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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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박남준 시인을 만났다.
강남 토즈에서 늦은 오후 내내 이어진 코칭을 마친 것이 8시 45분,
시인이 하루 찻집을 하러 온다는 홍대앞 카페 <놀>은
그 저녁 시간에 내달려가기엔 너무 멀었다.
그러나...시간에 대한 부담을 무시하고 마음을 따르기로 했다.
그가 서울에 온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그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그와 나 사이에 아무런 면식도 없지만
나는 이미 그의 시를 통해 그를 조금 알고 있었다.
우리 좌샘, 내 부탁도 없었는데
오지랍 넓게도 지난 연구원 여행 때
그의 사인이 든 시집 한 권을 받아다 내게 선물했던 것이다.
<적막>이라는 시집이다.
때로는 질펀하게 분탕질도 치지만
사부는 그의 시를 빌어 40대, '진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다시 태어나야할 나이, 라며 이런 묘사를 했다.
마흔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가을이 아니라 겨울과 또 다른 봄이다.
내가 보고 겪은 바로는 이 때 그 치열함이란 생사를 가르는 비장함이다.
박남준 시인의 표현을 빌면,
구비구비 흘러온 길도 어느 한 구비에서 끝난다.
폭포, 여기까지 흘러온 것들이 그 질긴 숨의 끈을 한꺼번에 탁 놓아 버린다.
다시 네게 묻는다.
너도 이렇게 수직의 정신으로 내리 꽂힐 수 있느냐.
내리꽂힌 그 삶이 깊은 물을 이루며 흐르므로,
고이지 않고 비워내므로 껴안을 수 있는 것이냐.
이것이 마흔 살 10년의 정신이다.
죽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한 시간이 걸려 도착한 '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박남준 시인 옆에서 내내 노닥거릴 수 있을 거란 기대는 깨졌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그의 옆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그건 사부 때문이었다.
연락도 없이 11시가 다되어 사부가 그곳에 나타나셨다.
승오와 정민씨도 함께.
what a surprise!
새로 나온 시인의 시집 <그 아저씨네 간이휴게실 아래>를 한 권 사서 사인을 받았다.
외딴집 감나무 한 그루, 세상의 하늘이 환하네
시인은 외딴집을 만년필로 그리더니
검지 끝에 침을 발라 쓰윽~ 문질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묵향이 그윽한 집이 완성되었다.
감나무의 감은 빨간 인주를 면봉에 찍어 완성하였다. ㅎㅎ
사인받으려는 사람이 줄을 서니,
영발 대신 메시지 통일이다.
모두에게 같은 귀절을 적어 건넨다.
나중에 보니, 비슷한 귀절이 '쉰'이라는 그의 시에 있다.
쉰
그리움도 오래된 골목 끝 외딴 감나무처럼 낡아질 수
있을까
흘러온 길이 끝나는 곳 세상의 모든 바다가 시작되는
그곳
밤새 불빛 끄지 않고 뒤척이며 깜박이는 등대 같은 것
그리고, 그 시집 뒷 표지에 사부님의 글이 실려있었다.
시처럼 살고 싶다.
시인이 되어 시를 쓰는 운명이
내게 주어지지 않았기에
나는 그저 내 삶을 시처럼 만드는
일에 전념한다
인생의 중반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나는 박남준의 시를 만났다
그 후 그의 시는 나의 삶 여기저기에
스미고 묻어 들어왔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그의 시와 연결되게 했고 마침내
그와 닿게 했다
지리산 그의 집에서 처음 그를
만나던 초봄, 어서 오란 말도 없이
그저 노란 복수초를 가르키며
'꽃이 피었네요' 했다
시인은 꽃잎 한 장 속에서 세상의
봄을 본다
해와 땅과 물이 만나 꽃이 되나니
낯선 모든 만남이 삶으로 되나니
......
그러니 세상아
시를 좀 더 많이 읽어라
맥주를 마시고, 막걸리도 마시고,
그가 친히 쑤어온, 부드러워서 목에 순하게 넘어가는 도토리묵도 먹고
조미료 안넣고 들기름에 볶아 고소하고 칼칼한 김치 두부도 먹었다.
