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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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레길
순한 애벌레처럼 가는 길이 있다
땀 흐르던 그 길의 저기쯤 마을이 보이는 어귀에는
오래 묵은 당산나무 귀신들이 수천 천수
관음의 손을 흔들며 맞이해서
오싹 소름이 서늘한 길이 있다
두리번 두리번 둘레둘레
한눈을 팔며 가야만 맛을 보여주는 길이 있다
더운 여름날 쫒기듯 잰걸음을 놓는 눈앞에는
대낮에도 백 년 여우가 홀딱홀딱 재주를 넘으며
간을 빼 먹는다는 소문이 무시무시한 길이 있다
서어나무 숲이, 팽나무 숲이, 소나무 숲이,
서걱서걱 시누대 숲이 새파랗게 날을 벼리고는
데끼 놈, 게 섰거랏 싹뚝,
세상의 시름을 단칼에 베어내고
도란도란 낮은 산길이 들려주는 이야기
작은 산골 마을들이 풀어놓은 정겨운 사진첩
퐁퐁퐁 샘물에 목을 축이며 가는 길이 있다
막걸리 한두 잔의 인심이 낯선 걸음을 붙드는 길이 있다
높은 산을 돌아 개울을 따라 산과 들을 잇고
너와 나, 비로소 푸른 강물로 흐르고 흐르는
아직 눈매 선한 논과 밭, 사람의 마을을 건너는 길이 있다.
<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129쪽/ 박남준/ 실천문학사>
박남준 시인님께서 사람의 마을을 건너기 위해 낯선 걸음을 하신다네요.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서울 나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홍대 앞 <더 놀 The Knoll> 에서 오는 11월 19일 금요일 저녁부터~ 늦은 시각까지 일일 마담 하신답니다. ㅋㅋㅋ
시낭송과 공포의 톱연주에 이어 그동안 지리산 악양마을에서 이끌어오신 보컬 그룹의 싱어로서 자작곡도 들려주신다는...으아~ 기대 만땅! 이죠?
시간되시는 분들은 출간기념파티겸 진행되는 이곳에 놀러 오시랍니다. 정식으로 초대장 발부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알고 있죠? 시인님의 영발 있는 싸인도 받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시인님의 악양 편지에서 퍼온 글을 게시해 드리겠습니다. 참고 하시고 많은 참여 바랍니다.
시인님과 더불어 변경연의 모든 벗들 감기 조심(행여 노래를 못 듣게 될가봐 염려 됩니당)하시고 그날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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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생님께서는 2007년 음력 초하루에 '10대 풍광'을 다듬으며 그의 시에 깊이 공명한 적이 있지요. 시 한 구절이 독자에게로 건너가 무엇이 되는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그 부분을 조금 옮기자면...
구본형, '나의 10대 풍광, 2007년 버전' http://www.bhgoo.com/zbxe/48441
서른 살 10년은 성취에 몰두해야할 시기다. 이때 이루어 낸 것이 없으면 그 다음 마흔 살 10년은 통째로 흔들려 그 허망함을 견디기 어렵다. 서른 살 10년의 긴 세월을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가는 개인적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그 선택이 무엇이든 반드시 하나의 성취를 이루어야 한다. 즉, 다음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 지금까지의 인생 중에서 당신이 가장 자랑할 만한 성취는 무엇입니까 ? ” 따라서 이때의 10 년은 성취를 위해 모든 에너지가 결집되어야 한다. 돈도 명예도 보장되지 않는 인생의 한 때를 바닥에서 박박기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연상하면 좋다. 어두움은 늘 위대하고 비옥한 토양이다. 한 시인의 표현을 빌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들끓게 하였던 것들, 끝없는 벼랑으로 내몰고 갔던 것들, 신성과 욕망과 내달림과 쓰러짐과 그리움의 불면들......” 이런 것들이 바로 30 대를 만드는 힘들이다.
