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칸양
- 조회 수 3515
- 댓글 수 7
- 추천 수 0
변경연에 발을 담그고 처음으로 꿈벗 소풍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을 포함하여 무려 8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월악산 자락에 위치한 펜션에 모였습니다. 서로간 아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꿈벗 프로그램을 다녀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단지 변경연이란 사이트가 좋아 용기를 내어 찾아온 사람들도 제법 많았습니다. 꿈꾸는 사람들. 세상 속에서 자신을 찾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들. 자신의 사명이 있음을 확신하고, 그 사명을 위해 발벗고 나선 사람들. 우리는 이틀 동안 꿈을 나누고, 이야기하면서 때론 웃고, 즐기고, 기뻐했습니다. 이틀이란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습니다. 비록 사회에선 평범하지 못한 부적응자일지 몰라도 이곳에서 만큼은 자신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기 때문에 나 또한 더욱 행복해 질 수 있었습니다.
(2조 사진입니다. 표정들이 좋아서 올립니다)
나는 준비팀이었습니다. 다른 팀원들(꿈벗 14, 15, 16기)과 함께 이번 모임을 기획하고 세부 내용을 구성하고, 진행 상황을 체크했습니다. 모임을 준비하는 시작 단계에서는 꽤나 답답했습니다. 어디서 시작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방향을 잡지 못했습니다. 준비팀 인원조차 제대로 구성되지 못했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또 쌓였습니다. 하지만 꿈벗 16기가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일이 술술 풀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거의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될 정도로 절도있고 스피드하게 일은 진행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 모임을 위한 회의에 꾸준히 참석한 사람이 4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마치 그 배수 이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행동했습니다. 덕분에 예전 꿈벗 모임보다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식구들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식 일정이 끝나고 마지막 인사를 하며 사람들이 제게 말했습니다. ‘행사 준비하느라 너무 고생많았다’고. 그 말을 들으니 지난 한달 여 준비기간이 과연 고생스러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돌아보면 괴로운 기억조차도 희석되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요. 하지만 이번 기억은 달콤한 추억으로 남을 듯 합니다. 준비팀에서 나를 ‘형’, ‘오빠’로 불러주는 좋은 동생 두 명을 얻었으니까요. 사람을 얻는 것도 우연한 기회에 의해 이루어지는 듯 합니다. 단지 아는 사이에서 친밀한 사이로 그 관계가 돈독해지고 짙어질 수 있는 것은 역시나 같이 고생과 어려움을 나눌 때, 그로 인한 공동체 의식이 생겨날 때 인 것 같습니다.
좋은 동생 두 명은 알고 지낸 지 2년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말을 나눠본 적도 없었고, 말을 놓아본 적도 없었습니다. 내 성격상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또 쉽게 관계의 벽을 허무는 성격도 되지 못하는지라 어정쩡한 사이로만 지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모임을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형, 동생이 되었습니다. 정말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나이만 많을 뿐이지 오히려 그들에게 많이 배워야 할 터인데, 오히려 그들을 동생으로 삼을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우연찮게 얻게 된 이 횡재를 잘 가꾸고 유지해야겠습니다. 어느 순간 신기루처러 사라져 버리면 곤란하니까요.
이번 모임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갔었습니다. 아내에게는 무척 미안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진행팀인 관계로 같이 있어줄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 아내와 후배 홍스의 아내는 마치 탁아소의 운영자들처럼 이번 행사에 참여한 아이들을 관리하고 돌보아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 아내가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아내에게 감사할 일이 많아집니다. 가을 추수할 때가 가까워진 벼가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저도 그렇게 고개를 숙여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이틀째 점심을 먹고 우리들은 포옹을 하며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사부님은 일일이 한명 한명 포옹을 하고 덕담을 해주었습니다. 저에게도 격려와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을 요구했습니다. 1주일에 한번씩 칼럼을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리라고 명령아닌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 모습은 역시나 변경연이란 배를 이끌고 있는 늠름한 선장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그는 지난 4월의 연구원 OT에서 ‘떠나라. 배는 항구에 묶여 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배의 본분은 항해를 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들의 길을 밝혀줄 등대가 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 들의 갈 방향을 잡고 과감히 떠나라.’ 라고 했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올해는 제 항해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거친 파도와 맞서 싸울 고독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 시간만 성공적으로 넘길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맛보게 되는 달콤한 열매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꾸준하게 저는 저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1박 2일의 시간. 길면 길고 짧으면 아주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 우리는 꿈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꿈벗입니다. 꿈벗은 서로의 꿈을 위해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심어줍니다. 꿈벗은 서로의 꿈을 존중합니다. 서로의 꿈을 이루기를 바라고 기원합니다. 꿈벗 중 누군가가 그의 꿈을 이룰 때 우리는 옆에서 박수를 치고 포옹을 할 것입니다. 우리 꿈벗들은 불꽃놀이와 같습니다. 세상에서는 단지 폭탄에 불과해 보일지 몰라도 저 높은 하늘로 올라가서는 아름답고 화려한 그 꿈들을 수놓을 것입니다. ‘펑’, ‘펑’ 그 잊지 못할 삶의 명장면들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오늘 하루 또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꿈벗 친구들!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