뱃속에 부어진 술이 흥취를 서서히 돋을 즈음
3인조 여가수의 노래가 방의 분위기를 달구고,
드디어 시인이 앞에 나서서 기다리던 시낭송을 시작했다.
시가 끝나자 그는 통기타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 한 곡을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다시 말을 이어가는 그.
말을 워낙 잘 못한다, 면서도 그는 어물어물 말을 잘 이어갔다.
어느 대목에서 그는 슬픈 얼굴로 말했다.
지천명 이 나이가 되면 환희의 시를 지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나는 분노의 시를 씁니다.
2004년 도법, 수경스님, 이원규 시인 등과 일년 동안 생명평화탁발순례를 했고,
다시 2008년 수경스님과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라는 순례를 한 그를 두고
종교인들 꼬붕노릇을 한다느니, 정치적인 냄새를 피운다느니 말들이 많았지만
개의치 않은 그였다.
이번 시집 후반부는 모두 순례의 자취들로 채워졌다.
내가 보기에 그의 분노는, '거룩한' 분노다.
우리, 쥐새끼들처럼 사특하고 탐욕스러워지지 말자구요!!!
작은 그의 몸에서 돌연 강한 말이 툭~ 튀어나왔다.
민망한 기색 하나 없이, 그는 다시 시 한 수를 낭송하였다.
부산 국제시장과 영도다리를 둘러보고 지은 시라는데,
시인지 말인지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읊던 시의 운율을 타고 자연스럽게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 속으로 쳐들어가는 그,
이번에는 춤도 함께였다.
등산복에 등산화를 신고 작은 몸을 흔드는 그.
과연 가무를 즐기는 사람다웠다.
사부와 그, 써니와 춘희, 나
우리는 카페 발코니에 나가 찬 바람 속에서 담배를 피웠다.
즐거웠다.
내가 물었다.
'분노말고 시를 쓰게 하는 힘이 무엇인가요.'
'부재예요'
부재라~
'김장은 하셨나요.'
'저는 김장은 안하고요 대신 동치미를 담급니다.'
누구의 마음이든 마구 무찔러 들어가 기어코 무장해제하고 마는 써니 특유의 힘이
이번에도 분위기를 달군다.
하하호호 웃으며 두서없이 튀어다니는 말의 파편들.
그는 우리 무리 속이 마냥 편하고 즐거운 눈치다.
그가, 써니를 가르키며 사부에게 말한다.
'아니, 이런 제자를 왜 제명하지 않고 그냥 둡니까.'
'나도 어쩔 수 없어요.'
'짤리면 악양으로 쳐들어갈지 몰라요'
'어, 그건 안돼요~~'
'손사레를 그렇게 치는 건 수상한데..'
'안아달라는 사인이야.'
170센티의 써니가 작은 시인을 안는다.
마치 사랑스런 아이를 품에 안은 모양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많이 흘렀다.
풍류를 아는 장안의 한량들이 그곳에 다 모인 때문인지
내내 분위기가 야들야들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 우리가 일어난 시간에 시인은 다른 공간의 사람들 사이에 묻혀있었다.
그는 일일 마담, 맞았다.
우리만 가지고 놀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 사부와 택시를 함께 탔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아직 끊기지 않은 버스를 타기 위해 나는 먼저 내렸다.
그러고 보니 사부와 둘이서만 차를 탄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부의 지지와 사랑을 느끼기에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시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부의 삶이, 옆에서 보는 이를 미소짓게 한다.
사부는 갈수록 감탄을 주는 사람이다. 보기 좋다.
저렇게 나이들고 싶다, 생각하게 하는 이들이 옆에 많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나는 오늘 내내 시인의 새 시집을 읽는다.
그가 어젯밤 말한 분노, 에 대해 생각한다.
그건 아니타에게 있었던 분노와 같은 색깔의 것이다.
나 하나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연결된 것들을 생각하는,
연민, 바로 그것에서 흘러나오는 분노다.
그러니까 나는 동서양을 가로질러,
다른 피를 가졌지만, 결국 같은 스피릿을 가진 두 사람을 한 자리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박남준이라는 시인은 사부의 10대 풍광을 통해 처음 알았다.