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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8일 01시 26분 등록

DSCN9645.JPG

(위 사진은 기찬씨와 만났던 가로수길의 '오시정 5cijung'이라는 카페, 커피를 시켰더니 이렇게 갖다주었다. 무료로 함께 나온 스콘 접시와, 커피접시. 귀여운 토끼의 모습이라니!!)

_________________ 

기찬씨에게 행백이란 분이 10년의 백수 생활에서 커밍아웃하는 강의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강의 제목이 흥미로와 보였다. 행복한 백수면 백수지, 왜 '진화론에 입각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단 말인가. 대체 진화론과 행복한 백수가 무슨 관계가 있길래.....일단 강의에 가보기로 했다.

내가 변경연에 커밍아웃한 것이 2007년 초창기 함성 모임을 통해서니, 나에겐 이 모임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케익과 꽃을 사들고 강의장으로 갔다
. 강의장으로 가기 전에 미리 만난 기찬씨에게 간단히 재능해석을 받았고, 나는 그의 멋진 해석에 적잖이 감탄했다. 

강의장은 한국야쿠르트 본사의 친절 교육 아카데미였고, 우리 차칸양 재우씨가 도움을 준 것이었다. 난방이 되지 않아 다소 쌀쌀했지만 강의장은 매우 훌륭했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아우라 역시 좋았다
.

기럭지가 큰 행백님, 백수의 통념을 깨는 깔끔한 복장으로 강단에 섰다.

어젯밤 잠이 안왔다. 일당 백하는 내공 강하신 분들이 강의를 듣기 때문에. 어릴 적 소풍가기 전날 밤처럼 설렜다. 그런데 진화론에 입각한 행복한 백수의 삶이란 제목은 누가 정한 건가. 와꾸가 좋으면 그림이 돋보인다고 강의 제목이 멋지니 내 강의가 돋보이는 것 같다.’

이때 기찬씨 끼어든다. ‘그거 사기입니다. ^^

그가 응수한다. ‘아냐, 내공이야.’

그가 말을 이어간다.

신해철이 지난 번 100분 토론에 나와서 하는 말이 악플이 많이 달려 오래 살 것 같다, 아니 이젠 아주 영생할 것 같다고 하더라. 내 강의에 악플이 많이 달리면 안될 것 같아, 여기 좀 적어왔다.’

주머니에서 노트 몇 장을 꺼낸다. 본론 들어가기 전, 갑자기 우스개 소리부터 시작한다.

어떤 만화책을 보니까 40대는 지식의 차이가 없어지고, 50대는 외모의 차이가, 60대는 부의 차이가, 70대는 남녀 차이가, 80대는 건강의 차이가, 90대에는 생사의 차이가 없어진다고 하더라. 그런데 찰리 채플린은 70대에 애를 낳았다. 하긴 그 애가 찰리의 애인지는 DNA 검살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다시 앞의 얘기로 돌아가자면, 40대가 되니 그 얘기가 다 그 얘기더라. 그런데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던 걸 상대의 글에서 확인할 때 독서의 기쁨이 있더라.’

내가 지금부터 떠드는 이야기를 행백의 화려한 변명으로 들어달라.’

(지금부터 그의 강의를 그냥 정리해보겠다. 그의 견해가 나의 견해는 아니다. 그의 견해를 온전히 지지하지는 못하지만 오늘 그의 강의는 '특별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윤리의 희생자가 되어 너무 많은 노동시간에 시달리는 게 우리들의 삶이다. 생기넘치는 30-40대를 일만하며 산다는 건 가혹하다. 리차드 도킨스의 <망상>, 이 작가 내가 했던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 반갑다. 한 사람이 망상을 하면 정신 이상이라 부르고 여러 사람이 망상을 하면 종교라 부른다. 망상이 체계화된 것이 종교다. 명실상부하게 종교가 되려면 내세론창조신화가 있어야 한다.