마흔 살 10년은 모름지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혁명의 시기다. 이때 전환하지 못하면 피기 전에 시든 꽃처럼 시시한 인생을 살게 된다. 사람들은 이때를 후반전의 인생을 위한 인터미션, 혹은 2막이라고 부를 지 모른다. 어림없는 말이다. 실력이 모자라면 후반전의 경기는 또 한 번의 비웃음에 불과하다. 1막에서 시시한 엑스트라가 2막에서 돌연 위대한 주인공으로 돌변하는 연극을 본적이 없다. 다른 사람의 각본으로 다른 사람의 연출에 따라 미리 정해진 배역을 맡은 배우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인생은 연극이 아니다. 인생은 진짜다. 마흔 살은 지금까지의 연극을 끝내고 진짜 내 인생을 사는 것이다. 스스로 대본을 쓰고, 스스로 연출하고, 스스로 배우가 되는 진짜 이야기, 이것이 마흔 살 이야기다. 이때 10년의 상징은 죽음과 재생이다. 거대한 낭떠러지가 큰 강을 만든다. 낙엽은 나무가 겨울을 나기 위한 아름다운 죽음의 의식이다. 죽어야 다시 하나의 나이테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봄에 꽃을 피울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마흔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가을이 아니라 겨울과 또 다른 봄이다. 내가 보고 겪은 바로는 이 때 그 치열함이란 생사를 가르는 비장함이다. 역시 같은 시인의 표현을 빌면, “구비구비 흘러온 길도 어느 한 구비에서 끝난다. 폭포, 여기까지 흘러온 것들이 그 질긴 숨의 끈을 한꺼번에 탁 놓아 버린다. 다시 네게 묻는다. 너도 이렇게 수직의 정신으로 내리 꽂힐 수 있느냐. 내리꽂힌 그 삶이 깊은 물을 이루며 흐르므로, 고이지 않고 비워내므로 껴안을 수 있는 것이냐. ” 이것이 마흔 살 10년의 정신이다. 죽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쉰 살이 되면 자신의 인생을 미소를 머금고 지켜가면 된다. 커다란 강이 오후의 황홀한 햇빛 속을 눈부신 자태로 유유히 흘러가는 그 장관을 연상하면 좋다. 그 안에 수없이 많은 고기떼를 품고 흐르는 커다란 관용의 강물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자신의 하루에 대하여, 자신이 이루어 낸 크고 작은 멋진 일들에 대하여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시절이다. 역시 시인은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하여 거기 은빛 비늘의 물고기떼, 비바람을 몰고 오던 구름과 시린 별과 달과 크고 작은 이끼들 산 그늘 마저 담아내는 것이냐 .....”
그리고 몇년 뒤 우연히 시인의 악양집에 들렀다가, 짧은 시간에 사람의 기질을 알아차리는 시인의 직관적인 시선에 감탄한 선생님께서는 6기연구원을 선발할 때 시인면접이라는 기발한 순서를 넣기도 하셨지요. 시를 가지고 놀다놀다 이런 일을 겪기는 박시인도 처음이 아니었을지 싶은데요^^ 글과 책 위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풍류 한 자락이 참 보기좋았습니다.
카페소개가 예사롭지 않아 클릭해 보았더니, 내가 막연히 꿈꿔오던 바로 그런 공간이네요. 이름하여 '문화와 여유를 꿈꾸는 사람들의 아지트'! 공동지기들이 재능을 기부하여 마담데이를 열거나 공연을 열고, 돌아가며 서빙도 하고. 기자,PD, 영화감독, 출판계 인사들로 이루어진 '놀 공동지기'의 면면이 화려한데요, 그들은 공동운영자라기보다는 연회원으로 서 단순참여를 하는 것으로 보이구요.
우리도 이런 공간실험 한 번 해 보았으면 싶네요.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자본금을 하되, 그것만 들어먹지 않고 회전시키면 되니까 그다지 운영이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아요. 돌아가며 재능과 시간을 기부하고. 자기강좌하는 사람들이 사용료 몰아줄 수도 있고. 그 곳에 가면 언제든지 사람과 문화가 있는 곳!위 카페도 카페 멤버 수가 13명에 불과하고, 올 9월부터 올라온 게시물의 조회 수가 모두 다섯 손가락 안팎이네요. 누구나 시작은 그렇게 하는 거지 싶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