈에 선합니다.
눈이라도 오면 정말 멋질 것 같습니다.
혼자 외로울 때는 자연과 많은 대화를 나누겠지요.
이제 백오산장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것 같네요.
거기에는 아직도 지게가 있나요?
나도 하나 사려고 시골장에 갔었는데 옛날 지게는 없고 철재로 된 것 밖에 없어 포기했습니다.
이번 겨울에 백오산장에서 송년회나 신년회 한번 합시다.
소주 한 박스와 과메기를 사서 달려가겠습니다.
숲 속에서 숲에 관한 책을 잘 정리하여 내년에 봄 꽃이 필 무렵 책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숲에서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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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 윤태희
2008.11.26 12:38:42 *.152.11.11
선생님, 저는 아직도 그 숲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남편은 숲을 거닐때나 자연을 벗삼을 때면 늘 선생님 얘기를 합니다.
그날의 그 숲에서 선생님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 역시 깊은 사람이 되고는 싶지만 아직은 미흡하고 모자란 것 같습니다.

언제든 찿아가도 반겨 주실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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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애
2008.11.26 13:17:08 *.243.45.194
"비어가는 숲은 깊어지는 숲입니다.
비어가는 숲은 준비하는 숲입니다.
비어가는 숲은 그리움을 키우는 숲입니다" 참 공감가는 구절입니다.

산방에서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님의 모습이 청정합니다.
창가에 매화를 두어 그릴 봄의 정취에서
어떤 추위에도 향기 팔지 않을 매화의 暗香을 듣습니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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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산 최학수
2008.11.27 14:06:52 *.221.152.177
백오가 점점 더 숲을 닮아 가네 그려.
숲에 살며 숲과 나무를 담고 있는 백오의 책이 얼마나 깊고 고요할 지 정말 기다려지네.
겨우내 정진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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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정은실
2008.11.27 17:02:44 *.221.152.177
자주 그곳이 떠오릅니다. 떠올리지 않아도. ^^
잘 지내고 계시군요.
드디어 책을 완성할 곳을 완성하셨으니 참 아름다운 책을 내년에 우리가 만나게 되겠군요.
그곳과 이미 많이 닮아 있을 백오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소망하시는 모습으로 더욱 깊고 자유로워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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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11.28 04:13:23 *.220.176.118
용규님의 글을 뵈니 참 좋군요.

그런데 용규님이 생각꽃을 보면서 상상한 여인의 가슴은 어느 정도 크기일까 그게 다 궁금하군요.

봄소풍 때 광란의 밤에 느끼했던 그 용규님과 운제형님의 모습들이 연상이 되는군요.

좀 더 깊어지고 좀 더 자유로워지는 시간이 되시기를 소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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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오 김용규
2008.11.29 10:54:11 *.229.166.246
새벽부터 비가 이 숲에 내리더니 지금은 눈으로 바뀌어 바람을 타고 내립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방청소를 하였습니다.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이라도 읽을까,
아니면 오징어와 실파를 이용한 파전에 홀로 낮술이라도 즐겨볼까
아니면 그저 누워 뒹굴뒹굴 혼자 놀아볼까 하다가 손님이 오시기로 한 날인 것을 기억하고
부지런히 청소를 하는 중입니다.

운제 형님, 이 곳에서는 어렵지만 나무로 깎은 지게를 구할 수가 있더군요. 그 질감이 참 좋습니다.
서정애 선생님, 고맙습니다. 형님 말씀처럼 어느 편안한 날 이 곳에 오셔서 산행도 하고 새해 이야기도 나누면 좋겠습니다. 날만 잡아 주세요^^
한명석님 잘 지내시는지요? 언제나 뵈올지요. T.T
세정 선생님, 두 분 사시는 모습이 늘 좋아서 제게 큰 귀감입니다. 두 분 언제나 오시면 아랫목 내어 드리겠습니다.^^
교산과 여주 내외, 두 분의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근데 어째 이 곳에는 그 소식이 안 올라오는 건가요?
햇빛처럼님, 잘 지내시지요? 생강나무 꽃눈. 직접 한 번 찾아보심이...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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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일
2009.01.02 02:29:22 *.5.212.227
덕분에 백오산방의 기운을 가보지 않고서도 느낄수가 있어 감사합니다. 너무 가고 싶습니다.
왠지 백오산방이라니, 백세주 오십세주 챙겨가야할것 같네요. 송경남형님과 함께 언제 찾아가는날 지게없는 베낭차림이더라도 방문을 허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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