잠깐 여기서 샛길로 가보자. 오랜 세월 세포 골기체가 없다고 주장한 학자가 있었다. 어떤 세미나에서 다른 학자가 세포골기체가 있다는 걸 증명해보이자 그 사람 강단에 올라 오늘부터 골기체는 없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제가 잘못 강의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그런 솔직함으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나 역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면 지체없이 이전 것을 바꾼다. 종교는 믿음으로 시작해 앎으로 끝나고, 과학은 앎으로 시작해 믿음으로 끝난다. 혹자는 과학도 믿음이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아니다. 새로운 사실이 발표되면 이전 것은 아니다인정하는 것이 과학이다. 그러나 종교에선 아니다라고 하지 못한다. 그래서 순교를 하는 거다. 바꾸면 신앙이 아니다. 종교 때문에 세계 역사가 엄청난 사건과 폭력으로 얼룩졌다. 종교가 개입 안된 엄청난 비극이나 전쟁이 있는가. 있다면 공룡이 죽은 사건 정도?(ㅋㅋ) 무식하면서 용감하고, 거기에 소신까지 있으면 그게 비극이다. 뵈는 게 없으니까.

, IMF 때 다 까먹고 캐나다 서부의 조그만 마을로 이민 갔다. 영어가 되기 전에 한국어 잊어버리더니, 지금 한국에 와서는 한국어 되기 전에 영어를 잊어버렸다. 캐나다에 정착해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그 때부터 내 나름의 행백 생활이 시작되었다.(그가 말하는 백수는 돈 한푼 벌지 않고 놀고 먹는 건달을 의미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수입을 위해 최소의 노동만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나름 매우 주체적인 인간을 의미한다) 사실 내가 가장 불안했을 때는 , 이렇게 돈이 벌리는구나감탄하던 때였다.돈을 제법 잘 벌던 때는 그렇게 불안하더니 한번 다 깨 먹고 나니 용기가 났다. 아침에 일어나 그래도 먹고 있네하는 자각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걸릴 게 없는 것이 백수의 정신이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 백수의 잠재력이다. 10년에 한 번씩 직업 바꾸면 괜찮은 삶 아닌가. 이제 나도 백수 2로 진입하려 한다.

백수를 잘하려면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운동을 끊임없이 해야하고, 공부 역시 그래야 한다. 3년 전부터 마라톤을 하기 시작했다. 복근, 꽤 쓸 만해졌다. 후회하는 게 유일하게 있다면 왜 진작 백수가 되지 않았나하는 거다. 이렇게 인물도 되는데, 통장에 ‘0’자 하나 더 붙이려고 왜 그리 힘들게 살았나. 귀신이 붙었었나 보다. 지금은 불안한 거 없고, 내 적성에 맞는 일 하며 사니 행복하다. 시간이 많으니 ()테크를 할 수 있다. 재테크보다 중요한 게 시테크다. 재테크의 목적이 무엇인가. 시간과 여유를 갖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시테크는 돈 없이도 어떻게 행복하게 살 건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잠시 백수 생활을 배반한 적이 있다. 캐나다에서 사회복지과 졸업하고 실버타운에 취직했었다. 노인들 기저귀를 하루에 100개 이상씩 갈았다. 서양 노인들 냄새 왜 그리 지독한지…^^

오늘이 그대에게 주어진 마지막 하루라면 그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 바로 그걸 해라스티브 잡스가 한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보자. 건강하게 5년만 더 살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은가. 다시 태어나도 그걸 하면 좋겠다 싶은 게 있는가,  없다면 그걸 찾아보라. 피하지 못할 거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렇게 바꾸고 싶다. 즐기지 못할 거면 피하라. 생산성은 비용대비 효과를 이르는 말이다. 백수는 일단 사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 자동차를 없애니 한 달에 약 1백만원이 절약되더라. 한국의 대중 교통 시설, 너무 잘 되어있다. 10년 전에 비해 한국  너무 다르다. 지금 한국, 살기 너무 좋다. 마라톤 그다지 힘들지 않다. 땀 흘리며 뛰는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만들거나 하나의 화두를 정해 명상하면서 뛰면 좋다. 행복한 백수 생활을 하려면 주거 형태도 바꾸는 것이 좋다. 비용 줄이려면 먼저 사람을 많이 만나지 말아야 한다. 영양가 없을 뿐더러 인격유지비만 많이 든다. 중요한 건 그냥 백수가 아니라, 그 앞에 붙는 행복한이라는 형용사다. 내가 행백의 표본이다. 나를 보고 용기를 내서 결단해라. 나를 낮게 보는 사람 개의치 말라. 그런 사람은 안 만나면 된다. 외로울 것 같나. 아니다. 그러나 외로운 걸 두려워 하지 말라. 일중독, 그거 외로움으로부터의 도피일 수 있다. 일에 빠지면 욕구 억압과 도피의 효과가 있다. 8시간 이상 일 안하는 것을 부도덕하게 보는 풍토가 사람들을 일에 매달리게 한다. 일을 많이 안하고 놀면 괜히 죄책감에 시달리는 게 우리다. 20-30년 후의 삶을 담보로 오늘을 희생하지 말라.

(여기서 그는 진화론으로 서서히 방향을 틀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가 오늘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진화론 속에 다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왜 진화론을 찬미하는가. 그의 이야기는 꽤나 파격적이었다.(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는 더욱) 진화론에 대해 거의 문외한인 내가 그의 주장의 시비를 가리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진화론에 입각한 서구 발전 논리의 폐해를 수없이 들어온 내게 진화론에 대한 그의 색다른 접근은 호기심은 자극했다. 그러나 마냥 호감을 드러낼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여기부터는 그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보겠다. 너무 파격적인 건 제외하고...)

피천득 선생이 말년에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지인들이 왜 갑자기 교회에 나가는지를 물었다. 그는 혹시 지옥이 있으면 어떡하냐고 대답했다. 종교는 일종의 보험 같은 것이다. 올해 다윈 탄생(1809) 200주년을 맞았다. 종의 기원이 1959년에 발표되었지만 그것은 다윈의 고유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가설이 과학으로 입증되려면 실험과 검증을 거처 이론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시대정신’(자이트가이스트)에 부합해야 한다. 진화론은 갈수록 시대정신에 맞아 들어 간다. 근대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3명의 위인을 꼽는다면 다윈과 마르크스 프로이트를 들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인간 행동의 동기유발 인자가 인간의 소유욕인데 그걸 너무 간과했고 프로이트 이론은 반증이 어렵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은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다위니즘을 뒷받침하는 것이 DNA구조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다 친척 간이다. 이중나선구조 계통을 파악해보면 1천만 종의 생물이 모두 한 종류다. 생명체의 탄생은 단 한 번만 있었다. 그 이후 더 이상 생명체를 탄생시키지 못하는 환경이 되었다. DNA는 모든 걸 이긴다. 자신의 종족을 번식시키려면 무엇이든 한다. 사랑을 생물학적으로 해부해 보니 사랑의 기원은 DNA의 이기심이었다. 다위니즘이 조금 어긋나게 진화한 것이 사랑이다. 지구 역사를 24시간으로 볼 때 우리 인간,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는 눈깜짝할 순간(blink)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초원으로 나와 독립종으로 진화한 건 정말 얼마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다. 부시맨과 유럽인의 DNA 차이는 0.1%도 안된다. 그러니 인종차별이 있을 수 없다. 캄캄한 밤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진화론이었다. 도덕적 진화와 진보를 믿는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라. 그 일은 단, 윤리성과 경제성, 그리고 적성을 충족하는 것이어야 한다목적이 즐거움인 것, 그것을 하라. 돈이 우선 순위가 아니라면 백수 자격 있다. 하루 5시간 이상은 일하지 말라. 그럼 그 나머지 시간엔 뭐하냐고? 그건 걱정마라. 백수, 할 일이 너무 많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소리 못들어 보았나! 진화론을 알면 알수록 겸손해진다. 인간 별 거 아니다.

(그는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를 낭독하는 것으로 강의를 마쳤다. 시를 읊는 그의 목소리는 베이스 톤으로 묵직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무엇이 성공인가  by 랄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받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IP *.248.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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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9.01.28 18:07:45 *.131.23.207
점점 더 제가 따로 후기를 쓸 필요가 없어지네요..^^;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한숙님의 정리실력은 정말 짱입니다.. 단지 꼼꼼한 메모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수준이지요.. 행백님이 이 글을 보시면 기뻐하실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날 아름다운 꽃다발과 축하케잌이 모임을 더 빛나게 하신거 알고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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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2009.01.29 07:12:55 *.47.113.85
한숙님 대단하십니다.

아니 이런 정리를 얼마만에 보는 겁니까?

이렇게 잘 정리해 주시면 강의 참가한 거냐 진배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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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백수
2009.01.31 23:16:14 *.169.160.191
이한숙님의 후기는 거의 녹음기 수준인데요? ㅎㅎㅎ
이한숙님의 카리스마~언젠가 또 느끼고 싶어요.

후기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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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2 00:58:58 *.147.26.47
무언가 열심히 메모하시더니 정리를 기가 막히게 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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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희
2009.02.03 14:44:58 *.89.181.122
정리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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